펄벅은 「어머니의 손상」이라는 작품에서 자기의 어머니인 메어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머니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22세의 색시 때에 당시에 아직 미개하여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중국 대륙으로 전도를 위해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일곱 자녀가 태어났는데, 네 아이는 어머니의 눈 앞에서 잇따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머니는 계속되는 비극과 병고와 궁핍, 고립, 비운, 박해 등의 처절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식들에게는 그것이 비극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많지 않은 잡지나 책이나 자기의 기억에서 여러 가지 노래나 리듬을 생각해 내고 자식들의 생활에 즐거움을 주고, 몇 해씩 같은 옷을 입히면서 리본이나 꽃 한 송이를 옷깃에 다는 등 사소한 착안으로 언제나 새 옷을 입고 있는 듯한 기분을 자식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사소한 일들도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조용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려고 굳게 결심하고 있으면, 우리는 많은 마음의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언제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 지나치게 소심하지 않으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사리, 그리고 훌륭히 해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고난과 병고와 궁핍과 비운과 박해, 고립 등 처절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고난을 극복한 승리 본문 : 히12:2
R. 그린은 말하기를 '인생의 가장 좋은 일들은 대개 슬픔이나 고난의 보자기에 싸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루하루가 평탄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이들의 당연한 바람이지만 때때로 예기치 못했던 어려움과 고통스런 일들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때마다 왜 이러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의문이 제기되곤 하는데, 본문은 고난중에 있는 성도의 신앙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즉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극복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권면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난을 당한 성도가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기도할 때 승리를 체험합니다(약5:13,14)
1)부르짖어 기도함 애굽 땅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그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을 때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달하였고(출3:9).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그들을 바로의 학대로부터 구출해 홍해를 건너는 승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대 왕 히스기야 때 쳐들어와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왕하18:33)라고 능욕합니다. 히스기야는 모욕적인 산헤립의 편지를 하나님의 전 앞에 펼쳐놓고 부르짖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때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리라"(왕하19:31)는 응답의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임하였고 여호와의 사자가 산헤립의 앗수르 군 십팔만 오천명을 물리치는 승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권면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리라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렘29:12,13).
2)믿고 기도함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요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필립 멜랑크톤은 '기도는 환난과 곤고를 나의 주변에서 떠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의심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되 믿고 구할 때 고난이 물러가고 승리의 기쁨이 임합니다. 엘리야는 삼 년 이상 계속된 가뭄 속에서도 비가 내릴 것을 믿고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팔백오십 명과 대결하여 갈멜 산에서 그들은 대파합니다. "내가 지면에 비를 내리리라"(왕상18:1)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제단에 임하셔서 불로 응답하시고 비를 내리셨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는 믿음의 고백이 백성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승리의 개가가 울려 퍼지게 됩니다. 가장 기갈이 심했을 때 비를 내리신 하나님은 오늘도 가장 극심한 고난의 상황 속에 있는 성도들을 기도 하게 하시고 그 믿음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2. 죽음을 감수할 때 승리를 체험합니다(빌1:20,21)
1)죽고자 할 대 삶을 얻음 모든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고 하시면서 십자가 죽음으로써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의 영광을 입으셨습니다. 이렇듯 십자가 죽음 뒤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갈파한 바울은 "이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믿음이 선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고난 뒤에는 승리의 부활이 예비되어 있고, 죽음 뒤에는 영생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죄에 대해 죽을 때 의로운 삶을 얻음 고전1장 23절에 따르면 십자가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죄 가운데 있는 자연인은 십자가의 고난을 싫어하고 사망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전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죄사함을 받은 성도는 이제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니요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잠14:32). 이같이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사는 성도는 주 안에서 영생을 소유하고 모든 죄의 올무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습니다.
3. 끝까지 견딜 때 승리를 체험합니다(고후6:9,10)
1)소망하며 견딤 마르틴 루터는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께서 인간의 모든 고난에 동참하셨음에 감격하여 'No Cross No Crown' 이라 하였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간도 없다는 선언이야말로 자기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명제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십자가에는 고통을 상징하는 발 받침대와 고난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명패가 함께 붙어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과 함께 영광의 승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같이 성도가 믿음을 위해 당하는 자기 몫의 십자가에는 반드시 승리의 영광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2)헌신하며 견딤 토마스 아켐피스는 말합니다. '참고 완전히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라 그리하면 마지막에 십자가가 그대를 져 줄 것이다'자기 나름대로의 고난의 십자가를지지 않는 이가 없지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의 십자가를 몸소 지셨다는 사실은 성도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처절한 고통중에 죽으신 주님의 죽으심이 실패자의 고난이 아니요, 부활하여 영광을 받으신 승리자의 고난이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십자가는 성도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요 힘과 능력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세상은 고난당하는 이에 의해서 진보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고난을 회피하지 아니하고 직면하여 극복하는 자세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 있는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