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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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5월 23일 임진왜란 발발
1592년 5월 23일(음력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 임진년에 처음 발생했다 하여 보통 '임진왜란'이라고 하며, '7년전쟁'이라고도 한다. 1592년 4월 일본군 선봉대가 부산포로 쳐들어와 서울을 향한 북진을 계속해 2개월도 채 못 되어 전 국토가 유린되었다. 선조와 세자는 평양으로 피난하였다.
한산도대첩 등 해전의 승리로 일본의 해상작전이 좌절되고,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킬 수 있었으며 육지의 곳곳에서도 유학자들과 농민이 주축이 된 의병이 일어나 육상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12월 명나라는 4만 3,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했고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하고 일본과 협정에 들어갔다. 강화가 결렬되자 1597년 다시 침입했으나 육지에서는 권율·이시언의 조명 연합군에 패하고 해상에서는 이순신에게 패하여 7년에 걸친 전쟁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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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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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한글판 대한매일신보 창간. 🌳16년 의병장 임병찬, 거문도 유배지에서 사망함 (1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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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미국 은행강도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년 5월 23일,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실제 주인공인 보니와 클라이드 이야기_Bonnie & Clyde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클라이드 배로(Clyde Barrow, 1909 ~ 1934)와 그의 애인 보니 파커(Bonnie Parker, 1910 ~ 1934)였다.
같은 시대의 전설적 갱스터 존 딜린저가 한 번의 강도짓에서 7만 4000달러를 훔친 것에 비하면 1500달러를 넘지 않은 두 사람의 강도짓은 좀도둑 수준이었지만 대공황기에 서민의 착취기관이었던 은행을 공격함으로써 권위와 질서에 도전한 상징으로 인식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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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년 미 군정, 민간인의 38선 무허가 월경 금지 명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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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서독 연방공화국 수립
1945년 5월 8일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무조건 항복 선언과 패망으로 4개국 연합군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분할 통치를 했다. 1947년 4월 모스크바 외무부 장관회의가 결렬되자 미국, 영국 통합지역에서는 경제위원회를 구성했다.
1948년 8월 18일 사회민주당 쿨트 시마하 후보와 경쟁을 벌인 총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이 연합군 진영의 비호를 받는다고 비난하는 연설로 독일인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국민들의 인기를 산 콘라트 아데나워가 초대 총리로 당선되었다. 9월 1일에는 본에서 제헌의회가 구성되어 첫모임을 가졌고 콘라트 아데나워가 제헌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전쟁의 참혹한 결과, 폐허가 된 독일
서독의 새로운 헌법인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이 1949년 5월 23일 공포돼 본을 잠정 수도로 하는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됐다. 이로써 동서분열 체제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이미 1946~1947년에 미국, 영국, 프랑스의 각 점령지역에 주의회가 탄생했고 행정책임이 독일측으로 이송됐다.
통일 이전에 서독의 행정부가 위치했던 도시인 본을 서독의 수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사실 정식 수도는 베를린(서베를린)이었고 본은 법적으로 수도가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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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년 6.25 부역자 합동수사본부 해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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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중국-티베트, ‘17조 협약’ 조인
티베트와 중국 대표가 1951년 5월 23일 `티베트 평화해방의 방법에 관한 협의(Agreement of the Central People's Government and the Local Government of Tibet on Measures for the Peaceful Liberation of Tibet, or Seventeen Point Agreement for the Peaceful Liberation of Tibet)`에 조인했다.
1950년 12월 수 만명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 진주하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티베트 진주를 보장한 이 협약으로 티베트는 자주성을 잃고 중국의 자치구로 전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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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이승만 대통령, 대처승관련 담화발표
불교의 주도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비구승과 대처승 간의 싸움이 점차 격화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5월 23일 담화를 발표 "사찰은 독신승 만이 지켜야 하며 일제 잔재인 대처승은 사찰에서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당시 전국 사찰의 9할은 대처승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담화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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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신익희, 국민장 거행- 독립 운동가, 정치가. 호는 해공, 경기도 광주 사람, 선거 유세중 열차 안 서거 🌳60년 4.19 기념사업회 구성 🌳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언론 기관 정비 🌳64년 박정희, '난국의 책임은 일부 야당, 언론인, 학생의 무책임한 행동에 있다'고 비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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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경찰, 국도제약의 메사돈함유진통제 압수 (메사돈파동)
1965년 5월 23일, ‘진통제 마약’ 메사돈 만든 제약사 급습 1960년대 중반, 농어촌과 산간 벽지 등에서 갑자기 마약 중독자가 급증, 정부가 조사에 나섰으나 진통 주사제가 범람하는 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사제를 수 차례 검사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제3의 물질’ 만 검출됐다. 배·머리가 아플 때, 나무하러 가거나 바다에 들어갈 때 한 대씩 맞은 진통제로 사람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 갔다. 정부는 1965년 3월 현재 중독자가 1만5000명에서 2만 명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최소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보건당국은 1965년 5월에서야 비로소 그 물질이 메사돈(Methadone)임을 밝혀내고 제조업체 추적에 나섰다. 메사돈은 아편보다 진통작용이 2배 이상 강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흰가루 마약이었다.
메사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모르핀 대용으로 개발한 진통제로 1946년부터 사용되었으며 아미돈, 돌로핀, 메사돈이란 상품명으로 유통되었다. 아편제에 의한 마약중독치료에도 사용되어 왔으나 내성이나 의존성, 금단증상을 일으키고 과량복용시 사망까지도 초래하는 글자 그대로의 마약 성분이었다. 1965년 5월 23일 청주시에 있는 국도제약에서 진통제를 제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단속반이 현장을 급습, 메사돈을 주성분으로 한 진통 주사액 20만 통을 압수하고 사장을 마약법 위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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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문교부, 외래어 한글 표기원칙 발표 🌳73년 대법원, 공해에 첫 배상판결(울산 과수피해 소송, 영남화학에 320만원 지급판결) 🌳76년 자동차.유조트럭 충돌 참사(서울방학동 건널목서 19명 사망, 98명 중경상) 🌳80년 위컴 한미연합사령관, 연합사 소속부대 광주 진압에 동의. 🌳81년 보령 앞 바다에 식인상어 출현, 전복 따던 해녀 1명 참변 🌳82년 프레이저 호주 수상 내한(24일 전두환 대통령, 태평양국가의 연례정상회담 제의) 🌳82년 충북대, 충북청주에서 적석횡혈식 석실고분 발견 🌳83년 경제장관회의, 각도별로 농공지구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농가소득원 개발촉진법안을 의결 🌳84년 정부, 65세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승차 허용 🌳85년 대학생 73명,서울 미국 문화원 도서관 점거 하고 광주사태 미국 사과 요구 단식농성, 26일 자진해산 🌳86년 서울시경, 서울대ㆍ계명대 강연내용과 관련, 문익환 목사를 집시법위반혐의로 구속 🌳87년 재야인사 134명, 「박종철살인 은폐조작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발족 🌳88년 한국은행, 「금융산업개편방안」 발표, 외환, 중소기업,국민ㆍ주택은행의 4개국책은행- 민영화 🌳89년 국회, 이철규변사사건진상조사를 위한 국정 조사권 발동 의결, 조사특위 구성 🌳90년 교육개발원 최운실 평생교육 연구실장은 강연을 통해 한국의 문맹률은 13.7%라고 주장. 🌳91년 정부는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 6월1일 부터 시행키로 확정. 🌳92년 서울지검, 선적서류를 위조 외국은행에서 350억원을 가로챈 신한인터내쇼날 정재수씨등 5명 구속 🌳92년 북한의 현대미술전, 예술의 전 당 미술관에서 6월4일까지 회화 도자기 자수 등 140점 출품 열려. 🌳93년 라모스 필리핀대통령 방한 🌳94년 국회법사위, 상무대 정치자금의혹과 관련, 국정 조사활동에 착수. 국방부.법원, 재판기록 검증을 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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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북한 공군 소속 이철수 대위, 미그19기 몰고 귀순
23일 오전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군 조종사는 북한 공군 및 반항공사령부 1비행사단 57연대 2대대 책임비행사인 이철수 대위(30)로 밝혀졌다. 이날 낮 12시 15분께 우리 공군측은 귀순한 이 대위를 10분간 취재진에 공개했다. 이 대위는 귀순 동기에 대해 “이북 체제에서 살 수 없어 이남으로 넘어오게 됐다”고 밝혔으며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만세 삼창으로 대신했다.
수원비행장에 착륙, 전투기에서 내려 헌병에게 연행되는 이철수 대위
인터뷰가 끝나고, 자신의 새로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만세삼창을 외치는 이철수 대위
이철수대위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가족사진과 자녀들 사진.
이 대위는 지난 66년 6월 2일 함경북도 어랑군 어랑읍에서 출생, 73년 9월 삼지연 중고등학교 입학했으며 82년 5월 공군 비행군관학교에 입학, 96년 8월 군관으로 임관했다. 이 대위는 현재 평남도 온천군 온천읍 201에 아버지 이춘상(62)씨와 부인 이성옥(27), 아들 명진(5), 딸 명심(3) 등이 함께 살고 있으며 어머니는 지난 1992년 8월 사망했다. 아버지 춘상씨는 삼지연 비행장에서 비행기 발동기 기사로 일하다 지난 1987년 제대해 평북도 운전식료수매 사업소에서 일하다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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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미국 81세 노령 산악인, 국립공원 요세미티 엘캐피탄봉 (2307m)에 올라 사상 최고령 등반기록 수립
미국 뉴저지주 우즈베리에 사는 아마추어 산악인 게리 블로치(Gerry Bloch, 81) 할아버지가 23일 오후 5시(현지시각) 11일간의 사투 끝에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악명 높은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 엘캐피탄봉(해발2270m) 정상 정복에 성공, 요세미티 사상 최고령 등반기록을 세웠다.
블로치가 택한 코스는 엘캐피탄(El Capitan) 봉 최난코스인 ‘아쿠아리안 월스’. 정상까지 750여m에 걸쳐 가파른 암벽을 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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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송일곤 감독의 ‘소풍’, 한국영화 사상 첫 칸영화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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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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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23일, 시리아 북동부서 6000년 전 도시 발견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전에 도시문명이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6000년 전 유적이 시리아에서 발견됐다.
이 유적의 발굴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한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발굴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 중동연구소는 시리아 북동부, 고대 주요 무역루트에 있는 ‘텔 하무카르(Tell Hamoukar)’의 거대한 흙더미를 파고들어갔다. 그 결과 시가지 방호벽 등 6000년 전에 복합적 형태의 사회가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존재했음이 드러났다.
연구소측은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이 문명지가 남부의 수메르 문명과 동시에 발흥한 것이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2000년 5월 23일 발표했다. 발굴 책임자 맥과이어 깁슨 박사(Professor McGuire Gibson)는 하무카르 유적은 수메르 유적과 같은 시기인 6000년경으로 추정되지만, 여러 흔적으로 보아 하무카르의 도시문명이 수메르 이전에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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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3일 한국전에 첫 참전했던 미군 스미스부대 특공대장 찰스 B 스미스 별세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5일, 참전 미군으로는 처음으로 경기도 오산시 죽미령에서 북한 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던 찰스 B 스미스 미 특공대장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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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조은화씨,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작곡가 조은화(36)씨가 2009년 5월 23일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1위(상금 1만유로)를 차지하며 한국 음악계의 숙원(宿願)을 마침내 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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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인간 노무현, 상식이 통하는 곳으로 가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盧武鉉·63)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3일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40분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뒤편 봉화산을 산책하던 중 30m 높이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오전 9시30분쯤 운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오후 6시30분쯤 봉하마을로 운구돼 마을회관에 안치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수사본부장을 맡은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공식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 사실을 확인하고, 사인은 두개골 골절과 늑골 골절 등 다발성 골절이라고 발표했다.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이다.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1975년 4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1년을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여러 인권 사건을 변호하였다.
1988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권유로 13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해 실시된 ‘5공 청문회’에서 정연한 논리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1990년 1월 3당 합당 때 김영삼 총재의 권유를 뿌리친 이후 비주류 정치인의 길을 걷다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누르고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고, 여세를 몰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8년 2월 퇴임한 뒤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사저를 짓고 머물러 온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9년 4월 30일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후 딸 정연(34)씨가 2007년 9월 박 전 회장의 돈 40만 달러를 송금 받아 미국 뉴저지주의 아파트를 사는 데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등 가족들과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신적 고통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뤄졌으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부터 29일까지 7일장으로 이뤄졌다. 영결식과 안장식은 29일 경남 김해시 소재 진영공설운동장과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각각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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