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본프레레 감독이 중도 낙마하고,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을 10개월 앞 둔 상황에서 사령탑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술위원회 측에서는 본프레레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혀왔다고 하지만, 지난 21일 올스타전에 나타난 본프레레 감독은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었고, 지난 코엘류 감독 교체 때도 은근한 압박으로 자진 사퇴를 종용했던 협회의 전과(?) 를 고려할 때, 본프레레 감독의 사퇴가 정말 순수한 의미의 자진 사퇴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설령 본프레레 감독이 스스로 "압력은 없었다." 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의구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과연 이러한 감독 교체가 진정한 용단으로서, 대표팀의 경기력을 쇄신시키는 하나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말 바꾸기는 감독만의 특권, 아니었다.
본프레레 전 대표팀 감독은 전술과 선수 기용에서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문화 차이에 의한 발언이었는지 모르지만 다소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경기 전과 경기 후 말을 바꾸는 경우도 있어 신뢰감에서 기대에 못미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협회에 믿음과 인내는 놀라웠다. 성적 지상주의에 급급한 우리나라 축구 문화에 비교한다면 더욱 더 엄청난 것이었다. 사우디와의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도 "경기와 본프레레 감독 거취문제와는 연관이 없다." 라고 밝히기도 했던 협회는, 신임 대표 감독 선임에 대한 부담감과 월드컵이 1년도 남지 않은 시기적인 문제, 그리고 급료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들며 감독 교체가 어려운 이유를 어느 정도 타당성 있게 말해왔다. 다만, 기대에 못미치는 대표팀 경기력에 대한 대안을 보이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난 17일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협회 내부에서 감독 교체를 고려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축구계 인사들로부터 감독에 대한 불신임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기 시작했다. 월드컵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고 시기적인 어려움을 말했던 협회는 갑자기 "10개월이면 새로운 팀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라는 완벽한 말 바꾸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결국 본프레레 감독은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자진 사퇴가 아닌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는 본프레레 감독이 팬들에게 안겨준 유일한 성과였다.
하지만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본프레레 감독이 희생양으로 이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감독이 경질될 때 마다 제기된 문제이고, 본프레레 감독 스스로가 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음은 당연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애초 팬들과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본프레레 감독 혼자였다. 박주영을 대표로 발탁하지 않았고, 이영표를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기용하며 팬들의 원성을 샀고, 대표팀 소집과 관련하여 일부 구단과 마찰을 빚으며, 어느새 축구팬들의 주적이 되어 버렸고, 동아시아 축구대회의 졸전 이 후로는 홈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는 감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본프레레 감독에게만 꽂히던 비난의 화살은 언제 부턴가 본프레레 감독이 신임하고 중용한 일부 선수에게까지 확대되었고, 동아시아 축구대회를 전후해서는 협회에까지 본격적인 질타가 쏟아졌다. 오직 본프레레 감독에게만 향하던 원성이 이제는 "기술위원 총사퇴" 와 "축구협회 각성" 까지 요구하는 분노의 목소리로 커진 것이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자 협회는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 가능성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론의 비난과 원망이 감독을 넘어서서 협회를 향하자 그제서야 감독 교체를 말하기 시작했고, 적절한 시기(?)에 감독이 자진 사퇴하는, 그나마 가장 나은 모양세를 갖추며 일을 마무리 지었다. 감독이 퇴진할 경우 기술위원회도 총 사퇴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감독 사퇴가 결정된 이후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감독까지 경질된 마당에 기술위원들마저 모두 사퇴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 이라며 기술위원회의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당연히 이에 대한 여론의 후폭풍이 있겠지만, 사실 이러한 부분도 어느 정도는 예상되었던 부분이다. 성적 부진으로 수많은 감독들이 대표팀을 드나들던 지난 10년 동안 협회의 고위직 인사들은 어짜피 단 한 번도 자기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적이 없었고, 책임은 다른 나라 얘기였다. 물론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기술위원들은 책임을 함께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변화는 있어본 적이 없는 게 사실이다. 기술위원회의 유임으로 협회가 다시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다면 그때가서 기술위원 사퇴로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 지금까지 보여온 협회의 기본적인 모습이었다.
결국 본프레레 감독의 낙마는 그가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능력 한계보다, 감독으로서 협회를 향한 비난을 대신 막아서던 총알받이로서의 능력이 바닥나면서 결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팀을 만들기에 아주 긴 시간, 10개월
쿠웨이트를 대파하고 성공적으로(?) 귀국했던 당시의 본프레레 감독.
어짜피 물러난 감독을 갖고 잘했네 잘못했네를 따지기 보다 이제는 지난 월드컵 4강 이후 3년 동안 세 명의 사령탑을 지켜내지 못한 대표팀 쪽으로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월드컵 본선까지는 이제 10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충분히 못한 기간임은 분명하지만 협회에서는 "팀을 만들기에 짧은 기간이 아니다."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을 감독 중 그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코엘류 전 대표팀 감독도 연습 시간이 짧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떠났다. K-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던 지난 21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본프레레 전 감독 역시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부분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히 설명을 했다. '죽음의 원정'으로 불리웠던 우즈벡-쿠웨이트 원정길에서 당시 대표팀은 우즈벡과 1-1로 비긴 뒤, 쿠웨이트를 대파하고 월드컵 6회 연속 본선행을 결정 지었다. 본프레레 전 감독은 우즈벡과 경기를 앞두고 수원 소속의 선수들이 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느라 경기 이틀 전에 합류했으며, 결국 이틀 간 훈련한 후 우즈벡과의 경기를 치뤘다고 밝혔다. 반면 일주일을 준비한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는 대승을 거뒀다고 말하며, 사우디와의 최종전도 해외파가 이틀 밖에 훈련하지 못하고 경기에 출장해야 했던 상황을 피력, 훈련 시간만 충분하면 결과는 자신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은 국민들의 하나된 염원과 홈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강인한 의지 외에도, 대표팀에 헌신적으로 올인했던 우리 축구계의 희생이 함께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일부 클럽들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클럽의 중심이 잡혀야 대표팀도 바로 설 수 있다는 당연한 원론을 기치로, 대표팀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이미 지난 해 부터 일부 구단들의 대표 선수 소집 거부등의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월드컵까지 남은 기간은 겨우 10개월. 새로운 감독의 선임은 빠르면 9월 중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감독이 팀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은 9개월도 채 안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9개월 중 대표팀이 구성되어 함께 합숙할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길어야 한 달 남짓이다. 그것도 본선을 목전에 두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남은 10개월이라는 기간이 정말로 여유있는 기간인가 하는 부분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자명한 결론이 나온다.
외국인 감독, 한국인 감독. 과연 그 결과는?
월드컵 신화로 국민적인 영웅이 된 히딩크 감독. 그러나 그의 이름은 후임 대표팀 감독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부담이다.
이미 본프레레 전 감독이 사퇴하기 전 부터 협회 내부에서 신임 감독 대상들에 대한 의견이 조금씩 세어 나왔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장을 영입할 것이라는 의견도 대두되었다. 과연 월드컵이 1년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지난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대활약을 보인 팀을, 그것도 성적 부진으로 3년 동안 세 명의 감독을 내쫓은 전과를 알면서도 선택할 충만한 모험정신의 명장이 있을까 하는 문제는 생각지 않도록 하겠다.
현재 외국인 감독이 필요한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정보가 부족하고 세계 축구 흐름에 다소 뒤쳐진 우리 감독들로서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장들은 외국의 유수한 인맥과 경험을 토대로 임기응변 능력과 정보 수집 능력이 탁월하고, 국내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결정적으로 학연과 인맥에 구애받지 않는 공정한 선수 선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히딩크 처럼' 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말이다. 여담같지만 세계적인 명장이라고 다 히딩크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국인 감독이 새로 결정될 경우 학연과 인맥에 구애받지 않는 선수 선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서도 말했듯이 신임 감독에게 주어질 기간은 많아야 9개월. 그 중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합숙 훈련을 할 기간은 한 달 가량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의 축구 선수들을 지켜보고 분석하며 철저한 자신만의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구성할 시간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적어도 히딩크는 1년 정도를 선수 파악에 할애했다. 그랬기에 자신이 의도하는 전술과 전략을 위한 선수 구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 부임하는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러한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위 '명장' 이라 볼리는 외국인 감독들이 우리 선수들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을리도 없고, 또 그들에게 현재까지 그러할 이유도 없다. 그저 유럽에서 활동하는 박지성등 몇 명만이 그들의 시야에 있을 것이다. 결국 남은 기간은 기존의 선수들을 데리고 전술적인 색채를 입히는 데 주력할 수 밖에 없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선수들이란 누가 결정을 하는 것인가? 당연히 기술위원회를 기본으로 한 국내의 축구 관계자들이 추천을 할 것이고, 그 안에서 선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심지어 본프레레 감독 마저도 지난 21일 올스타전 당시 "기술위원회가 승인해준 선수들로 경기를 했다." 고 밝힌 바 있다. 과연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학연과 인맥에 연연한 인사는 대표팀 감독밖에 없었을까? 이러한 인맥의 사슬에서 감독보다 자유롭지 않으며, 또 감독보다는 책임을 종용받지 않을 수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공정한 선수 선발이 가능할 것인가?
물론 지금까지 대표 선수의 선발이 실력은 배제된 채 "짜고치는 고스톱" 처럼 이루어 졌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인 감독이 가질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 자체가 이번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 뿐이다.
결국 남은 기간 동안 선수 파악의 시간을 덜기 위해서는 국내 감독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그럴 경우 "새로운 팀을 만들기에 10개월도 충분하다."는 말은 어쩌면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으로 거론되는 국내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프로팀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감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대표팀 보다 오랜 기간동안 전담할 수 있는 클럽을 맡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감독의 전술과 수준은 높았지만 그에 따르지 못한 선수들의 탓 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결국 "대표팀 감독이 실업자 구직소냐?" 는 비아냥만 거듭될 수 있는 부분이다. 국내 지도자들의 수준을 간과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잡아야 한다는 명목상의 이유로 2002년 아시안게임 직후 박항서 전 대표팀 감독을 해임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결국 국내 감독의 선임은 과거로의 회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협회, 진정한 생각과 대안이 있는 용단이었기를...
다시는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이렇게 무릎꿇는 모습이 없기를 기대한다.
결국 계속되는 내용을 종합하면 "본프레레 감독의 낙마는 잘못되었다." 로 귀결될 수 있다. 하지만 본프레레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서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용수 KBS 해설위원의 말처럼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지 않으면 발전이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본프레레 감독의 교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감독 경질 그 자체가 아닌 과연 이 후의 대책을 협회가 어떻게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협회 내부에서는 어떠한 많은 의견 조율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는 전혀 대책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감독 경질이라는 사실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로 대두 되는 것이다.
신임 감독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으며 빠르면 9월쯤에 선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그 자체로 우리는 월드컵에 참여하는 다른 31개 국가들보다 뒤쳐졌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를 줄이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임도 인지해야 한다. 모 CF의 문구처럼 불가능이란 없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월드컵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은 로또 복권을 사서 대박을 기대하는 심정만큼 절박하기만 하다.
거듭 강조해봐야 별반 달라질 일도 없겠지만, 이번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이 그저 비난을 면하기 위한 협회 내부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닌, 내년 월드컵에서의 확실한 성과를 위한 협회의 용단이었기를 바래본다. 기자의 입장에서 바라는 기대가 아닌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바라는 소망으로 말이다. 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기술위원들은 계속 유임된다는 이회택 기술위원장의 말이 본프레레 감독이 보여준 경기 내용보다 더 무책임하고 책임 회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술위원회의 총사퇴는 이 후에 또 있을지 모르는 축협에 대한 여론의 아우성에 맞설 마지막 대항마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