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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종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규진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이(삿5:31)-2025.1.5
사사기 5장은 여선지자 드보라와 그의 보좌격인 바락의 노래입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 간구와 구원이라는 사이클을 주기적으로 반복했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음으로 사람들이 각각 자기들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시대였지요. 자기들의 입맛대로 살아가는 무정부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기간도 무려 350년이나 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사기는 13명의 사사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사사가 드보라입니다. 그녀가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이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왕 야빈의 손에 이스라엘을 팔아버리신 것입니다. 가나안 왕의 손에 붙여서 이스라엘은 이십 년 동안 압제를 당해야 했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가나안 왕은 철병거 구백승을 갖추고 있는 막강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이십 년 동안 심히 학대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자 사사를 드보라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여자를 사사로 세우심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테지만 당시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자다운 남자가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드보라를 세우신 의도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만한 장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상을 고발하는 차원에서 하나님이 여자를 사사로 세우시지 않았을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은 남녀를 차별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드보라는 존재감이 별로 없는 주부였습니다. 그녀에 대한 프로필은 랍비돗의 아내였다는 정도입니다. 한 남편의 아내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드보라는 자기 백성을 구원할 사사로 적합했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드보라의 권위에 순종했거든요(삿4:5). 백성들이 종려나무 밑에서 재판하는 그녀 앞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행하실 일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동역할 바락을 천거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락은 남자답지 않는 남자였습니다. 무척 소심하고 담대함이 없었던 것이지요(4:8). 그럼에도 바락은 드보라의 권위에 압도당하여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소유한 철병거 구백승을 무력화시키고 승리를 거머쥐었던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의 방점을 찍은 사람은 야엘이라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겐 사람 헤벨의 아내였지요. 그녀가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죽인 것입니다. 자기 집으로 피신한 시스라를 논개처럼 미혹하여 장막 말뚝을 취해 살쩍에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끝이 나고 이스라엘은 다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무려 40년의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드보라와 바락이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그 노래가 바로 사사기5장입니다. 상당히 긴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노래는 드보라와 바락과 야엘이라는 세 사람의 합작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세 사람은 뭔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드보라는 여인이요, 바락은 용기가 부족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야엘은 이방인입니다. 뭔가 쓰임 받기에는 2%가 부족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인물들이 아닌 자들이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은 우리 기준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미련한 자, 연약한 자, 약한 자, 천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고전1:27-28). 본문은 지극히 작고 볼품없는 자들을 들어서 가나안 왕의 군대를 궤멸시킨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비교적 긴 문장으로 되어 있는 이 노래의 대미는 31절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움 같게 하시옵소서”. 결론은 자기들을 '해가 힘 있게 돋움 같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 한 해 우리를 이끌어 갈 표어로 이 말씀을 택했습니다. ‘주여, 우리를 해가 힘 있게 돋움같이 하시옵소서’라는 간구입니다. 어느 해보다 금년에 우리가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한 해가 되게 하소서. 그것은 우리 교회만의 간구가 아닙니다.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나라에 세워진 교회들과 주의 종들을 위한 간구요,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각 가정과 믿음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1) 주를 사랑하게 하소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가 힘 있게 돋움같이’라는 말씀에 무게를 둡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결과보다는 그 결과물을 이루기 위한 사람들의 자세가 중요함을 고지해 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를 체험하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아무에게나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가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그런 은혜를 체험하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주를 사랑하는 자여야 합니다. 물론 해가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만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해가 힘 있게 돋움같이 해달라고 노래하는 것은 동일한 해를 맞이할지라도 힘 있게 맞이하는 사람이 있고, 의미없이 맞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해는 하루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하루는 해가 뜸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해에 좋은 기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쪽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싫어하는 자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한 해를 알리는 해를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 관광을 떠나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해돋이를 구경하기 좋은 곳은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해를 바라보면서 자기들의 소원을 빕니다. 물론 해가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조의 선물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해가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떠오르는 해가 좋습니다. 하루가 열리고 한 해가 열리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해를 맞이하면서 힘 있게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를 시작하는 해가 떠오르는 것이 지옥처럼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해라 할지라도 각 사람이 맞이하는 감정은 다른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맞이하는 해는 너무 예쁘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감사할 것입니다. 그가 맞이하는 해는 그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해는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모든 생명체는 해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해는 우리의 소망이요, 희망입니다. 내 인생을 비추는 해는 반드시 내가 살아 있는 한 힘 있게 돋아야 합니다. 해가 힘 있게 돋아남은 하루의 시작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함을 의미합니다. 하루가 기대가 되고 소망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 자의 해는 분명히 힘 있게 돋아날 것입니다.
그래서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하기를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와 주를 사랑하는 자를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를 대적하는 자를 망하게 하시라는 말은 막연한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하는대로 되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분명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도는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1편6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말입니다.
드보라의 노래 중에 본문도 주를 대적하는 악인들과 주를 사랑하는 의인들의 비유하고 있지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를 대적하는 자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따라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실수를 멈추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원수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내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이 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를 한 것입니다.
다만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인생을 살려면 반드시 주를 사랑하는 자여야 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떠오르는 해가 힘이 될 것입니다. 해가 우리에게 뭔가를 선물로 준다는 말이 아니라 해를 통하여 하루를 시작하는 삶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며 살맛이 난다는 말입니다. 결코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런 복이 임할 리가 없습니다.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를 체험하려면 반드시 주를 사랑하는 자여야 합니다. 주님이 좋으면 주님이 창조하신 해도 좋은 법입니다. 아내가 좋으면 친정집의 소말뚝도 좋다잖아요.
그러면 주를 사랑하는 자는 어떤 자일까요? 요한복음14장21절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질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가진 자는 자기 마음 판에 계명을 새긴 자입니다. 계명을 새긴 것은 계명을 암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만 계명을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명이신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분의 능력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주권을 그분께 양도해 드리는 것이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로 산다는 것은 주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안에서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해가 상징하는 의미는 많습니다. 해는 강함을 상징합니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해를 대적할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해는 능력과 권능을 상징합니다. 해는 또한 깨끗함을 상징합니다. 해에는 어떤 그림자도 없습니다. 어떤 형상도 입혀있지 않습니다. 구름 하나 끼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는 온전합니다. 반쪽짜리 해는 없습니다. 비록 달은 다른 모양으로 비출지라도 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둥근 해는 항상 그 모양입니다. 그래서 해는 평안을 줍니다. 무엇보다 해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소망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인생은 주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지요.
(2) 주안에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계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가진 자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가진 자라 함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 함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하여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절대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는 율법의 신앙을 가진 자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자기들 스스로 율법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이만큼 믿음과 행함이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중에 하나도 지킬 수 없습니다. 한 가지 계명도 지키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수많은 계명들을 무슨 재주로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절대 지킬 수 없습니다. 만일 한 가지 계명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당신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습니다. 한 가지의 계명도 지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백 가지의 계명 중에 아흔아홉 가지의 계명을 다 지킨 자가 있다 합시다. 그러나 그가 한 가지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는 모든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애당초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자체가 무리입니다. 아니 그 자체가 죄악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마19:16).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계명을 지키라는 예수님께 그는 다그치듯이 묻습니다. 무슨 계명을 지켜야 하냐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의 계명을 다 지켰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물론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돌아간 것은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나누어주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의 정신을 몰랐던 것이지요. 율법을 제대로 모르니 복음을 영접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그는 복음을 영접지 못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는 절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거예요. 우리 열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하나님 안에서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신 자만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로 하여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해가 힘 있게 돋움같이라는 말씀은 주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3)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는 우리 삶 가운데 승리를 보장합니다. 해는 어둠을 몰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둠은 해 앞에서는 꿈쩍도 할 수 없습니다. 해 앞에서 어둠은 무장 해제되고 맙니다. 해가 비추면 어둠은 자동 소멸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싸울 것도 없습니다. 해는 어둠을 모릅니다. 어둠도 해를 모릅니다. 해와 어둠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인생을 사는 자는 모든 것에 승리합니다. 해가 어둠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잠언서4장18절과19절은 의인과 악인의 상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한마디로 의인의 길은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길이요, 악인의 길은 어둠 속에 헤매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승리하나 악인은 패할 수밖에 없고,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 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인생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해가 어둠을 추방하는 동시에 구름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구름 낀 날이 참 많습니다.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쏟아질 것 같이 구름이 우리 인생을 뒤덮을 때가 많습니다. 맑은 날도 많지만 흐린 날도 많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해는 내 인생의 구름을 몰아냅니다. 구름 낀 내 인생을 밝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이는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는 말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 있게 돋아나는 해가 나로 하여금 승리를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 해 우리는 반드시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를 체험하고 사십시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를 더욱 사랑하는 자로 살 것이요, 주안에서 사는 자가 될 것이며,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자, 주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자, 그리고 주안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로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의의 태양이십니다. 그리고 의의 태양이신 하나님을 밝히시는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모두 해가 힘 있게 돋움 같은 은혜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