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새끼를 보다
어제 오후 꽃대감과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든 후 귀갓길이었다. 둘이 함께 아파트단지를 들어서다 꽃밭에서 뻐꾸기 새끼를 봤다. “먼 여정 나래 지쳐 둥지 틀 여력 없자 / 뱁새가 품는 일을 슬며시 밀쳐 내고 / 엉큼히 남 보금자리 커다란 알 낳았다 // 오목눈 작은 몸집 꿋꿋이 알을 품어 / 유전자 다른 줄은 의심할 여지 없이 / 품은 알 새끼로 깨자 먹이 물어 키웠다” ‘뻐꾸기 탁란’
앞 단락은 어제 본 그 광경을 시조로 한 수 남겼다. 자그마한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제 몸집 수십 배로 커 보이는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보기 드문 장면을 봤다. 뻐꾸기는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인도양을 건너 미얀마와 중국 남부를 거쳐 우리나라와 홋카이도와 캄차카반도까지 뻗쳐가는 철새다. 이동 경로가 위도를 오르내리지 않고 경도를 비스듬히 횡단한다.
새날이 밝아오는 팔월 하순 목요일이다. 서해로 향해 오다 사라진 태풍 ‘종다리’로 비구름이 남은 아침이었다. 한낮에 폭염 경보가 내려지기 전 주남저수지 부근 아침 들녘을 걸어보고자 새벽길을 나섰다. 서녘 하늘 구름 사이로는 하현으로 기우는 열아흐레 달빛이 비쳤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반송 소하천 풀숲에서는 밤을 지샌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했다.
원이대로 급행 간선버스 정류장에서 대방동을 첫차로 출발해 본포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같은 시간대에 주남저수지를 비켜 상리와 북면으로 가는 버스 세 대가 나란히 줄지어 도착했다. 명곡교차로에서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잠삼거리와 주남삼거리를 지나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거쳐 화목과 동전을 지난 용산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주남지와 산남지는 수문으로 경계였다.
연꽃을 배경으로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한 아낙이 말을 걸어와 반가웠다. 사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보려다가 상대가 여성이라 내외하듯 그냥 지나야 할지를 망설인 순간이었다. 나보다 젊어 보인 여성이 ‘아저씨! 저기 무지개가 떴어요!’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버스에서 내린 내 등 뒤로 무지개가 선 듯해 고개를 돌려보니 선명한 무지개가 하나도 아닌 두 개가 서 있었다.
동녘으로는 아침 햇살이 비치고 백월산 솟은 서녘과 강 건너 반월과 학포 방향으로는 먹구름이 끼어 연방 소나기가 내릴 듯했다. 무지개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아 느긋하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으로 담아 놓았다. 용산마을에서 주남지가 아닌 산남지 둑을 따라 합산마을로 향했다. 저수지 둑과 연결된 야트막한 언덕이 조개를 엎어둔 형상으로 보여 대합조개 ‘합(蛤)’ 자를 쓰는 마을이다.
저수지 둑에서 합산마을 앞 찻길에서 죽동마을로 가다가 들녘 들길로 들었다. 참았던 빗방울이 들어 우산을 펼쳐 쓰고 걷다가 제초제를 뿌리다 멈춘 아낙을 만났다. 이맘때 논두렁에 무성한 풀을 낫으로 베기가 힘들어 등짐으로 짊어지는 분무기로 제초제를 뿌렸는데 아침 일찍 한 통 쳐 놓고 비가 내려 잠시 멈췄다. 남편은 세상을 먼저 떠 혼자 손에 농사를 짓는 여장부인 듯했다.
초면이지만 합산에 산다는 그 아주머니에게 격려 성원이 될 인사말을 건네고 무한 들녘을 계속 걸어 가촌 양수장을 지나자 멜론을 키우는 대형 비닐하우스단지가 나왔다. 벼농사 들녘이 끝난 가촌마을에서 대산 산업단지 거리를 걸어 이른 시간 영업을 시작한 카페로 들어 땀을 식혔다. 오전 일과를 기다리면서 지기들에게 아침에 들녘을 지나온 풍경 사진을 날려 보낸 안부를 전했다.
아침나절 정해진 과제 수행을 마치고 마을 도서관으로 향했다. 면사무소 회의실이었던 넓은 공간은 평생학습 센터로 바뀌었는데 센터장과 사서만 머물고 다른 열람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투리 시간 오전은 물론 점심 식후도 열람실에서 김명희가 쓴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펼쳐 문학기행을 다녔다. 작가와 작품을 찾아 국토를 남북으로 종단하고 동서로 이동하고 북간도로도 누볐다. 24.08.
첫댓글 곧 이소를 하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ㅎ 지난번 초여름 새끼를 쳐 둥지를 떠나던 제비네와는 사뭇 다른 광경입디다.
커다란 새끼 뻐꾸기가 덩치 작은 뱁새를 끌고 다니면서 먹이를 자꾸 달라고 조르는 듯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