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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13
다시 한번 지금까지의 사건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점퍼를 벗어 간이침대에 던졌다. 그리고 가지고 온 미네랄 워터의 페트병 마개를 땄다. 답답한 가슴에 시원한 냉수는 다시 활력이 되어 머리까지 맑게 하였다. 페트병을 책상 위에 놓으며 침대 밑에 던져둔 엘리자벳의 일기장을 찾으려 허리를 굽히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이 방을 뒤졌다는 느낌이다. 그것도 뒤지기를 마친 후 너무 깨끗하게 정돈해 놓았음을 알아챘다. 나는침대 시트를 바르게 깐 후 시트를 매트리스 밑에 가지런히 넣어 둔다. 하얀 면 시트가 매트리스를 탄탄하게 감싸 안은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시트는 깨끗하게 펴진 채 가장자리는 침대 아래로 늘어 뜨려 져 있었다. 이것은 내 타입이 아니다. 침대밑에 던져둔 엘리자벳의 일기책도 없어졌다. 나는 긴장하였다. 즉시 가방 속에 넣어 둔리볼버 권총을 꺼내 장탄을 확인하고 소음기를 역시 총신에 장착하였다. 다시 총에 붙은 작은 레버를 안전장치로돌려놓았다. 총을 사용할 수 없음을 안다. 다만, 비상시에 순전한 협박용으로 필요할 것이다. 권총을 점퍼 속 주머니에넣었다. 그리고 방 주변을 살폈다. 특별히 놓아둔 것이 없으므로가져갈 것들도 없었다. 책상 위에 켜둔 작은 형광등은 그대로 두고 소리를 죽여 문 앞으로 갔다.
내가 에드를 그의 집에 혼자 두고 나온 지 20분이 되었다. 출입문의 작게 난 유리문을 통하여 에드의 집을 주시하며 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플립을 열고 6 번을 눌렀다. 곧 릭 경감이 받았다.
“제임스입니다. 지금 나는 에드의 집뒤 정원의 임시 거처인 창고에 있습니다. 누군가 이곳을
뒤졌으며 엘리자벳의 일기책을 가져갔습니다.”
“엘리자벳이라면… 당신에게 일기책을 줬다는 에드의 옆집 할머니가 아닌가? 어떻게?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탈취해 갔다고? 언제? 왜 이제서야 그 말을 하는가?”
그는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하듯이 숨 쉴 틈 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내가 전화한 이유를 말하기도 전에 그는 숨 가쁜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금 당장 달려갈 테니 그곳에 있어 주시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노숙한 경험의 수사관이었다. 웨인을 만났을 때 이미 엘리자벳의 일기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한글이 비단 보자기에서 발견되어 넘어갔다.
엘리자벳의 일기책이 이제 내게 와 있다는 그것 자체가 이 사건의 해결에 중요하다 생각한 것이다.
8.
에드의 집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를 가린 1.5미터정도 되는 높이의 도장나무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에드의 집 거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7 시를 조금 넘었다. 늦가을의 해는 이미 지고 어둠이 깔려 있어 바람없는 뒤 정원과 집 사이의 잔디밭은 보안등 불빛으로 희미하게 고요하였다.
나는 소리없이 문을 열고 나와 엘리자벳의 정원과 에드의 정원을 가른 돌담 곁에 우뚝 서 있는
은사시나무 뒤에 소리 내지 않고 빠르게 몸을 숨겼다. 채 2 분이 되지 않아서 거실 뒷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검은 그림자가 허리를 숙인 채 잔디밭을 가로질러 나의 임시 거처로 다가가서 문에
난 유리창으로 내부를 보며 귀를 기울였다. 그는 곧 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갔다. 나는 다시 집 거실 쪽을 보며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즉시 그가 열어 둔 문의 반대쪽 나무 벽에 몸을 숨기고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였다. 그는 오른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왼손에는 군용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러 온 것이 확실하였다. 뭔가 알아내려거나 아니면 나를 족치려고 한 것이다.
그는 나보다 작았지만, 날렵해 보였다. 그는 공군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있었다. 스킨헤드였다. 분명 집안에도 일당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으며 에드가 걱정되었다. 이놈을 한순간에 제거하여야 하였다. 나는 침대 옆에 서서 방안을 살피고 있는 그의 뒤편에 소리없이 섰다. 그는 나의 숨소리를 듣고 돌아서면서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높이
쳐들었다. 나는 그보다 먼저 그의 사타구니를 앞 올려 차기로 차고는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오른팔을 두 손으로 잡아 어깨너머로 당기며 허리를 숙여 낮춰 그를 어깨 넘겨치기로 메어쳤다.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우선 사타구니의 급소를 차였으며 내 어깨너머로 굴러 바닥에 떨어졌기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였다. 나는 그의 목을 오른발바닥으로 힘주어 밟았다.
“조용히 해. 소리 내면 밟아 죽일거다.”
남자들 세계에서는 무력도 지식도 앞서야 하지만, 목소리 또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셋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목소리를 깔았다.
“집안에 몇 명이 더 있어?”
그는 놀라고 아파서 얼굴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나는 그의 야구 방망이를 주워 잡고 그의
사타구니를 향해 가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는 이미 방어와 대항할 의욕을 상실한 채이다.
“두 사람 더 있습니다.”
그들은 함부로 무기를 사용할 수가 없을 터이다.조용한 주택가이기 때문에 도주할 길을 만들 수가 없다. 그리고 방망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는 살해나 상해가 목적이 아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소리가 나도록 방망이 끝으로 두드리며 다시 물었다.
“목적이 뭐야? 죽을 거야? 말할 거야?”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방망이로 그의 턱을 다시 두드렸다. 그는 러시언같았다. 그들도 동양인의 폭력조직이 피와 살을 뜯어 먹으며 훈련을 하고있다는 소식은 들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그들 조직의 일원으로 생각하였는지 두려움에 떨기시작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조직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죽이지는 마십시요.”
“그래! 나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는않는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있어? 너희 조직 이름이뭐냐?”
그는 주저하다 포기하듯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두명은 에드몬드를 납치하여 다른 곳으로 가고 있을 것이며, 두명은 거실에서 나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 사이 나는 이곳에 남아 당신 거처를 수색한 후 불을 지른 후 함께 떠나기로 되었습니다.”
그는 조직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기까지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었다. 이 놈과 오래 말장난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오른쪽 발목에 찼던 단도를 꺼내고는 놈의 왼팔을 잡고 등뒤로 돌려 비튼 후 왼손 엄지 손가락의 손톱 밑에 칼 끝을 조금 박았다. 그는 자지러지듯 신음을 토했다. 이 고통에는 견딜 장사가 없다. 믿어도 된다.
나는 육군의 저격병 훈련을 이수했으며 유사시 고문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고문의 종류와 방법. 그리고 견디어 내는 방법도. 견디어 내는 방법은 특별하지가 않았다.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될때는 죽음을 택하여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길이다. 그러나 이 놈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이 고통을 견디어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죽지도 못하였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었다. 전투였다. 그는 피흘리는 손가락 끝을 보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다 말하겠오. 제발 그만해주시요. 제발...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조직 이름과 에드를 데려간 장소의 주소를 말해!”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굻고 무거웠다. 이건 상대편에게 더 큰 두려움을 준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며 잡고있던 왼 손목을 다시 비틀었다.
“아아악!!!”
그는 비명과 함께 고개를 떨구고 흐느꼈다. 나는 칼을 빼어서 그의 목에 대었다. 그는 내 얼굴에서 살기를 느꼈음이리라. 버티는 것이 어떤 탈출구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한듯 하였다. 그가 고개를겨우 들어 나를 보며 입을 간신히 열었다.
“말하겠습니다. 더프린 노스 11205이고... 캐나다 케이지비(KGBCanada)입니다. 이게 제가 알고있는 것 다입니다.”
나는 그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찾아냈고 그의 손발과 입을 포장용 테이프로 묶은후 기둥에 기대 앉힌 후 그 테이프로 칭 칭감았다. 그리고 불을 꺼고 에드의 집 거실로 달려갔다. 가면서 본 시각은 9시 30분이었다.
내가 소리없이 조리실 뒷문으로 접근하여 창문을 통하여 거실을 봤을 때는, 거실은 허트러져 있지 않았다. 두 놈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초조해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실내등 불빛이 그들의 윤곽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흔적없이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에드가 순순히 그들에게 끌려간 것이다. 집에서 심문을 하지 않았음은 그들이 하수인이고 정확한 질문을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의미이다.
집 주위에는 경관이나 경찰차가 보이지 않았다. 릭경감이 벌써 이 사건을 포기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담당 부서는 살인현장을 방치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경찰의 그러한 씨스템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출발한지 20분 내지는 30분이 경과한 것으로 짐작하였다. 나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재빠르게 움직여 말리부에 도착하였다. 나는 차에 올라타며 릭 경감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는 운전 중이었다.
“지금 에드의 집으로 가십시요. 거실에 두 놈이 있을 것이며 정원 뒷켠 내 거처에 한 놈을 묶어 놓았습니다. 에드는 함께 온 그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나는 더프린 11205로 갑니다. 서두르십시요.”
9.
일찍 겨울이 시작되려는지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가는 밤길은 어두웠고 눈이라도 오려는지고요하였다. 옥빌에서 북쪽으로 달려 하이웨이 7 을 만나는시각이 8 시 20 분이었다. 11205 라면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북쪽에 동서로 그어져 있는하이웨이 9 를 못 미쳐 구릉지대 일 것이다. 그곳은 말을훈련시키는 목장들과 광활한 목초지를 가진 독립가옥들이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그들은 지금쯤 도착하였을 것이고, 나는 조급해졌다. 하이웨이 7 을 타자 곧 앞차들을 추월하며 동쪽으로 달렸다. 속도계가 100km/hour 안팎으로 들락 날락 하며 움직였다. 이곳의 한계최고 속도는 70km/hour 였다. 플러스 10km/hour 는 봐 준다 하여도 과속이다. 그렇게 20 분을 달려 더프린(dufferin street) 을 만나자 좌회전하여 북쪽으로 달렸다. 그 와중에서 나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까지의 상황과 장차 발생될 가능성있는 그림을 그려보았다. 특히 캐나다에 러시아의 케이지비가 생성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이 사건과 관계되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인가? 그것을 알아내어야 했다.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하는 중에 케롤라인 경사가 떠올랐다.
“옥빌경찰서 정보과 케롤라인 경사입니다. 제임스! 맞지요?”
그녀는 내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을 벌었다 생각하며 반가웠다.
“예. 맞습니다. 케롤. 알폰소 라미에르로 부터 캐낸 정보를 알려주십시오. 특히 캐나다 케이지비에 관한 정보를. 부탁합니다. 지금 저는 더프린 11205 로 가고 있습니다. 에드가 납치되었습니다.”
“알고 있어요. 릭 경감으로 부터 제임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여 놓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도도이프를 체포하였어요. 그가 실토를 하였답니다.”
그녀는 급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목소리는 쎄지로의 목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났다.
부드러운 섹시함이 느껴졌다. 그 목소리는 긴장을 풀어주었다. 다행이었다.
“도도이프는 누구입니까?”
“당신이 창고 침대에 묶어 둔 자의 이름이에요. 그가 당신이 한 짓 그리고 당신에게 알려준 것들을 다 말했어요.”
그녀는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긴장한다는 것은 바람직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저질러도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그러한 하나의 실수가 죽음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행이었다. 긴장을 풀고 맑은 머리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와중에 케롤에 의하여 쎄지로까지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것은 생각이 정상을 찾은 것이리라.
“내가 한 짓?”
나는 그놈이 캐롤 경사에게 엄살로 떠들어 댔을 상황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알았어요. 다른 두 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도 주거침입죄로 체포하여 구금하고 있어요.”
“그럼 그들은 3 명 외에 더 있었다는 말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