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수업체의 공장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땅 속 깊은 곳에 파이프를 묻고 물을 끌어 올려 다시 정화하여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물을 용기에 담아 포장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아주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용기는 여러 차례로 세척을 하고 또 냄새와 이물질 검사에서 통과한 용기에만 생수를 담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 공장의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깨끗한 수원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파이프 벽에든지 이 공장안에 어쨌든 공기중에 날라다니는 엽록소 포자(먹을 수는 있는 것이라 해는 없지만)가 단 하나라도 묻으면 그 물 전체에 퍼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척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을해도 한번 근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 수원지는 못쓰게 된다는 것이다.
근본은 어느 것에게나 중요한 것이다. 신앙의 근본이 흐려지면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충성을 한다 하더라도 그 잘못된 근본 때문에 늘 범죄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근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에게서 흘러 나오는 생명수로 우리는 젖어 살아야 한다.
당신은 신앙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성령님의 임재에 충만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함 본문 : 마12:20,21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란 말에 한번쯤 위로와 격려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승승장구하며 성공 가도만을 달리는 인생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삶이겠지만 우리 인생은 때로 예기치 못한 실패, 감당키 힘든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상한 갈대처럼 또는 꺼져가는 심지처럼 용기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꺾지' 않으시고 '끄지' 않으시는 사랑의 주님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김을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이러한 승리의 삶은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라(시25:1,2)
1)상한 갈대가 될 때 전쟁의 승리를 위한 첫 걸음은 적게 대해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고, 무엇과 대적하여 이겨야 하는지 분별치 못하는 자들에게 베드로는 권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서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을 망각하고 상한 갈대와 같은 심정이 되고 맙니다. 대적하여 물리쳐야 할 아낙 자손과 그곳 거민들의 강함과 성읍의 견고함을 인하여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민13:33)고 합니다. 원망하며 흔들리는 신앙은, 대적해야 할 적 앞에서 스스로 무너져 패배하는 삶, 방황하는 삶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2)꺼져가는 심지가 될 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도도 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기름 떨어진 등잔의 꺼져가는 심지처럼 패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광야를 유랑하면서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 불기둥만을 의지하면서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축복의 땅 가나안에 정착한 그들은 꺼져가는 심지처럼 신앙의 빛을 잃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삿2:11)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상한 갈대처럼 의심스럽고 꺼져가는 심지처럼 스러질 때 우리의 '대적'은 강성하여지고 패배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2. 승리의 비결을 터득하라(시25:3-5)
1)상한 갈대로서 부르짖음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을 때,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삿6:6)고 했습니다. 그때 상한 갈대처럼 된 '이스라엘 자손'이 비로소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때 은혜의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삼백 용사를 일으키셔서 그들로 대승리를 거두게 하십니다. 비참한 실패를 맛보았지만, 상한 갈대와 같은 심정으로 겸손히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을 인하여 간증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2)꺼져가는 심지로서 사모함 존 칼빈은 '은혜는 죄인이 은혜롭게 되는 것이요 의인이 성화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시험받아 밧세바를 취하는 간음죄와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 죄를 저지른 후 꺼져가는 심지가 그을음 속에서 그 빛이 쇠하여지듯 괴로움 속에서 고뇌합니다. 죄책감으로 인해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32:4)라고 하면서 다윗은 꺼져가는 심지처럼 되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나 다윗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32:5). 그을음 투성이던 죄의 불순물이 은혜의 하나님 앞에서 깨끗함을 받고 다윗은 다시금 빛을 발하는 신앙인으로 회복되어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게 됩니다(시55:22).
3.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하라(롬8:37-39)
1)손들어 기도함으로 승리함 무디는 말하기를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가장 무서운 무기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승리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서 여호수아를 선봉장으로 하여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지쳐 손을 내리면 아말렉에게 집니다. 곁에 있던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아말렉을 파하고 이겨 '여호와 닛시'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출17:8-16). 이렇듯 은혜의 하나님께 손들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2)그리스도 안에서 믿을 때 승리함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에 유폐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될 것을 말하면서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죄에 매인 인생을 해방시키실 것을 예언합니다(사41,42장).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온유하신 주님 안에서 죄와 사망에 대하여 죽고 의와 생명에 대해서 승리하는 이김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주어진 이러한 승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만 누릴 수 있는 은총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지날드 웰리스는 말합니다. '진정으로 승리한 그리스도인은 승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이미 승리한 이김을 축하할 뿐이다. 그러므로 승리한 삶은 그리스도의 것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결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늘 찬양드립시다.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최후의 승리를 이루실 그날까지 누님 안에서 하나님 은혜로 주어진 승리의 삶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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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능력과 유모와 기도와 찬양과 전도와 겸손과 성결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