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강산제 ‘심청가’를 보며
석야 신웅순
효하면 누구나 판소리 심청가를 떠올리게 된다. 심청가를 잘 안다지만 잘 모르는 것 또한 심청가이기도 하다. 민은경 명창의 심청가이다.
범피중류, 인당수, 용궁, 심황후 자탄가, 뺑덕어미, 황성길, 부녀상봉, 뒤풀이 순서로 끝났다. 한 시간 반쯤 걸렸다.
공연을 볼 때마다 새롭다. 부모님에 대한 후회가 언제나 남기 때문일까. 심청가는 우리들의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사철가 단가로 목을 푼다.
부녀 상봉 대목 아니리이다.
…내궁에 들어가니 그 때여 심황후는 언간 용궁에 삼년이 되었고 심봉사는 딸 생각에 어찌 울고 세월을 보냈던지 더욱 백수 되었구나. 심황후 물으시되 “거주 성명이 무엇이며 처자 있는가 물어보아라.” 심봉사가 처자 말 듣더니 먼 눈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며
눈물, 콧물도 함께 중모리로 접어든다. 장단도 감정을 따라 속도가 붙는다. 중모리는 중간 속도로 몰아가는 장단이다.
“예, 예 아뢰리다. 예. 소맹이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이 고토옵고 성명은 심학규요, 을축년 삼월달에 산후탈로 상처허고, 어미 잃은 딸자식을 강보에 싸서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먹여 겨우겨우 길러내어, 십오세가 되었으되 이름은 심청이요 효성이 출천하야 그애가 밥을 빌어 근근도생 지내갈 제 뜻밖에 중이 찾어와서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시주허면 소맹이 눈을 뜬다허니 효성있는 딸자식이 남경장사 선인들게 삼백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로 죽은지가 삼년이요, 눈도 뜨지 못하옵고 자식 팔아먹은 놈을 살려주어 쓸 데 있소? 당장에 목숨을 끊어주오.”
자식 팔아먹은 놈, 어디 쓸데가 있나 절규한다. 심학규는 당장 목숨을 끊어달라고 한다. 내 무슨 죄가 있는 것처럼 훌쩍이는 소리를 집사람이 들을까 숨을 죽였다. 나이가 드니 눈물이 잦고 양도 많다. 점점 빠른 장단으로 조여온다. 명창이 목이 타는가 이 대목에서 물 한 잔 마신다. 고수의 손길이 바쁘다.
빠른 자진모리로 관객들을 몰고 간다.
심황후 거동봐라 이 말 지듯 말듯 산호주렴 걷쳐버리고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 이 말 듣고 먼 눈을 휘번덕거리며 ”누가 날 다려 아버지라 허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아버지라니 누구여. 무남독녀 외 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년인디 아버지라니 이거 왠말이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여식 심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청이를 보옵소서.” 심봉사 이 말 듣고 먼눈을 휘번덕 거리며 “예이 이거 왠말이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참말이냐 죽고 없난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아이고 갑갑하여라. 내가 눈이 있어야 보제. 어디 내 딸 좀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두 눈을 끔적끔적 끔적거리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아직도 맺혔던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어디 내 딸 좀 보자하며 눈을 끔적 끔적 하더니 번쩍 두 눈을 뜬다. 소리 없는 눈물, 콧물이 왜 이리 흥건한지. 아버지는 예로부터 ‘남자는 우는 게 아녀.’ 이리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아직도 우리 세대들은 눈물에 익숙치가 않다.
조용히 나를 앉혀놓는다. 아니리는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정감 있는 시간이다.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해작해작 허구나. 심봉사 눈 뜬 바람에 만좌맹인 모두 일시에 눈을 뜨는디 눈뜨는데도 장단이 있는가 보더라.
눈 뜨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다시 자진모리로 휘몰아친다.
…석 달 안에 큰 잔치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가든 봉사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한 맹인 중로에서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울다 웃다 뜨고, 헤매다 뜨고, 떠보느라 뜨고, 앉어 뜨고, 서서 뜨고, 무단히 뜨고, 어이 없이 뜨고, 실없이 뜨고. 졸다 번듯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가 뜨고, 눈을 부벼 보다가도 뜨고, 지어 비금주수(飛禽走獸)라도 눈 먼 짐생도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가 되었구나.
해학이 절정에 달한다. 심청가에 해학이 없었으면 어쩔 번 했을까. 명창은 소리도 있고 흥도 있어야 신명이 난다. 귀명창들이 여기저기에서 ‘얼씨구, 좋다’를 연발한다. 자진모리이나 명창과 고수는 눈뜨는 장면에다 속도를 더욱 밀어 붙인다.
침착하게 아니리로 돌아온다. 창자가 ‘얼씨구’ 하니 관객들이 ‘좋다’ 한다. 주고 받으니 여기 저기 절로 어깨춤이다.
심봉사가 그제야 정신차려 살펴보니 칠보금관 황홀하여 딸이라니 딸인 줄 알지 전후불견 초면이로구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더니마는
한이 풀리는 장면이다. 장단 속도가 느려진다. 중모리이다.
“옳제 인제 알겄구나. 내가 분명 알겄구나. 갑자사월 초파일야 꿈 속에 보든 얼굴 분명한 내 딸이라. 죽은 딸을 다시 보니 인도환생을 허였는가. 내가 죽어 살어왔나. 이것이 꿈이냐.이것이 생시냐. 꿈과 생시 분별을 못허겠네.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 좋을씨구. 어제까지도 맹인이 되어 지팽이를 짚고 나서며는, 어디로 갈 줄을 아느냐 올 줄을 아느냐. 오날부터는 새 세상이 되었으니 지팽이 너도 고생 많이 허였다. 피루루루 내던지고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 지자자 좋을씨구.
모든 사람들이 이리저리 지화자 좋아라 춤을 춘다. 중모리에서 속도가 붙어 중중모리로 몰아간다. 뒤풀이는 신명나게 한판을 놀아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여러 봉사들도 좋아라하고 춤을 추며 노닌다.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태고적 시절 이래로 봉사 눈 떴단 말 처음이로구나. 얼씨구나 절씨구 일월이 밝아 중복허니 요순 천지가 되었네. 송천자 폐하도 만만세 심황후 폐하도 만만세 천천만만세. 태평으로만 누리소서.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아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창자도 관객들도 고수도 다 함께 얼씨구 절씨구, 절씨구 얼씨구한다.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으랴.
이렇게 해서 시원하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젊은이 관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젊은이들의 판소리 팬클럽도 있는가 보다. 판소리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무형 문화재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호응해주었으면 좋겠다.
영원한 화두인 효.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 효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호불호가 분명해 사는데 좀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살아왔다. 마음만 허락하지 않으면 되지 사는 데는 두리뭉실한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요즈음 내 생활에서 얻은 소박한 철학이다.
꼿꼿한 소나무만으로 숲을 이룰 수는 없다. 잡목들, 가시덩굴들도 있어야 숲을 이룰 수 있다. 그래야 숲 속에서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내 보금자리는 있을까.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활짝 핀 벚꽃 봄밤을 걸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분 바르는듯 볼을 스친다. 도움을 주신 최○진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 2023.4.4.
첫댓글 한 두 번씩 공연을 봤을까 떠오르는 줄거리 에 눈물이 흐르다 웃음보가 터진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않는 공연이라 기억 됩니다.
활짝 만개한 벚꽃
밤 벚꽃 놀이 祝하 드려요.
저희도 가까운 학교로 움직여 벚꽃을 만나보고 賞春客도 한 몪 거들어
맑은날 여유 부리는 만개한 꽃 처럼
채우고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연도 보았고 밤밪꽃도 보았습니다.
행복한 저녁이었습니다.
부모님 다 가셨지만 그 때가 그리웠습니다.
효도하지 못한 게 한이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