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과 박태준
1967년 철강을 만드는 제철 공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그 당시 정부 에서 각 방면으로 노력을 했으나 세계의 어느 투자회사도 은행도 돈을 빌려 주려 하지 않았다.
돈을 빌려 주어도 제철 공장을 지울 능력도 안되고 다른 곳에 다 써버리고 말 것이라며 한 푼도 못 빌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일본에서 받기로 되어 있는 청구권 자금을 이용하기로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포항제철이다.
그 때 기술도 없고 설비도 없고 자금도 딸리는 극한 상황에서 책임을 지고 일을 진행한 고 박태준 회장과 불철주야 피 땀 흘리며 오직 조국의 번영을 위해 노력한 모든 임직원들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박 회장의 전기중의 몇 가지 이야기.
부실공사 현장을 발견하곤 짓던 공장을 손수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와 폭파시킨 뒤 다시 짓게 했다. 또한 잘못 조여진 볼트 하나까지 하얀 분필로 표시해 가며 "다시 꼼꼼하게 볼트를 조이도록"이라고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이때 표시된 볼트는 모두 400개.
포항제철 공사 시, 이 돈은 우리 조상님들의 핏 값이다. 공사를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다 우향우해서 저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라고 설파했다.
생전 정리정돈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공사 현장에서 자재를 어질러둔 것을 보고 저게 공사자재냐고 소장에게 물어봤고, 소장은 버리는 자재라며 멀쩡한 자재를 모두 버리고 새 자재를 깔끔하게 정돈해뒀다.
포스코의 초대회장인 만큼, 포스코 건설 당시 수많은 청탁과 압력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이에 당시 박정희 주변에서 떡고물을 받아먹던 측근들에게 밉보인 탓에 중앙정보부서 허구한날 박태준의 집을 수색하고 꼬투리를 잡으려 하자 박태준은 이렇게는 못 해먹겠다고 박정희를 찾아가서 손을 떼겠다고 말하자 이에 박정희는 비서에게 종이 한 장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종이에 써주는 걸로 화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포철 창립 당시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한국은 철강 생산을 하면 투자금을 다 날린다'고 나오는 바람에 원조를 받지 못했다. 결국 박태준은 대일 청구권 자금을 활용해서 포항에 제철소를 짓고 포스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1986년 박태준은 런던에서 당시 보고서를 작성했던 존 자페와 만나 그 때 똑같이 보고서를 쓰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자페가 한 말이 걸작. ”나는 그 때로 돌아가면 똑같이 쓸거다. 철강 수요가 없는 나라가 백만 톤 짜리 제철소를 짓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 실수는 박태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당신이 상식을 초월하는 일을 하는 바람에 내 보고서가 엉망이 된 것뿐이다.”
퇴임 당시 포스코 주식이 단 한 주도 없었다.
중국의 개방/개혁 초기인 1978년 8월, 덩샤오핑이 일본에 가서 포항제철소 같은 제철소를 하나 지어달라고 하자, 이나야마 요시히로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은 '공장이야 지을 수 있지만 박태준 같은 인물이 없어서 그런 제철소는 못 짓는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해 말 일본 도쿄에서 박태준을 만난 이나야마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박 사장, 중국에 납치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유쾌한 일화로 남아있다.
1992년 회장직 사퇴 발표 후 양 제철소 직원들이 회장 사퇴를 반대하며 시위를 하는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조인트를 잘 깠다고 한다. 다만, 이 조인트를 까인 사람이 결국 자회사 사장까지 간 거 보면 뒤끝은 없었던 듯.
포항공대 건설 당시 박태준과 초대 총장인 김호길 박사 모두 대인배였던 것이, 김호길 박사는 '지금은 포항제철 부설 포항공대지만 나중에는 포항공대 부설 포항제철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학교조직, 개설학과, 교수 수준,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은 자기가 모두 다 하겠다'라는 요구를 했다. 원래 이러한 요구는 사학법에 규정된 재단이사장의 권한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는데, 박태준 회장은 오히려 '초대 총장은 창업자와 같기 때문에 그 사람을 잡아야 한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고 한다.
포항제철이 완공되고 제대로 된 철강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자, 그 동안 한 푼도 빌려 주지 못 하겠다던 세계의 투자 회사들이 너도 나도 돈을 빌려 주겠다고 줄을 서는 것이 아닌가? 고 박태준 회장이야 말로 우리나라 대한 민국을 한번 제대로 세계에 알린 자랑스러운 Korean 이다.
박태준 회장의 네 가지 좌우명을 소개한다.
1. 무엇이든 세계 최고가 되자'
2. 절대적 절망은 없다'
3. 짧은 인생을 영원히 조국에'
4.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설계하라'
박태준 회장의 다음 말도 마음에 새겨두자.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정치적, 사회적 분열까지 겹쳤다.
그러나 원인이 보이면 해법도 보인다.
국민과 기업. 정부가 힘을 합치면 이까짓 난관은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서로 힘을 합치면 분위기가 바뀌고, 자신감을 회복하면 미래는 보장된다.
절대적 절망은 없다. 깜깜한 어둠을 헤쳐온 우리나라다.
맨주먹으로 오늘을 건설한 우리 국민이 아닌가.
역사는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자의 몫이란 사실을 기억하자."
첫댓글 박태준 얘기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석포한테서는 박태준 한테서 쪼인트 까였다는
얘기를 못 들었어요. ㅎㅎ
조인트 한번도 까인적 없어요,.현장에서 가끔 본보기로 하신적이 있지만 주로 건설쪽 이야기
오랫만에 김회장 올린 글을 봅니다.
앞으로 자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일봉이 포항제철 박태준 초대 회장에 대해 극찬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뿐이 아니고 전 임원이 보너스를 건설투자기금에 반납해서 임원으로 재직기간중 보너스를 받기는 받았으나 그해 년말에 반납해서 보너스는 받지를 못했답니다. 일붕이 기술한 내용들은 전부 사실이고 다이나마이트로 반쯤 완성된 시설을 폭파함으로 당시 기술력이 지금에 비해 엄청 떨어진 건설사들의 부실시공이 사라졌다고 봅니다. 당시 포철맨은 조상들의 피의 댓가로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 중 상당부분을 사용해서 항상 '우향우 정신(포철에서 우향우 하면 동해바다, 잘못되면 바다에 투신해서 자살하라)'으로 살았어요. 대통령이 써 준 불간섭원칙 메세지는 조달청을 통하지 않고 시설들을 구입해서 옛 어사 마패라고 하고 예비역의 낙하산 인사도 취업하면 연금을 1/2씩 지급하는데 그 사라지는 연금이 포철임금과 비슷하도록 만들어 그당시 속칭 똥별(예비역)의 낙하산 인사도 막을만큼 임금이 대기업의 2/3수준정도였답니다.. 그 결과는 성공이지요. 제철은 제품을 제품을 만드는 시설이 아니고 기계, 조선, 건축, 심지어 피애노 산업등의 원자재를 만돌어 산업우발효과를 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