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815723922
폰지사기(Ponzi scheme)
폰지 사기란 투자 사기 수법의 하나로, 실제 제대로된 이윤 창출 수단 없이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배당이나 투자수익을 주겠다고 속여 투자를 받아 그 돈으로 투자자들을 모은 뒤
이들의 투자금으로 선발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배당(혹은 투자수익금)을 지급하고 같은 방식으로 투자자를 늘려가다
모인 투자금이 사기꾼이 목표한 금액을 달성하면 투자금을 전부 빼돌리고 잠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폰지 사기는 1920년대에 "찰스 폰지"가 저지른 사기 수법이 유명해지면서 그의 이름 자체가 사기 수법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례이다.
당연하게도(?)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기 수법은 존재해 왔으나, 현대에 들어서서 최초로 큰 규모로 이루어진 가장 유명한 사건의 범인인 찰스 폰지의 이름을 따 폰지 사기라고 불리고 있다.
찰스 폰지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은행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 은행은 예금 이자가 파격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그 이자를 은행의 수익으로 지급하는게 아니라 신규 가입자의 예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은행은 얼마 못 가 파산했고, 은행장이던 자로시는 돈을 가지고 멕시코로 도망쳤다가 추후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이 은행이 망하게 된 직접적 타격을 준 것은 부동산 부실 대출 때문이였지만, 어쨌거나 찰스 폰지는 자로시를 보고 "망하기 전에 쌓인 돈을 갖고 잠적해버리면 된다"는 포인트를 깨닫고 사기 수법을 착안하게 된다.
건수를 노리던 폰지 앞에 나타난 것은 국제반신우표권(IRC)라는 회신 쿠폰이었다. 이 쿠폰은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한 국가라면 어디서든 우표로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이었고, 이 당시에는 정보, 유통망이 부실해서 같은 IRC가 로마에선 1달러, 보스턴에선 3.3달러 하는 식으로 동일제품이 지역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랐다.
그래서 폰지는 국내의 돈으로 해외의 우표를 사서 바꾸는 차익거래를 통해 돈을 번다는, 일종의 재정 거래 포트폴리오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폰지는 "90일내에 50%의 수익을 보장"했고, 소문은 빠르게 퍼져 미국 전역의 4만여명이 "1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1920년대의 1달러는 대략 현재 10여만원 정도의 가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집과 농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앞다투어 폰지의 사업에 투자했으나 IRC 사업은 애초에 성립 되지 못하는 사업이였고, 폰지는 당시 극히 사치품이였던 에어컨 시설을 갖춘 저택을 사들이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을 뿐이였다.
하지만 결국 전세계에서 발행한 IRC가 폰지가 투자받은 금액보다 적다는 사실이 1920년 8월 신문의 폭로로 발각되었고, 폰지는 체포되어 당시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었다.
이외에 대표적인 폰지사기 사건으로는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 후 발발한 내전으로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체류 중인 미국인들을 대피시키는 미군. 1997년 3월 15일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
1990년대 스탈린주의 강경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로 급격히 체제가 전환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무지했던 알바니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1996년-97년 동안 당시 알바니아 인구의 60%인 200여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은 대략 12억 달러로 추산된다.
당시 공산당을 몰아낸 집권당이던 민주당에는 경제 전문가가 한명도 없었으므로 외부 전문가를 불러 의지했는데, 그 전문가들과 마피아들이 결탁해 폰지 사기를 저질렀다.
폰지 사기 회사들은 알바니아 정부에게 합법적인 승인을 받았고 정부 관료들과도 유착했기 때문에 알바니아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안심하고 폰지 사기 피라미드 회사에 재산을 투자했다.
그래서 세계은행이나 IMF가 경고하는 가운데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결국 1997년 피라미드 회사가 연쇄적으로 파산, 정부에서 계좌동결조치를 취하자 투자자들이 대거 반정부 시위를 벌여 반여년간 3800여 명 가량이 사망하는 내전이 발발했고, 조기총선으로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MMM 투자신탁 사기사건
이 역시 소련의 붕괴 후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되면서 일어난 사건으로, 러시아에서 1993년~97년 동안 1000만명-2000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한것으로 추정되며, 러시아 GDP의 3.5%에 달하는 금액이 증발했다. 이 사건으로 90년대 후반 러시아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었다.
당시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경제자유화 조치의 반작용으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고 그로 인해 실질 임금은 급속히 삭감되고 사실상 화폐 가치가 소멸한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미국 무역회사를 가장한 폰지사기 업체였던 MMM사가 안정되어있는 외국에 투자해 고배당, 안전자산을 보장하겠다고 나섰고, 이들은 최전성기에 모스크바 지하철 전 노선을 하루 동안 통째로 빌려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목적한 이득을 얻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1997년에 파산을 선언하고 잠적하자 러시아 경제는 파멸했고, 러시아는 1998년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moratorium, 모라토리움이란 지급 유예(支給猶豫) 혹은 지불 유예(支拂猶豫), 지급 연기(支給延期)를 말하는 라틴어 경제 용어로, 전쟁, 천재지변, 공황 등에 의해 경제가 혼란해져 대외 채무이행이 어려워지게 된 경우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서 일정기간 채무의 이행을 강제로 연기 또는 유예하는 일을 말한다.
MMM의 창업자 세르게이 마브로디는 체포되어 옥살이를 했지만, 출소 이후 외국으로 진출해 2011년에도 다시 MMM 글로벌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어 똑같은 폰지사기 수법으로 사기를 치고 다녔는데, 대한민국에도 진출해 사이트를 만들었었다.
(놀라운 것은 정보화 시대에 일국을 파산시킨 사기꾼이 자기 얼굴까지 내세우며 다시 사기를 치는데도 또 다시 속아넘어간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특히 나이지리아에서는 2백만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메이도프 사건
나스닥 금융거래소 위원장이었던 버나드 메이도프가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포레스트 검프 등을 집필했던 에릭 로스 등 수많은 유명인들의 재단 및 은퇴 자금을 대상으로 벌인 사건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금융사기 사건이며 피해액은 650억 달러에 달하며 범인은 결국 징역 15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하였다.
메이도프는 미국에서 인정받는 투자자였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투자를 해 자수성가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능력 좋고 인격도 훌륭하다는 평판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난 뒤 진실이 드러났다.
메이도프는 유대인이었고, 폰지사기라는 것이 발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계의 롤모델처럼 취급받았다. 이렇게 유대인 공동체의 신용을 샀기 때문에, 부유한 부자들이 모이는 장소들을 찾아가 자신이 다른 투자자들에게 인정받는 주식 브로커이고 자신에게 투자를 하면 돈을 불려서 매년 10%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겠다며 투자자들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었다. 투자한 사람들의 상당수도 유대인이었다.
메이도프는 돈을 투자받은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러 투자자들에게서 투자금을 받고 원금의 10%만 꼬박꼬박 돌려줬을 뿐이다. 하지만 메이도프를 믿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 돈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메이도프의 명성을 믿고 원체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했으며 원래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 갑자기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많지 않아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년을 버티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원금 상환을 동시에 요구하였고, 이들에게 줄 원금은 진작에 탕진했던 메이도프는 결국 경찰에 자수하면서 사기가 세상에 드러났다.
총 피해액은 약 650억 달러에 달하며, 스티븐 스필버그, 케빈 베이컨, 뉴욕 메츠의 구단주 프레드 윌폰 같은 유명인사들도 피해를 당했다.
유명인사들을 포함한 많은 투자자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게 되면서 비관해 자살을 택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버나드 메이도프는 가장 많은 유명인들을 죽인 범죄자라는 악명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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