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816503700
1952년 11월 2일 캘리포니아주 유대인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 로렌스 D. 핑크(래리 핑크)
아버지는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어머니는 대학교수였다.
아버지의 장사꾼 DNA를 이어 받았는지
어린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비즈니스맨 기질을 보여준다
핑크는 시간이 있을때마다 캘리포니아주 집 근처에 있는 모하비 사막에 갔다
바로 “뱀”을 잡기 위해서였다.
뱀을 좋아해서 기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뱀을 팔기 위해서였다.
그는 잡아온 뱀을 우편으로 배송하는 분양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의 나이 12세였다
하지만 그는 1년 만에 13살 나이로 FBI에 수사를 받게 된다.
바로 그가 보내는 뱀들이 우편물들 사이에서 나오는 일들이 발생해 신고를 받고
결국 이 뱀 사업은 끝나게 된다.
1974년 핑크는 UCLA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하고
1976년에는 앤더슨 스쿨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다.
대학원 졸업한 뒤 래리핑크는 월스트리로 향하게 된다.
그는 투자은행 퍼스트 보스턴 채권 트레이더로서 그의 첫 커리어가 시작되고
핑크는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주로 모기지 채권 거래를 했는데
모기지 채권을 증권화 하는 과정에서
당시엔 생소했던 컴퓨터를 활용해 남들보다 뛰어난 수익을 올렸다
이때 핑크가 회사에 안긴 수익은 1조 3300억에 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승승장구해 그는 최연수 전무 타이틀을 달게 된다.
하지만 1986년 핑크의 큰 위기를 맞게 된다.
1980년대 미국 연준FED가 기준금리를 급격히 낮췄는데
이는 핑크의 예측과 정반대 결과가 되면서 큰 손실을 맞게된다.
그 후 여러 스텝이 꼬이면서 2분기 손실만 1억달러(1300억원)가 넘었다.
이때부터 차츰 하락세를 겪으면서 결국 1998년 불명예 퇴사를 하게 된다.
그의 첫 직장 퍼스트보스턴도 재무상태가 악화되어 크레딧스위스에 인수되고 만다
이때 핑크는 ‘리스크 관리’ 와 충실한 책임이 고려되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다시 재기를 꿈꿨다.
1998년,
퇴사후 1년 반만에 그는 옛 직장동료들과 함께
월가의 대체 투자회사 블랙스톤 산하에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설립하게 된다
핑크는 블랙스톤에 창업자 피터 패티든에게 지분50%를 넘기는 대가로 투자금 500만달러(67억)을 받았다
핑크는 죽지 않았다.
회사를 설립한지 몇 달만에 흑자 기록을 달성했고
다음해인 1989년 회사 자산 규모는 3조 6천억까지 불어났다.
이후 1995년 블랙락은 블랙스톤과의 마찰을 겪고 나와서 P&C 금융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1999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주당 14달러로 상장하게 된다.
2006년엔 메릴린치와 합병하면서 회사의 덩치를 키웠다.
이렇게 덩치를 키워가는 과정에 실수도 있었다.
메릴린치 합병한 해에 맨하탄 동부에 위치한 주거지역 Stuyvesant ccooper village를
약 6조원에 인수하면서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부동산 딜을 성사시켰으나
이 프로젝트는 디폴트로 마무되면서
캘리포니아 퇴직연금관리공단을 비롯한 블랙록은 엄청난 손실을 얻었는데
오랫 동안 관계를 맺어온 정부관료들에 힘입어
미국정부는 블랙록이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2008년에는 바클레이스의 자산 운용 사업부를 인수해
당시 기준 약 4천조원에 자산을 굴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가 됐다.
현재 블랙락은 30여개국에 70개의 지사를 두면서 1만 3천여명 넘는 직원과 함께
전 세계의 금융기관, 보험사, 정부, 공적자금 등 수많은 고객들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투자 대상은 주로 주식,채권, 단기자금, 대체투자 및 ETF 상품들이며
기관을 대상으로 한 리스크 관리 및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은
2024년 올해 1월 기준 운용자산 규모만 한화로 1경 3,300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 GDP 의 6배나 되는 수치)
이처럼 제국을 완성한 블랙록과 CEO 래리핑크는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래리핑크는 미국의 새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재무장관 단골 후보로 거론되며 ‘블랙락’ 출신들은
세계 각국의 거물들이 되었다.
(프르디히 메르츠)
일례로 2021년 독일 기민당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 후보가 선출되었다면
블랙록은 기민당이 제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승리할시
독일 수상까지 배출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길 수도 있었으나
선거 결과 아르민 라셰트가 대표로 선출되어 실현하지 못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래리핑크를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그림자 은행 총재” 라 부른다.
또한 블랙락 출신들이 현재 바이든 정권의 경제 인사에 대거 드용되고 있다.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브라리언을 발탁하고
윌리 아데예모를 재무부 부장관으로 발탁했다
(윌리 아데예모)
2020년 1월 블랙록의 래리핑크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 경영진들에게 편지 한통을 보냈다.
“ 기후변화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에게 투자하지 않겠다 ”
“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적을 공개하지 않으면 투자금 회수도 고려중이다 ”
라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기업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때부터 ESG 경영이 전세계 기업의 대세가 되었고
산업계 전반에 새로운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ESG란 개념은 그전부터 존재했지만 ESG 경영의 아버지는 래리핑크라는 말이 떠돌았다.
하지만 2023년 6월 래리 핑크는 “앞으로 ESG 단어 사용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했다
“ESG 담론이 기업이 아닌 개인의 정치에 이용되면서 사회가 양극화되는데 일조했다며 ESG 개념이 추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ESG에 대한 블랙록의 입장은 바꾸지 않을 계획이며, 탈탄소화 기업의 지배구조,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회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갈 계획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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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금융사에 한 획을 그은 한국인 < 빌 황 >
*참고기사들
월스트리트의 제왕은 골드만도, JP도 아닌 '블랙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4653632?sid=101
한국경제, "문제아에서 월가의 제왕으로"…블랙록 CEO 래리 핑크
https://www.wowtv.co.kr/NewsCenter/News/Read?articleId=A202402240055
[만파식적] 래리 핑크
https://www.sedaily.com/NewsView/2675JZ08W9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globalib
[이주형 기자의 세계 대부호 20]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https://www.ceo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66
ESG 불붙인 래리 핑크 “ESG 용어 사용 전면 중단”
https://www.futurechosun.com/archives/77480
첫댓글 오 흥미로워.,,, 이런 글 올려줘서 고마워~~!!!!
진짜 흥미로워 글 고마워 !
너무재미있다 정독했어 고마워
와 몰랐던내용이야 고마워
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이다 고마워 다른 글도 봐야겠다
개쩌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