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붉은 이태리제 레드 카펫이 깔려있고 천창엔 커다란 룸에 은은하게 비추는 반짝이는 보석같이 빛나는 샹들리에가 차지 하고 있었다.
은은한 방에 어울리는 원목과 베이지색의 가구들은 서양식 유럽풍의 바로크 양식을 그대로 재연한듯 우아하고 고풍격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사치럽게 꾸며진 호텔 꼭대기 전망 좋은 방따위는 관심이 아예 없다는듯 화련의 시선을 단 한번도 끌지 못한다.
대기되여 있던 BMW를 타고 호텔로 들어올때까지 단 한마디도 건내지 않은 두사람이였다.
다급한듯 유가 화련의 손을 깍지끼고 재촉하듯 당기자 그 손길에 그저 이끌려준것이 다였다.
룸안으로 들아가는 유의 뒤를 따라 조용히 련이 뒤를 따라간다. 망설임도 없이 베드룸으로 곧장 직행하는 유.
베드룸에 들어오자 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어떠한 가구들도 아닌 하늘하늘 거리는 장식이 달린 은빛 휘장, 그리고 보기만 해도 잠이 쏟아 질것 같은
부드러워 보이는 실크 시트가 깔려져 있는 커다란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스위트룸이라는 생각이들정도로 주름 한점 잡혀있지 않는 침대는 약간의 이질감을 통반하고 있었다.
화련의 무릎 안쪽이 침대에 닿았다. 유가 가는 손을 뻗어와 화련의 눈 주위를 조심스럽게 쓴다.
그 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화련이 손을 들어올린다. 손을 눈가로 가져가자 유가 심술이 났는지 그녀의 눈꺼플위를 꾹 누른다.
"...유."
"내가.. 할래.."
"그래."
"응."
화련이 눈꺼플을 들어 올려 검은 렌즈를 조심히 빼낸다. 남의 손길에 불안할만 하면서도 화련은 끝까지 아까와 같은 눈동자로 유를 응시한다.
두개의 렌즈가 전부 벗겨지자 가려져 있던 원석이 들어내 그 빛을 바랜다.
작게 웃는 유, 유가 천천히 입술을 화련의 눈꺼플 위에 떨어트린뒤 부드러운 손길로 화련을 침대에 밀어 넘어트린다.
엉덩이부터 침대에 떨어지게 된 화련. 아무런 충격 없이 침대는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받아 낸다.
순식간에 수많은 주름이 생기는 침대, 문득 고급 실크의 촉감이 기분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유가 침대에 바짝 다가서 휘장을 내린다. 침대위에 똑바로 누워있는 련위에 천천히 몸을 겹친다.
"....련..."
"........"
"....련...?"
"유."
"...응..."
대답없는 화련이 이상하다는듯 다시 한번 부르자 대답이 들려온다. 기분이 좋은지 련의 가슴 바로 아래 얼굴을 묻고 있던 유가 작게 웃는다.
그의 목소리에 허공을 응시하던 화련의 시선이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은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유에게로 향한다.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자 기분 좋다는듯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두 팔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껴안고 화련과 자신의 다리를 서로 엇갈아 끼운다.
"...쿡."
"...련.."
"그래, 여기 있어."
"..응, ...련.. 일.. 주.. 일... "
"그래."
"...련..."
"그래."
"련... 찾.. 았...다..녔..어.."
"그래."
"......련.."
"그래, 유."
".......려..ㄴ."
"쉬이, 유. 알았어. 깰때까지 옆에 있어 줄께. 그러니 안심하고 자."
".....응....."
안심되지 않는다느듯 잠에 취한 몽롱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화련을 부르자 화련이 못 말리겠다는듯 유의 고개를 자신의 품으로 껴안으며 작게 웃는다.
알겠다고 대답한 유의 숨소리가 곧 규칙적으로 변한다. 바보같았다. 유는, 천재이면서도.. 어느 한 순간에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애정에 목 마른 어린아이처럼 끊임 없이 애정을 갈구 한다. 그것이 유였다. 어느 순간에는 가장 자유로운 자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구속되길 원한다.
다름이 아닌 화련에게. 분명 자신이 없어졌다는 소리를 보좌관이자(비서) 동생이 유우에게 듣자 마자 하던 일도 다 내팽겨 치고 자신을 찾아 다닐것이 뻔했다.
잠도 자지 않은 일주일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손을 놀렸을것이 뻔했다. 적어도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 찾을 수 있겠지..
홍콩 국제공항을 해킹하고 그곳에 있는 탑승자 목록을 다 뒤졌을 것이 뻔했다. 물론, 자신일것 같은 자들로 최대한 그 수를 줄였겠지만..
그렇게 했어도.. 시간은 많이 걸렸겠지. 유가 왔다는 것을 또 다른 의미. '월하'가 서서히 자신의 꼬리를 찾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유가 미행당했을 염려따윈 없지만.. 시간이 그만큼 지나갔다는 것을 의미할테니..
"...아직도 습관을 버리지 못했네, 유."
적어도 유 앞에서는 누구보다 편한 말투가 오간다. 아무리 피곤해도 자신이 부탁한나 하면 잠 잘 시간을 줄여서라도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일을 끝내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피로와 함께 밀려들어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지금처럼 자신을 안고 품에 고개를 묻고 잠이 들었다.
꼬박 잠들면 깨어날때까지 지켜주는것이 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였다. '월하'의 바쁜일때문에 언제나 혼자 깨게 내버려 두는 날이 더 많았지만..
이번은 눈을 뜨는 날까지 옆에 있어줄 수 있을것이다.
아직은 낮, 하지만 은은한 조명빛에 마치 밤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조심히 껴안은 유의 머리를 품에 안듯 조금 몸을 움츠린다. 사파이어빛 바다가 이내 깊은 수심속에 잠긴다.
뚜뚝, 뚜뚝, 검은 머리카락이 유독 더 검해 보인다. 물기를 먹어 촉촉해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이 방금 샤워를 끝내 분홍 홍조를 띄고 있는 볼에 붙어 있었다.
큰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올린채 가운을 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자 생수병을 까고 물을 들이킨다.
유가 죽은듯 잠을 잔지 벌써 12시간이 초가 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이나 내일 새벽쯤에 일어날듯 싶었다.
오늘은 일요일, 문득 정시후. 그가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었던게 떠오른다.
유가 잠들어 있는 베드룸에 들어가자 어제 잠든 그 모습 그대로 교복을 입은 채로 블라우스 단추만 다 풀은채로 죽은듯 잠들어 있는 유를 잠시 상냥하게 바라보다가
벗어 놓은 교복 치마 주머니를 뒤졌다. 손에 나오는 핸드폰, 어제 BMW에 타자마자 전원을 꺼두었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할말은 없다랄까.. 조용히 베드룸을 나가 갈색 고급스러운 1인용 쇼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손에 쥐인 핸드폰의 감각이 거슬린다. 등받이에 등을 기댄체 고개를 젖혔다. 어째서 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왜? 물어도 스스로도 모른다고 답할뿐이였다.
그가, 정시후가. 그저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말한것이.. 그렇게 충격이였을까.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면서.. 그 도톰한 입술을 열어 느릿느릿 이야기 하는 그 입술이.. 한순간 원망스러워 당황스러웠다.
"큭,"
자조적인 미소가 세어나왔다. 진화련. 너 웃기는 녀석이다. 처음 그와 아무사이가 아닌, 단순간 계약자. 룸메이트라 생각한것은.. 너 아니였나?
"....띠리리리링──,"
핸드폰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자 기계음을 내며 켜지는 핸드폰이 작은 진동을 일으키고는 조용히 배경화면을 들어낸다.
잠시 조용한 침묵이 감돌고.. 화련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는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비웃음. 탁, 소리나게 핸드폰을 닫으며... 또 다시 종료버튼을 길게 누른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띄는 심장이.. 어쩐지 조금은.. 아픈것만 같았다.
*
익숙한 향기가 콧속을 간지럽힌다. 잠에 취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끼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누구의 것일까..?
이 향기, 기분좋게 만드는 바다의 향기, 온몸이 물에 잠겨 있는듯 편안하면서도 절대적인 안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리운 향기..
무의식적으로 뻗은 손에 무언가가 감긴다. 그 무언가가 어떤것이라 생각하기도 전에 팔을 끌어당겨 몸과 밀착하게 만들었다.
물컹, 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것이 눈꺼플위를 부드럽게 누른다. 묘한 압박감에 기분나빠하기도 전에 따뜻한 체온과 익숙한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묻고 얼굴을 살짝 부벼본다.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하더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이 잠시 멈춘다.
아쉬워 할새도 없이 머리를 가로지는 살의 촉감, 그리고 아까보다 눈꺼플위의 압박이 더해진다.
기분은 좋은 나른함에 취해 영영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그의 작은 마음을 들어줄 수 없다는듯
귓가에 소중한 이의 불음이 들려온다. 작고.. 따뜻한 목소리로. 아아- 눈을 뜨면.. 분면 그녀가 보고 있을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도록.
"유."
단 한번의 작은 부름에 눈꺼플이 의지를 배반하고 올라간다. 검은 진주같은 눈동자에 부드럽게 부서지는 푸른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꿈이 아니였어. 그토록, 지난 일주일동안 사막의 오아시를 찾아 헤메듯 바다로 돌아가길 갈망하는 물고기 처럼
네트워크 바다를 헤메도 또 헤맸었다. 단 한사람을 찾기 위해. 자신의 정신적 지주. 누구보다 아름다운 아쿠아마린을 가지고 있는 그녀.
세상에서 가장 깊고 넓은 망망대해를 품고 품어도 그 끝을 알 수 없을만큼 깊은 바다를 가진 그녀.
그렇기에.. 더욱 손을 뻗고, 옆에 있기를 갈망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단 하나만 있을.. 자신의 공주(princesse), 자신은 그녀의 옆에 있기를 갈망하는 존재(Knight)
드디어.. 찾았다.
"...유?"
어리광을 부르듯 련을 확인하자 마자 품에 다시 고개를 묻고 부벼오자 련이 의아한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가 아니라는듯 고개를 저도 무표정한 얼굴에 박혀 있는 아쿠아마린같으면서도 차가운 사파이어에 걱정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하얗고 가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볼을 쓸어주는 느낌이 좋아서 유는 련의 손바닥에 몇번 볼을 비볐다.
"...련..."
몽롱하고 나릇나릇한 목소리, 타인이 들으면 졸린듯 눈을 비빌수도 있지만 화련만큼은 달랐다.
자신의 불음에 유와 눈을 마주친다. 무표정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은 신뢰감과 믿음이 굳게 담겨 있는 눈동자가 유는 좋았다.
변함없는 그 눈동자에 텅빈 마음이 충족히 차오른다. 작게 고개를 흔들자 빰에 닿은 손이 유의 볼을 살짝 꼬집고 떨어진다.
손길에 아쉬운듯한 끊임 없는 시선이 머문다는것을 화련이 알아차렸을까, 금방이라도 연기가 되어 꺼질듯
풀려진 두눈을 하고 있는 안개같은 흐릿한 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찍어 내린다.
흑진주와 사파이어가 서로를 끊임 없이 응시하다 먼저 모습을 감춘것은 흑진주, 사파이어가 예쁘게 초승달 문양으로 접힌다.
화련의 붉은 입술이 열리면서 붉은입술만큼이나 붉은 혀가 유의 입술을 살짝 핥다가 톡톡 두어번 두드리자 유가 자연스럽게 혀의 침입을 허락한다.
제집이라도 되는 마냥 이리저리 치아사이사이를 휘젓고 입천장, 잇몸을 쓰다듬는다. 마지막으로 입안 깊숙히 꽁꽁 숨어 있던 혀를 화련의 붉은 혀가 서로 뒤엉킨다.
"...하아, 으음...... 츄웁... 쿡, 쿠쿡...."
성적 흥분따윈 없었다. 애무가 아니였다. 그때의 입맞춤과 같이.. 그저 서로를 느끼기위한 키스가 다였다.
서로 순수하게 옆에 있음을 확인하는.. 그들 사이에 일정한 의식같은 것이였다.
화련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유의 입가에 흐른 누구것인지 모를 타액을 엄지손가락으로 훔친다.
아까와 다름 없는 몽롱한 눈빛으로 숨을 진정시키고 있는 유를 향해 입술을 연다.
"...유."
"..련."
"쿠쿡, 씻고 나와. 룸메이트 시켜둘께."
"..응.."
마치 엄마를 따르는 어린아이 마냥 고개까지 끄덕이며 유가 일어난다. 이틀 연속으로 잤건만 현기증도 느껴지지 않는지 잘만 걸어간다.
유가 욕실로 향하자 화련은 베드룸을 빠져나와 인터폰으로 룸메이트를 시키고 쇼파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
유가 왔으니.. 대략적인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해야 겠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
그것의 유무는, ;월하..' 의 밝은(빛날)달의 지배자 '화월(華月)'이 어디까지 움직였나 겠지. 또 다시 심장이 아파온다.
착각이 아닌 뚜렷한 아픔, 또 다시 떠오르는 괴로운 기억. 어쩐지 꽤나.. 그를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화련의 입가에 자조가 섞인 웃음이 달린다.
잊고 있었다라. 그 말 그대로.. 잊고 있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분명, 그들과 함께 했을때.. 화련은 잊고 있었다.
가슴아픈.. 달(月)의 잊어버려야 할.. 지워버려야 할.. 애초에 시작해서는 안될 사랑따위..
가슴이.. 찢어질것만 같았다. 찢어지면 아프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또 다시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을 뚫고 나갈만큼 강열히 울리는 심장!
그를 원하는 심장! 그 누구보다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던 심장! 그의 생각에 찢어지는 만큼... 잊지못할 사랑을 안고 뛰는.. 바보같은 심장..
뚜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화련이 눈을 떻다.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흑진주.
씻고 나왔는지 가운을 입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에 젖어 있으니 어쩐지 흐릿했던 존재감이 조금은 더 뚜렿해졌다.
"....련."
"유."
"....룸메이트."
"아아, 그래."
"...내가.."
"그래줄래."
"...응..."
느긋한 걸음으로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낮선 자와 함께 밀대를 밀며 들어온뒤 하얀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위에 세팅을 하고 절도 있게 허리를 숙인뒤 사라진다.
조금 생각에 잠겼더니 또 다시 한순간이 금방 지나간다. 옆에서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를 한번 보자 유가 련의 손을 꼭잡고 식탁쪽으로 걸어간다.
자신이 의자를 빼내어 앉더니 무릎위에 화련을 앉힌다. 아무 거부감 없이 화련이 앉아 익숙한 동작으로 유가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감고
흑진주보다 더 검은 머리카락에 고개를 묻고 잠시 어리광을 피우듯 고개를 부빈다. 그것을 잠시 받아주다 화련이 허리에 감긴 유의 손등을 두어번 톡톡 인다.
묻었던 고개를 들며 의아한듯 바라보는 유를 향해 화련이 음식으로 고갯짓을 한다.
"밥 먹어, 꼬박 이틀을 잤어."
"....싫어..."
"유."
"....련이.."
"알았어, 그러니깐 이거 놔. 그래야 해주지."
"....싫은데...."
싫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유가 머뭇머뭇 둘렀던 팔을 푸르자 화련이 자리에 일어나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식전 입맛을 돋구기 전 먹는 적은 양의 스프를 은색 스프 윗부분을 살짝 떠담았다.
"...아..."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작은 입술을 여는 유를 보며 화련이 피식,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의 입안으로 스프를 흘려보내준다.
"...맛있다.."
"그래."
"...응, ...련이.. 주는...거니깐..."
"..쿠쿡, 세상에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겠네."
"...응..."
*
탁, 넓지만 사람이 산다고는 볼 수 없는 온기 없는 집안에서 작은 소리가 넓게 울려퍼진다.
1층 마주보고 있는 동쪽 문이 열리면서 교복까지 차려입고 말끔하게 나온 청년의 눈빛을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잠을 설쳤는지 눈밑에 있는 검은 다크써클 따위 별거아니라는듯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 왠지 모를 포스마저 느끼게 만든다.
시후가 굳은 눈으로 자신의 맞은편 방앞에 서서 문을 똑똑 두드린다. 평상시라면 벌컥 열고 들을 그가 이런 낮선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쩌면 긴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대답이 없는 문 안쪽, 시후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늘 그랬듯 들어오는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듯 방안쪽에서 무언가가 거세게 밀며 저항하고 있었다.
완력으로 밀어붙혀 문을 활짝 열었을땐 열러진 창문에 싸늘하게 식은 시트만이 주인 없는 방을 지키고 있는 바람과 함께 너울거릴 뿐이였다.
시후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부터 싸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일요일인 어제 들어오지 않았다는것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루종일 쇼파에 앉아서 기다렸으니깐!
그때는 얼굴이라도 보고 자야 안심이 된다는 생각에 잠까지 설쳤다.
평상시 그녀석 같았다면 분명 이런 고민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헛고생따윈!
하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눈만 감았다 뜨면 생생히 보인다. 분명 렌즈를 끼고 있었는데.. 자신의 눈에는 어둠에 잠긴 바다같은...
검푸른빛 바다가... 한순간 흔들린듯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무표정한 얼굴로... 단 한번의 착각같은 바다의 흔들림은...
시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변명같은거 할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할 일도 없을것만 같았는데...
어느순간 그녀석을 기다리는 사이에 변명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애초에... 그런말을 꺼낸 자신이 잘 못한거였다. 시후는 쥐었던 주먹을 폈다.
오늘은 월요일, 학교엔.. 오겠지. 수업은 빼먹어도 등교는 빼먹지 않던 녀석이니..
초조하게 시계를 쳐다본다. 아침부터 그의 기분이 좋지 못 하다는것을 알고 있었을까?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각자 자신들의 점심시간을 즐기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인다.
리온과 강준이 서로를 보며 눈빛을 주고 받는다. 강준이 어쩔 수 없다는듯 고개를 으쓱하는것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시후야, 점심 안먹어?"
"안먹어."
"..에? 왜."
"몰라."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등교하고 부터 응시하고 있는 것이라곤 뒷문과 더불어 시계뿐이였다.
혹시나도 뒷문이 열리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선을 응시한뒤 기다리는 것이 아니면 싸늘한 눈빛으로 뒷문으로 다니지 말라 소리지를 뿐이였다.
시후의 시선이 또 다시 시계를 바라본뒤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뒷자석을 쳐다본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어야 할 교실 뒷편엔 한개의 빈 책상이 덩그라니 놓여 있을 뿐이였다.
그것도 창가자리인 화련의 뒷자석에 말이다. 토요일일에 진화련이 말한 '유'라는 청년이 온것이 거짓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야, 정시후. 꼴깝떨지말고 일어나. 가자."
"...둘이가라, 오늘은 별로다."
"그러니깐 가자는 거야. 어서 일어나."
"...서강준."
강준의 재촉에 시후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긴다. 내리려는 손을 강준이 잡고 일으키자 뭐냐는듯 바라보자 강준이 씩 웃는다.
시후가 깊은 한숨을 쉬며 가자는듯 손을 빼내어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몸을 일으킨다.
"..정말 너희들은."
"하하! 친구, 뭘 이런걸 가지고 이러오? 다 좋은게 아니겠소?!"
"맞아맞아!! 시후야! 밥 안먹으면 배고프다구~"
"...내가 말을 말지."
".....하아, 잘 먹었다. "
"응! 오늘 맛있었어!! 런치 A세트!!"
"양이 푸짐해서 좋아."
리온이 방긋 웃는다. 손에 들린 사과주스에 빨대를 꼽아 마시며 행복하다고 웃는 꼴이 꼭 배부러 행복한 강아지를 연상시킨다.
잘먹었다는듯 리온의 말에 동조하며 강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먹을 거 하나에 행복해 하는 녀석들을 잠시 한심하다는듯 쳐다본뒤 피식, 웃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구별되지 않았지만.. 아까보다 마음이 편해진건 사실이였으니.
시후가 슬쩍 웃고 교실 뒷문을 열었다.
"....아...."
한참 햇볕이 뜨거울 창가자리에 앉아 있는 밝은 빛속에서도 유독 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반쯤 비스듬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긴 속눈썹에 드리워진 음양이나, 유독 하얀 피부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 존재잠 없는 안개같은 또 다른 낮선이를 발견하게 되고 눈쌀을 찌푸린다.
화련의 옆자리에 앉아 반쯤 몸을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에 유약한 인상을 주는 남학생.
어제 전학온 전학생이자... 그녀가 말한 바로 그 '유'
"...아, 화련아..?"
"음? 진화련. 왔나보네."
"......."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화련을 내려다 본다. 서 있고, 앉아 있는 차이.
분명하지만.. 또 다시 그녀의 특유의 눈빛이다. 눈빛으로 내려다 본다. 진화련. 그녀석은.. 절대 자신의 위에 누군가 있는 것을 지켜보지 않겠다는듯.
"...내자리야."
"알고 있어."
"그럼 비켜."
"......."
막상 할말부터 찾는다는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아차,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입은 두번째 말을 내뺃고 있을 따름이였다.
'아이고 두야'하는 표정으로 이마를 치는 두녀석을 보며 자신 역시 속이 답답할 따름이였다.
".....다른 자리에 가주겠어, 유. 이제막 잠들었어."
"뭐?"
"아니면 유가 깬 후에 자리바꿀테니 그때까기 니자 좀 양해해줘."
"......."
말문이 막혀버렸다. 저건.. 부탁인가? 무뚝뚝한 말투를 가장한 부탁이였다. 예상치 못 한 일. 단한번도.. 부탁따위는 하지 않았다.
언제나 딱딱한 명령조, 그 명령조 또한 부탁이란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하하! 또 분위기가 왜 이럴까, 화련. 그냥 니 옆에 앉아 있는 전학생 깨우면 안될까? 시후 녀석 자리바꾸는거 싫어하거든."
"......."
"전학생도 바로 니 뒷자리잖아, 그러니깐 깨우는게 어때? 이제 곧 수업도 시작할텐데 이런 자세로 자면 너도 불편할거 아니야."
"상관없어."
"하하! 그러니깐 우리가 상관 있다니깐?"
"응, 화련아, 전학생 깨우자."
방긋 웃으며 권유(강요라 쓰고 권유라 읽는다) 하는것을 무시하고 서있는 시후를 바라본다.
"그렇게 해줄 수 있어, 정시후?"
"......."
"......."
"...지, 지금.. 뭐라고...?"
"...그렇게 해줄 수 있냐ㄱ.."
"아니.. 그, 그.. 뒤에.. 뒤에.. 말이야."
"......."
"......."
요구하는듯한 눈빛을 보내는 시후를 이상하다는듯 화련이 쳐다본다. 결국 시후가 '어서.'라는 재촉을 꺼냈을때 무렵 화련이 마지못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정..시후?"
".....!!!!....씨, 씨발.. 마음대로 해!!"
순간 화르륵, 차가운 쇳덩어리가 불에 달구어진 것 처럼 얼굴이 새빨개 진 시후가 다급하게 한쪽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화련에게 됐다는듯 손을 휘졌는다.
뒤에서 쿡쿡 하고 숨죽여 웃는 리온과 강준을 화련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도대체 왜 웃는거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화련을 곁눈질로 내려다 보며 시후는 떨리는 심장을 주체 하지 하지 못한채 교실을 휙! 나간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 내인생에..!! 푸하핫!! 정시후가 부끄러워 하는 꼴을 보다니!!! 하하!!"
배를 움켜잡고 간신히 말을 잇는 강준의 옆에는 아예 숨도 못 쉰채 꺽꺽 거리며 교실 바닥에 쓰러져 그래도 웃고 있는 리온을 보던 화련이 강준의 말에 그를 쳐다본다.
"...부끄러워 한거냐.."
"...하하하하하!!! 너도 참 둔하다, 정말 모르겠냐?"
크게 웃음을 터트린 그가 화련의 앞자리에 앉아 허리를 뒤로 틀었다. 팔에 턱을 괸채 지긋이 화련을 노려본다.
그 눈빛을 피하지도 않고 그저 응시해주자 강준이 큭, 하고 웃는다.
"진짜 모르나 보네.. 이렇게 둔해서야."
"누가 둔하다는 거지."
"아아-, 글쎄.. 이봐, 진화련. 정시후 말이야."
"......."
"왜 부끄러워 했는지 알아?"
강준이 싱긋, 웃는다. 반대로 화련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모르니깐 물었지 않은가!
"...너 말이야, 시후랑 단 둘이있을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내가 알기론 그녀석 이름 처음 불렀으니깐."
'그게 어쨌다는 거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화련을 향해 다시 한번 상큼한 미소를 지어준뒤 강준은 이소란에서도 곤히 눈을 감고 자고 있는 흐릿한 인상을 가진 전학생을 바라보았다.
유학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전학생은 그때 화련을 향해 이를 들어내던 모습과는 너무나 반대로 개미 한마리 죽이지 못할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하, 정시후.. 공략이 힘들겠는데?'
새로운 라이벌에 등장에 공략이 힘들어지는 친구를 위로해줄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눈앞에 미남미녀가 연출하는 그림같은 장면을 싱긋- 웃으며 바라본다
---------------------------------------------------------------------------------------------------------------------------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요ㅇ-ㅇ?
전 제 소설이라 그런지.. 재미 있는데....ㅜㅁㅜ...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月의 사랑찾아 삼만리」[30]
묘운(杳雲)
추천 0
조회 250
08.10.09 13:50
댓글 9
다음검색
첫댓글 잼있어 담편이 기대되
재미있네요
재미잇어요!!
>ㅇ<꺄핫! 재밌어요오오오!! 완전완전완전요옷!ㅎ 역시 묘월님이세요옷! 다음편도 완전 기대요오옷!ㅎ
재미있어요오~~담편 기대할께요오~
재미있어요...
재밌어요>_< 다음편도 기대되요
우웃 너무 재밌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