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근대사/현대사 인천상륙작전이 가지는 의의(펌)
Daum Bark 추천 0 조회 487 05.10.31 18:27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5.10.31 19:00

    첫댓글 디펜스코리아에서 올라온 글을 퍼오셨나보군요. 좋은 글입니다만, 서울탈환이 늦어진 것이 시가전의 어려움 때문은 아닙니다. 서울 돌입은 25일에야 이루어졌고, 정작 시가전이랄 수 있는 전투는 이틀밤도 안 넘겨서 끝난 셈이니까요.

  • 05.10.31 22:38

    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05.11.01 00:06

    그럼 중공군의 펑 더하이는 군신이겠네요...사실 인천상륙작전 준비할때 뭔가 낌새를 챈 인민군(아마 원산으로 상륙하는줄 알았을 겁니다)이 낙동강을 엄청나게 공격해되자 상륙부대가 3번이나 다시 전선에 투입되는 상황이 벌어졌죠 당시 인천에 상륙했을때 북한군 병력은 진짜 소수였습니다

  • 05.11.01 00:06

    게다가 남포항 상륙작전은...아주 육군이 기다리고 있었죠 기뢰제거 할때까지...

  • 작성자 05.11.01 18:39

    미군은 언제나 철저하게 기도비닉을 합니다. 그러다가 공격이 시작되면 엄청난 물량을 쏟아놓고 보죠. 인민군이 다수던 소수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확실하게 적을 제압하느냐로 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스타가 아니니까요. 너무나 급조된 상륙이 어떤 결과인지는 안지오를 보면 나옵니다.

  • 작성자 05.11.01 18:56

    그리고 인민군이 낌새를 눈치챈것이 아니라 물자가 동이 나가서 더 공격을 재촉한 것입니다. 그해 8월... 일부 전선은 조금만 돌파하면 밀릴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후에는 완전히 전력을 소진하고 맙니다.

  • 05.11.01 22:02

    북한군 노획문서를 보니까 이미 북한군도 아주 정확하게 인천상륙을 예상했고 전력예비대도 보냈군요 문제는 역시 압도적인 전력차로 결국 상륙은 막아내지 못했지만 경-인천 사이의 짧은 거리를 13일정도 막는 전과를 올렸군요

  • 05.11.01 21:55

    참고로 이때 이쪽 방면의 예비전력을 지휘한 사람이 민족 보위상 최용건이었습니다. 아무리 개전 반대 의혹이 있어도 이 정도 신임하는 사람을 실병력을 주어서 지휘권을 맡긴 걸 보면 혹부리 아저씨도 어느 정도 인천 지구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보면 됩니다.

  • 05.11.01 21:24

    근데 한국전쟁때 맥아더가 하는 삽질을 보면 장난아니죠 심지어 미국에서 맥아더 씹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는데 저도 당시 의외였죠 저도 최소한 맥아더=명장 이었으니까

  • 05.11.01 21:49

    게다가 아이젠하워가 제일 혐오한 인간중 하나가 맥아더군요...심지어 1차대전당시 적군 포로에게 자신을 업게 하고서 말채찍으로 때리면서 아군진지로 와서 군사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센스도 범했다나요?

  • 05.11.01 22:05

    상륙전이란 전투형태는 사실 아주 간단한 룰입니다 공군과 해군의 압도적 지원과 초기에 상륙하는 부대의 피로 얼마나 버티느냐. 다시 말해 후속제파가 적의 기동예비보다 얼마나 빨리 도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즉 기습의 효과는 있을 지언정 그 다음은 특별히 유능한 게 아니죠

  • 05.11.01 22:04

    예를 들어 2차대전당시에 성공한 미군의 상륙작전은 이러한 방어측이 손을 댈 수 있는 조건들이 적용되지 않았던 특수한 지형 즉 섬에 대한 상륙이며 이 제반조건을 달성한 것은 상륙군이 아닌 해군과 해군항공대의 유능함으로 보는 쪽이 더 객관적인 시각이 되는 겁니다 상륙군이 유능했는가는 그 다음의 문제죠

  • 05.11.01 22:04

    물론 인천상륙작전은 상륙 선발대가 10시간동안 버텨야 한다는 무리수를 뒀고, 상륙작전 자체는 성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다음의 과정, 전력의 전개 및 투사과정에선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는 게 더 일반적(게다가 이거리는 30km인데 이거리를 13일이나 못가??뭐 북한의 엄청난 부대가 있으면 이해가 가지만)입니다

  • 05.11.01 22:05

    다시 말해서 북한군의 예비전력이 사실상 부재했고 전개 능력이 개판이었기 때문 즉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섬과 같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지 그것이 맥아더의 유능함때문은 아니란 거죠 실제로 정상적 상륙작전에 가까운

  • 05.11.01 22:01

    디에프, 토치, 살레르노, 안지오가 과연 성공이었나 실패였나를 평가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게다가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 공세는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무려 3번이나 상륙부대를 바꾸는 군요 당연히 이 부대는 급박한 전선으로 보내졌습니다

  • 05.11.01 22:06

    만일 맥아더가 유능하다면 이러한 일이 애초에 벌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충분히 그에 대한 예비대를 확보했어야 합니다만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공세예비부대를 처박아야 했던 것 뿐입니다 만일 그래도 맥아더가 유능하다고 보면 그 작전안을 뒤흔든 북한군도 충분히 혹은 더욱 유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 05.11.01 22:03

    위에 것은 제가 전에 화이트데스에서 맥아더와 관련된 말이 있을때 우마왕님과 이준님의 글을 보고서 안 것입니다 심지어 윤민혁님 마저도 맥아더가 유능하다는데는 동의하지 않는군요 그래서인지 최근의 맥아더 전기를 보는 것을 권하시는 군요 이상한 극보수에서 연구한 자료보다는...

  • 05.11.02 07:35

    Daum Bark 님. 안지오랑 비교하면 안됩니다. 안지오의 독일군과 인천의 북한군이 상황이 같았습니까? 안지오에서 독일군은 여기저기서 전력을 더 빼올 수 있었습니다. 당일에만도 제4공수사단과 헤르만괴링 기갑사단을 방어에 동원할 수 있었고, 이후엔 남부유럽에서 빼올 수 있는 거의 모든 병력이 투입됩니다.

  • 05.11.02 07:54

    급조된 것으로 따지면 인천상륙도 마찬가지죠. 화력이나 병력 면에서도 훨씬 뒤떨어지고, 예비대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던 상황에서 인천상륙이 실패하면 오히려 이상했을 겁니다. 인천이란 지점만 빼면 그 이후 전개 과정에서 뭔가 특출날게 있었을까요?

  • 05.11.02 07:52

    다만 전상용 님. 인천상륙을 북한군이 정확히 예측했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물론 상륙작전이 벌어지기 전에 인천에 대한 방어책이 어느정도 세워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정도의 대책은 원산이나 남포 쪽에서도 행해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사단도 결국엔 낙동강으로 향했죠.

  • 05.11.02 07:51

    위의 글처럼 당시 인천에 남겨진 전력은 거의 한줌에 불과했고, 결국엔 인천상륙에 대한 대비는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단 이야기가 됩니다. 하기야, 당시 김일성 입장에선 인천에 얼기설기 방어선을 엮어놓느니 낙동강에 올인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작성자 05.11.02 17:06

    맥아더가 유능하다 무능하다의 문제보다는 인천상륙이 얼마나 유효하였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더구나 낙동강전선 자체가 아주 협소해서 16개국군은 부산에 도착 즉시 바로 투입되는 실정이었습니다. 또한 이미 병력자체의 운용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맥아더는 형식상으로나 편제상으로 전미군을 지휘하는 장군이 아니

  • 작성자 05.11.02 17:08

    었으니 일본주둔 미군을 위주로 전략을 짤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전상용씨가 보기에 만약 인천상륙작전이 삽질이었다면 뭐가 합리적이었을까요? 아이젠하워가 맥아더를 싫어한 것은 대권에 도전할 것을 우려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인천을 수비하던 병력은 아주 미미했

  • 작성자 05.11.02 17:10

    습니다. 대비책을 세웠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규모였지요. 또한 빨리 진군하지 않은 것은 인천항을 개항시키지 못한 것. 한강도하장비의 부족, 보급물자 집적의 한계등등 이면적임 문제가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급조했지만 성공하였으므로 높이 평가하는 작전입니다. 저는 그렇게 평가합니다.

  • 05.11.02 22:13

    저도 인천상륙작전은 어느정도 유효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분명히 예비대도 얼마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작성자 05.11.03 18:30

    예비대는 이미 일본에 있었지요.. 다만 시기적으로 투입을 미뤄오다가 인천상륙작전당시 같이 인천에 상륙을 합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이미 8월말이 되면 인민군의 공격은 단말마의 돌격정도로 현저히 줄어듭니다. 보급이 두절되고 화력의 열세에 놓이게 되지요.

  • 05.11.05 19:53

    저 그 미군 예비대가 아니라 북한군 예비대 말입니다 상륙을 저지하려는...북한군 노획문서에 보면 이미 파악된 것 같군요 근데 그 곳에서 그 많은 군대를 가지고 무려 13일동안??당시 북한군은 알면서도 얼마안되는 부대로 막아야되는 최악의 상황임에도 13일동안 왜 그 가까운 거리에서 위에도 말했듯이

  • 05.11.05 19:56

    상륙부대의 진정한 능력은 상륙당시가 아닙니다 제반 조건을 만들어준 해군과 공군의 능력이고 인천 상륙작전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말그대로 북한군이 거의 없었고 어차피 알아도 투입도 불가능했지만...근데 그 사정을 모르는 건지 그 이상의 상륙부대가 달성한 것은??아무리봐도 낙동강에서 있던 인민군은 거의 전멸

  • 05.11.05 19:58

    그리고 나머지 다른 곳에 주둔하는 북한군은 과연 상륙을 통한 제 2전선 형성을 통해서 유엔군이 얻은 것은??이것으로 보았을때 인천상륙은 실패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다지 얻은 것도 없습니다 뭐 만약 북한군의 보급을 끊은 것도 아니고(어차피 보급도 안되지만)후퇴하는 북한군 주력을 막은 것도 아니고

  • 작성자 05.11.11 14:39

    인천상륙작전을 안했더라도 이겼겠지요. 문제는 그 효과입니다.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패닉상태에 빠지기 충분한겁니다. 더구나 당시 철로가 남한은 서울기점으로 되어있었으므로 이를 장악한다면 전선의 북괴군은 붕괴하게 되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진격이 빠르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 작성자 05.11.11 14:41

    어차피 인천상륙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심리적은 충격은 대단한 겁니다. 진격이 빠르지 않아서 주력을 포위섬멸하지 못한것이 아니죠. 대개의 인민군 주력은 붕괴되거나 지리산, 태백산으로 숨어들어갑니다. 인천상륙으로 서울을 점령하고는 사실 전투의 양상은 중공군 참전때까지 거의 토벌전처럼 되어 갑니다. 그러다가

  • 작성자 05.11.11 14:42

    중공군의 기습으로 혼란을 겪게 되고...이거는 다 알거고.. 만약에 낙동강에서 진격했다면? 이기기야 했겠지만, 희생도 많이 컸을 겁니다. 전상용씨가 묘사한 것처럼 불필요한 작전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