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3기랍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마라도에서 멀리 한라산과 산방산을 쳐다보며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조각구름 몇 조각에 마음을 뺏겨 있던 즈음에 온 전갈이었습니다. 폐에서 림프절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40년 벗에게, 그것도 술, 담배를 않을뿐더러 모든 생활이 모범적이었던 친구에게 폐암이 찾아오다니.... 순간 망연자실했습니다. 병문안 전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희망적 내용보다는 비관적인 얘기들이 많았기에 마음이 참 어두웠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병문안을 가서 친구 아내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쳤습니다. 계속 보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릴 것 같아 잠시 먼 산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생각보다 담담한 모습이어서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습니다. 발견 경위, 현재 상황, 앞으로의 대처방안을 조곤조곤 얘기하는 그를 보며 마음이 놓였습니다. 림프절 너머까지 전이가 되었으면 치료가 더욱 힘들지만 다행히 거기까지만 암세포가 가 있어 희망적이라 했습니다. 주치의가 영남대병원 호흡기센터 정진홍 교수님이시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대학 서클 2년 선배이시기도 하지만, 3대 의사 집안에, 진중한 성격, 다정다감한 성품을 가진 호흡기질환의 권위자이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적지 않은 끽연가들은 비흡연자의 폐암 발병 소식에 자신의 희망을 섞어, ‘봐라, 비흡연자도 폐암 걸리고, 골초였던 공초 오상순, 구상 시인 같은 이도 장수하셨는데.’라고 얘기들 합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건 많지 않은 사례에 자신의 희망으로 화장을 시킨 거라 생각합니다. 폐암 발병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합니다. 발병 원인의 85%로 집계되고 있는 흡연이 그 한 가지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간접흡연, 석면, 라돈, 비소, 카드뮴, 니켈 등의 금속, 방사선 치료, HIV 감염 및 유전적 요인을 꼽고 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서울대학교 의학정보에 따르면 <흡연은 폐암의 발생 위험을 13배 증가시키며, 장기간의 간접흡연은 1.5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연의 양과 기간도 폐암에 걸릴 확률과 관련이 있다. 매일 한 갑의 담배를 40년간 피워 온 사람이라면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폐암에 걸릴 확률이 20배에 달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또한 20년간 두 갑을 피워 온 남자라면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60~70배가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도로의 교량 부분 아스콘 포장공사 현장 감독을 하면서 작업 인부와는 달리 마스크를 끼지 않은 상태로 현장에서 지시를 하다 보니 유해한 미세먼지를 흡입하였을 것이고, 간접흡연, 과도한 스트레스가 겹쳐 발병한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기침이나 가래, 각혈 등 증상이 없다가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나와 정밀검사로 폐암진단을 받았다하니, 우리 몸속에는 침묵의 장기가 참으로 많다 하겠습니다. 어찌되었건 발병 원인은 잊고 이제 치료에 몰입해야겠지요. 1차 항암치료를 받았고 2차 항암치료 후에 수술을 할 거라 합니다. 수술 이후에도 항암치료, 요양 등 장기간에 걸친 치료가 필요할 것입니다. 1년 중 열 달여를 전국 공사 현장을 누비던 이가 침대 보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주 병문안 가서 말벗이나 되어 주어야겠다 싶습니다. 병원을 나서며 친구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오래 병원 신세를 져야하는데 시간 보내기 가장 좋은 것은 책 읽기와 생각에 빠져들기이니 책도 더 보고, 예후가 좋아지면 여행 다녀야 할 곳들 코스 잡고 각 코스별로 어떤 곳이 볼만한지, 무엇이 맛있는지, 누구와 다닐 건지 궁리하는 재미로 시간 보내라 했습니다. 다음 병문안 땐 읽을거리나 사서 전해주어야겠습니다.
함께 병문안 간 친구들과 인근 술집에 들렀습니다. 아무리 희망적이라 하지만 친구의 발병 소식에 마음이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술 한 잔 나누며 달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친구는 우리 나이가 벌서 60을 바라보는 때이니 암 3기 정도 되면,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고통스럽게 치료받지 않고, 재산 탕진하지 않고 그냥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요양하며 마음 다스리며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는 그래도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있으면 지펴야 하지 않겠냐고, 노력 후의 결과는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받아들이면 가는 이도, 남은 이도 얼마나 고통스럽겠냐고 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이지요. 각자가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생각대로 갈 지는 미지수지만요. 친구의 발병 소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평소에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 쓰고 건강검진은 정기적으로 꼭 받자고 맹세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과 가정에만 충실하였던 바른생활인인 제 친구가 폐암을 이겨내고, 남은 삶을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기원했습니다. 취미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어느 쪽?’이라는 글을 모셔왔습니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요?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 수도 있는 중증질환이 아직 오지 않았을 때? 아니면 암 진단을 받고 그것을 이겨내었을 때? 둘 다 행복할 겁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가 당연히 더 행복할 것입니다. 행복,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휴식에도, 휴양에도 대자연은 너무나 가까운 이웃입니다. 언제나 기다리고, 나누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벗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 봄맞이 나갔던 대구수목원의 봄꽃들을 모셔왔습니다.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958446442
어느 쪽?(모셔온 글)================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닥쳐오리라는 불행을 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니면 예기치 않았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어느 쪽이 더 실망스러울까?
즐거우리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지루하게 지나갈 때?
아니면 피하고 싶었던 만남에서 역시 하기 싫은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어느 쪽이 더 좋은 걸까?
사랑을 하여 외로워도 마음에 누군가를 품고 살아가는 일?
아니면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고 마음 부대끼지 않으며 심심하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
어느 쪽이 더 불행할까?
당신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
아니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견디는 일?
어느 한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간절하게 필요한, 늦은 밤.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