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상의 자유와 양심을 지키려다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을 돕고 있는 <양심수 후원회>의 2006년은 어떠했을까?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기자는 20일 서울 낙성대 '만남의 집'을 찾아 후원회 권오헌 회장을 만났다.
양심수후원회는 장기구금 양심수의 후원과 석방을 목적으로 지난 1989년 3월 17일 출범했다. 후원회가 양심수를 돕는 것은 이들 양심수들이 자기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공동 선(善)을 위하여 양심에 따라 살다가 구속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300명에 달했던 비전향 장기수는 1999년 270여명 전원이 석방되었다. 그때까지 양심수후원회는 이들을 편지, 면회, 영치금 전달 등의 방식으로 도왔다.
그러던 2000년 9월 2일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비전향 장기수 중 63명이 북으로 송환된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운동을 담당한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 일을 양심수후원회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것은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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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 위치한 '만남의 집' 전경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이후 후원회의 활동영역은 점점 넓어졌다. 비전향 장기수 이외에도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을 하다 구속된 수많은 양심수가 있었으며 양심수를 만들어 내는 국가보안법, 집시법, 노동관계법 등 반민주 반통일 반인권 악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12월 20일 현재 106명의 양심수가 철창 안에 갇혀 있다. 양심수후원회는 계속해서 이들에게 영치금을 전달하고 도서를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들을 돕고 있다.
권오헌 회장은“군부 독재 시절에 비하면 좋아졌지만 민간정부에서 양심수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 말하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양심수를 만들어 내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때문에 양심수후원회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활동에도 늘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올해에는 평택 미군기지확장 반대운동, 방위비 분담금 증액 반대운동,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등을 각 사회단체와 연대해 펼쳐왔다. 특히 올해에는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 많았다. 전교조 부산지부 자료집 논란, 민주노동당 이주희 학생위원장 기소, 한국민권연구소 최희정 상임연구원 사건 등으로 권오헌 회장은 국가정보원과 검찰청을 수없이 오갔다.
이 밖에도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화애에 기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해 왔고,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던 와중에도 지난 11월 10일 4박5일의 일정으로 평양에 다녀 왔다. 민간부문이라도 흔들림 없이 교류해야 통일에 역행하는 흐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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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 회장은 저렇게 언제까지나 장기수 선생님들, 양심수들의 곁에 붙어있을 것이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양심수후원회 활동의 고유한 영역으로 무엇보다도 비전향 장기수에 관한 일을 빼놓을 수 없다. 1989년부터 운영된 만남의 집에는 현재 3명의 장기수 선생들이 머물고 있다. 이들을 보살피는 일 뿐 아니라 아플 때는 간병하고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르는 것까지 이들의 몫이다.
2004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에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후로 통일부 장관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아무런 답이 없다. 일각에서는 상호주의 원칙을 운운하며 장기수들의 북송을 반대했다.
권 회장은 상호주의 원칙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들이 얘기하듯 국군포로를 상호주의 원칙으로 데려오려면 남쪽에선 이승만 대통령 당시 석방한 2만7천명의 인민군 포로를 북으로 올려보내야 하는 것이지 장기수는 국군포로와의 상호주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수 석방 등 새해에도 바라는 것이 많은 권 회장은 "내년에는 양심수후원회의 일이 줄어들기 바란다"는 간단한 한마디로 바람을 요약한다.
기자가 대문을 나서는 길에 만난 83세의 장기수 문상봉 선생은 “내가 돌아가는 것보다 미국이 쫓겨나야 문제들이 해결될텐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사상을 변함없이 지켜온 이들만큼이나 권 회장도 변함없이 '양심수후원회가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해 힘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