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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어가고 있는가?(고령화 사회를 내다보며)
바깥 날씨는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저절로 흐른다. 나는 국민연금 00지사를 나서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다보았다. 마치 삼복더위에 억세끝을 스치는 가을 바람이 불듯 기분이 상쾌하였다. 그 이유인즉 다른 아닌 나의 업무를 담당한 여직원의 친절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며 수건으로 땀을 닦는 나에게 더위를 걱정해주며 끝까지 “아버님”이라 호칭하며 갓 시집 온 새색씨처럼 손에 잡힐 듯 친절하게 접수와 안내를 진행하며 마음 편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업무를 마친 후 허리 굽혀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나도 크게 허리를 굽혔다. 우리 며느리가 이글을 보면 서운해 하려는지 모르겠으나 정말 저런 며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을 베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모름지기 대민업무를 하는 직장인의 자세는 저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본의 아니게 국민들에게 의무를 부담케 해야 하는 부서와 삶에 보탬이 되는 급부를 주는 부서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마음도 든다.
이곳에 온김에 마침 오래전 고시원에서 공부를 같이 하며 알고 지냈던 직원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세월이 많이 흘러 그의 이름이 선뜻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쯤은 제법 높은 간부직에 있을 것 같다.
예전엔 나도 왜 괜스레 이런 제도(국민연금)를 만들었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그래도 그나마 믿을 곳은 이곳 뿐이란 생각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나는 자신의 수급 국민연금액 이외에도 배우자(월 20,650원)와 부모와 미성년 자녀(장애2급 이상 포함 월 13,760원)에게도 부양가족연금이 추가 지급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그 여직원이 더 친절해 보인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주체 못할 남는 시간 탓에 더위를 무릅쓰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강변 나무그늘에는 산업현장에 투입되지 아니하고 버려진(?) 잉여 노동력들이 벤치를 점령한 채 자신들의 하루 일과를 메꾸어 가고 있었다. 그렇던들 적어도 나의 입장에선 그들을 폄하할 처지는 못 된다. 구태어 내가 그들과 자리를 같이 하지 않더라도 알고 보면 스스로가‘초록이 동색’이라거나 ‘유유상종’이란 처지를 부인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변 언덕길에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처음엔 더위를 피해 산책을 나왔거니 하고 생각 하였었는데, 나의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이 더위에 왜 걸어가는지 궁금하여 눈여겨 그들의 행색을 보니 그렇게 절박해 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이었다.
웃음띤 얼굴로 부모의 손을 잡고 걷는 아이를 보며, 한 20년쯤 세월이 흘러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사회는 저들에게 어떠한 삶의 터전을 물려줄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섞인 생각이 들었다.
(어느 직업을 가지지 못한 사내가 홍등가의 늦은 밤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평소 명함이 없고 돈이 없을수록 옷매무새라도 잘 차려 입어야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그를듯하게 모양새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선 의례 연출되듯, 예고하지 아니한 고객을 기다리던 무기를 소지한 괴한 두 명이 그를 따라 붙으며 불러 세웠다.
“어이! 앞에 가는 친구 거기 서봐라!”
자신이 사는 동네에선 때론 한 성질 하는 사내는 이유를 모른 채 갑자기 자신을 향해 반말로 소리치는 그들에게 돌아서며 기분 나쁘다는 투로 말대꾸를 하였다.
“뭐시라? 방금 나 보고 그랬소?”
괴한 하나가 사내가 작금의 분위기를 감지치 못하고 겁을 상실했다고 여기며 가소롭다는 듯 그에게 다가가 바바리속에서 금속 물체를 꺼내어 머리에다 겨누며 말했다.
“마! 네 정체(직업)가 뭐고?”
순간 괴한이 꺼내든 총을 보고 놀란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두운 밤거리에는 그를 도와줄 것이란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겁에 질린 채 괴한의 물음에 답하였다.
“직- 직업말인교?...저어...거시기...뭐시더라”
“얌마! 머시기는 아까도 말 했잖아?”
“아니요. 그 머시기하고 이 머시기는 다른뎁쇼.”
“그럼 뭐야? 거시기는 뭐고 머시기는 또? 확! 성질 돋우기는...”
“그게 배-백 쑤우”
“뭐? 백숙장사? 너 백숙장사 하냐? 그럼 장사해서 가진 돈 당장 다 내놔.”
순간 사내는 기가차고 서러운 마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회사로부터 실직을 당하고, 몇 년째 마누라의 눈치를 보며 늘어가는 건 동네 잔칫집에서 얻어먹는 공술인데 무슨 돈이라니...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마음이 죽도록 무거운데, 세상이 자신에게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바닦에 털석 주저 앉으며 소릴 질렀다.
“돈? 먹고 죽을려도 없어요. 나? 노∼놀아요. 맨날 나 집에서 논다고요. 어쩐다요? 그러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고요.”
“뭐야! 이 자식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에이 재수 없는 게 걸려 가지고. 꺼저 임마! 너같은 백수는 이 세상에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네겐 총알도 아까워.”
공연히 영업시간 중 헛수고를 하였다며 총총히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는 두 괴한의 모습을 씁쓸히 바라보는 사내의 머리위엔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우리 몸은 하나의 세포가 새로 생길 때마다 그 세포는 게놈 속에 포함된 몇 십억 쌍의 DNA를 전부 복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착오가 생길 수가 있고, 대부분의 착오는 수정되어 바로 잡히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때 수정 되지 아니한 착오는 DNA에 기억되어 다음 번 생식 때 그 착오를 그대로 반복한다. 이처럼 잘못 복제된 유전자는 단백질 구조를 왜곡하게 되는데, 오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축적된다. 노화 현상이란 바로 이렇게 보호 기제가 착오로 가득차고, 축적된 오류가 제때에 바로 잡히지 않아 나타나는 결과이다.
굳이 등식을 성립시켜 보자면, 우리 몸속의 세포가 줄어들지 않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위와 같은 비효율성 문제로 계속해서 더 많은 새로운 생성공급원을 제공하고,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세포의 노화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가는 것 같다. 고령화 사회는 돈이 많이 드는 사회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생활의 편의가 증대되고 있지만 그만큼 삶의 대가는 갈수록 비싸지고 있다.
BBC뉴스의 데클란 커리는 “우리는 오래 살고 일도 더하는 운이 좋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삶의 비용은 점점 비싸지고 있다.”며 고비용 미래사회를 우려한다. 그는 이탈리아와 독일은 2030년까지 경제총생산(GDP)의 25∼30%가 연금과 보건비용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 더 많은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고령 가족들을 돌봐야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체근로자 비용, 생산성 저하 등의 비용부담이 높아지게 된다.(바보스 리포트 '힘의 이동')
이러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세상엔 고급 빌라에 살면서 맛있는 피자를 시켜먹는 텔레비젼 드라마 화면을 보면서, 가진 돈이 적다고 궁상맞게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진 않는다.
전시효과, 베블런효과(과시), 아니면 백로효과(선진국의 소비형태를 닮는)...그냥 그대로 영상시대의 시너지 효과가 커서인지, 내일 죽을지언정 카드 할부라도 해서 같은 효과를 맛보려고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두 부류의 간극을 좁혀주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정부의 정책이 중요하고, 사회지도층의 행동이 모범적이어야 한다. 최근 들어 정부가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칼을 빼들고 나섰다. 다행이 내년부터 구직급여 기간을 늘리고, 지원금을 인상한다 하니 다행이다.
무슨 일이든 개혁이라 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는 부분이다. 이에 버금가는 단어로‘진보’란 말도 알고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즉 '발전’이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툭하면 종북이란 비꼼의 의미로 약자인 상대를 압박한다.
정부의 개혁의지가 지금껏 해온 이미지로는 -호지명 군대의 개머리판으로 재듯(들쑥 날쑥 기준이 없는)-, 자신들에 우호적인 틀에 맞춘답시고 거대 공룡은 발톱을 자르고, 작은 익룡의 날개를 꺾어 약자에게 상대적 절박함을 더하게 한다면 차라리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것이다. 보다 효율적인 정책과 국민들의 눈높이 낮추어 살기를 계도하여 행복의 동질성을 추구하고 미래세대에도 부담을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은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기록은 1500년대 중반에 군사적인 후퇴를 묘사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영어의 ‘은퇴하다(Retire)’는 프랑스에서 당기거나 미는 것을 뜻하는 ‘Tirer’에서 파생된 것이다. 20세기 초에 노후보장제도가 정착하면서 은퇴는 대부분 이탈, 퇴각, 분리, 후퇴, 은둔 같은 부정적인 행동을 의미했다.
우리가 침대로 ‘Retire’ 하는 것은 쓰러져 잠들기 위함인데, 거기엔 혼자 남겨 진다는 뜻도 포함된다. 은퇴란 단어는 감소, 비활동, 힘과 지위에서 분리되는 것을 암시한다. 19세기의 어느 작가는 이 단어를 사용해서 나이 든 사람의 영혼이 마치 ‘영역이 수축되고, 기억의 상실로 인해 좁아진 벽돌사이 속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헤밍웨이는 영어에서 ‘은퇴’라는 말은 가장 추악한 단어라고 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은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고,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드 보봐르는 ‘은퇴하는 것은 쓰레기에 던져지는 것’이라고 했다.
위에서와 같이 은퇴란 무섭고 외로운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은퇴를 하는 순간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박탈감이란 크지 않은 영역이었지만 내가 감당하였던 분야에서 제외되고,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소외감이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러시아의 툰드라나 북 아프리카의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 홀연히 버려진 느낌이랄까? 직장을 다닐땐 설마 그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장 문을 나서는 순간 스스로 마음이 위축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편 은퇴를 앞둔 사람들 중에는 이대로 순순히 세상의 뒷전으로 밀려 나가기보다는 자신의 열정과 능력을 재발견함으로써 그냥 그대로 ‘림보(Limbo)’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림보란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는 제3의 세계로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이나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 이교도, 백치의 영혼이 사는 곳을 말한다.(당신의 영토를 확장하라/데이비트 코버트)
아마도 이러한 마음은 세상을 살아가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소위 자신 스스로 그런대로 잘나간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더할 것이다.
걸프전 당시 전쟁 영웅으로 유명해진 슈와츠코프 장군 휘하에서 무수한 전공을 세운 어느 예비역 장성이 은퇴 후에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하였다.
“퇴역한 후에도 내게 걸려오는 전화가 있을 줄 알았다. 군에 있을 때처럼 내 방을 노크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건 틀렸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전화벨이 끊겼다.”
결국엔 요즘의 사람들이 과거의 아름다운 인연이나 필연적 고리에서 벗어나 경제적 실리를 찾고자 하는데 이르고 만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현역시절에는 은퇴하면 시간이 넘처서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생활이 시작되면 스스로 하루의 시간표를 만들고, 통제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나도 처음 한두 달은 출근시간대에 괜스레 마루를 서성이고 골목을 내다보며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우렸다. 그리고 자리를 뜬 새 누구에게서 전화라도 오지 않았을까? 기대를 하며 놓아 둔 휴대전화를 수시로 열어보고 가끔 날아오는 상업 문자에 실망을 금치 못하였었다.
그러다 점차 나의 현실을 깨달으며 저장된 전화번호를 만지작거리다 하나 둘씩 번호를 지워가는 과정을 거쳤었다. 그래도 나는 온라인을 통하여 내 자신을 돌아보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적응을 한 탓으로 요즘은 때론 남의 남는 시간이라도 빌려다 쓰고 싶은 경우가 있고, 인생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얻은 결론 중의 하나는 '고독함도 자주 부대끼다보면 친구가 된다.'라고...
비록 그것들이 인류의 획일적 가치(경제적 가치?)에는 부합하진 않지만, 보편적 가치(생존가치?)에는 나름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만 같아 흡족한 편이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나의 친구들은 명함이 없어져서 경조사 때마다 봉투에다 달랑 이름만 쓰는 것이 매우 손 떨리는 일이라고 하였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을 생업 또는 직업이라고 하였다. 성경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고 하였고, 중국의 유명한 불자(佛子) 백장선사(百丈墠師)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고사 성어에 ‘무위도식(無爲徒食)’이란 말이 있다. 하는 일없이 헛되이 먹기만 하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일 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이며 일에서 우리는 인생의 보람을 느끼며 자기의 자아를 실현한다. 일생을 살아가며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자식들에게나 후배들에게 가끔 “내가 살다보니 돈이나 명예는 어쩔 수 없는 분야이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본적이 없는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하곤 하였었다. 그리고 ‘취업에 우선하려면 전공은 이공계를 선택하고, 그런 후에는 인문학에 귀를 기우려 안목을 넓혀라. 그래야만 세상 살아가며 평형감각을 익히고 또한 익힌 기술이라도 기부할 수 있는 배려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열린다.’고 덧붙인다.
아무튼 일은 우리에게 순수함을 만들고, 마음의 잡념과 권태를 몰아내며,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한다.
국가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이쯤에서 맹자의 정전설(井田說)이 생각난다. 맹자는 일찍이 국가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생업을 보장하는, 즉 항산(恒産)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제나라 선왕에게 ‘백성들은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을 갖지 못한다. 항심이 없어 백성들이 죄에 빠진 후 뒤따라가 처벌한다면 백성을 그물을 처서 잡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일정한 소득이 없으면 천부의 양심도 살아날 수 없다는 왕도정치의 근본을 설파한 것이다.
이처럼 맹자는 정치의 첫걸음이 백성의 의식주를 만족하게 하는 민생에 있다고 역설했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또한 관자는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榮辱(영욕)을 안다'고 하였다. 우리속담 중 ‘곡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늙어가고 있는가?
당연하다. 진시황이 애타게 찾던 불로초를 구했다거나 마지막 생존자인 죽지않는 터미네이터, 아니면 좀비(시체가 되살아 나는)? 그런데 좀비는 좀 그렇다. 하여간 인간은 생,노,병,사라는 과정을 거쳐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 과정인 은퇴라는 마음 불편한 단어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면 무의미한 시간들을 줄여 나가야겠다. 의식변화에 도움을 주지 않는 프로그램의 장시간 TV시청, 단순히 생색을 내기 위한 골프(일찍 그만 두었지만...), 비난 받는 행동,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삶, 모임을 위한 모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직장을 가지든, 아니면 친구들과 텃밭에서 일하든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도록 노력하여야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삶에서 발생되는 찌꺼기를 줄여 나가야겠다. 세포를 만들기 위하여 발생하는 DNA의 오류처럼, 쌓여진 불필요한 것들로 길지 않은 인생에서 정신적, 육체적 노화가 가속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왜냐면, 나의 삶에서는 반드시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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