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詩의 성서적 배경 연구 -윤동주와 다윗의 내면의식 비교를 중심으로 -
윤동주 시의 성서적 배경 연구 - 윤동주와 다윗의 내면의식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biblical background of poems of Yoon Dong-Ju -The comparison between inner consciousness of Yoon Dong-Ju and David-
김 경 태 1980년 2월 윤동주 시의 성서적 배경 연구 - 윤동주와 다윗의 내면의식 비교를 중심으로 - 목 차 Abstract ⅰ Ⅰ. 서론 1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1 2. 연구사 검토 4 3. 연구대상과 연구방법 8 Ⅱ. 윤동주의 내면의식 11 1. 부끄러움 11 2. 신앙 17 Ⅲ. 윤동주와 다윗의 기독교적 내면의식 비교 33 1. 윤동주의 기독교적 내면의식 33 1) 자아성찰과 속죄의식 33 2) 미래지향적 부활의식 38 3) 구약적 내면의식 47 2. ‘시편’으로 본 다윗의 내면의식 58 1) 냉철한 현실인식 58 2) 탄원과 속죄의식 62 3) 선민(選民)사상 68 3. 윤동주와 다윗의 내면의식 비교 71 1) 윤동주와 다윗의 속죄의식 71 2) 양심과 율법과 규례(規例)의 율법 77 3) 민족의식 83 Ⅳ. 결론 92 ※ 참고문헌 95 Abstract A study on biblical background of poems of Yoon Dong-Ju -The comparison between inner consciousness of Yoon Dong-Ju and David- Kim, Jong-Min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Graduate School of Sunchon National University Advisor: Prof. Oh, Seong-ho What has been the most frequently discussed in analyzing the poems of a poet 'Yoon, Dong-Ju Another important factor in his works was religious belief. He entered religious maturity passing through the religious growth period, doubts and opposition period that every Christian becomes go through. Accordingly, he had become naturally or If his poetry is mainly classified into three (3) parts, they are the spirit, nature and self-reflection. He saw the spirit via nature and did nature via the spirit. And it continues to self-reflection again and then, finally it comes to the thought of the Old Testament. His poem made aware that mind and the spirit of a human being becomes indoctrinated by Japanese Imperialism under Japanese colonial rules and on the other hand, they was a watchman who shouts out the salvation of sleeping souls. The name of 'David' directly was mentioned in the bible 900 times or more. It is the name which was the most frequently recorded in the bible. Because he had a life full of vicissitudes, went through full of ups and downs If the most poetic words of 'Yoon, Dong-Ju' come from nature, the ones of David come from reality. Especially, David who was suffered by lots of wars was singing weapons of a war, a place of refuge, environment and etc. as a poem. For example, they are a shield, a fortress, a rock, a war chariot, a castle and a mountain fortress and so on. The poets for appeal which are taking up the half of the Psalm come out from realities of life. David went through a number of wars. Even though he was surrounded by enemies on all sides and had no any way out of such difficult situation, what he can escape from such situation was just to go to the Lord God. It was his actuality. Perhaps, the first reaction when a human being faces difficulty and suffering will be the cry of pain. If the pain gets more severe, such cry becomes headed out to the transcendent. What he cried and shouted out to the Lord in such deadly sufferings can be regarded as the appeal to the Lord God. At an early age, a number of appeals were shown in the bible - especially, the Old Testaments. They are quite diverse from the appeal of the pietist to one of general people. David had elitism that the Lord God gives special blessings to the Israelites and selects only a Hebrew (the seed of Abraham) as the people of salvation. Especially, such elitism was the life and the education of the Jews which has been handed down for thousands of years. Of course, 'instructions and teachings of the Lord God' was placed inside of David, and it can be thought that such instructions and teachings were naturally revealed as his poems, songs and prayers. Atonement consciousness of 'Yoon, Dong-Ju' and David has a thread of connection with that it starts from the fundamental self-reflection of a human being. The atonement consciousness in the Old Testament age was drastic. The looks that David committed a sin and then asked for the forgiveness in the Psalm is touching beyond a desire. Like this, we can sufficiently get a sense of the looks that a human being makes fully a confession about a sin, is tormented by even a trivial sin and laments such sin in Yoon, Dong-Ju's works - 「Seosi (Chamhoirok(懺悔錄)」- Confession. David had 'elitism' that only the Jews has. Yun, Dong-Ju also loved a nation and was suffered from their pain and weakness. For the attitude of two poets for each nation, David radiated the appeal of a nation to the outside, but Yoon, Dong-Ju sublimated it internally. Also, Yoon, Dong-Ju moaned his sufferings to the Lord God, but David seemed to tease like a child. Eventually, it seems that two poets' inner minds were partially shared in a literary space - in the Bible, and such inner minds show as the answer for the most fundamental question of a human being toward the Lord God. Though the age, nation and culture were different each other, thus, they were poets who had brightened the darkness of their souls living through life's ordeal and their nations. ※.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National Research Scholarship (Humanities·Social Sciences area) funded by the Korea Student Aid Foundation(2010-A00095 )."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종교와 문학과의 관계는 문학 연구자들의 가장 오래된 관심사인 동시에 가장 첨예한 관심사가 되어왔다. 물론 근대에 들어서면서 문학과 종교의 거리는 점차 멀어졌고 이에 따라 문학 연구자들이나 신학자들 가운데는 문학과 종교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문학과 신학, 그리고 철학까지도 한 뿌리에서 갈라졌음을 감안한다면, 문학과 종교 사이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학과 신학, 그리고 철학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 내면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문제의식,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학에 끼친 종교의 영향과 흔적은 수많은 작가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경우에도 이 같은 종교, 특히 기독교의 영향과 흔적은 어김없이 확인된다. 그중에서도 윤동주의 시에서는 기독교의 두드러진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윤동주의 삶과 시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만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 자신이 기독교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고, 그의 작품 가운데 다수가 기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거나, 성서에 배경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생애 전반에 걸쳐 기독교적 교육환경에서 성장했으므로 그의 내면은 자연히 성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의 시 또한 성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윤동주의 삶과 시에서 드러나는 자기 축소, 자기희생의 의지, 어두운 현실에 대한 내적 저항, 자아 성찰과 현실에 대한 초월의 욕구 등은 그의 시가 기독교 사상에 근원을 두었음을 말해 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윤동주가 시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단순히 신앙 고백을 넘어서 인간의 궁극적인 본질과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갔다. 윤동주의 시를 단순한 신앙시로 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에서 기독교 사상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중심사상일 뿐 아니라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사상은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를 겪으면서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저항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따라서 윤동주의 삶과 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그의 기독교 정신, 그리고 그 근원으로서의 성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고1) 다윗의「시편」에서는 남성적인 강렬함이「시편」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면, 윤동주의 시에서는 수줍은 여성적인 부끄러움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윗이 외향적이고 즉흥적인 반면, 윤동주는 내향적이면서 기다림이라는 같으면서도 다른 내면 모습이 들어 있다. 이처럼 윤동주와 다윗의 시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두 시인은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아와의 대화를 통해 철저히 육신의 욕구를 배제하고, 자신들의 내면을 울리는 거대한 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두 시인이 노래하고 싶어 하는 세계에 대한 갈망은 그들의 시에서 다양한 ‘관심의 언어’들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의식, 특히 기독교적 상상력이 어떻게 시적인 언어로 변용되고 있으며, 시인들은 그러한 시적표현을 통해서 마음의 번민과 갈등을 어떻게 드러내며 치유해 가는가 하는 것은 본고의 중요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본고에서는 윤동주와 다윗의 기독교적인 내면의식, 즉 성서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는 두 시인의 시심, 그리고 인간의 본능적인 고뇌와 갈등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처럼 두 시인의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신 앞에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서 대단히 흥미 있는 연구 주제일 뿐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신에 대한 저항과 탄원을 성서적인 차원에서 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2. 연구사 검토 1948년 그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된 것은 윤동주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이후 윤동주의 시는 다양한 방법론과 관점을 가진 다수의 연구자들에 의해서 깊이 연구 되어 왔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에 대한 선행 연구를 검토해 보면 크게 다섯 가지의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저항시로 보는 관점이다. 김현 · 김윤식『한국 문학사』2), 김윤식『한국 근대 작가 논고』3), 이상비 「시대와 시의 자세」4), 김해성 『한국 현대 시인론』5), 백철 · 박두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발문6)7)8) 또 김상선 「문학춘추」, 백철 「한국신문학발달사」9)10), 김우종11)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보는 또 다른 견해는 주로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상 불온, 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일경에 체포, 수감되어 옥사했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다. 또 그의 생애와, 그가 시를 쓰고 발표하던 30년대 말과 40년대 초가 일제의 최후의 탄압이 가중되던 시기라는, 시대 · 사회적 배경을 고려한 견해로 보인다. 이에 반해 오세영은 윤동주를 저항시인이 아닌 일제에 의해 탄압받고 희생된 가냘픈 식민지 인텔리로 평가하고, 그의 시를 지식인이 겪는 고뇌와 자아반성이 담긴 서정시로 보았다.12) 이기철도 저항시인으로 보기보다는 내면 성찰과 인간적 고뇌의 시13)로 보고 있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를 내면 성찰과 인간적 고뇌의 시로 보는 견해는 그의 성격과 인간됨, 그리고 작품에 보이는 참회와 경건성, 온건함과 겸허성을 그 근거로 삼고 있는 듯하다.14) 둘째, 윤동주의 내면의식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로 나눠 볼 수 있다. 윤동주의 시를 정신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김우창15)16) 셋째, 문학사적(文學史的) 시각에 의한 평가를 들 수 있다. 김윤식 · 김현은 식민지 치하의 가난과 슬픔을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극복하여 식민지 후기의 무질서한 정서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한다고 평가하였다.17) 정한모18)19) 넷째, 윤동주 시의 방법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연구이다. 마광수는 윤동주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자연표상, 시대 및 역사적 상황, 내적 갈등 및 소외의식, 사랑의 연민, 종교적 표상의 5가지 상징적 표현으로 나누어 윤동주 의식세계를 규명하였다.20)21) 이 외에도 윤동주 시에 나타난 형식이나 기법을 중심으로 연구한 논문으로는 이사라22), 김현자23) 마지막으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 연구이다. 그의 시에 나타난 의식들의 근원을 기독교 정신으로 보는 관점이다. 1980년대 이전의 연구들은 주요 논의 방향 가운데에 윤동주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언급하면서 그와 기독교와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정도의 연구가 많았다. 1980년대 들어서 윤동주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주요 논점으로 하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최문자는 기독교적 상징의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였다.24)25)26)27)28)29) 이상의 연구들을 보면 윤동주의 기독교 시 세계도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되어 왔고, 또한 윤동주의 사상적 깊이와 기독교적 배경에 대한 것도 나름대로 규명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윤동주 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의 연구는 기존의 역사주의 접근에서 벗어나, 한국현대시사에서 기독교 시라는 독특한 영역을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윤동주의 기독교 세계관과 성서적 내면의식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윤동주 시의 기독교적 내면의식과 그 성서적 기초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아울러 구약의 「시편」 가운데 다수를 쓴 것으로 알려진 다윗과 윤동주의 시, 그리고 이들의 내면의식을 성서적인 관점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다윗의 연구는 주로 본문을 신학적인 입장에서 주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시편을 문학적으로 접근 하는 시도는 거의 없었거나 미미한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시편에서 기도문이나 찬양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편의 특성상 문학적인 요소를 찾아낸다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두 시인의 시를 통해 신 앞에 홀로 선 인간의 내면, 끝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 신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 연구대상과 연구방법 윤동주의 시는 문학으로서 시가 대부분이지만, 다윗의 시는 제의로서의 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렇게 서로 다른 시인을 비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일 수도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두 시인의 시심, 즉 내면의식에 연구의 중점을 두고 고찰하고자 한다. 윤동주는 신과 자신와의 관계에 대하여 끈질기게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 시인이다. 윤동주 시는 기독교 사상의 중압 속에서도 회의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뇌의 원인을 회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 성찰-부끄러움-고뇌-참회-부활의 과정을 통해서 죄의식의 극복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어두운 현실에 대한 자책감과 가열화해 가는 비참한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는 윤동주로 하여금 자기가 욕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게 했으며 욕됨, 부끄럼, 참회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윤동주의 시에는 원죄사상, 속죄양사상, 율법사상, 종말론과 부활사상 등이 깊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끄러움과 참회의식,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려는 고뇌의 흔적들이 그의 시를 끌고 가는 힘이 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윤동주의 내면 의식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부끄러움과 시대적 상황을 짚어보고, 기독교적 내면의식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 윤동주의 시작 과정은, 내면적으로는 자신을 성숙시키는 여정이었으며, 시를 쓰는 일은 정체성 위기의 시대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는 행위이자 자기 동일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러한 윤동주의 내면세계는 「시편」에서의 탄식하는 다윗의 내면의식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 윤동주의 ‘참회의식 사상’에서 때로는 만족이자 기쁨, 때로는 탄식이자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결국은 그러한 내면의 갈등과 욕구가 자신들이 수양이나 노력으로 해결점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인 신에게 의지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내면의식은 서로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다윗의 「시편」은 영혼의 노래, 죄의 고백과 탄원, 자기응시와 회개, 고난의 승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볼 때, 윤동주 시와 유사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윤동주의 사상적 · 정서적 배경은 「시편」의 저자 다윗과의 내면에서 성서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서로 만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시인들의 깊은 내면에서 이미 공감되는 신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두 시인이 신 앞에 나아가는 방법, 시의 표현기법, 자신을 성찰하는 방법은 시대와 언어가 다르고 민족이 다른 만큼이나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윤동주 시 연구를 위한 텍스트는 1988년 개정판『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사용했다. 이는 초판에 누락된 시를 다수 수록하였고, 비교적 정확한 연보를 실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는 시는 주로 성서적인 배경에서 쓰여진 시와 내면적인 갈등과 자아성찰에 대한 시, 그리고 민족에 대한 아픔이 들어 있는 시로 한정했다. 성서는 현재 개신교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개역개정판30) 먼저 Ⅰ장 서론에서는 연구목적과 방법 및 연구사 검토에 대해서 살펴본다. Ⅱ장에서는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시인의 내면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그가 자라난 환경과 성장 배경을 통해 정리했다. ‘부끄러움’, 그리고 ‘기독교 의식’을 Ⅱ장에서 다루고 있다. Ⅲ장에서는 윤동주와 다윗의 내면의식을 성서적 배경에서 살펴보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추적해 본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두 시인의 내면의식을 Ⅲ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 시인의 성서적 내면의식이 왕과 유대인, 시인과 한민족이라는 서로 다른 신분과 민족이라는 벽이 신 앞에서는 어떻게 굴절되는지도 살펴본다. 두 시인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을 하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졌음을 밝혀둔다. 왜냐하면 문학적으로 전혀 성향이 다른 두 시인의 공통점을 찾다보면 억지 논리에 말릴 수 있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Ⅲ장에서는 먼저 두 시인의 신앙과 내면의식을 살펴본 다음, 두 시인의 내면의식을 성서를 통해 조명해 보고, 이어서 속죄의식과 율법의식, 그리고 민족의식으로 나누어서 다루었다. 두 시인의 시심이나 성향, 그리고 시어들은 서로 다르지만 신을 향한 근본적인 내면의식, 죄에 대한 괴로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특히 구약적인 신앙관은 일정부분 서로 같은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다윗의 ‘시편’과 윤동주의 시를 통해 밝혀나갈 것이다. Ⅱ. 윤동주의 내면의식 1. 부끄러움 윤동주의 시를 분석할 때 가장 빈번하게 논의 되는 것이 ‘부끄러움의 미학’이라는 개념이다. 사실 그의 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부끄러움’이란 인간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고 반추하게 하는데, 이런 구절들은 내면의 깊은 성찰 없이는 나오기 힘든 구절이라고 볼 수 있다. 윤동주는 이런 ‘부끄러움’을 마치 처녀가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낸 것 같은 수치심으로,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서 삶이 업보처럼 다가오는 근원적인 부끄러움과 마주선 존재가 되게 한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김윤식 · 김현은 『한국문학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부끄러움은 그로 하여금 그가 가야할 길을 가게 하는 자각의 가장 높은 실적 계기를 이룬다. 그 부끄러움의 미학은 자기 혼자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아픈 자각의 표현이다.31) 부끄러움의 심상은 윤동주의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대표적 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자화상」,「참회록」등의 시에서 보여 주고 있는 ‘들여다보는 행위’, 즉 자기 성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부끄러움, 기독교 원죄의식이 가져다 준 겸손한 신앙인으로서의 부끄러움, 윤리 지상적(倫理至上的) 생활철학에 자신의 실천과 행동이 채 미치지 못했을 때 갖게 되는 부끄러움 등의 이미지가 한데 습합되어 윤동주 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32) 우선 윤동주의 성격을 살펴보면, 고요하고 내면적인 사람임을 그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문익환 목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는 아주 고요하게 내면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 사이에 말없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를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 말없는 동주와 사귀고 싶어 했다. 그의 눈은 언제나 순수(純粹)를 찾아 하늘을 더듬었건만 그의 체온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것이었다. 나는 아무 과장 없이 고백할 수 있다. 그의 깊은데서 풍겨 나오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느껴본 일이 없다고.33) 또 윤동주의 명동소학교 4학년 담임선생이었던 한준명 목사는 윤동주의 소학교 시절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윤동주는 성품이 아주 순했어요. 너무 어질었지. 그래서 잘 울었고······. 누가 조금만 꾸짖으면 금방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요. 친구가 싫은 소리를 해도 그랬고······. 하하! 본래 재주 있는 아이였어요. 공부도 잘하는 축이었고요. 그래도 어쩌다 문답할 때 대답이 막히면 금방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34) 윤동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하고 강하면서도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외유내강적인 품성을 장덕순은 같은 글에서 윤동주를 ‘휴머니스트’라고 하였다. 동주는 깊은 애정과 폭 넓은 이해로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자기는, 회유와 일종의 혐오하면서도 자신을 부정하는 괴벽한 휴머니스트였다. ... ... 나의 兄과 동주는 은진중학교의 동기 동창이다. 나는 형을 졸졸 따라서 동주와도 농도 했다. 형은 왕왕(往往) 나를 귀찮아 했으나 동주는 어느 때나 다정히 나를 감싸주었다. 우애(友愛)있는 휴머니스트였다.35) 유난히 산책을 즐기던 윤동주는 산책길에서 그의 시상을 다듬고 문학적 창작력을 키워나간 것으로 보인다. 산책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윤동주에겐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탈피할 수 있는 해방구 같은 것이었으며, 내면에 얽힌 갈등과 고뇌들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곧잘 달이 밝으면 내 방문을 두드리고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나를 이끌어 내었다. 연희 숲을 누비고 서강들을 꿰뚫는 두어 시간 산책을 즐기고야 돌아오곤 했다. 그 두어 시간 동안 그는 별로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36) 윤동주의 내면의식은 자아실현을 위한 어두운 현실과의 처절한 자기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좌절을 겪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소명의식에 불타 부정적인 식민현실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성서를 통해 그 실체가 강하게 드러나게 되고, 그것은 다시 윤리와 신앙, 그리고 민족에 현실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 등으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 ‘부끄러움’은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부끄러움, 신앙인으로서의 부끄러움, 윤리의식에서 오는 부끄러움 등과 만나게 되고 그것이 서로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움이 시인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된다. 윤동주의 시에 나타나고 있는 ‘부끄러움’이 표현되어 있는 시를 뽑아 보면 다음과 같은 시들이 있다. ①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러운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또 太初의 아침」 일부, 1941년 5월 31일)37) ②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서시」 일부 1941년 11월 20일) ③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길」 일부, 1941년 9월 31일) ④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를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별헤는 밤」 일부, 1941년 11월 5일) ⑤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1다. (「사랑스런 추억」 일부, 1942년 5월 13일) ⑥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참회록」 일부, 1942년 1월 24일) ①의 부끄러움은 아담과 자신을 연결하여 원죄의식이 자신과 연관이 있음을 부끄러움으로 고백하고 있다.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해결 받아야 하는 존재로 시인은 보고 있다. ②는 추호도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고자 하는 자신의 결의에 찬 양심선언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부끄러움이란 윤리적인 의식에서 오는 것이며, 또한 기독교적 속죄의식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신 앞에서 원죄를 짊어진 인간의 윤리의식이 부끄러움의 정조로 드러난 시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양심에 묻은 한 점의 티에도 부끄러움과 동시에 괴로움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 그것을 말갛게 씻어 내고자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시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하는 이 시에는 일종의 비장감 같은 것이 서려 있다. ③의 부끄러움도 준엄한 윤리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부끄러움을 안고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사색하는 시인은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모든 인생길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을 드러내면서 푸르지 못한 인간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④의 부끄러움은 현실에 대하여 무기력한 자신을 돌아보고 자책감을 느끼는 자기반성의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⑤는 나그네의 우수와 애수가 깃든 시라고 할 수 있다. 저 하늘은 저리도 높고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지만, 항상 암울한 조국을 생각하면 윤동주로서는 마음이 우울하고 슬펐을 것이다. 비둘기는 부끄러울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창공을 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영역에 한계를 느낀 그로서는 결코 여유 있는 마음을 지닐 수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⑥의 부끄러움은 일제의 압력에 위축되고 무기력한 자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의식의 표현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밤은 어두운 죄로 인해 보이지 않은 자신의 순수를, 거울은 부끄러움을 걷어 내는 맑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다. 부끄러움은 보통 내성적인 사람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응시 · 관조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이 시들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 중에서 가장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지닌 양심의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삶의 어려움에 비해 시가 너무 쉽게 씌어진다는 시인의 고백은 상대적으로 그의 삶의 고통의 깊이를 느끼게 하고 ‘부끄러움’의 진정성을 알게 한다. 위 시들을 대하면 ‘부끄러움’이란 것은 인간이 지닌 일상적인 정서의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의 한 양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정직하게 부끄러움에 마주서면 그의 전 존재, 온몸이 반응하게 된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기질에서 오는 부끄러움에서 점차 성서적 기원을 둔 부끄러움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준엄한 윤리의식이 된다. 그렇게 정면으로 부끄러움 앞에 마주서 본 경험이 가슴을 찢게 하는 시를 절창(絶唱)으로 토해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2. 신앙 윤동주는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신앙적 성장기, 그리고 회의 방황기를 거쳐 신앙적 성숙기로 접어드는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윤동주는 자연스럽게 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 된다. 그의 정신세계에는 기독교적 신앙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이 신앙고백적 영혼의 시를 쓰게 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의식의 흐름에 입각하여 윤동주 시의 변모과정을 고찰할 때만이 윤동주의 시 세계가 제대로 규명되리라고 본다. T. S. Eliot는 '여러 작품들이 이루는 전체 시를 하나의 단일한 장시로 볼 필요가 있는 시인이 있다'고 했는데, 그의 「종교와 문학」에서 기독교 문학을 다음 세 가지로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문자로 된 기독교 문헌, 둘째는 신앙적, 제한적 주제를 통해 종교적 정신만을 다룬 시, 셋째는 종교적 대의(大義)를 전체적으로 나타내는 작품, 즉 계획적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인 문학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였다. Eliot는 이 세 가지 중에서 세 번째, 즉 무의식적으로 기독교 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기독교 문학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다.38)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윤동주의 시는 기독교 정신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시 가운데에는 물론 예술성을 목표로 쓰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그것 못지않게 자신의 내적인 심리 상태를 진실하게 토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형식(언어적 기교)보다는 내용(사상)에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그의 시는 개인적 고뇌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시작(詩作)날짜를 적어놓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의 시는 ‘일기시(日記詩)’로도 불린다. 한 인간이 스스로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요인으로 가정환경, 사회환경, 교육 등을 들 수 있다. 윤동주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적인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 영향은 그에게 도덕적 삶을 지향하게 하였으나, 시대적 상황은 심각한 박탈감을 안겨 주었다. 문익환 목사는 윤동주와 어린 시절 6년 동안을 함께 소학교에 다녔다. 누구보다도 윤동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윤동주의 시가 신앙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나타난 신앙적인 깊이가 별로 논의 되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곤 했었다. 그의 시는 곧 그의 인생이 되었고, 그의 인생은 극히 자연스럽게 종교적이기도 했다. 그에게도 신앙의 회의기가 있었다. 연전(延專)에 다닐 때 그런 시기(時期)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존재를 깊이 뒤흔드는 신앙의 회의기에도 그의 마음은 겉으로는 여전히 잔잔한 호수 같았다. 詩도 억지로 익히지 않았듯이 신앙도 성급히 따서 익히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에게 있어서 인생(人生)이 곧 난데로 익어가는 시(詩)요 신앙이었던 것 같다.39) 윤동주가 1941년에 쓴 작품은 모두 17편이다(시16편, 산문1편). 그 중 첫 작품이 「무서운 시간」이다. 이 시는 그야말로 어떤 무서운 결의와 각오가 느껴지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역사의 소리가 도전해 오는 소리를, 그 무서운 시간을 온 몸으로 느낀 개인이 그의 온 감각으로써 반응하는 모습이 한 장의 스틸사진처럼 강렬한 명암으로 나타나고 있다. 거 나를 부르는 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呼吸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時間」 1941년 2월 7일) 이것은 「팔복」의 서러운 절망과「위로」와「병원」에서 보여준 그 암담한 질식감 및 그에 맛서는 개인적인 노력, 그 눈물겹고 소극적인 탄식의 소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적극적이고 거대한 힘에 맛서는 결연한 의지를 엿보게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시의 화자는 자신의 의식 내면에서 울려오는 그 소리에 거부의 뜻을 명확히 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라는 화자의 첫 반응부터가 자신을 거듭 불러내는 소리에 못마땅한 투를 담고 있다. “어디에 애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요”라는 나무람을 거쳐, “나를 부르지 마오”라고 그 소리에 대한 거부의 뜻을 분명히 표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의 문면만으로 보면 의식 내면에서 울려오는 그 소리에 대한 거부는 변경할 수 없을 만큼 강경하고 단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제 지배에 길들여졌던 순응적 태도를 거부하면서 그의 저항 의지를 강한 어조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가 시대 현실에 눈을 돌려 그것을 자신의 시에서 그려내는 것은 이전 시작의 태도에서는 볼 수 없는 태도였다. 그러나 「무서운 시간」에서는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의 정황을 말한 것은 그의 시작에서 생생한 변화가 찾아왔음을 증거한 것이다.40) 일본 와세다 대학의 오오무라 마스오는 「무서운 시간」은 그의 소명감에 관한 고백이다. 그것은 신의 목소리, 민족의 피가,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그의 갈 길을 부른 것41) 그 변화는 그의 시작(詩作)이 시대인식의 기피로부터 시대인식의 거친 숨결까지도 작품 안에 싸안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그의 변화는 새로운 시작(詩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고뇌 속에서 그 고뇌를 생생히 반영하면서 출산된 「무서운 시간」은, 결국 윤동주 시의 한 시기를 결산하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의 시들이 참으로 그만의 색깔과 성격과 그다운 체취를 갖기는「무서운 시간」이란 시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윤동주로 하여금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는가.「팔복」과「위로」와「병원」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던 고뇌와 아픔과 불신앙을 극복하고, 그는 다시 신앙을 회복한다. 「무서운 시간」이후로 3월 12일 자의 「눈오는 지도」하나를 제외하고는 잇달아 나온 시 다섯 편이 모두 건강하고 경건한 기독교적인 언어로 성서에 배경42)을 두고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太初의 아침」: <창세기> ②「또 太初의 아침」: <창세기> ③「새벽이 올 때까지」: <요한계시록>의 부활의 아침 ④「十字架」: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수난 ⑤「눈 감고 간다」: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43) 위 시들에서는 하나같이 주어진 삶이 능동적이고 자신 있게 대처하려는 강인한 정신과 신념이 잘 나타나고 있으면 기독교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기독교 신앙을 말할 때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이 신앙에 대한 회의를 품었던 시기이다. 윤동주는 기독교 장로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자라면서 한 번도 교회를 등진 일이 없는 성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미 은진중학교 시절부터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광명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전에 입학한 이후에도 용정에 돌아가면 교회의 하기성경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했던 그가 3학년 때에는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에 대한 관심조차 엷어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교회에 완전히 발을 끊은 것은 아니었음을 3학년 때의 윤동주와 같이 교회에 다녔던 정병욱의 증언에 잘 드러나 있다. 내 고장이 남쪽하고도 지리신 기슭의 산골이었기 때문에 어려서 교회당이라고는 구경도 한 적이 없었고, 중학교에 다니면서도 교회의 문턱이라고는 넘어본 일이 없었다. 그러던 나는 동주의 꽁무니를 따라 주일날이면 영문 모르고 교회당엘 드나들었다.··· (중략)···우리가 다녔던 교회는 연희전문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협성교회로서 이화여전 음악관에 있는 소강당을 교회로 쓰고 있었다. 거기서 예배가 끝나면 곧 이어서 케이불 목사 부인이 지도하는 영어 성서반에도 참석하곤 했다.44) 겉으로는 이렇듯 변함없는 교회생활을 했다. 그러나 윤동주가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의 친구 문익환과 동생 윤일주의 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에게도 신앙의 회의기가 있었다. 연전시대가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존재를 깊이 뒤흔드는 신앙의 회의기에도 그의 마음은 겉으로는 여전히 잔잔한 호수 같았다.45) 연희전문 1·2학년 때까지도 여름방학에 하기성경학교 등을 돕기도 하였으나 3학년 때부터는 교회에 대한 관심이 덜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가 그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신앙의 회의기에 들었던 때인지 모른다.46) 그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끼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당시 운동주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1940년의 윤동주로 하여금 신앙의 흔들림까지 겪게 한 것은, 당시 그가 처했던 시대 상황일 수밖에 없다. 시대 상황이 아닌 일로 해서 그가 신앙을 잃도록 까지 절망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개인 생활은 여전히 경건했고, 인간관계는 늘 화목했으며 다정했기 때문에 그런 이유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당시 명동촌에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독립에 대한 열망들을 들풀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신민회는 북간도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비밀리에 북간도 교육단을 조직했는데, 단장에 정재면, 고문에 이동휘, 이동녕, 재무에 유한양행 유일한 씨의 부친인 유흥원이었고, 활동 목적은 조선 독립을 위한 인재 배출이었다. 그들이 모두 기독교를 중시한 것은 시대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민경배가 쓴『한국의 기독교회사』는 “근대 한국의 비극과 시련, 그리고 좌절감이 엄습할 때 백성이 돌아서서 기댈 곳이라고는 교회밖에 없었다.”고 했고, 이동휘는 교회에서 설교하기를 “하느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주신 것처럼 우리 민족도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고 역설했다.47) 윤동주는 그가 몸소 겪고 있던 그 처참하고 치욕적인 시대상황에 절망한 것이다. 그는 한민족의 언어와 글을 갈고 닦을 것을 필생의 목표로 정했고, 거기에다 온 심령을 기울여온 문화인이었다. 그런데 이미 나라 말과 글을 빼앗긴데다가 이제는 겨우 남은 껍데기였던 성과 이름마저 벗기고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채찍 밑에 엎드린 어린 양 예수처럼, 또는 노예처럼, 그 잔인하고 사악한 폭력에 굴복하고 있는 무력한 자신과 자신의 동족을 보면서 그가 느낀 것이 비애와 회의였던 것이다.48) 인간이 인간을 그토록 처참하게 능욕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묵인하고 침묵하고 있는 신을 생각했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교회의 모습을 보았다. 결국 그러한 신의 존재에 절망한 것으로 보인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敎會堂 꼭대기 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十字架」 1941년 5월 31일)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가 괴로워하는 이유가 잘 드러난다. 자기희생마저도 쉽지 않아 시인은 괴로워한다. 쫓아오던 햇빛이 십자가에 걸려 더 이상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므로 지상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십자가는 지상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구원의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햇빛을 차단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3연의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은데’라는 구절과 연관해서 보면, 종교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끌어내려야 햇빛이 쫓아오는 것이 될 텐데, 2연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첨탑이 너무 높아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십자가와 자신과의 거리만큼 지상은 어두우며,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49)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에서 쓰이고 있는 두 개의 십자가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앞에서 등장하는 십자가는 일종의 관습적 · 제도적 십자가의 상징이다. 그것은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십자가이면서 동시에 교회를 뜻한다. 하지만 뒤에 등장하는 십자가는 그런 단순한 제도적 상징을 넘어서서 시대와 역사를 향한 희생이라는 의미가 부각되어 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예수의 대속적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50) 이 십자가의 상징은, 물론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이란 구절이 시사하듯이 기독교와 무관하지51) 시대가 어두울수록 종교적 역할은 그만큼 요구된다. 그럼에도 교회는 침묵하여 종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그것을 알면서도 화자는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고 있다. 이는 극악한 상황에 의해 자아의 역할을 상실하고 기껏해야 휘파람이나 불 수 밖에 없는 자기 비애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서성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만, 이 서성거림에는 상실자52)의 위치에서 할 일을 못하는 좌절감으로 인한 방황과, 반대로 할 일을 찾으려는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가 십자가를 짐으로써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그가 할 일도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그의 의지는 5연에서 속죄양이 되겠다고 함으로써 더욱 구체화된다. 「십자가」에서처럼 시대적 상황과 교회의 현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와 신앙인으로서의 각오를 잘 표현한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윤동주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제도로서의 십자가를 충돌시키는 것은, 교회가 자기들만의 세계에 안주하고 시대에 영합하여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가는 기독교의 모습에 실망과 회의를 느낀 것이다. 예수는 늘 민중들과 함께 했고,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 했으며, 그들의 십자가를 졌다. 그런데 당시 교회는 현실을 외면했고, 제도 속으로 숨어버렸다. 십자가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교회의 모습은 귀중한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값없는 은혜로 전락시켜버린 모습을 십자가를 통해서 본 것이다. 신앙에 대한 절망과 회의는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일제의 압제에 스스로 무릎을 꿇은 모습에서 온 실망감이었다. 기독교가 전래된 초기와는 달리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를 겪는다. 일제의 신사참배는 191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강제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1930년 중반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한다. 이러한 강요는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참배를 거부한 학교와 교회는 폐쇄시키겠다고 협박을 하고, 이 때문에 많은 학교와 교회는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53)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보다는 제도로서 존재하기 위해 일제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교회는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이며, 예배 행위가 아니고 조상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일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맨 먼저 가톨릭교회가 이를 받아들였고, 이어 안식교가 1936년에 신사참배를 가결하였고, 성결교회, 구세군, 성공회, 감리교회까지 1936년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38년 장로교마저 신사참배를 결정하고 말았다.54) 또 교회의 본질을 깨뜨리는 일제의 정책을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가 그대로 따르면서 교회는 더 이상 빛과 소금이 되지 못했다. 본회퍼는 ‘아론의 교회’와 ‘모세의 교회’를 구분하였다. 모세의 교회는 말씀의 교회를 말하며, 아론의 교회는 세상의 교회요, 종교로서의 교회이다. 역사 속에서 두 교회는 항상 투쟁관계에 있어 왔으며, 하나님은 아론의 교회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종교성을 깨뜨리고 모세의 교회를 선물로 주신다.55) 이러한 교회의 모습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제도로서 존재하기 위한 믿음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신도들의 삶은 어찌 되었든, 말씀과 행동은 서로 괴리현상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단적인 예는 일제의 압력에 무릎을 꿇은 교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교회들은 신사참배를 허용했고, 일부 기독교 지도자는 일본까지 건너가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참배56)하기에 이른다. 교회와 지도자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협조하게 되는 상황에서 윤동주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윤동주는 당시 한국교회를 바라봤을 때 ‘값없는 은혜’를 본 것이다. 그가 이렇게 자기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조국과 교회의 현실에서 얻은 것은 바로 그때까지 믿어 왔던 기독교의 구원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오로지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기존의 기독교의 구원관과 현실의 치열한 억압과 본질적인 괴리를 느꼈다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57) 그러한 마음이 다음 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을건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투르게네프의 언덕」 1939년 9월) 윤동주의「투루게네프의 언덕」은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그의 만년에 쓴 일련의 산문시 중의 「거지」58)라는 작품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윤동주는 트루게네프가 이용한 제재를 그대로 살리면서 내용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내용을 그려놓았다.59) 윤동주는 「거지」에서 묘사한 정신의 따뜻함과 실체적인 구원을 갖추지 않은 인도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예수는 일찍이 “너희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말과 손짓만의 동정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남루한 차림의 거지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이런 근본적인 의문에 짐짓 눈을 감고 ‘동냥을 요청하는 거지에게 다정한 말과 빈손으로 내어민 것’ 만으로 서로 만족했다하면,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천박한 자기도취일 뿐이다. 그러기에 투루게네프의 산문시「거지」가 주는 감동과 감격은 거짓 감격, 사이비 감동일 수밖에 없다.60) 원래 투루게네프의 작품도 바로 이러한 일반적 ‘기독교 인도주의’를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비판함으로서 윤동주는 그때까지의 자신이 믿어 왔던 기독교의 일반적 가치관이나 인도주의에 근본적인 회의를 느낀 것이다. 즉 조국의 핍박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육적인 안락함을 멀리하고 오로지 정신적 구원만을 기다리는 소위 내세주의적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 것이다.61) 1939년 이래로 침묵하고 있던 윤동주는 1년 3개월 만인 1940년 12월에 가서야 비로소 3편의 시를 써서 그의 ‘1940년’을 결산했다. 그가 견디어 온 긴 침묵의 기간 동안, 그의 주변의 상황들은 그를 더욱 견디기 힘들게 했다. 그의 친지인 라사행이 경찰에 검속되어 일개월간 고생하다가 풀려났고, 10월에는 감리교 신학교가 아예 폐교 당했다. 압제자는 점점 더 거침없이 광포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나온 것이, 1940년 12월의 시「팔복」, 「병원」, 「위로」의 3편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永遠)히 슬플 것이요. (「八福」 1940년 12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문학 연구가 고오노 에이지는 윤동주의 시「팔복」을 이상의 시「오감도 시 제1호」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논하고 있다.62) 그가 지적한 대로 「오감도 시 제1호」는 「팔복」의 제작 과정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판단된다. 두 시는 함께 반복의 수사법을 활용하면서, 서정적 주체의 내면에 깊이 파고들었던 정서를 강렬하게 그려냈다. 「오감도 시 제1호」는 무서움의 정서를, 「팔복」은 슬픔의 정서를 각각 그려낸 것이다.63) 그는 이 시에서 ‘슬퍼하는 자가 누릴 복’을 두고 신에게 반항한다. 이 반항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선 ‘슬퍼하는 자’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한민족이다. 그는 이미 「슬픈 족속」이라는 시에서 ‘한민족=슬픈 족속’이란 등식을 세워두었기 때문이다.64) 윤동주는 이 시에서 「팔복」은 한민족이란 거대한 민족 공동체가 겪고 있는 처참한 고난의 현장에서, 고난에 대해 묵인하고 침묵하고 있는 신에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윤동주의 기독교 신앙은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으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으로 태어난 이상 신이 주시겠다고 하는 여덟 가지 복은 결국 ‘슬퍼하는 자’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 여덟 유형의 사람들에게 약속된 여덟 가지의 복 천국, 위로, 땅, 의에 배부름, 긍휼히 여김, 하나님을 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음, 천국 에 대해 신의 보상으로 주어지리라고 믿을 수도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영원한 슬픔’뿐이라고 그는 단정한 것이다. 이것은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들이 받아야 할 팔복은 관념적인 것이 되었고, 민족의 현실은 더 슬픔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절망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절망이자 불신(不信)의 표출이다. 신의 약속을 믿을 수 없음은, 곧 신을 믿을 수 없는 것이고, 신을 믿을 수 없는 이상 세상을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커다란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윤동주가 이런 강한 불신앙과 절망을 표출하는 것은 신의 약속을 믿고 싶어 하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강렬한 기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가 표출하고 있는 불신(不信)은 그의 신앙과 마찬가지로 신에게 드리는 간절한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고뇌와 갈등이 그가 담고 있는 민족이 겪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에 주목한다. 산상수훈의 변용인「팔복」이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끝나는 것은 단순한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절대자에게 이르는 참된 길은 회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절망을 통해서 간다”65) 윤동주의 시에서는 기독교적인 여러 가지 상징들과 성서의 이야기들이 기독교의 근본 사상을 수반한 채,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태초의 아침」,「또 태초의 아침」,「초 한 대」,「이적」,「바람이 불어」,「서시」,「십자가」,「팔복」「새벽이 올 때 까지」 등의 작품들은 그의 신앙적 체험에 바탕을 둔 기독교 사상이 두드러진 시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기독교 시는 성서적 사실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의 의지와 내면의식이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Ⅲ. 윤동주와 다윗의 기독교적 내면의식 비교 1. 윤동주의 기독교적 내면의식 1) 자아성찰과 속죄의식 시의 실존적 의미나 가치를 특정 종교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키는 논의는 상례적이고 도식화되어 문학의 참뜻을 왜곡, 축소시킬 수 있다. 윤동주의 경우는 시적 특성과 상징, 그리고 사상과 윤리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배제하고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윤동주의 문학은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함을 겪으면서도 이에 직접적인 대응의 자세를 갖는다거나 적극적, 투쟁적, 행동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 사상에 기원을 둔 온유로서의 저항 즉, 발전적 새로운 내적 저항과 순수저항으로 대처한다. 이 순수의 논리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기독교 사상의 교리의 초탈과 성숙에 따르는 과정에서 산출된 기독교의식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윤동주는 자연을 통해 영혼을 보았고, 영혼을 통해 자연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자아성찰로 이어지면서, 기독교 사상의 부끄러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윤동주는 시에서 식민지로 일제에 의해 정신과 영혼이 세뇌되어가는 것을 깨우는 한편, 잠들어 있는 영혼을 향하여 외치는 파수꾼의 나팔소리 같은 것이었다. 시인이 자기인식과 외부세계에 대한 눈을 뜸으로써, 그가 가장 크게 직면하게 되는 것은 밤과 어둠에 대한 인식이다. 윤동주 시에 드러난 많은 어둠의 이미지들은 비극적 현실과 직접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에게 소명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아울러 고뇌와 고통, 저항을 잉태케 하는 자기압박의 요소들이 되었다. 일제말기의 참담했던 현실은 한 시인에게도 너무나 거대한 어둠이었으며, 삶의 윤리적 가치마저도 박탈해갔던 것이다. 강압적이고 조직적인 군국주의 앞에 한 인간으로서의 거부의 몸짓이야말로 양심에서 울부짖는 저항의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 성찰 내지는 자기 반성을 가브리엘의 개념에 비추어보면, 주체로서의 자아의 문제성과 성실성을 자각하는 존재를 가리켜 ‘실존’이라고 말한다. 한 시인의 실존적인 눈뜸과 그 내면의 심화과정은 그의 작품세계의 진실과 엄밀한 대응관계에 놓이면서 자기 반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브리엘 마르셀의 철학에서 반성은 생의 한 양식이며, 좀 더 깊이 말하자면 반성은 한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가는 생을 위한 어떤 방식이다. “우리의 경험을 그의 복잡성에서, 그의 능동성에서, 또는 그의 변증법적인 성격에서 파악하면 할수록 우리의 경험은 반성으로 탈바꿈하지 않을 수 없음”을 역설하면서, 마르셀은 1차적 반성이 자기에게 먼저 나타났던 통일을 분해함에 대하여 2차적 반성은 본질적으로 재수리적이며 그것은 재정복66)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마르셀의 반성이 윤동주의 시에서는 자아성찰과 속죄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인식은 자기 외부의 대상과 관련을 맺음으로써 시작된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일단은 자기를 떠날 것이 요구된다. 이렇게 자기를 대상화하는 의식작용을 반성이라 할 때, 성찰의 주체로서 자각되는 의식을 반성적 자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는 행동적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이며, 그 자신의 의사 역시 직설적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곰곰이 안으로 다져나가는 데 익숙한 인물로 떠오른다. 그와 같은 인상을 그대로 반영이라도 하듯, 그의 시는 자의식이 강한 테두리 내에서 형성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자화상」은 윤동주가 이십대 초반에 쓴 시이다. 이 시를 통해 윤동주는, 초기에 주로 쓴 동시의 세계에서 벗어나 점차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게 된다. 역사적 실존 속에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현실에 대한 예민한 자아인식을 형성에 나가는 시기에 쓴 대표적인 시이다. 이 시에는 자신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을 계속 응시하고 발견해 가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실존의 과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는 자기성찰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自畵像」일부, 1939년 9월) 인간은 자신으로 돌아와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으며 또한 그 관계성 속에서 역으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김용직은「자화상」의 특징이 ‘독특한 자기응시를 통해 독특한 내면 공간을 획득하였고, 저 산을 달이나 구름, 하늘이나 바람처럼 객체화하여 그것을 제 삼자처럼 바라보는 것’67)이라고 정의 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王朝의 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滿二十四年 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懺悔錄」 전문, 1942년 1월 24일) 「참회록」은 윤동주가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시인의 모습은, 고뇌와 죄책감의 절정에서 진정한 자아를 되찾고, 자아성찰의 가장 성숙한 단계인 종교적 성찰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실존이라고 말하고 실존을 세 단계로 정의한다.68) 윤동주는 자신의 얼굴이 파란 녹이 낀 거울 속에 남아 있고 그것이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 때문에 욕되다고 한다. 파란 녹이 낀 거울이란 말은 그 거울이 오래된 거울임을 말한다. 이 욕되다는 표현은 윤동주 시에 자주 나오는 부끄러움과 연결된다. 윤동주 시에서 보는 부끄러움은 기독교의 율법사상에서 온 속죄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파란 녹이 쓴 거울을 닦아 냄으로 자기의 죄를 닦아 내는 것이고, 거울이 닦아지면 맑은 자기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밤마다 회개를 통한 속죄에 도달하는 작업이 바로 거울을 닦아내는 일이다. 김우창은 이 시에서 ‘나’는 영웅적인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는 지도자보다는, 비장한 수난자 앞으로 나아오는 것보다는, 뒤로 물러가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69)이라고 하고 있다. 최동호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70) 자신의 삶이 기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은 열심히 손바닥 발바닥으로 온 힘을 다하는 성실한 자아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가 홀로 걸어간다는 것은 자아의 고독함을 말하고 있는 듯하며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남은 이 시인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특정적 태도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것은 시대의 전면에 부각된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배면에 사라져가는 가리워진 자아를 제시한다고 했다. 윤동주는 자아를 현실에 체념하는 모습이 아니라, 희망의 내일을 보고 있다. 새로운 미래,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위해 닦아내고 닦아내는 것이다. 2) 미래지향적 부활의식 윤동주는 일제말의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종말처럼 보였던 여러 순간으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의 필연적인 ‘종말’에 대한 반응을 ‘부활사상’과 함께 미래 지향적 희망의 언어로 시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의식하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 부활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인식으로 볼 수 있다. 자기 가능성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혹은 그것을 다 넘어가서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는 의지가 “자기 안의 메시아적 본질”71)임을 파악한 윤동주의 문학에서, 상황적으로 조건 유도될 전망을 끝내 초극해 가려한 점에서 이른바 ‘희망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 성질을 찾아본다.72) 윤동주의 죽음은 예수를 닮은 ‘암흑기 하늘의 별’ 또는 ‘암흑기 최후의 별’로 민족의 자존감을 지킨 푯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국가적인 죽음의 상태에서 죽음을 문학으로 극복한 사람이다. 윤동주의 문학에 나타난 죽음의식은 이드적인 죽음의 욕망이라기보다 초자아적인 죽음의식이 나타난다. 그는 죽음을 ‘구속적 생명’73)이라는 기독교 정신을 승화시켜 부활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가 애용한 ‘태양, 별, 아침, 새벽, 내일, 희망, 새로운 길’ 등으로 미루어 보면 그는 비극적인 역사와 현실 사이에서도 찬란한 희망을 예언했다고 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예언은 낭만파 시인들의 나르시시즘에서 온 것도 아니고, 과학적 분석에서 오는 예측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윤리관의 신념에서 얻어진 내면의식의 자연스런 표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 가운데서 인간만이 그의 유한성을 경험하며, 또한 그의 존재가 비존재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만이 그의 유한한 존재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고 무한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임을 의식하게 된다.74)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한 인간의 자기인식을 틸리히는 ‘불안’이라고 말한다. 불안의 원인과 대상은 무(無)이다. 이 불안은 존재론적인 것이기 때문에 위험, 고통 따위에서 오는 두려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 것들은 행동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지만 유한한 존재는 그 유한성을 극복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불안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삶의 고민과 죽음에 대한 불안과 같은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과 의문들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고 항상 생각하는 문제들이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 항상 인간은 불안하다. 윤동주는 이러한 불안을 ‘미래지향적 부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극복하고 있다. ①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 일부 1941년 5월 31일) ②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새벽이 올 때까지」 일부, 1941년 5월) ③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 잎 이파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요.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시간」 1941년 2월 7일) 윤동주 시에 나타난 부활은 아름다운 또 다른 세계, 즉 현실 세계에서 벗어난 기독교의 부활사상에 근거한 낙원의 세계인 것이다. 윤동주는 죽음까지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편, 장차 도래될 세계에 대한 부활사상의 확신을 갖으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75) 윤동주의 이러한 부활사상은 윤동주의 여러 시에서 뚜렷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시 전체에 걸쳐 기독교적 원형에 근거를 두고 암유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①에서 시인은 타자의 고통을 대리하여 맞게 되는 죽음을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에서 우리는 시인이 타자를 대신하여 맞게 되는 죽음을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의 이차돈 설화에서 모티브를 빌린 듯한76) 이 대목은 죽음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속죄양이 되겠다고 함으로써 더욱 죽음이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영원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꽃처럼 피어나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는 죽음의 의식을 거침으로써 불멸의 자아로 재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졌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로 부활한 것처럼 이 시는 그러한 재생의지를 구현 하려는 부활의식을 시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②에서는 천국에서 들려오는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연상하게 한다.77) 요한계시록의 천사들의 나팔 소리는 죽음 이후에 부활하는 자들에게 들려오는 소리이다.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삶이 완성되는 ‘새벽’은 삶과 죽음의 대립체계를 넘어선다. 그리하여 산 자와 죽은 자는 ‘한 침대에 뉘이게’ 되고 시적 화자는 희망을 상징하는 ‘나팔 소리 들려올 것’78)을 확신한다. 특히 ③의 시에서 ‘무서운 시간’은 죽음의 시간이다. 시인을 계속 부르며 자연은 죽음에 대해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죽음을 거절한다. 아직 그늘이지만 시인은 살아 있는 호흡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 찾아와야 할 때는 지금이 아니라 일을 마치고 죽는 날이다. 곧 손들어 표할 수 있는 자신이 공간만 확실히 가지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는 죽음이 자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행복한 공간 또는 거듭남의 결정적 계기라는 것을 이 시에서 표명한 것 같다. 죽음을 현상적인 관념으로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뛰어 넘는 우주적 본체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 이 작품의 우수한 상징시가 될 수 있는 까닭일 것이다.”79) 우주적인 본체 그것은 죽음을 뛰어 넘는 일을 말하고 있으며,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밖에도「또 다른 고향」에 나오는 “또 다른 고향에 가자”와 같은 것이나, 「봄」에 나오는 “삼동을 참아 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와 같은 이미지는 또 다른 세계인 부활의 세계를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에 있어서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 느껴진다.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떨어지는 가랑잎은 결코 서럽지도 않다. 왜냐하면 떨어지는 잎은 이파리 구실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파리와 마찬가지로 윤동주가 자기의 일을 다 했을 때, 손들어 표할 하늘이나마 찾았을 때, 찾아오는 죽음은 조금도 서럽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사랑은 죽음을 연구하고 죽음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죽음이 무엇인가 그 실상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죽음은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존재에 결부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죽음 자체를 연구하고 사랑하고 찬양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죽음을 동반하는 모든 것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80) 삶은 오늘도 죽음의 序曲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恐怖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새기 듯이 이 노래를 부른 者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者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삶과 죽음」 1934년 12월 24일) 이 시는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삶을 죽음의 한 과정으로 사유한 것으로 표명하고 있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의 주체를 그는 ‘세상 사람들’과 ‘위인들’의 두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중병을 앓고 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상실하고 본래적이며 거짓된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그는 의식 · 무의식적으로 매순간을 ‘절망’ 속에서 보내고 있다. 절망이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본 것이다. 자아의식의 관점에서 키에르케고르는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그 첫째 유형은 자신이 절망 속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만 절망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영적 · 정신적인 삶을 영위하는 대신 감각주의적이며 세속주의적인 삶을 살아간다81) 삶과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깊은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상적인 삶이 죽음의 예고(序曲)에 불과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사람’들은 자연히 ‘노래의 끝(죽음)’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것은 삶이 온통 고난과 시련,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으로 점철되어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인들’은 ‘세상사람’과는 다르다. 이 시에서 나오는 ‘뼈’는 「또 다른 고향」에 나오는 ‘백골’과 같은 의미로 쓰이며, 기독교 사상의 부활사상의 상대개념이다. 이 세상에 살다가 도래될 세상에서는 죽어 없어질 육신의 한 부분들인 것이다. 김흥규는 「윤동주론」에서 ‘백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백골’은 어떤 초월적 세계의 추구를 제약하는 지상적, 현실적 연쇄에 속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는 귀절은 육신이 속한 지상적, 현실적 굴레를 벗어나 ‘어둠’이 없는 화해로운 세계를 찾으려는 절실한 독백이다.82) ‘위인들’은 3연, 4연에서 반복된 ‘누구뇨’라는 물음의 호응으로 ‘하늘 복판에 알새기 듯이’ 뚜렷한 삶을 누리다가 ‘소낙비 그친 뒤 같이’ 죽음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소유한 자다. 그렇게 사람의 과정을 인식하면서 알차게 살아온 위인들일지라도 결국에는 ‘죽고 뼈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된 삶은 커다란 불안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시는 ‘삶’과 ‘죽음’의 불안을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 수용하는 자만이 진정한 도덕적 삶의 영위자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의 초기 시는 1934년 12월 24일로 적혀있는 세 편의 시가 있다. 「초 한 대」와 「삶과 죽음」, 그리고 「내일은 없다」이다. 그 중 두 편의 시, 「초 한 대」와 「삶과 죽음」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비교적 어린 나이임에도 그가 단순한 현존의 삶에서 벗어나 실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삶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어둠과 죽음에 대한 만남을 진지하게 사유하며 부활의식에 눈을 떠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초기 시에 나타나는 ‘빛과 어둠의 갈등, 삶과 죽음의 모순’과 같은 주제는 윤동주의 일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세계와 인간미를 도덕적 가치 기준에서 파악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윤동주는 예언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언은 미래에 대한 것이고 미래는 다시 영원한 안식인 부활로 이어지는 과정에 있다 하겠다. 특히 그가 1942년 전후에서 쓴 작품들은, 모두 밤과 어둠으로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으면서, 그와 반대로 주제적인 이미지는 항상 현재의 어둠을 넘어서 내일과 새벽의 광장으로 연결되어 있다.83)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요. 다들 살어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요. 그리고 한 寢臺에 가즈런히 잠을 재우시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 (「새벽이 올 때까지」 1941년 5월) 위 시는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가는 사람’을 검은 옷과 흰 옷으로 대비시키는 가운데, 죽음을 넘어서서 새로이 살아나는 부활의 탄생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역사의 아침이 도래하는 엄숙한 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 같은 것이다. ‘새벽’이나 ‘나팔소리’는 성서의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여 준 계시를 요한이 기록한 것인데 최후의 심판,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록으로 ‘나팔소리’는 예수 재림을 알리는 신호요,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닌다. 모든 악과 불행은 사라진다는 전조의 울림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선포하는 상징의 소리다.84)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별 헤는 밤」 일부, 1941년 11월. 5일) 이 시에서는 부활이 신앙적인 것으로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울과 밤이 지나면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봄’이 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밤과 낮 그리고 계절을 순환하는 것이라는 대자연의 영원한 섭리를 보아도 그렇고, 영생의 부활을 신념으로 믿는 기독교적 신앙에 비춰 보아도 진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 연의 ‘그러나’에는 현실의 어둠을 밀쳐내고자 하는 완강한 의지와 함께 순환의 섭리와 부활의 진리를 신앙처럼 믿고 기다리는 확고한 신념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의 문학에서, ‘새벽’과 ‘아침’과 ‘봄’과 ‘광명’ 등으로 나타나는 희망의 수사학은 명백히 기독교적인 구원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정신은 단순한 기대로서가 아니라, 신앙적인 차원에로 상승돼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활을 믿으며 그 찬란한 부활의 아침을 시인은 기다리는 것이다. 3) 구약적 내면의식 윤동주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신약적인 세계관 보다는 구약적 세계관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원죄의식, 속죄양의식, 율법의식이라는 구약적 세계관이 그의 시에 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은 ‘시편’을 기록한 다윗이 구약의 인물이고 구약적 세계관의 틀 속에서 사고한 것을 생각한다면 일정 부분 다윗의 내면의식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율법의식과 속죄의식, 그리고 민족의식-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의식과 비교할 수 있음-은 구약적 세계관에서 나온 대표적인 교리(dogma)이다. 윤동주의 시에서 구약적인 내면의식이 어떻게 담지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원죄사상이다. 신약성서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과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가 구원 종교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은 죄의 문제는 기독교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죄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하고 있다. ① 죄라는 용어는 성서 본래적인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② 죄는 하나님, 자기 자신, 자신의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소외의 상태로서의 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85) 즉 그가 사용하고 있는 ‘소외’라는 말은 종교적 관점에서 말하는 죄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죄의 여러 가지 특징을 소외의 관점에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틸리히가 죄의 본질에서 실존으로의 전이라고 말할 때, 이 문제는 곧 원죄(original sin)에 관한 문제가 된다. 철학사전에 보면 원죄를 ‘인류의 원조 아담이 범한 죄 때문에 인간은 모두 생득적으로 이 죄를 타고난다는 기독교의 신학설’86)로 정의한다. 틸리히의 불안 이해는 키에르케고르의 무에 대한 공포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이란 현실존재로서 현실속의 자각적 존재로서 참 자아가 되어가는 생성의 결단을 말하며, 이러한 실존 속에서 육체와 영혼, 시간과 영원, 유한과 무한의 종합87)으로서의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불균형을 맞게 되는데 여기에서 불안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불안의 근원을 “인간의 존재의 근거인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88)라고 말한다. 이 분리로 말미암아 인간은 유한성과 비존재의 위협 앞에 서게 되었으며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가운데로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불안을 원죄의 개념과 결부시킨다.89) 이것은 체계와 교리(Dogma)90)에 빠져버린 당시의 왜곡된 죄 개념에서 죄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되찾고자 한 키에르케고르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죄 개념과는 달리 아담이 지은 최초의 죄와 그 이후의 인류 각자가 지은 최초의 죄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아담의 최초의 죄가 그에게 죄성(罪性)을 가져다 준 것처럼, 그 후 세대 각자가 지은 최초의 죄가 죄성(罪性)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최초의 죄 이후 후세대 역시 각자의 최초의 죄로 인해 각자가 죄성(罪性)을 갖게 됨으로써 질적인 비약을 하게 됨과 동시에 인류의 죄는 양적으로 증대된다는 것이다.91) 그런 의미에서 살펴본다면 윤동주의 ‘서시’는 자신의 죄로 인해 -그 죄(창씨개명?)가 무엇인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민하는 인간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괴로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에 대한 거부 반응의 결과는 타락이며, 타락의 결과는 곧 소외이다. 소외가 죄이며, 곧 실존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틸리히는 실존의 핵은 유한한 자유이며, 이것이 곧 타락의 가능성이 된 것으로 본다. 또한 인간만이 실존으로 소외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인간과 더불어 유한성과 멸망의 법칙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괴로워하고 탄식92) 윤동주가 죄의식을 느낀다면 세상에서 범하는 도덕적인 규율을 위반하는 죄라기보다는 기독교적 원죄 사상에서 오는 윤리의식일 것이다. 이러한 원죄의 원형을 갖는 그의 시중에서 원죄 이미지가 강한 것은 「태초의 아침」과 「또 태초의 아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빠알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前날 밤에 그 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 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毒은 어린 꽃과 함께 (「태초의 아침」 1941년 5월 31일) 이 시에는 구약성서의 천지창조의 설화와 원죄 설화가 혼용되어 있다. 시에서 3연은 천지창조 설화, 4연은 원죄설화의 변용으로 보인다. 1연의 사계절의 구분이 없는 에덴동산을 배경으로 하여, 둘째 연은 생명의 탄생을 나타낸다. 3연은 6일 간의 창조주의 만물 창조 과정에서, 4연이 하나님의 의지에 미리 결정 되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93) 죄책과 정죄에 대한 불안은 인간의 도덕적 자아긍정에 대한 비존재의 위협을 말한다. 인간은 불안을 피하기 위하여 도덕폐기론에 빠지거나 율법주의에 빠져든다. 그러나 불안은 이 양자의 배후에서도 도덕적 절망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가고 있다. 불안에 대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절망의 문제로 나아가며 소외형태에 이른다.94) 윤동주가 남달리 죄의식에 빠져서 모든 삶에서의 참회를 관습처럼 삼았던 죄에 대한 불안은 이러한 기독교적 원죄사상의 원형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윤동주는 좌절 · 절망 · 소외의 체험들을 남보다 강하게 느끼고 겪게 되었으며, 이러한 절망은 시화되면서 신앙적 발전에 의해 시간적 수평을 초월하고 구원의 진리에 이르게 한다. 윤동주는 그의 시「태초의 아침」을 통하여 원죄에 의해 죄를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강한 연민과 애정의 시선을 드러내며,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와 이해를 드러낸다. 결국 윤동주는 「태초의 아침」과「또 태초의 아침」이 두 작품을 통해 원죄를 지닌 인간의 현실적 내면의식, 즉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숙명적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윤동주의 이러한 숙명적 원죄의식은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부끄러움’의 이미지를 통해 속죄의식으로 성숙되어 나타난다. 둘째, 속죄양 사상이다. 이스라엘의 종교와 제의식에 대한 연구는 프레이저부터 시작된다. 그는 『황금가지』에서 미개사회의 주술, 종교적 전승 주술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종교의식을 이교와 비교하면서 6부 ‘속죄양’에서 미개인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신의 분노라고 생각하고 속죄양을 제물로 삼았으며, 그것이 문명의 시기로 내려옴에 따라 산 제물에서 가짜 제물95)로 변천한 과정까지 진술하였다. 인간 자신의 죄악과 고뇌를 어떤 다른 존재에서 짐지우고자 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죄가 다른 존재의 속으로 들어가거나 그 존재로의 어떤 진입현상으로 인하여 죄를 사면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 중에서 속죄양 사상이 나타난 윤동주의 시로는「십자가」「간」「초 한 대」「서시」등에서 드러난다.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된 예수 그리스도처럼,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현실적인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윤동주의 괴로움은 심화되고 있다. 마치 모든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희생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고 삶의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양 사상과 같은 맥락의 희생을 윤동주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 속죄양 사상은 ‘욕됨’ ‘부끄러움’으로 연결되고 ‘참회’의 심저에 사로잡히게 된다. 윤동주의 기독교적 의식은 죽음을 희생제물로서의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러한 사상은「초 한 대」라는 작품에서 ‘초’라는 대상을 통해서 형상화 되고 있고, 이는 후에 십자가에서의 죽음, 즉 속죄양과 연결되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여러 가지 제물의 형태가 있었는데, 마지막 연에 나오는 ‘제물의 위대한 향내’에서 ‘향내’는 촛불이 제물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해준다. 구약성서에서 제물의 형태나 종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속죄양의 의미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보자.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구약성서』, 「출애굽기」, 29장 18절)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구약성서』, 「레위기」, 1장 9절) 이 외에도 구약성서에는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어둠을 몰아낸 촛불이 갖는 제물의 의미를 성서에서 말하는 제물과 연관 지어 본다면 번제(燔祭)96)에 해당한다. 이는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초가 타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윤동주는 암흑을 몰아낸 촛불을 제물로 보았다. 그 제물을 다시 염소에 비유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속죄양의 절정에 이르는「십자가」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윤동주의 속죄양 사상은 유서와도 같은「참회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간마저 빼앗길’ 골목에서 마지막 시 한 줄을 쓰고자 하는 그의 시정신은 흔히 거론되는 비판, 투쟁 행동의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지적을 넘어, 내성적 · 자책적 · 암유적 저항의 특성을 지닌다. 고통을 내적으로 인내하는 그 정신은 속죄양 사상에서 기인되는 표상이라고 본다. 초 한대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光明의 祭壇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生命인 心志까지 白玉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暗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祭物의 偉大한 香내를 맛보노라 (「초 한 대」 1934년 12월 24일) 「초 한 대」의 이미지는 초가 타들어가는 과정을 통한 시인의 감정이입이 들어가 있는데 이를 통해 자기희생의 형상으로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 한 대」를 ‘깨끗한 제물’, ‘염소의 갈비뼈’에 비유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기희생을 감수한 예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하나님을 찾는 구약의 제사법은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나아갔다. 특히 염소는 희생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매년 7월 10일)이 되면 숫염소 두 마리는 선택한다. 그 중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을 드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염소에게로 전가시켜서 광야로 보내게 된다. 이 염소를 “보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사셀 염소’97)라고 한다. 이 염소는 희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상징한다. 신약에 와서는 이 염소를 양에 비유하고 있다.98)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언제나 흠이 없고 깨끗한 온전한 제물만을 드려야 한다. 그것은 또 아무 죄가 없는 예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염소의 갈비뼈’에서 상징하는 것은,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를 드러낸 생명을 잉태한 거룩한 신체라고 볼 수 있다. 또 ‘암흑(暗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은 일제의 탄압이 물러가는 것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것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빛으로 오신 예수가 오시면 어둠의 세력은 물러간다는 메시아사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시에는 그러한 모습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 나오는 ‘제물(祭物)의 위대(偉大)한 향(香)내를 맛보노라’를 보면 신에게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면 반드시 태워드리게 하였는데, 이 시의 이러한 표현은 그 냄새를 흠향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셋째, 율법사상이다. 기독교에서 율법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삶의 규례다. 이 법도는 하나님의 요구하는 명령이며, 인간에게 준 목적은 소극적으로는 죄를 알게 해서 자복하게 만들며,99)100) 이러한 율법사상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감격으로 수용하고 현재에게 베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적극적 율법의 완성과 살인, 도둑, 간음의 금지명령을 지킬 수 있는 소극적 율법의 완성으로 구분한다. 이와 같은 율법의 완성과정에서 윤동주의 고통은 모든 인간과 같이 시작되나, 윤동주의 남다른 부끄러움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서 시작된다. 모든 율법을 만든 신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죄의식을 느낀다는 말과 통하게 되고, 죄의식은 고통과 갈등으로 무르익어 참회, 구원을 지향하게 한다. 로마서에는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101)102)103) 그러나 결국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얻는 죄의 몫은 인간의 것이며, 죄는 율법을 완성하지 못하는 인간의 기본 속성이다. 죄는 율법을 투영하는 거울이며, 율법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은 결국 죄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구원을 갈망하게 된다. 윤동주의 작품 「태초의 아침」「또 태초의 아침」「서시」「쉽게 씌어진 시」「길」 등은 기독교 율법 사상에서 오는 지켜지지 않은 율법 때문에 불안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율법을 위배한 윤리의식에서 오는 부끄러움의 표명인 것이다. 그는 위의 작품들을 통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한 아담적 죄부터 오는 원죄의식으로 시작한 죄의식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구약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해서 기록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신약과 구약의 세계는 단절이 아니라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바탕위에 쓰여 졌고, 예수도 율법(구약)이나 선지자의 말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104)105) 또 윤동주가 구약에 치우친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신약적인 배경에서 쓴 시「십자가」「팔복」「새벽이 올 때까지」등에서 보여준 조롱과 비판적인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원죄의식, 속죄의식, 그리고 율법의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 용서가 이루어지고, 값싼 은혜가 넘쳐나고 싸구려 복음이 선포되는 대속의 십자가가 없는 신약의 가르침보다 훨씬 더 신앙적이고 정직한 복음이라고 본 것이다. 윤동주는 실천이 없는 ‘은혜의 신앙’보다는 실천이 있는 ‘율법의 신앙’이 시대의 암흑기에 빛이 될 수 있는 신앙임을 그의 시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우월성의 근거는 그들의 삶과 종교적 실천에서 찾아야 하며 결코 종교 자체106)107) 2. ‘시편’으로 본 다윗의 내면의식 1) 냉철한 현실인식 윤동주의 시어들이 대부분 자연에서 가져온 것들이라면, 다윗의 시어들은 현실에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쟁을 많이 치른 다윗은 전쟁무기나 피할 수 있는 장소나 환경 등을 시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방패, 요새, 바위, 병거, 산성 같은 것들이다. 또 다윗 자신이 왕이었음에도 하나님을 ‘왕’이라고 부른 것은 지금 자신을 다스리고 지배해 달라는 가장 현실적인 부름인 것이다. ①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 하나이다 (시 5편 2절) ②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시 9편 8-9절) ③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시 35편 1-2절) ④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 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시 84편 1-3절) ⑤그분은 바위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바위로 하여금 샘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시 114편 8절) ①의 시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구두로 하는 말과 투덜대는 말까지 즉, 자신의 처지를 소리로 표현하는 불분명한 모든 소리까지 다 들어 달라고 말한다. 기도 중에 그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인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자시며 궁극적인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말을 건낼 수 있고, 개인적으로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 곧장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통치자로서의 왕은 곧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②에서는 하나님을 의로운 재판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나와 있는 재판장은 최종적이고 종말론적인 심판에 대한 말이라기보다는 시인이 현세적인 적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따라서 현세적인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③에서 시인은 자신의 적들에 대항해서 하나님이 군사적으로 도와주실 것을 요청하는 기도로 시작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다투시고” “싸워 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적과 대치 있는 현실에서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신해서 분기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있다. ④의 시에서는 성전과 여호와의 임재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새들이 둥지를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시인 자신이 성전을 그리워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찬양하고 있다.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있겠다는 시인의 의지도 보이는 시이다. ⑤팔레스틴에서 물은 곧 부의 상징이며 가장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물의 공급자, 샘의 공급자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 ‘신학’이란 단순히 어원적으로 ‘신에 대한 학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 앞에 선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108) 이러한 전제 속에서 모든 신학연구의 본문을 대할 때, 우리가 묻게 되는 질문은 바로 “성서가 말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성서는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은 역사적인 기록이나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진솔한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시편을 절반 정도 기록한 것을 본다면, 인간의 내면의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사람은 다윗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시편 속에서 기도와 찬양, 그리고 내면의 진솔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더욱 이 신앙고백에서는 신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실존 그 자체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현실에서 동떨어질 수는 없는 일이며, 삶의 양식 그 자체인 것이다. 다윗의 이름이 성서에 직접 언급된 횟수만도 900번이 넘는다. 간접적인 언급까지 한다면 천 번은 족히 넘을 것이다. 성서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이름이다. 이는 다윗의 인생이 그만큼 파란만장했고,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사람임과 동시에 그가 신에게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의 인생에서 고백한 시편의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고뇌를 토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편 내에서 표제에 ‘다윗’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시편은 150편의 시편 중 73편이나 된다. 장영일은, 시편의 신학은 어떤 의미에서 ‘다윗의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윗은 시편의 주인공이고, 그만큼 다윗이라는 인물은 신학화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사랑한 사람이었고, 그의 조상 ‘유다(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 어떤 인간보다도 많은 찬양을 하나님께 바친 시인이며, 그래서 그의 이름 ‘다윗(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이 의미하는 바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독차지한 사람으로서, 결국 시편은 다윗의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는 책이라고 주장한다.109) 이는 다윗의 시편이 다윗의 삶이자 현실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2) 탄원과 속죄의식 인간이 자신에게 닥쳐 온 고난에 대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아마도 고통의 부르짖음일 것이다. 고난의 강도가 심해지면, 이 부르짖음은 초월자를 향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고통 가운데서 초월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하나님을 향한 탄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성서, 특히 구약에서는 수많은 탄원이 등장한다. 왕의 탄원에서부터 일반 평민들의 탄원, 그리고 공동체의 탄원과 민족의 탄원에 이르기까지 그 방식은 다양하다. 성서의 시편에 나오는 탄원시는 개인 탄원시와 민족 탄원시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중 민족 탄원시는 17개이고 개인 탄원시는 49개로 분류된다.110) 그리고 이 탄원시들의 대부분은 다윗이 쓴 것들이다. 시편의 탄원시에서 탄원자가 부르고 있는 신은 이스라엘 백성의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시편의 다윗은 가장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그 민족을 선택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하나님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자기에게 닥친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공감과 개입을 먼저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탄원시는 구조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을 부름, 둘째 불평과 탄식, 셋째는 기도, 넷째는 신뢰 · 확신의 고백, 마지막 다섯째는 감사와 찬송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다시 서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다윗은 탄원시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했고,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절대자에게 숨김없이 그대로 쏟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①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 이다 ②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③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 니이다 ④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⑤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⑥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⑦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⑧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 3편」 전문) 위 시에서는 시인의 대적들이 많은 것에 대한 탄원과 불평이 들어 있다. “어찌그리 많은 지요” “많으니이다”(1절) “많은 사람이”(2절) “천만인이”(6절). 이렇게 많은 수의 대적들이 시편 곳곳에 들어 있는 것은 그 많은 수로 인한 두려움이 심했기 때문이다. 대적들이 생각하기를, 다윗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다윗을 치려고 한다고 시인은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 하나님을 “방패”로 여기는 것은 어떠한 위험에서도 막아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윗의 진솔한 감정은 속죄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시편 안에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잘 알려진 일곱 개의 속죄시를 볼 수 있고(시편 6, 32, 38, 51, 102, 130, 143편), 그 중에서도 시 51편은 참회시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시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부제가 붙여진 시이다. 시 51편을 비롯한 속죄시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면서, 용서하며 깨끗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내용이 그 중심 주제를 이룬다. 시51편은 참회하는 인간의 기도가 들어 있는 ‘참회시’이며 그 중심에는 ‘참회하는 한 인간’이 있는데, 그 인물은 바로 이스라엘 신앙의 상징인 다윗인 것이다. ‘다윗의 참회’라는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바이저(A. Weiser)는 참회는 전인적이어야 하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참회에 대한 요구가 이와 같이 인상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사실에는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조건적이라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111) 자기 성찰의 기본은 속죄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①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②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③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④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 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⑤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 다 (「시 51편」 일부) 위 시편의 첫 번째 단락은 죄의 고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정한 죄의 고백은 근본적인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 고백은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는 것과 깨끗하게 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한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 및 하나님 편에서의 자비를 전제하고, 또한 죄과로부터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제한다. 둘째, 고백은 죄인으로 하여금 흔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자신의 죄와 정직하게 대면할 것을 요구한다.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감정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이것은 억눌린 양심의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실상(實狀)을 알고 충격을 받아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일들을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된 사람의 분명한 자각이다.112) 바이저(Weiser)는 이 시편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예배자의 영적인 고난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이 시에서는 심각한 범죄나 죄에 대한 징벌로서의 그 어떤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난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시편 저자를 낙담케 하고 있는 것은 죄가 야기한 정신적 중압감일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113) 참된 고백은 범죄의 복잡적인 차원들을 포괄하고 있다. 범죄는 개인적인 차원이 있는 동시에 사회적인 차원이 있어서 삶 전 궤적을 따라 소급적으로 확장된다. “내가 내 죄과를 아오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민감한 양심은 정결함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그것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 범죄는 겉보기에는 오직 다른 사람이나 우리가 사는 세상과만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죄로부터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한 죄들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충격적인 깨달음일 수 있다. 시인은 이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을 속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다. 로버트슨(Robertso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천년 전에 쓰여진 이 시는 마치 어제 쓰여진 것 같다. 그것은 한 유대인에게서 그랬던 것과 같이 한 현대인의 영적 생활의 기복을 진실되게 묘사해 준다. 이 시는 참으로 ‘어느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타당성 있게 적용된다.’”114) 구약성서 시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병이 들거나 가정적인 어려움이 닥쳐오게 되면, 이를 곧 그들이 범죄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건강한 삶과 조화로운 생활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살롬을 뜻했다. 곧 하나님과의 막힘없는 관계로서 그 분의 임재와 친밀한 관계를 통하여 모든 삶에 있어서 형통한 의인의 삶을 의미했다.115) 그러나 고통이 찾아오는 현실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 상태이다. 한 마디로 고통의 현실은 곧 하나님의 부재를 말한다. 왜 하나님이 더 이상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지 않는가? 전통적인 신앙의 고백은 그 백성이 하나님과의 계약관계를 파기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지 아니하고 이방 사람들과 같이 살아갔기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떠나가심은 곧 그의 백성들에게는 심판을 의미했다. 이러한 구약시대의 관념이 가장 극명하게 반영된 것이 바로 욥기이다.116)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한 고통의 현실을 곧 욥이 범죄한 결과로서의 하나님의 심판을 이해한다. 그러기에 욥에게 회개를 종용한 것이다. 물론 욥기에서 고통의 원인, 곧 하나님의 부재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시편의 탄식 시들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고통의 현실들은 인간 범죄의 결과로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다윗은 철저한 속죄의식을 통해 형통한 삶이 되기를 바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철저한 통회와 속죄를 통해서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한 것이다. ①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②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③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④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 1편」 전문) 탄원시는 고난에 직면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신에게 탄식하고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바라고 기도하는 시이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역사를 체험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삶의 터전에서 고통의 문제를 안고 무수히 탄식하면서 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과 탄식의 중심에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없는 무엇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참 주인 되신 하나님에 대한 부르짖음이었다. 그들은 고난의 현장 가운데서 늘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을 품고 갈등을 느꼈지만, 여전히 자신들을 성민(聖民)으로 택하신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면서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117) 이와 같은 고난이 탄식의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어 ‘탄원’이라는 일련의 노래를 형성하여 시편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의 비중있는 장르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탄원의 모습과 속죄하는 모습은 다윗시의 특징으로 시편에서 잘 나타난다. 아무것도 미화하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고난당하는 인간의 내면 그대로의 감정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은 인간 시인의 양심 그 자체를 신 앞에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가 「서시」나「참회록」에서 보여 준 양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밤마다 손바닥 발바닥으로 나의 거울을 닦는, 그 심정 그대로의 감정이 시편의 다윗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선민(選民)사상118) 성서에 나타난 선민사상이란 하나님께서 개인, 종족, 민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그 하나와 유일하고 독점적인 관계를 맺고, 그것에 특수한 역할, 의무 또는 권위를 부여해 주었다는 종교적인 확신을 가리킨다. 가장 중요한 용례들은 이스라엘 조상들, 왕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예루살렘 성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한 것에 대해 다윗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119)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확신에 흔들림이 없다. 이는 왕이 곧 민족의 의미로 인식되던 고대사회인 것을 감안하면, 다윗의 선택은 곧 민족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선택교리의 종교적인 함축적 의미는 다양하고도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초월적인 의지와 은혜로우신 의도를 가지고 역사 속에서 한번만 아니라, 종종 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암시한다.120) 그러한 선택에 대한 구절들은 구약성서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있다.121) 시편 1편, 19편, 119편은 보통 토라시로 구분한다. 히브리어인 ‘토라’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 ‘율법’을 뜻하지 않는다. 그 단어는 본질적으로 ‘교훈’(Instruction)을 말한다.122) 그러니까 ‘토라’라는 말은 ‘신의 교훈’이나 ‘율법의 교훈’이 되는 셈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특별한 은혜를 주었고 유대 민족만을 구원의 백성으로 선택했다는 선민(選民)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자신들만이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 선민에 대한 생각은 수천 년에 걸쳐 내려온 유대 민족만의 삶이자 교육이었다. 당연히 다윗의 마음에는 ‘토라’ 율법의 교훈인 ‘신의 교훈’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시와 노래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교훈을 대대로 전해지기를 원했으며, 그러한 다윗의 마음은 다음 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①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②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③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④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⑥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⑦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⑧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⑨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⑩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⑪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⑫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시 60편」 전문) 위 시의 부제에는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123)124)으로 번역했다. “교훈하기 위해서라함은 첫째, 이 시편이 후손들을 교훈할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다루기 힘든 부족들에게는 다윗의 통치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인정하도록 하려는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셋째, 그 말은 신명기 31:19절에서와 같이 그 국가적인 중대성 때문에 백성들이 기억해 두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직접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넷째, 그것은 사무엘하 1:18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하며, 따라서 군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활을 쏘는 것과 관련하여 부르기로 되었었다.”125) 결국 이는 다윗이 후손들, 그리고 선택받은 백성들을 교훈하기 위함과 이 교훈이 대대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를 지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게 한다. 3. 윤동주와 다윗의 내면의식 비교 1) 윤동주와 다윗의 속죄의식 윤동주와 다윗의 속죄의식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아성찰에 출발한다는 데서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윤동주의 죄에 대한 속죄의식은 속죄양 의식에서 온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동주의 속죄의식은 자아성찰적 속죄로 나타나고, 그것의 표출은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나타난다. 윤동주가 비상하게 순수하고 깨끗한 인간이었던 것은 그의 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순수하고 깨끗한 골똘함을 자아성찰이라고 할 때, 그의 자아성찰은 얼핏 생각하는 그런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에 표현된 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극히 소박한 선언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복잡한 연관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응시와 자기 파악의 여러 내용으로도 나타난다. 사실 그의 양심의 특징은 밖에서 받아 온 어떤 도덕률에서 유포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인 성찰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126) 결국 윤동주의 속죄는 자기응시에서 나온 자아성찰적인 요소가 짙게 물들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윤동주는 식민지로 힘들어 하는 민족의 아픔을, 때로는 자아성찰적인 속죄의식으로, 때로는 구원자 예수의 대속적인 속죄양의식으로 민족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죄로 인해 민족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잎새에 이는 조그마한 죄도 털어내려고 시인은 고뇌했던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1941년 11월 20일) 이 작품의 ‘하늘’, ‘바람’, ‘별’은 윤동주의 개인적 상징이다. ‘하늘’은 윤동주 자신이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믿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생의 세계로, 바로 신이 거주하는 천국을 의미한다. 이는 신과 동격으로 쓰이고 있다. ‘바람’은 『또 태초의 아침』에서와 같이 자신의 원죄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한다127) 신앙과 가장 밀접한 것은 역시 자생적 도덕률이다.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겠다는 엄숙하고도 순결한 결의는 일반적으로 개인적 도덕률에 속하지만 그 도덕적 원천의 표준은 신앙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가 있다. 이는 다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표현에서 곧 드러난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라고 한 성경말씀에 어렵지 않게 대응된다128) 신동욱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그의 아름답고 멸하지 않는 대표적인 심상의 하나는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된다면서, 이것을 미루어 그의 도덕적 결의는 거의 신앙적 경지까지 도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의 종교적 사랑이 무리 없이 발로 된다129)고 말하였다.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이 회개할 수 없고, 죄의 고백 없이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다윗은 늘 자신의 죄를 신 앞에서 고백한 사람이다. 이것은 다윗의 삶이자 현실이었고 신앙이었다. 신약성서인 사도행전에서는 이러한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극찬한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사도행전 13:22) 다윗이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요인은 다름 아닌 다윗의 속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①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 로 내게 응답하소서 ②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③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④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⑤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⑥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⑦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⑧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 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⑨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⑩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⑪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 서 끌어내소서 ⑫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시 143편」전문) 위 시편은 아침에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신탁을 듣기 위한 개인이 저녁이나 동트기 전에 성전에서 암송하도록 저작된 기도문이다. 8절에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호소하는 근거는 이 시편의 앞부분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또한 이 시편 전체를 통하여 반복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이다.130) 위 시에서 저자는 인간의 나약함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언급은 그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오히려 죄악의 실재성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절대성과 대조를 이루는 인간의 도덕적 상대성은 인간이 하나님께 아무런 주장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은총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편에는 저자인 다윗의 정황이 매우 강하면서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바로 그런 점으로 인하여 많은 탄원자들이 그들 자신의 심정과 정황을 암시해 주는 기도문으로 사용했다.131) 6절에 보면 저자의 손을 하나님에게 내뻗고 도우심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8절과 12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언급함으로써 이러한 간구와 호소의 언약적 근거를 재차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거듭 간구한 후에 그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다시 간구하고 있다. 앞의 간구는 하나님께 피하는 것에 대한 언급을 수반하며, 후자의 간구는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에 대한 공언을 수반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매우 절박한 위기에 처하여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시인은 여기서 인간의 보호자이자 수호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계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한다.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는 이 시편의 마지막 부분에 “당신의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말과 “나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는 말을 통하여 표현된다. 다시 말하자면 시인은 바로 이러한 관계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위하여 싸워 주실 것을 간구한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은 죄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하고 신탁으로서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시인의 절박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속죄의식은 삶이자 제의였다. 그러기 때문에 철저한 속죄의식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다 씻음 받는 종교의식을 엄숙하게 행해야만 했다. 이러한 속죄의식은 구약의 5대 제사132)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제사장은 이를 집례하였다. 시편에서 다윗이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간절함을 넘어 감동적이다.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사소한 죄에도 괴로워하고 탄식하는 모습은 윤동주의 「서시」나「참회록」에서도 볼 수 있는 인간 심연에 자리 잡은 숨김없이 드러나는 양심의 신음소리이다. 다윗에게는 유대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선민(選民)사상’을 통해 신에게 더 가까이 나아갔고, 백성들을 교훈했다. 또 민족을 하나로 묶게 하는 원동력을 ‘선민의식’에서 찾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관계는 언약 관계는 후손 대대로 이어지기를 원했고, 그는 신이 다스리는 신정통치를 꿈꾸었던 것이다. 윤동주는 속죄의식을 자아성찰로서의 속죄의식으로, 다윗은 제의로서의 속죄의식으로 신에게 나아갔으며 때로는 반항과 탄식으로 속죄와 절창(切創)으로 신에게 탄원했던 것이다. 윤동주와 다윗이 하나님께 속죄하는 모습은 달랐지만, 인간의 나역함과 자아성찰을 통한 더러운 내면을 정화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은 동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속죄의식은 자신 스스로 정결하게 되어서 신에게 나가기를 원했고, 당연히 이러한 모습은 내면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의 속죄의식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약함과 더러움을 씻어 주기를 원했다. 이는 자연히 다윗의 마음이 외부로 발산 되었는데,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자신을 다스리는 주체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능동적 자아성찰로서의 속죄의식과 제의로서의 수동적 속죄의식에서 온 인식의 차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2) 양심의 율법과 규례(規例)의 율법 윤동주가 율법을 이해한 것은 양심으로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밝힌 그의 내면의식을 살펴보면, 윤동주가 느꼈던 괴로움과 부끄러움은 내면적인 양심의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는 율법 때문에 괴로워했고, 율법 때문에 부끄러워했다. 박이도는 윤동주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인 정신세계의 갈등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초자아(Supenege)의 표현이다. 프로이트의 용어인 이것의 의미는 인간의 양심과 궁지에 의해 체계화된 가치관 내지 도덕적 기준의 자각을 뜻한다.”133)고 말함으로써, 그의 부끄러움이 율법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함에서 오는 자책감은 괴로움을 동반하며 참회에 이르게 된다. 이에 대해 최문자도 “윤동주 시에 자주 등장하는 이 ‘부끄러움’은 기독교의 율법사상에서 온 죄의식에서 기인되는 것이다”134)라고 주장하고 있다. 율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윤동주가 느끼는 감정들은 선한 양심에서 오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윤동주의 선한 양심이 율법과 만남으로 더욱 티 없는 순수함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만이 조그마한 죄에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며, 조그마한 죄의식에도 괴로워하는 것이 윤동주의 양심에서 나오는 죄의식인 것이다. 김우창은 그가 유난히 비상하게 순수하고 깨끗한 인간이었음을 그의 시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양심에서도 찾고 있다. 그 양심은 밖에서 나온 어떤 도덕률에서 유도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인 성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여 말한다.135) 현실세계와 내면세계의 갈등은 그로 하여금 깊은 고뇌로 빠지게 했다. 윤동주가 느끼는 현실은 참담한 절망적인 세계였다. 그의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 민족과 시대상황이라고 볼 때, 그의 현실 인식은 당연히 왜곡되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면세계는 신앙과 양심의 세계라고 본다면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신앙적으로 흔들렸던 것도 이러한 갈등의 고뇌들이 현실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율법은 인간의 힘으로나 윤리의식을 가지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 특별한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하는 것이지, 그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136) 윤동주도 율법에 완전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인간은 율법에 완전할 수 없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죄는 율법을 투영하는 거울이며, 율법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은 결국 죄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구원을 지향하게 된다. 「또 태초의 아침」「서시」「쉽게 씌어진 시」「길」등은 기독교의 율법사상에서 오는 지켜지지 않은 율법137) 때문에 불안하고 부끄러워하는 시인의 표명이다. 이러한 율법에 대한 괴로움은 어쩌면 양심의 문제였다. 인간이 율법에 완전할 수 없다고는 하나 순수한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율법에 어긋나는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고 그것은 괴로운 것이다. 더구나 주변 상황이 온통 불법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양심 있는 지식인은 더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한방울의 피까지 쏟아내며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시인은 행복하다고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六疊房은 남의 나라, 詩人이란 슬픈 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時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學費封套를 받아 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敎授의 講義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沈澱하는 것일까? 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時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六疊房은 남의 나라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慰安으로 잡는 最初의 握手 (「쉽게 씌어진 시」 1942년 6월 3일) 위 시에서 부끄러움은 비 내리는 밤, 조국을 빼앗아간 당사국인 남의 나라 일본의 하숙방에 앉아 시나 쓰고 있는 자신에 대해 느끼는 실의와 파토스가 담겨있다. 아울러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떠나와 방황하고 있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조의 심경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 중에서 가장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지닌 양심의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어려움에 비해서 시가 너무 쉽게 쓰여진다는 시인의 고백은 상대적으로 그의 삶의 고통과 깨끗한 양심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다윗은 율법을 규례로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이 생각하는 율법은 생활의 규범이자 정치였던 것이다. 다윗은 율법 앞에 무너진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 것이 아니라 신 앞에 기도로써 토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규례로서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다윗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구약성서인 레위기에서는 죄와 제사법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고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에 절망하기보다는, 그러한 연약한 인간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시편을 기록한 것이다. ①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②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의 어머 니 품에 있음 갖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③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 131편 」전문) 이 시는 매우 짧은 것이기는 하지만 한 개인이 여호와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를 고백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에 대한 가치와 하나님의 뜻을 부인하려고 하는 교만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완고한 자아와 피나는 싸움을 하지 않고는 결코 이러한 영적 상태에 도달할 수가 없다. 수많은 자기 뜻의 발로를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그는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터득한 것이다. 아이를 안고 있는 부모의 비유를 통해 묘사된 이러한 의존의 비유는, 구약에서는 여호와께서 광야 시대 이래로 그의 언약적 백성들에게 제공해 주신 보살핌을 묘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138) 다윗은 율법을 묵상하고 그 기록된 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율법이 곧 삶이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139),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140) 3) 민족의식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다윗이 생각하는 민족의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민족의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국가와 언어의 개념이 포함된 민족(nation)이라기보다는 소수집단 또는 공동체(ethnic)로서의 민족의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종교적 집단의 민족의식이 공동체를 강하게 결속하였고, 일찍이 유대교라는 하나의 종교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민족의식은 역사 속에서 특별하게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지로 그때도 영토로서의 민족의식은 강하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영토인식은 모세로부터 온 ‘약속의 땅’으로서의 높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이러한 민족의 영토는 민족화된 국민문화의 본향이나 자급자족이라는 꿈 같은 희망을 이뤄줄 수 있는 자원의 창고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곳곳에서 구약성서의 ‘선민의식’ 위에서 출발했으며, 이는 다시 유대-기독교전통의 토대위에서 자라났다. 유구한 유대교 전통과 메시아 주의는 자기 민족에게 세계 속에 우위를 점하게 되리라는 세속화된 민족의식으로 발전하게 된다.141) 20세기를 살다간 윤동주가 인식한 민족의식은 공동체로서의 민족보다는 국가로서의 민족을 이해했을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민족의식은 어쩌면 종교를 뛰어넘는 것이었고, 도리어 종교가 민족의식 속에 스며들어 구원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는 “민족들은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는다. 새로운 종교는 민족주의다”라는 요젭 로트142) 종교적 전통들이 세속화되면서 민족주의 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종교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가 정치적 종교-문명종교 내지 세속종교-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종교 개념으로 민족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다.143) 문학 속에는 현실이 반영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삶의 현장에서 경험했던 식민지적 체험은 어떤 형태로든지 작품 속에 반영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시는 그 내용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 형식이나 리듬을 통해서도 현실을 반영한다. 시의 형식이나 리듬은 시가 산출된 시대의 사회적 삶의 형식과 질서를 언어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144) 윤동주가 살았던 식민지 치하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는 현실에 적극 동참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제국주의에 마지못해 눈치껏 동참하거나 회피하면서 소극적 동참을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일제에 반기를 들고 수탈당한 민족의 국권 회복을 위해 적극적 저항을 하는 것이다.145) 윤동주의 경우, 적극적인 행동으로 저항한 이육사와는 달리 저항에 대한 확고한 면면을 적립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작품 분석을 통해 드러난 저항성은 이제 확고하게 위치를 부여받으며 작품 속에서 미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고 김현은 주장146) 저항은 소극적인가 적극적인가를 구분하기보다 근대적 주체 확립에 바탕을 이루고 있느냐 없느냐를 살필 때, 저항은 보다 구체화 된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 국가라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주체로서의 이성은 행동으로 실체를 드러내기보다 내적인 정신활동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윤동주의 자아는 이러한 지배와 예속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대립하고자 하는 대상을 극복하고자 저항적 주체로 변모하고 있다. 저항의 과정에서 자아는 자기에게로 돌아와 자기와 일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응시로서의 성찰의 공간이 된다. 윤동주의 내면은 일제의 잔혹한 압제를 의식, 실존적 차원에서 불안함을 보이며 긍정과 부정을 반복한다. 끊임없는 부정의 정신은 정체성 회복과 저항을 불러온다. 이 저항은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되돌아 올 때 부끄러움과 성찰로 변모한다. 이러한 윤동주의 내면 형성은 주권의 상실로 인한 윤리적 갈등과 민족정체성 회복을 위한 저항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우종은,147) 박창해의 증언148)에 의하면 윤동주와 늘 나누던 담소와 대화를 통해 알아낸 그의 시 정신을 겨레의 미래와 나라의 광복을 위해 힘써야 함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강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갓쓴 양반 당나귀 타고 모른 척 지나고, 이 땅에 드물던 말 탄 섬나라 사람이, 길을 묻고 지남이 이상한 일이다. 다시 골짝은 고요하다 나그네의 마음보다. (「谷間」일부, 1936년 여름) 위의 시에서는 윤동주의 다른 시와는 달리 일본 사람을 직접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이 땅에 드물던 말탄 사람이/ 길을 묻고 지남이 이상한 일이다.”에서 “말탄 섬나라 사람”은 일본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나그네를 보고 갓쓴 양반은 모른 척 지나가는데, 말 탄 섬나라 사람인 일본인은 길을 묻는다. 갓쓴 우리나라 사람은 당나귀를 탔는데, 일본인은 말을 탔다.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이 대조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갓쓴 사람은 모른 척 지나가는데, 일본 사람이 길을 묻는 게 이상하다고 한다. 또 그의 시「이런 날」에서도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추는 날/ 금을 그은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일본을 상징하는 오색기와 태양기가 나온다. 오색기는 만주사변 직후에 일제가 괴뢰국으로 세운 만주국의 깃발이고 태양기는 일본 군부가 사용하던 일본 국기이다.149) 시인의 내면의식과 세계인식은 시의 상징과 형상을 통하여 표현된다. 윤동주의 시에 있어서 상징적 이미지들은 그가 시에 담고 있는 정신적 태도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돌파구가 된다. 즉 C. G. Jung의 표현을 빌면 시인의 본능적 의식은 문화적 정신적 가치로 물길을 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150) 따라서 윤동주 시에 있어서 내재적으로 투영된 내면의 자아인식과 세계인식은 그가 살았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의 내면세계에 대한 문화적 정신사적 의의를 해명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윤동주의 고뇌는 첫 번째로 참담한 현실인식에서 온다. 윤동주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당시 절망적 가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암울한 시대적 환경에 처한 민족을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한 여인의 모습과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른 아침 아낙네들은 시들은 생활을 바구니 하나 가득 담아 이고······ 업고 지고······ 안고 들고······ 모여드오 자꾸 장에 모여드오. 가난한 生活을 골골이 벌여놓고 밀려가고 밀려오고······ 저마다 生活을 외치오······ 싸우오. 왼 하로 올망졸망한 생활을 되질하고 저울질하고 자질하다가 날이 저물어 아낙네들이 쓴 生活과 바꾸어 또 이고 돌아가오. (「장」 1937년 봄) '장'이란 원래 교환의 장소다.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것을 파는 곳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장은 교환이 안되는 곳이다. '시들은 생활'을 팔기는커녕 더 '쓴 생활'의 짐만 안고 가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인은 일제하의 우리 민족의 가난과 고통의 삶을 시장에 가는 아낙네를 통해 극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희 저고리 치마가 슬픔 몸짓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슬픈 族屬」 1938년 9월) 윤동주의 시에서는 인간적 고뇌, 민족의식 문제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위 시의 본문만 놓고 보면 이것은 한 여인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도 서글픈 스케치이다. ‘검은 머리’라니 아직 머리가 세도록 늙지는 않았고 ‘거친 발’이라니 고생 속에서 살아온 모습이다. ‘슬픈 몸집’이라니 지금도 역시 살기가 고달픈 상태이고 ‘가는 허리’라니 초체한 몸매이다. 그런데 윤동주는 이 여인에게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치마‘에다 ’흰 띠‘를 띠고 있게 하면서 “슬픈 족속”이라는 명패를 붙여줌으로써,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의인화 하고 있다. 이 시의 「슬픈 족속」이라는 제목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지배적인 심상은 ‘저고리’ ‘치마’로 제시된 가냘픈 여성적 심상이다. 이 심상은 ‘흰’빛이 상징하는 의미와 결합하여 민족적 슬픔이 진하게 형상화 되었다. 그러나 민족적 슬픔은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한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윤동주의 모습을 그의 당숙인 윤영춘은 이렇게 말한다. 동주는 벌써 물욕을 떠난 하나의 메타피지콜한 철학적 체계를 갖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말할 적마다 시와 조선이라는 이름은 거의 말버릇처럼 동주의 입에서 자주 튀어나왔다.151) 다윗의 민족의식은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이라고 하는 민족주의에서 나온 것이며 그 기원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모세의 ‘약속의 땅’에 기반이 있는 것이다. 그 의식이 과거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 유대민족을 특징지었고 사고의 지평을 지배했기 때문이다.152) ①1절: 이스라엘의 회복을 비는 상황 2-3절: 이스라엘을 버려 흩으셨다고 말하는 상황 5절: 구원을 요청하는 상황 10-12절: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상황 (「시60편」참조) ②1-3절: 하나님의 회복에 기뻐하는 상황 4절: 남은 포로들을 돌려 달라고 간구하는 상황 (「시126편」참조) ③1-3절: 악인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상황 (「시129편」참조) ④1절: 바벨론 여러 강변에서 시온을 기억하면 울었던 자 2-6절: 바벨론에게 수모를 당하는 자 7-9절: 예루살렘을 훼파한 에돔과 바벨론을 저주하는 자 (「시137편」참조) ①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구원의 능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고통 중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새로운 행동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을 묘사한다. 현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려서 그들의 원수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백성은 그분으로 하여금 과거로부터 있어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푼 헌신들을 다시금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②과거 하나님의 개입을 묵상하며 다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개입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대하며 격려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땅에서 그들의 백성에게 축복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한 회상은 그들로 하여금 실제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한 번 더 도움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스런 민족의 과거를 전환시켜 주셨던 것처럼, 고통스런 현재도 전환시켜주실 것이란 강한 신뢰의 표현을 하고 있다. ③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고통은 힘들고 가혹한 것이었다. “밭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시 129:3).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비할 데 없이 심각한 것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부가 보습으로 땅을 갈아 파헤쳐 놓은 것처럼 괴롭힘을 당해 왔다. 그러나 시인은 그들을 그 고통 가운데서 건져 내실 것이며 그 일을 훌륭하게 성취하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④바벨론 포로기 직후 시대에 유다의 신앙공동체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대한 헌신을 고통의 어조와 혼합시키고 있다. 시온의 견고함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기념하는 이 시는 이방 땅에서의 슬픔에 대한 보고를 그 내용에 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돔과 바벨론은 멸망하고 궁극적으로는 예루살렘에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 다윗이 탄원하고 호소하고 있는 시어들을 보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반면에 윤동주는 민족이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서 자아성찰 내지는 양심적인 율법의식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에 대한 두 시인의 태도는, 민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공통적으로 보이지만 표현하는 방법은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민족의 탄원을 외부로 발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윤동주는 내면으로 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동주가 하나님에게 체념에 가까운 넋두리를 했다면, 다윗은 어린아이와 같이 떼를 쓰는 모습으로 신에게 다가간다. 다윗이 신이 다스리는 신정(神政)통치를 꿈꾸었다면, 윤동주는 우리 민족 스스로 다스리는 해방을 꿈꾸었던 것이다. 결국 윤동주는 시인으로서의 민족의식을 가지고 초월자를 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다윗은 왕으로서의 민족의식을 가지고 신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Ⅳ. 결론 성서의 표현은 문학적인 옷을 입고 있다. 성서를 절대자의 말씀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성서의 신학적인 내용에만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성서의 예술적 · 문학적 특징을 간과하고 있다.153) 성서의 표현 형식들을 살펴보면 수많은 문학적 장르의 표현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설화, 서사시, 서정시, 비극, 풍자, 비유, 묵시, 서신 등 하나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의 모습들을 문학이라는 틀 속에 담아내고 있다. 다윗의 시편을 가장 문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내면의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다윗의 ‘시편’과 윤동주의 시에서 담아내고 있는 인간 본연의 문제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기독교 사상에 시인의 시심이 매몰 되어서 그의 정서가 경계심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세상의 삶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으로 표현 할 때, 그것이 시를 썼다고 말하기 보다는 종교적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 되고 만다.154) 그래서 지금까지의 연구가 교리적이었다고 하면 본고는 성서적인 관점에서 두 시인의 시의 원형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비교분석해 보았다. 아울러 시편의 시와 윤동주 시가 문학적인 표현과 방법, 그리고 내면의식에서 동질적인 성서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기독교 사상을 시에 표상시키는 문제는, 시적이고 주제에 있어서 교리적이기보다는 지극히 보편적이어야 한다. 표현 방식은 직설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어야 하며, 배타적이기보다는 수용적이어야 한다. 신학적이기보다는 문학적이어야 하고, 예식적이기보다는 예술적이어야 한다. 특정 분야의 소수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자칫 도식적일 수 있는 종교적인 색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충족시켜주는 시인이 윤동주라고 할 수 있다. 본고를 연구함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적인 것을 문학적으로, 교리적인 것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연구의 방향을 전개하려고 노력했다. 성서의 메시지가 윤동주의 시심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면, 「십자가」나 「서시」는 자연스럽게 드러난 메시지의 표상이었을 것이다. 윤동주는 그래서 죄의식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달래고 시를 통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시인이라는 것을 그의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윤동주는 어느 경우와도 다르게 사소한 풀잎의 움직임에도 마음이 아려오는 아픈 노래를 불렀으며, 교회의 첨탑 위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교회의 무능과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시인이다. 이러한 순수함의 지향은 그 내면이 성서와 신에게 뿌리가 닿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존재의 질서에 관한 흄이 견해에 따르면, 물질 그 자체는 결코 유기적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유기적 생명체는 종교적 신의 세계에 결코 들어 갈 수 없다. 인간은 결코 완전에 이를 수 없지만 완전성을 감지할 수 있는 불행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육체보다는 정신, 순간보다는 영원, 외면보다는 내면, 현상보다는 본질을 추구하는 윤동주 시인의 일관된 자세는 모두 이러한 절대적인 경계선을 허물고 초월을 지향하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은 결국 성서의 시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철저한 자기비하, 자기파괴, 자기부정을 통해서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자기 비움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윗은 시편을 통해서 수많은 고통과 고독, 위험과 탄원을 시로 노래했으며, 이를 통해서 내면에 잠재된 죄의식을 신에게로 향하는 찬양으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지극히 미미한 죄에도 심히 괴로워했고 힘들어 했다. 깊은 고뇌와 고독, 괴로움과 악에 대해서 저항했으며, 자신과 끊임없이 싸웠다. 결국 두 시인은 성서라는 문학적 공간에서 내면의식이 일정부분 공유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다시 신을 향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내면의식이 드러나면서, 시대와 민족과 문화는 달랐지만 질곡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영혼과 민족의 어둠을 밝혀준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참고문헌 기본자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2009.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88. 권영민, 『윤동주 연구』, 문학사상사, 1997. 논저 곽동훈, 「신과 인간-윤동주 시와 그의 신앙과의 관계」, 『국어국문학』16집, 부산대 국어국문학회, 1979. 권오만, 『윤동주 시 깊이 읽기』, 소명출판, 2009. 김동선, 『하나님의 선교』, 한국장로교출판사, 2003. 김문제, 『십계명과 십자가』, 제일출판사, 1970. 김열규, 「윤동주론」, 『국어국문학』 제27권, 국어국문학회, 1964. 김용직, 「비극적 상황과 시의 길」, 이건청 편저, 『문학세계사』, 1981 김인수, 『한국기독교회의 역사』,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8. 김용주, 「윤동주 시의 자아 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김종두,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사상과 자아이해』, 엠-에드, 2002. 김준오, 『시론』, 삼지원, 1994. 김태준, 「토라시의 지평」, 장로회신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김창환, 「윤동주 시 연구」, 연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2. 김흥규, 「윤동주론」, 『문학과 역사적 인간』, 창작과 비평사, 1980. 김현 · 김윤식, 『한국문학사』, 민음사, 2005. 김형수, 『문익환 평전』, 실천 문학사, 2007. 마광수, 「윤동주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3. 박수암,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서회, 1998. 朴利道, 『韓國現代詩와 基督敎』, 종로서적, 1987. 박옥실, 「일제 강점기 저항시의 ‘주체’ 연구」, 아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오성호, 『한국 근대시 문학연구』, 태학사, 1993. , 『서정시의 이론』, 실천문학사, 2006. 오오무라 마스오, 「윤동주를 둘러싼 네 가지 문제」, 소명출판 2001. 이경숙,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연속과 단절」, 이화여대 출판부, 2009. 이상호, 「韓國現代詩에 나타난 自我意識에 관한 硏究」, 동국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1988. 우에노 준, 『예언시인 윤동주』, 을지출판공사, 2002. 이인복, 『한국문학에 나타난 죽음의식의 사적 연구』, 설화당. 1979. 이인복, 『한국문학과 기독교 사상』, 우진출판사, 1995. 송우혜, 『윤동주 평전』, 푸른역사, 2009. 정호승, 「윤동주 시에 나타난 기독교적 세계관」,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조경춘, 「시편의 탄원시에 대한 연구」, 목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최문자, 「윤동주 시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 『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 사상의 상징적 해석』, 태학사, 1999. 학회지 김흥규, 「윤동주론」,『창작과 비평』, 1974. 가을호. 박창해, 「윤동주를 생각함」, 『나라사랑』, 1976 여름호. 신동욱, 「하늘과 별에 이르는 시심」, 『나라사랑』, 1976 여름호. 안근조, 『구약논단 제15권 3호 (통33호)』「시편의 죄 관념 재고」, 호서대, 2009. 이상비, 「시대와 시의 자세-윤동주론」, 『자유문학』통권41호, 1960. 이유식, 「아웃 사이더 인간상」『현대문학』, 1963 10월호. 윤일주, 「윤동주의 생애」, 『나라사랑』23집, 외솔회, 1976.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나라사랑』23집, 외솔회, 1976. 장영일, 『장신논단 제10집』,「구약(시편)에 나타난 찬송의 의미」, 장로회신학 대학교 출판부, 1994. 정한모, 「동주시의 특질과 시사적 의미」,『심상』통권29호, 1975. 2월호. 최동호, 「서정적 자아 탐구와 시적 변용」, 『윤동주 시론집』, 바른글방, 1988. 고오노 에이지, 「다시 윤동주의 죽음에 대하여」, 『현대문학』, 1980. 12월호 번역서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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