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의 글
금번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인사아트센타 6층,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10여년간 현장에서 그려온 북한산 그림들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풍수지리상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춘 서울, 옛 한양의 입지에 주목하면서 그 토대가 되는 북한산의 전체적인 실제 풍광을 모두 그림으로 담아 내고자 해 왔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의 2019년 선정작가로서 전시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시 공간이 넓어서 그동안 제가 그려온 북한산 작품들을 대작과 함께 총체적으로 펼쳐 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들은 가로 5.4m 크기의 대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장에서 직접 실경을 대하며 제작한 것입니다. 빼어난 경치와 장쾌한 기상을 갖춘 북한산의 면모를 현장의 필치로 생생히 담아온 그림들을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석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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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메모
북한산전을 열면서...
새해 아침 다시 북한산 전시를 하게 되었다. 2009년 낙동정맥 단독 종주 이후 주말마다 거의 빠짐없이 북한산을 오르면서 마주해 온 전경, 주능선, 주요 봉우리와 계곡, 성곽 및 성문 등을 체계적으로 화폭에 담아 왔고, 여러 차례 전시도 해 왔었다.
서울, 곧 옛 한양도성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도이자 산과 강이 수려하게 어우러진 풍수지리상 길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입지적 빼어남을 이루는 바탕에 한강과 북한산이 있다. 특히 북한산은 세계에서 당일 탐방객수 가장 많은 산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고 있다. 아울러 대도시 서울의 지형적 토대로서 인근 시민들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으면서 팍팍한 도시생활의 여가와 휴식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본인은 서울의 도시 구조적 탐구로부터 ‘길지’로서의 서울의 입지구조에 깊은 관심을 갖고 북한산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북한산이 그동안 다녀본 전국 각지의 어떤 산보다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북한산에 오를 때마다 눈길이 이끌리는 풍광들을 계속해서 그려 왔다. 처음에는 산행 중 우연히 마주대하는 장면들을 그렸었는데 점차 목차를 정해 북한산의 전모를 모두 그림으로 남기겠다는 목표를 갖고 그리게 되었다. 평소 답사나 여행을 할 때마다 스케치북을 휴대하고 어디서나 늘 그려왔기 때문에 내가 북한산을 그리게 된 것도 처음부터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산의 전체적인 인상을 모두 화폭에 담겠다는 목적을 갖고부터 특별한 일이 되었다.
2014년 서울도서관의 초청으로 진행된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은 서울의 입지와 지리를 체계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무렵 추진되고 있던 한양도성의 세계유산등재 추진 상황을 주목하면서 경조오부도 등 옛 지도에 나타난 한양과 북한산의 입지적 연관성이 중시되어 체계적으로 포착할 생각을 했다. 즉 옛 지도의 관념적 표현대신 거기에 나타난 실제 풍경을 고스란히 그려두고 싶었다. 그 전시는 비교적 많이 알려졌고 ‘북한산과 한양도성’이라는 책도 발간했지만 공간의 한계 때문에 준비한 한양도성과 북한산의 방대한 그림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전시라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해서 그 후 전시에 대한 생각을 별로 갖지 않고 그림만을 그려오다 2016년 말에 출강하는 삼육대 박물관 초대로 다시 전시를 갖게 되었고 도봉구청 로비에 마련된 도봉갤러리에서 연속적으로 전시를 하게 되면서 지속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전시 때마다 준비 과정에서 전시 주제에 따라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의욕적으로 새 그림들을 제작해 오면서 북한산 전체를 담은 내용이 좀 더 갖춰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전시 때마다 관람시간이나 장소의 제약 등의 아쉬움도 느껴져서 언젠가 전체적인 내용으로 전시할 기회를 갖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의 2019년도 전시 작가 선정 공모에 선정되어 장소와 공간 등이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 장소인 인사아트센터는 서울의 주요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인사동 지역 내에서 가장 좋은 전시공간으로 꼽히는 곳인데, 공간의 크기도 커서 대작을 포함한 북한산 전체 그림들을 총체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즉 지축동에서 본 가로 5.4m 크기의 전경을 비롯하여, 동서남북 사방에서 북한산 전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불암산, 남산, 노고산, 봉산에서 본 전경, 그리고 원효봉에서 펼쳐 보이는 북한산 내부 전경과 주요 봉우리, 북한산의 주요 골격을 이루는 주능선 등을 망라해 준비하여 현장에서 그린 북한산의 전모를 생생히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북한산을 오랫동안 찾아 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특별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북한산을 대할 때마다 정말 빼어난 산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능선은 호쾌하고 암봉이 뿜어내는 기세는 웅대하다. 전국의 산 가운데 이처럼 봉우리 전체가 바위 암봉으로 되어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큰 바위로만 이루어진 정상부 봉우들을 볼 때마다 장엄한 기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상부로부터 굳세고 장엄한 능선들이 여러 갈래로 뻗쳐 나가며 기세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필자가 북한산을 체계적으로 그려두고자 한 이유는 입지적 중요성과 서울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산 전체를 현장에서 그린 그림 자체가 갖는 사료적 가치도 의식해왔다. 북한산은 한강과 함께 명당으로 꼽히는 ‘한양’의 풍수지리 토대가 된다. 즉 한양을 수호하는 사신사의 북현무에 해당하는 백악산의 조산(祖山)으로서 길지 형성의 지형적 뿌리가 된다. 그리고 궁궐의 입지 등에 있어서도 북한산의 그 기세가 직접적인 모태가 되고 있는데, 창덕궁 주변이나 구산동, 월곡동 등 서울시내 낮은 산세 또한 북한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온 맥으로서 전체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북한산은 서울 등 인근의 대도시 사람들의 삶과 휴식공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주말에 산에 오르면 등산로마다 길이 막힐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자연의 맑은 정기를 쏘이면서 아름다운 산세에 취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산은 서울의 중요한 도시 경관 요소이자 일상에서 대하는 경관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도시 내부의 일상에서는 빌딩 숲에 가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장면만이 의식되기 때문에 북한산의 전체적인 진면목을 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포괄적인 시각으로 북한산의 전체적인 인상을 그림으로 담아내 보여주고 싶었다.
필자가 북한산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오가는 사람들은 북한산의 빼어난 풍광에 연신 감탄하곤 한다. 그것은 실재 자연의 기세와 형상적 빼어남에 대한 자연스런 감동의 표현이며 그 같은 감동은 실재 풍경을 대하는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다. 필자는 그처럼 보는 이에게 감동을 유발하는 그러한 현장의 풍광을 설계 도면을 그리듯이 화폭에 충실히 재현함으로서 그 아름다움을 충실히 전하고자 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상의 사의적 표현이나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갖는 실재감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아울러 그로 인해 실제 풍광을 대하며 느껴지는 특유의 호흡과 생동감이 느껴지게 하고자 해 왔다. 그리고 북한산의 큰 기세와 아름다움은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으로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이 북한산에 올라 실제로 대하며 느끼는 수려함과 장엄한 산세, 주변의 봉우리들과 함께 하나로 어우러져 증폭되는 웅대함, 북한산을 이루는 북한산 전체 능선의 장대한 펼쳐짐, 그리고 화강암의 골기가 드러나는 커다란 바위 봉우리들의 기세 등을 화면위에 응축시켜 생동감 있는 필선으로 표출하는 것 자체를 회화적 목표이자 특질로 삼아 왔다.
필자의 그림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직접 산을 올라 마주대하는 실경을 현장에서 직접 그리는 것만을 고집해 왔으며 그를 통해 실제 풍광을 대하면서 얻는 감동과 기세를 현장의 필치로 생생히 표출하고자 했다. 공간의 깊이와 높이 솟은 봉우리들의 기상, 그리고 꿈틀대듯 산세의 다채롭고 미묘한 변화 등을 생생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실경을 마주대하며 그리지 않고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다. 일반적으로 동양화의 작업은 대부분 실내에서 이루어지고 실경을 소재로 한 구상회화의 경우에도 실경의 사실적 재현보다 실경을 소재로 한 회화적 재구성이나 강조를 통해 회화성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직접 풍광을 대하면서 느끼는 현장의 감동을 현장의 필치로 표출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 왔다.
필자가 그와 함께 중시한 것은 현장의 필치이다. 대상에 충실하면서도 바라보이는 대상의 형상을 화폭에 옮기는 과정에서 한 획 한 획 필치가 드러나도록 했다. 현장에서 필자가 작업한 그림을 바라본 사람들은 “그림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말들을 종종 하곤 한다. 그러한 느낌이 생기는 이유는 현장에서 사물을 보며 느낀 감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필기구를 운용하는 손목의 힘이나 구사하는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처럼 현장 작업만을 고수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도 있어 왔다. 우선 실제 산세의 기운을 느끼고 그림에 담으려 하면서 그릴 대상이 보이는 지점까지 험한 산길을 수 없이 오르내려야만 했다. 큰 그림은 같은 장소를 주말마다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오가야만 하기 때문에 체력적 부담뿐 아니라 산행 자체의 시간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종이를 펄럭거리게 하는 정상부를 지나는 강한 바람도 큰 부담이 되었다.
그 동안 현장의 필치로 담아온 북한산 그림들을 통해 우리의 삶터 가까이 존재하는 명산의 기운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년 1월
一梅軒에서 김석환
첫댓글 꼬옥~ 가서 감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