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맑지는 않았다. 주말에 비소식이 있다는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고,
7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같이 내려가기로 했던 형석이의 전화밸 소리에 단잠을 깨며 일어났다. 최근 한가하다가 일이 바빠서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형석이가 새벽 2시까지 작업을 했는데도 도저히 내려가기 힘든 상황인데 출발시간을 13시에서 14시로 한시간만 늦추자는 전화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일 때문에 승합차를 가지고 있는 형석이가 내려갈 수 없다면 다행이 인원은 많지 않으니 승용차로 내려갈 수는 있겠으나 오가는길 차량 정체로 고생할 걱정을 조금하기는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같이 가기로 했던 세영이, 옥자, 미향이와 혹시 같이 내려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영남이에게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출발시간 변경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문자에 아무런 답이 없어 10여분이 흐른 뒤에 다시 일일이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고 조금 더 누워서 뒹굴면서 만일에 있을지 모르는 밤샘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모양세도 갖추었다.
그렇게 시간은 감쪽같이 흐르고 12시 30분에 집을 나서 같이 만나서 출발하기로 했던 양재역, 양재역으로 향했다. 주말 퇴근시간과 맞물려서 그러는지 조금씩 정체가 있었지만 약속시간 30분 전인 13시 30분에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옥자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양재역 1번출구로 나오라고 하고 실제 밖에 나와보니 꽤나 날씨가 추웠다. 겨울 옷을 모두 정리했다는 아내의 투덜거림에도 멋보다는 따뜻하게 입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기에 그래도 그렇게 많은 추위를 느끼지는 않았다.
10여분 뒤에 옥자가 오고, 세영이와 미향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미향이는 곧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평소 약속을 잘 지키기로 명성이 높은 세영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전화를 걸어도... 약간 불안한 생각에 문자를 보냈다. 출발예정인데 왜 안오느냐고... 세영이 답장 압권이었다. 전철에 승차하고 있는 형에게 자주 전화하면 어쩌냐며 유머스런 답장이 떨렁 핸드폰을 울렸다. 안심이다. 미향이가 오고, 금방 형석이가 도착했다. 그리고 14시에서 1분도 늦거나 이르지 않은 시간에 세영이가 도착했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양재역을 출발하여 양재IC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선운산으로 선운산으르로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6명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5명이었다. 그래도 누군가 뱃속에 한 명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전용차 이용에는 문제가 없단다. 간혹, 비가 오기도 하고 간혹 정체가 되기도 했지만 선운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설레임을 방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참석 예정인 광주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 받고, 전화통화를 반복하며 동창회 참석 흥을 돋구며, 지난 동창회, 살아가는 모습, 일, 자식, 화재를 바꾸어가며 단 1초도 어느누구도 졸지 않은채 휴게소를 들려 민생고를 해결하자는 세영이의 제안도 수용하며 우리는 그렇게 3시간을 달렸던 모양이다. 선운산입구에서 정다운 팬션을 찾기에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이게 누군가 ? 우리의 용두 친구인 종록이, 융석이, 인자가 반갑게 맞이해 줬다. 시용이는 친구들을 내려주고 어머님께 들려온다는 것은 전화로 미리 확인했고, 그리고 이번 동창회의 꽃인 곡다우 친구들 현옥이, 숙희, 정숙이, 종례, 아마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본 친구들이 아닐런지 기억이 가물했다. 정숙이와 현옥이는 초딩때 얼굴 그대로라 아마 다른데서 만났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했고, 숙희는 자세히 보니 옛얼굴이 떠올랐고, 종례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던간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친구였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참, 서울에서 올라온 친구들만 생각하고 있으려니 우리의 동창회 산파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는 문성이가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고 반가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에 어찌할줄을 모르고 있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봤다. 아직도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기 짝이 없는 친구 ! 정말 사랑스런 친구가 아닐 수 없다.
뒤이어 광주에서 각성이가 이끌고온 맛있는 음식과 음식 준비로 고생한 홍연이(누나), 현옥이, 정현이, 금희, 덕임이가 도착해서 멋들어진 사투리로 시골식 인사를 하고, 좀 있으려니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김병무 선생님 입장 ! 큰절로 상면하고, 약간은 수줍어 하시는 듯한 선생님의 인자한 눈빛에 감동먹고 조그만 방을 빙 둘러 앉아 선생님과 짧은, 그래도 어색하지 않은 대화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지 않았던가 ?
송규복 선생님 입장, 다시 큰절로 대 환영, 친숙해 보이는 부산사투리에 역시 세월은 선생님을 속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 이번에는 재현이의 수고로 이현애 선생님 입장, 그리고 우리의 정다운 혜숙이, 성률이, 병순이, 우리가 언제 만났던가 알수가 없을 정도로 금새 친근감이 감들았던 것은 매일 만나는 이웃이나 친구, 선생님 처럼 화기 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더이상 앉을 자리가 없어 식당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계단을 내려서는데 심재호 선생님 입장, 예전 그모습 그체구가 아니었었나 싶었다. 참, 그 사이인가 학창시절에 예쁘기로 소문난 화순이 그 미모 그대로 유지하고 등장 !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고향을 지키고 초원에 살리라를 외치고 있는 복규, 묵묵하게 미소를 잃지 않는 경로...
19시 30분 예약했는데 1시간 정도 이른 시간이라 그랬을까 ? 궁색함으로 인해 자리 이동 결정,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 우리 동창들의 단합과 많은 인원으로 모두 자리를 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식당 전체 접수, 풍천장어, 복분자, 소주, 사이다, 식사 개눈 감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 사이에 왔다갔다 분주한 친구들 식사나 제대로 했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식당의 분위기 한창 돋구어 졌는지 곧장 숙소로 돌아가 대화로 밤을 지새우자는 계획수정이 불가피했던 열기를 알아챘을까 ? 40여명 들어갈 노래방 긴급수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노래방 확보, 그렇게 추운 날씨에 누구하나 춥다는 푸념보다는 꽤나 걸을만 했던 칠흙같은 어둠을 헤치고 노래방으로 고고고... 그 시간은 20시 30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명가수이자 핸섬보이 이세영 마이크 확보 ! 선생님들 소개와 멋들어진 노래 1곡 시범발사 ! 어찌나 즐거워 보이셨는지 선생님들 표정 활짝피어있는 모습에 우리 제자들은 할말 잃고 손발 다 들고 이제는 오빠, 언니, 형 외쳐가며 어깨동무사위는 물론 진한 부루스 누구도 마다하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아직도 어린애로 보여서 였을까 선생님들의 급갹출로 금일봉 전달식 ! 마음만 받아도 감사한데, 선생님들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4월 25일 밤은 흘러가고 있는데... 업무로 참석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을 불살라 버릴 우리의 영원한 반장 정호와 영원한 막둥이 상영이 입장, 춤추고 노래하고 계시는 선생님들 정호를 보고 기 살리고 살리고 하는 사이 정호 노래방 바닥에 무릎꿇고 큰절로 선생님들께 예를 갖추는가 싶더니 마이크 접수하고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구고 이내 밤은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도착했다는 남표와 표수를 기다리며 노래방 연장건으로 설왕설래가 반복되던 사이 다른 팀 예약으로 인해 우리의 노래방 흥은 2010년을 기약하고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노래방의 끝은 노래의 끝이었지 술과 대화의 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방에 돌아와 문성이에 대한 감사패 전달 등은 식순이 이어질때 난 옆방에서 자리를 양보한다는 구실하에 광주친구들이 준비한 머리고기에, 김치, 열무지, 그리고 복규가 준비해왔다는 육사시미를 개눈 감추듯 입으로 입으로...
그 사이에 친구들 하나둘 모여들고 우리 신월, 반월 단합대회를 치루려던 참이었을까 표수 옆에서 감놔라 팥놔라 하다가 이어 피곤해서 자려고 이부자리 펴고 누웠는데 병순이와 표수에게 신종범 맞아 죽는줄 알았다. 그리고 뒷방 술상 치워지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우리 김병무 선생님 순찰 중이셨던 모양이다. 7순을 바라보고 계시는 나도 안자는데 이거 뭐고 하시면서 자리를 잡고 앉으시기에 일어나 앉아 주옥같은 선생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송규복 선생님 그 옆에 술상 급조하여 표수, 경로, 재현, 남표 몇 명 둘러 앉아 있는데...
김병무 선생님께서 말씀을 마무리하시고 자리를 옮기실 무렵 송규복 선생님 계시는 술상에 다시 착석해서 소주 몇 잔 마시고 그렇게 밤이 익어갈즘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을때 드뎌 잠을 잘 수 있었다. 코 고는 소리는 잠을 재촉하는 자장가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못했다.
아침 운동을 제안하며 기상을 외칠때 난 그냥 못들은척 뒤척였을 뿐이고, 몸이 좀 무겁고 목이 좀 칼칼한 상태에서 세수는 엄두도 못내고 김병무 선생님 조기에 귀가하신다는 말씀에 화들짝 놀라 밖에서 몇 장 박았던 것이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싶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친구들 좋아보일 따름이고...
아쉼움으로 뒤로하고 부드러운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김병무 선생님께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시지 못하고 가셨던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고, 송규복 선생님과 심재호 선생님께서 그래도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못하실 만큼 조금 늦으시는 바람에 우리는 숫가락만 구경하며 국을 식히고 있었을 뿐이고...
정다운 아침식사후 청보리 밭 행, 거기서도 몇 장 박았을 뿐이고, 공짜로 나눠주는 된장 하나씩 기념품으로 챙기고, 장자산 올라갈때 형석이와 세영이, 그리고 나는 얼마전에 돌아가신 금희엄마 산소에서 성묘하는 금희 효녀스러움 감상하고 그 뒤 이어지는 모교 방문 ! 세월의 뒤안길에서 서글프게 그 자태를 서서히 감추고 있는 모교 교정, 운동장, 관사, 우리는 이를 너무나 쉽게 이해하는 것이 아닌지 조금 의심한 채 이리저리 둘러보는 마음, 그 속에서 뛰어놀고 같이 호흡하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영상이 크로즈엎 되어지는 가슴찡한 상상도 했었다.
뒤늦게나마 선생님들을 뵙고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결혼식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던 철주 상면하고, 선생님들과 나머지 친구들이 영광으로 굴비정식 점심 식사를 하러가는 것을 부러워만 하며 조기 귀가를 결정하고 우리는 우리는 아쉬운 1박 2일을 거기에서 정리하고, 내년, 내후년, 더욱더 발전된 우리 동창회를 상상하며 서울로 서울로 달렸다. 야간 근무 때문에 조기 귀가가 필요했던 정숙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정숙하기로 소문난 정숙이와 대화를 나놨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참, 밤에 잠을 청하려던 나에게 다정수런 사촌 누이로 다가와 정담을 나누었던 혼연이(누나)와의 대화는 잠을 도망가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고, 오가면서 운전으로 고생한 형석이에게 고마울 따름이고, 많은 수건과 식사를 제공한 종록이에게 고마울 따름이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지대한 공을 세우신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지면을 통해 감사할 따름이고, 우리들의 멋진 만남을 준비하고 음식 등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문성이와 광주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고, 우리의 못다한 동창회는 대망의 2010년을 기약하며 그렇게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참석해서 함께한 친구들 정말 반가웠다. 내년을 벌써 기다려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흐린날씨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던 아듀 2009년 장자 10회 동창회여 영원하리라~
첫댓글 생생한 현장 모습이 아른거린다. 문성이 그리고 광주친구들이 있었기에 우리들 모임이 10년동안 지속되었다는 생각에 감사 감사 너무나 수고했다.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친구들 함께한 시간들 모두가 너무 즐거웠어 내일을 위해서오늘도 펴안안 휴식을 취하자...........
오자 마자 매장에 나가 밀린거 정리하기에 바빴는데 어느덧 종범이가 글을 올려 잘 봤네. 잊지 못할 추억 오래 간직해야지 선생님 친구들 다힘께 홧 팅...
종범씨 글을 읽다보니깐 생생한 모습들이 그대로 떠오ㅡ르구만 ...언제 또다시 그렇게 재미있고 선생님과 아무격식없이 어울릴수 있을까???? 너무나 즐거웟고 뿌듯한 1박2일 이였다 ..고로 문성이 홍연이 현옥이 고마웠고 수고했다고 어제도 문자로 보냈지만 다시한번 보내고싶다 ..
함께해 행복한 시간 만들어준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도 감사하고 또 내년을 기다립니다 . 기다림이란 행복이라 생각하며......
상세한내용의글너무잘봤다함깨하지는못했지만어느정도의그림이떠오르네 고생들많이햇고나도언제가시간되면같이하고싶다
미애야 반가워 이번에 같이하지는 못했어도 다음에 함께 하기를 기대하고 있을께.
아따 ~ 종범이머리좋은줄 알았지만 글솜씨도예사롭지안구먼 잘읽었다 고생했고 아들놈 자사고입학 다시한번추카추카한다 잉잉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