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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픈만큼 사랑합니다
글쓴이: 작가 노숙 김영진
두려워하지말라 내가 너와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 나는 네 하나님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1절 )
동남아 오지의 슈바이처로 불렀던 박누가 선교사가
2018년 8월26일 58세의 나이에 천국에 갔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습니다 .
천지를 만드신 위대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아들로
보내셨고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짐진자들을
위하여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통을 당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지만 3일만에 부활하여
거룩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기도교인에게
증명하셨고 저의 생각에는 박누가 선교사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 존경하는 분이셨기에
박누가집사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하늘의 별이 하나 떨어져 충격이 크고
"박누가 선교사의 신앙간증 ,아픈 만큼 사랑한다 "
글을 쓰게 되었지만 읽을때 마다 애통한
마음에 눈물이 나오는것은 무엇때문일까요
박누가 선교사는 외과의사로써 국내에서
편하고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는데 쉬운
삶을 버리고 예수께서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걷기위하여 1989년 필린핀으로 선교활동을 갔습니다
낙후된 필린핀에도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오지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병들어 죽거나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
의료 선교도 하나님의 사역이기에
지난 30년간 몸이 고되어 과로로 인하여
의사 자신이 병들어 암이 걸려 국내서
수술받기도하였고 재발하여 죽음이 다가옴을
알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아픈 만큼 사랑한다 "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선교 봉사활동을 열심히하여 죽음앞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살신성인(殺身成仁)입니다 .
길지는 않았지만 불꽃같은 삶을 사신
박누가 선교사는 외과전문이로
윤택한 삶을 살수도 있었지만 그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의사였지만 수많은 질병들보다
하나님을 모르는걸 가장 큰 병으로 여겼으며
진료는 자신이 하더라도 치료는 하나님의
몫이라고 확신했던 신앙인이었습니다 .
박누가 선교사가 필린핀에서 의료 선교를 시작한건
1989년이었고 그는 필린핀 오지마을
바기오 북부의 산악지대를 하나님의 사역으로
선택하였습니다 .
그곳은 필린핀 바기오에서 1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닿을수 있는 오지였고 누구도 오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이 선교사님의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후 그는 필린핀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 오지만
찾아다니며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고 예수님의 아름 다운 향기를
전하고 다녔습니다 .
필린핀에는 가난으로 인해 간단한 질병에도
생명을 잃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박누가 선교사님은 그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
그는 의사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안정적이지만
조연으로 사는것보다 자신이 절실히 필요한
필린핀에서 가난한 주연으로 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박누가 선교사는 낡은 대형버스를 이동병원으로 개조하여
의료사각지대에서 수고하고 짐진자들에게
치료를 해주며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위생 환경이 조금만더 좋았더라도 약만 꾸준히
먹었서도 해결될 간단한 문제앞에서 무너지는
필린핀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선교사님은
도시부터 산골 오지까지 쉬지 않고 다녔습니다 .
주술과 닭피에 의존하며 병원에갈 차비조차 없었던
필린핀 오지마을 사람들에게 그건 사막의
오아시스같던 존재였습니다
선교지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던 그는
그후 기쁘게 선교지를 누볐습니다 .
의사로써 누릴수 있는 부와 명예를 포기한채
산속의 험한길을 걸어야 닿을수 있는
마을도 아슬아슬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는
동네도 그에겐 그저 꼭가야만하는 곳이였습니다
그렇게 박누가 선교사는 여행가는 마음으로
소풍가는 기분으로 30년간 선교지를 누볐습니다
2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서 남보다 자신을
걱정해야 했던 상황에서도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먼저였으며 그의 헌신과 봉사는
사랑 그자체였습니다 .
박누가 선교사에게도 그누구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지만 그는 가족을 돌볼수 있는
겨를이 없었습니다 .
가족과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채 필린핀의
불쌍한 영혼들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의 주머니에는 물질이 쌓을 날이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
적은 돈이 생기면 얼른 빵을 사서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약품을 살만큼 좀 넉넉하게
물질이 생기면 어느 틈엔가 진료버스를
몰고 사역지를 향했습니다 .
병원을 찾는 필린핀 현지인들은 무료로
치료해 주었고 외국인들에게는 의료비와
청구서 대신 현금통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렇게 살게해주시는 주님께 항상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
박누가 선교사는 분명 의사였지만
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오지 생활을 하시면서 1종 전염병은 모두
걸려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댕기열 췌장염
담석증 당뇨등등 그걸 다걸려셨습니다 .
박누가 선교사는 하나님께 모든것을 바치며
살았는데 왜자꾸 이런 병들을 주느냐고
투정을 부리며 기도를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시고
1종 전염병 , 2종 젼염병 ,3종 전염병 등
모든병을 주시는 것이였습니다 .
하나님은 모든것을 계획하시고 아주사소한
것들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시지만 한동안
하늘의 뜻과 계획을 찾지 못할때도 있었습니다
더좋은 건강을 주고 더 강건하게하여
복음을 전할수 있도록 해주셔야하는데
자신에게 속병을 주는것은 의아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박누가 선교사는 왜 이렇게 질병을 주시는
거냐며 새벽기도때마다 계속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선교사님에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너는 나의 뜻을 깨닫지 못하니.너의 의사로써 실력이
전지 전능한것도 아니고 너의 옆에 의사 동료가
있는것도 아니고 너가 오지를 다니며 의료장비를
가지고 다닐수 있는것도 아니지 않니 .
청진기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어떻게 그들의 병을
알고 진료를 할수 있겠니 .
니가 아파봐야 니가 먼저 아파봄으로써 그들에게
다가 갈수 있지 않겠니. "
실제로 박누가 선교사는 의료 선교를 다니면서
오진이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
그가 진료를 함으로써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
12만 9천8백 오십명을 진료하면서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
박누가 선교사는 선교를 다니면서
10번의 죽을 고비가 잇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힘으로 구해주셨습니다 .
췌장암에 걸린적이 있었고 코브라에 물린적도
있었으며 강도에게 칼을 맞은적도 있었습니다
한날은 필린핀에서 한국으로 갈려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택시가 잡히지 않았고
공항까지 1킬로미터를 남겨두고
차가 두번이나 퍼졌다고 합니다 .
결국 박누가 선교사를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교팀원들은 5분차이로 모두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박누가 선교사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선교대원들을
집에 초대해 먹을것을 대접하면서 텔레비젼을 켜는데
타려던 비행기의 추락사고를 전하고 잇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온갖 질병을 경험하게하고
9번의 죽을 고비에서도 구해 주셨는데
마지막 10번째 이번엔 그에게 위암 말기가
찾아 왔습니다 .
선교사님은 "또 왜그러시냐"며 하나님께
그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 위암말기는 너무 하지 않습니까 ?
이건 그냥 죽으라는 거잖아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지금은 안돼요
아직 할일이 많습니다 "
그렇게 매일 매일 간절히 기도하자
얼마후 하나님께서 또다시 응답을 주셨습니다
"퇴원만 하면 너는 훌륭한 간증자가 될것이다 "
박누가 선교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0.1%를 100%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면 필린핀 죽으면 천국 '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담대해 졌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6개월 진단을 받았던
박누가 선교사의 위암 말기를 치료해 주었을 뿐만아니라
그후 수많은 교회 간증집회에서 목사님을
초청하셨다고 합니다 .
대한민국에 수많은 의사들이 있고
그중에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그중에 사역을 감당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선교를 다니시는 분들도 계실것입니다
하지만 10번의 죽을 고비를 겼으면서도
봉사와 사역으로 평생을 바친 의사는
박누가 선교사밖에 없을 것입니다 .
하나님은 박누가 선교사를 그렇게 쓰신것입니다
그리고 박누가 선교사는 이모든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주관하에 있었다는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계셨습니다 .
박누가 선교사가 위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10년만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박누가 선교사는 그이후로 14년을 더사셨고
그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으며
2018년 8월 2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박누가 선교사의 죽음을 알게된 필린핀 현지인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
아이에서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큰절망과
슬픔에 잠겼습니다
평소 감정 표현이 전혀 없었던 이들도
모두가 큰슬픔과 절말에 잠겼습니다
평소 감정표현이 전혀 없었던 이들도
박누가 선교사가 어떤 분이셨는지 묻는 질문에
그들은 울음부터 터뜨렸습니다
그가 필린핀에서 보여준 사랑과 그가 뿌린
예수님의 아름다운 향기는 영원히 그곳에 남아
복음과 구원의 도구로 사용될것입니다
KBS -1 TV 인간 극장
《 아픈 만큼 사랑한다》
7천여 개의 아름다운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필리핀
감탄을 자아내는 이 비경 이면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그들에게
다가간 한국인 의사가 있었으니...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필리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를 포기한
박누가(53) 씨! 평범한 외과 의사였던 박누가씨가
필리핀 사람들의 페스탈로치가 된 데는
우연히 참여했던 해외 의료 봉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귀한 생명을 구하는 경험을 하면서
이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한 것!
그 후, 필리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오지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를 해온 지 2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는 그에게
외로움보다 더 큰 어려움은 건강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췌장암 초기 단계에서 수술을 한 후
7년 전엔 위암 수술을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간경화에 당뇨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는데...
병마와 싸우며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더 이해하게 됐다는 박누가 씨...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필린핀을 사랑한 그남자 외과의사 박누가씨
끊어질 듯 이어지는 7000천여 개의 섬,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바다...
화려한 비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섬나라, 필리핀!
하지만 이곳에는 극심한 빈곤과 질병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 땅의 아픔을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필리핀 곳곳의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다니며
생명을 살리고, 아픈 이들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박누가(53) 씨가 그 주인공.
외과 전공의였던 그는 우연히 참여한 해외 의료봉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됐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구하는 경험을 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그 후, 여러 번의 해외 봉사를 통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
필리핀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게 됐는데....
결국 모든 부와 명예를 버리고 필리핀으로 향한 박누가 씨.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아픈 몸이기에 아픈사람들을 더사랑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뜻밖의 시련.
1992년에 초기 단계에서 발견된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2004년에는 위암 판정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았으며,
설상가상 2009년에는 간경화에 당뇨 판정까지 받아
결국 그는 남의 건강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생명의 불씨가 꺼질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필리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는데....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2개월 시한부였던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지를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활기에 넘치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가 갈 길에 대한 확신을 더 갖게 됐다.
또한 동병상련이라고 내 몸이 아파 보았기 때문에
아픈 사람들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
가족의 희생이 있었기에 선교활동 할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한 살 배기 아들을 안고 필리핀에 첫 발을 디뎠던 박누가 씨.
재정적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겠다며
남편의 뜻에 적극 따라주었던 착한 아내였다.
하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4년 후엔 작은 아들까지 태어났고 아이들 교육문제가 큰 고민거리가 되자
아내는 모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는데...
하지만 박누가 씨의 결심은 단단하고 확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 끝까지 남기로 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간 가족들은 그가 필리핀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병을 치료하길 원했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도 그의 뜻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때 더욱 생명줄이 선명해지는
남편, 그리고 아빠라는 것을!
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
모아둔 재산과 지인의 도움으로 구색을 갖출 수 있었던
그의 병원은 병원에 갈 차비조차 없었던 많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렵사리 버스 한 대를 마련하여 50여개의
오지마을로 의료 봉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산 속의 험한 길을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마을도,
아슬아슬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는 동네도 그에겐
그저 꼭 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첩첩산중 오지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고 희망을 전할 수만 있다면
약을 짊어지고 맨발로 산을 오르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필리핀에서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
건강을 돌봐주는 참다운 의사로 살겠다는
그의 열정 앞에 세상의 욕심과 번뇌는 그저 작고 보잘 것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단순하고도 건강한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선하면서도 개운한 바람 한 자락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극장 아픈 만큼 사랑한다 그 후
" 지난 2012년 1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필리핀 사람들을 찾아서
의료봉사를 하는 외과의사 박누가(58) 씨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필리핀 오지를 누비는
그는 사실 남의 건강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의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시작한 의료봉사가
어느덧 27년째.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자 골짜기
무의촌을 직접 찾아다니며 아픈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박누가(58) 씨. 그러는 동안 정작 자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줄도 몰랐다고 하네요.
▶[인간극장 아픈 만큼 사랑한다 그후]
안 아프고 사랑하면 안 될까요?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간염 등 오지를 다니며
십여 가지 넘는 질병을 직접 앓았던 그는 12년 전,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아픈 사람을 더 사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다네요.
췌장암과 두 번의 위암 수술, 그리고 간경화와 당뇨까지…
병마와 싸우며 아픈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는
누가 씨의 이야기는 그해 겨울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고 합니다.
시한부였던 그에게 12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금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위암 4기, 병원에선 남은 시간이 6개월 뿐이라지만
그는 오늘도 “메디컬 체크 업”을 외치며 벽촌 오지의
아픈 사람들을 찾아간다고 하는데 아픈 만큼 사랑했기 때문일까.
필리핀의 많은 사람들도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 아파한다고 하네요.
[인간극장 아픈만큼 사랑한다 그후]
만약 내가 다시 필리핀에 오지 못한다면
30년 가까이 다닌 필리핀 오지 마을만 50여 개.
차로 반나절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보니 늘 출발은 새벽이라네요.
병원 진료가 끝나는 대로 약과 간단한 수술도구를
챙기는 것도 누가씨의 몫이었다.
5년 전엔 누군가 한 명 있었으면 했던 누가씨 곁에
지금은 든든한 조카 김주희(32) 씨가 있습니다.
주희 씨가 병원 살림을 맡아주니 누가 씨도 마음 놓고
치료를 받으러 한국을 간다고 합니다.
누가 씨는 항암치료를 위해 필리핀을 떠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필리핀 사람들은 누가 치료할 것인가
항암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고,
열이 오를 때마다 그는 걱정부터 앞선다고 하네요.
▶[인간극장 아픈 만큼사랑한다 그 후]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
5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병원 문턱도 못 넘는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24시간 병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장거리 오지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에도 제대로 쉴
곳조차 없었던 좁은 병원은 증축 공사를 하는 중이고 마무리 단계입니다.
아픈 사람을 더 많이 치료하기 위해 입원실도 만들고,
이제야 제법 병원다운 모습을 갖추는가 싶어 설레던
그에게 지난 5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위암이 재발한 것입니다.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에 누가 씨만큼이나 가족들도 힘들었다고 하는데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누나들까지 가족 모두가 필리핀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에 전념하기를 바랐다고 하지만
누구도 누가 씨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항암주사를 맞고 퇴원하는 곧장 누가 씨는
누나들 몰래 필리핀으로 떠났답니다.
누가 씨 어머니와 큰누나, 그리고 큰형까지 모두 암과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터라 누가 씨 누나들은
동생마저 잃게 될까 봐 눈물부터 글썽였다고 합니다.
암 투병으로 고생하는 누가 씨를 위해 누나와 매형은
직접 유기농 텃밭을 가꾸고, 된장을 만들어
필리핀에 보내는 정성을 쏟는다고 하네요.
▶[인간극장 아픈 만큼 사랑한다 그 후]
아파도 행복합니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오로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시작한
의료 봉사. 산속까지 찾아와 무료로 진료해 주는 이방인 의사를 위해
오지 사람들은 코코넛과 파파야로 마음을 대신한다고 하는데
착하고 순수한 필리핀 사람들을 보며 그는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난다네요.
아파보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됐다는 누가 씨는
아파도 행복하다고 굳게 마음을 먹는다고 합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정작 자신의 치료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먼저인 그는 오늘도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데
인간극장 아픈 만큼 사랑한다 그 후편에서
필리핀에서의 박누가의 삶을 인간극장에서 만나본다
요한 계시록 2장 8절~11절
서머나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너가 부요한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부요한이라는 말은 富(부자부) 요(넉넉할요)
“재물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넉넉한 사람을 말하고
부요한은 부유한의 동의어입니다 .
폴리캅은 기원후 69년경 소아시아 서머나
(지금의 터어키)에서 태어났습니다 .
그가 태어 났을때는 로마제국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로 주님의 제자들이 거의 순교하였고
제자중 사도 요한만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므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을때 였습니다 .
폴리캅은 일찌기 기독교로 개종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
어릴때부터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주님을 뵌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였습니다 .
그는 종종 주님이 행하신 기적이나 가르침들에 대해서
자기 생도들에게 상세히 들려주곤하였는데
그럴때는 그는 항상 이이야기는 주님을 직접본 사람들로부터
들은것이라는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으로 부터
반은 신앙과 전통을 전승하여 가르쳤습니다 .
또한 그는 사도요한에의해 요한 계시록 2-3장에
언급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중 하나인 서머나 교회의
감독직에 임명되었으며 20여년동안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
폴리캅은 사도요한의 제자였고 서한나 교회의
감독이었지만 로마 황제 트리아스가 기독교를
박해할때 폴리갑의 나이는 기원후 155년 86세였습니다
화영틀에 폴리갑 감독을 묻고 이때당시 총독이
폴리갑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데
"이제라도 예수를 안믿겠다고하면 살려 주겠다
예수를 안믿는다고 말만하면 풀어줄테니까
그다음에는 너가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하라 !"
라고 말을 합니다 .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조건 이라면 얼마든지
"하나님 제마음 아시죠 ?"라고 일단 살고자
보려고 이렇게 타협 할수도 있을것입니다 .
그런데 86세 폴리갑은
"86세 평생 주님은 나를 한번도 서운하게 한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주님을 서운하게 한단 말입니까 "
라고 하면서 화형을 당하여 순교 하셨습니다 ,
복음성가 ;오직 주안에서 영생
하리
작사.작곡; 작가 노숙 김영진
저들녘 장미는 보기는 좋은데
꽃잎이 지면 나는 슬퍼라
창조주 하나님 홀씨를 뿌리니
강바람타고 솔솔 민들레 피었네
강가의 갈대는 저리 흔들리는데
주님꽃 민들레 믿음만이 있구나
우리주 하나님
내손 잡아주시고
예수님 보혈(寶血)로
우리죄 사하여 주셨네
주안에 있는 나
무슨 근심 있으랴
오직 주안에서
영생(寧生)하리
<주>(1)보혈(寶血);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위해 십자가
에 흘렸던 보배로운 피
(2)영생(寧生);주님안에서
평강을 바라는 작가 노숙
김영진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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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저의 할머니는 1901년에 태어나 1987년에 돌아가셨는데
저에게 "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
은혜를 모르고 주인을 배신한다 "고 말씀하신게 기억이납니다 .
김천 제일 교회에 20년 신앙생활하였는데 근래에
황병학 집사 (김천 시의원 4선, 현 김천시의회 의정 동우회 회장)
와 대화하는모할마씨 (권사했는지 안했는지 알수는 없음 )와
주일날 김천 제일 교회 중식이 끝나면 식당에서 대화를
자주 나누길래 모할마씨에게 타인에게 얻은 비타민드링크도
주고 과자도 자주 주고 하였는데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귀로 들어보니 아주 영영가도 없는 쓸데없는 헛소리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려고 저같은 다늙어 빠진
영감 작가가 돌팔이 신도인데도 "집사님 "하고 깍듯이 불러 주듯이
모 할매도 나이가 많으니 인의군자 황병학 회장이 존중차원에서
"권사님"하고 불러 주는것입니다
그 할마씨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위장약 한개 사갖고 만병통치약이라고 홍보하고
자신이 갔던 김천 모한의원이 무슨 병이든 고치는
병원으로 홍보하는것을 보고 쓸데없는 잡소리라
생각하고 귀를 닫고 듣지 않습니다 ,
(2) 병은 사람의 체질에 따라 어느약이 잘들을수도 있고 안들을수도 있고
병명이 뭐냐에 따라 처방전이 다른데 위장약이 만병 통치약이 될수는 없습니다 .
그리고 그 할마씨가 가는 김천 한의원이 아무나 병도 고치는 의술이
있는것은 아닌데 최고라고 만능 주치의가 될수도 없습니다 .
큰병원은 세밀하게 검사하는 의료 장비가 있고 환자도 많고 대우도
좋기에 실력 있는 의사는 큰병원에 근무하고 지방 촌동네병원으로
갈수록 의료장비도 부족하고 보수도 적기에 의사실력이 약하다고 보면됩니다 ,
나는 비렁뱅이 영감이기에 비타민드링크와 과자를 지인에게 얻어서
김천 제일 교회에 갖고가서 저의글 독자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할마씨는 먹는것에 환장 들렸는지 " 혼자 다먹고 나는 왜 안주나 ?"
하여 그냥 웃고 말았는데 나이가 몇살인지는 모르지만 나보다
더 늙었기에 정신도 흐려질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이해는 되었습니다.
(3) 저는 타인에게 큰 은혜든 작은 은혜든 받으면
" 주여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고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는 배려에 감사인사를 합니다 .
저도 검은 머리 짐승 인간이지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배신행위를 하여 욕을
먹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절대로
경우에 어긋나는짓은 하지 않습니다 .
2025년 9월 27일 김천 제일 교회가 설립된지
72주년이라 오전 예배는 조병우 원로 목사가
『교회의 4가지 얼굴 』에 대하여 설교 하셨고
오후 예배는 장동우 담임 목사가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 』에 대하여
설교 하셨습니다 .
목사의 설교 내용은 작가 내가 글을 쓰는데
참고 자료가 되기 때문에 두쪽 귀를 열어두고
필요하면 핸드폰으로 녹음도 합니다 ,
나에게 과자하고 비타민 드링크 얻어 먹던 할마씨가
북한 5호 담당제도 아니고 설교 마치고
신도 들이 많은 앞에서
"핸드폰 만지지 말고 눈깔 똑바로 뜨고 설교 들어 !!"
하여 너무 황당했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고
"남이야 교회서 뭐를 하든 무슨 상관이야 ?"
하고 큰소리로 항의하니 그할마씨는 도망을 갔습니다 .
(4) 김천 제일 교회 1층로비에서 장동우 담임목사에게
인사를 하면서 " 명강의 잘들었습니다"라고 예를 표하였고
그할마씨를 1층 로비에서 다니 만났는데
신도들 앞에서 명예 훼손한데대하여 화가 안풀려
" 장동우 목사 설고한것 다외우고 있는데
한번 이야기 해볼까 ? "
하고 큰소리로 말하니 신도들이 쳐다보았고
그할마씨는 도망쳐 집으로 갔습니다 .
내가 볼때 그할마씨는 장동우 목사의
설교 내용 제목도 모를것 같은데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탓하는가 봅니다
2026년 9월 27일 오후예배에서
다늙어 빠진 영감 작가와 그 할마씨가
하나님의 동산 이라 일컬는 신성한 교회에서
서로 큰소리 내어 다투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두인간 모두 개로 보면 됩니다 .
임신태집사에게
" 그 할마씨가 예배후에 왜 나한테 먹을 것 주는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고 소리를 지르며 지랄을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고 말하자
" 그할마씨가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 "
고 하였습니다
나이 80살도 안된것 같은데 얼마인지
모르지만 성경 말씀에 근거 없이 남을 비판하면
그사람 또한 비판할것이라 하였으니
앞으로는 예배 시간에 목사 설교나 열심히
듣고 남을 의심하거나
(5)남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았
좋겠습니다 .
아내에게 교회에서 오후 예배 마치고
그 할마씨 이야기를 했더니
"정신이상자 일수도 있으니 먹을 것도 주지말고
상대를하지 마라 !"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처녀때 권사이신 장모님따라
교회 다녔지만 결혼후 교회에 다니지 않는데
이방인으로 장세강 집사 같은 은혜를 베푸고
배려 하는 착한 마음을 가진 신도보고는
"그분이 구세주다 , 경배하라 !"
고하지만 인간 쓰레기나 정신 병자보고는
상대하지말라고 저에게 조언합니다
인간은 늙을수록 추즙어 지고 몸은 기계가
녹이 슬어 말을 안들으니 모든 양기가
입으로 올라가 쓸데없는 헛소리도 하는것입니다 .
심하면 치매 혹은 정신병자로 판정하여
요양원을 가거나 정신 병원으로 가서
운명이 다하면 송장 치게됩니다
진정한 기도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지만 돈에 환장 들린 마구니는
죽음이 다가올수록 더끌어 모으려고 생쇼를 하고
늙어 정신이 흐려진 기독교인은 교회 나오면
성경대신에 눈에 벌개 먹을 것이나 밝히고
은혜를 받고도 원수로 갚는 노망끼가 다분히
있어 스트레스 엄청받을수 있으니상대를 하지 않는게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
(6)나는 사회든 교회든 나가면
성경말씀에 " 남을 칭찬하고 비난하지말라 "
고하여 늘 남을 칭찬하고 조언은 주어도
비난하지 않는데 왜 은혜를 받고도
나의 뒷통수를 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고
늙어 병적이라면 어쩔수 없지만 아니라면
성경 열심히 읽고 하나님의 말씀데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내가 남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비판을 하여
대가를 치룬다면 조언으로 받아 들이지만
평소 교회에서 모할마씨에게 은혜 베풀었는데
어제 교회에서 뒷통수를 얻어 맞으니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오르고 아내는 나보고
"재수 없어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고 잊고
절대로 그런 개같은 인간 하고는 상대도 하지마라 "
고 조언하는데 예수께서는
"누군가 나의 오른쪽 빰을 때리면 왼쪽 빰을 내어주라 "
고 성경 말씀에 씌어 있는데 목사도 이런 성경 말씀은
지키기가 어렵고 예수님이 왜 거룩하고
기도교인이 존경하고 경배하는지 알것 같습니다 .
세계 4대 성인은 예수님 , 부처님 , 공자 , 소크라테스인데
속세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가기란 어려운데
건강 잃으면 모든것을 잃기에 현명하게 살아야 합니다
(7)후한말 방통은 179년 출생 중국 형주 양양사람으로
제갈공명 ,서서와 친구사이로 중국 삼국지에 나옵니다
제갈 공명은 와룡이고 방통은 봉추인데
사마휘가 유비에게
"와룡 봉추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수 있다"고
할만큼 뛰어난 귀재입니다
방통은 적벽대전에서 연환계로 장간을 속여
조조진영에 잠입하여 조조군은 북방민족이라
육지 전투는 잘하지만 배에서는 배멀미 때문에
잘못한다는것에 대하여 배를 쇳슬로 묶어면
육지와 같이 잘싸울수 있다고 속였고 적벽
대전에서 촉오 동맹군 5만3천명이 조조군
80만 대군을 불화살로 이기는데 기여하였습니다
(8)방통은 오한 손권진영 주유 대도독이 죽어 문상을
가서 제갈 공명을 만났고 오한 손권은 방통보고
" 그대의 재주가 주유에 비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라며 은근히 비교하자 실망한 방통은 거만하게 대답했고
손권은 그의 볼품없는 외모와 태도에 질려서
그를 단칼에 내쳤습니다.
방통 역시 손권이 본인에 대해 성의 없이 대답한 걸
보고 실망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고,
노숙은 방통을 따라와서 사과하다가 그의 태도과
인간성을 떠올리고는 애초부터 손권을 따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에 방통이 그렇다는 반응을 보인 뒤 조조에게
가볼까 한다고 일부러 농을 던지자
노숙은 화들짝 놀라서 차라리 유비를 섬기라고
권유하여 동오와의 화친을 다져달라고 부탁합니다
(9)방통도 흔쾌히 받아들인 뒤 노숙의 추천장을 받고
유비에게 갔는데 방통이 얼굴이 추하고 비렁뱅이
같아서 내쳤으나 제갈 공명이 다시 추천하여
방통은 유비의 휘하로 들어갔지만 유비 역시 방통의
추한 외모를 보고는 그에게 뇌양현이라는 작은 마을의
현령 지위를 맡겼는데, 매일 술만 퍼마시고 일을하지
않는다고 소문이나서 유비는 장비를 시켜 방통에게
다녀오라고 합니다 .
장비가 뇌양현 현령 방통을 찾아갔는데 대낮부터
술을 먹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
장비는 방통을 깨워 "일은 안하고 3개월간 술이나
퍼마시고 노는데 눈깔 똑바로 뜨고 일해라
그렇지 않으면 나의 단칼에 죽을줄 알아라 !"
라고 협박하자 방통은 " 껄껄껄 "웃으며
"현의 3개월치 일을 반나절만에 끝내겠습니다 "
큰소리를 치자 장비는
"만약에 너가 거짓말치면 나의 칼에 죽는다 "
하였는데 방통은 현의 3개월치의 일을 반나절만에
완료하여 장비는 깜짝 놀랬고 유비에게 보고되어
제갈 공명과 함께 유비의 책사가 되는데 군사 중랑장
까지 오르게 됩니다 .
(10)적벽대전후 유비는 형주를 얻었고 방통은
유비에게 조조군을 막기위해서는 촉으로 들어가
한중을 취해야 한다고 하였고 유비를 대동하고
익주로 들어가게됩니다 .
214년 낙성을 공격하던중 낙봉파에서
유시의 화살을 수차례 맞고 36세에 전사합니다 .
방통 얼굴이 추즙고 비렁뱅이라고
동오의 손권도 촉한의 유비도 무시당하였는데
유비가 촉의 낙성을 공격하기위하여
낙봉파로 먼저 들어가려는것을 방통이
자신이 들어가려고 말렸고 낙봉파에는
유비군이 올줄 알고 낙봉파에서 유시군이
매복을 하고 있었는데 방통이 낙봉파에
먼저 들어가 죽음으로써 주군 유비를 살렸고
유비는 방통의 죽음에 대하여 울면서
안타까워 했습니다 .
기독교인이 주님을 경배하듯이 외모에 상관없이
동료도 존중하여 인간관계를 좋게하여야합니다 .
경북 문경 촌동네는 내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고
경북 김천으로 이사를 와서 인생의 대부분을 김천에서 보냈기에
어머니의 품속 고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026년 9월 22일 이철우 경북 도지사는 경북 문경시 점촌 전통 시장을 찾아
김학홍 문경 시장과 함께 장바구니 물가를 살피고
k -식품을 반도체 다음으로 육성하겠다하였고 장을 보고 있습니다
이철우 경북 도지사는 김천 감문이 고향이고 국회의원
시절 김천 제일 교회 다녔고 거리에서 작가 노숙 김영진을
만나면 " 너 어디가나 ?"하면서 친구의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다늙어 빠진 영감탕구 저는 배낙호 김천 시장의 홍보대사인데
김천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라면 배낙호 김천 시장은 김천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고 이철우 경북 도지사는 경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기에 평행선을 걷기에 견우와 직녀처럼 만날수도 없습니다 .
김천 송언석 국회의원 , 경북 이철우 도지사 , 배낙호 김천 시장은
김천 배낙호 김천 시장 고향 교동 연화지에서 도원 결의를 맺은
의형제이고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면 비렁뱅이 영감 작가 노숙 김영진은
하나님을 섬긱고 예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철우 경북 지사는 2026년 5월 27일 박근혜 전대통령과 함께
경북 구미 박정희 생가를 방문한뒤 떡을 먹고 체한줄 알고
손가락을 따는 위장 터러블 정도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후 저녁 행사중 다리가 떨리는 증상이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
서울에 좋은 병원에 가라고 권유하였지만
경북 지사가 자기 지역을 버리고 다른데
가 있으면 안된다며 경북 대학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7월은 조심하고 9월이면 정상되어
문경시 점촌동 전통 시장을 찾아 물가를
점검하기도 하였습니다
10월에는 APEC정상 회담 준비로
경주에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인기가수 가수 진성도 혈액암을 극복했는데
이철우 경북 도지사의 쾌유를 기도합니다
저의 글 읽는 김천 독자는 정치인에서 남여노소 서민까지
무료 카톡 602명이고 다움 운영자가 저의 글을 다른 인기 신문하고 동등하게
다움 (daum) 주요 페이지에 올려주고 다움 (daum) " 바다새 노숙 문학카페"
회원 2833명이 읽는데 무료 카톡 독자중에는 김천에 살고 있는
배낙호 김천 시장 선거 사무소 하준호 본부장 (김청 시청 행정 비서 출신)
과 김호권 회계사가 가장 독해력이 강하고 동시 같은 시간에
감사의 답변글을 보내 온다고 칭찬하였는데
김호권 회계사는
"김영진 작가님의 글은 대단한 자료들이고 작가님의 대단한 열정과
신념이 엿보이는 글이라 세심하게 읽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
라고 하였고
하준호 본부장은 겸손하여
" 별말씀을 다하십시다 편안한 밤되세요 "
라고 하여 저의 글이 쓰레기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았고 허위가 아닌 진실로 객관적 사실에의한
주관적 조미료 타는 수준으로 글을 더잘 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칭찬을 조언으로 받아 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