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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4일 주일 오전 오후 예배 기도.docx
오전 설교(삼하 9:1-13)
아마 영국 왕실이 국빈을 위해 베푸는 식탁은 우리 시대의 지상 최고의 만찬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비교되지 않는 지상과 천상의 최고의 만찬이 있다. 왕이신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만찬이다. 바로 성찬이다. 예배와 성찬 가운데 우리가 왕의 상에서 먹게 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을 다시 확인하여, 우리 속에 구원과 화목의 역사를 갱신해야 한다.
설교의 요지: “나는 왕의 상에서 먹게 된 왕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
대지 1: 우리는 어떻게 왕의 상에서 먹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 때문이다.
삼하 9장 바로 앞 8장에 보면, 다윗은 블레셋, 모압, 암몬과 같은 주변 나라를 평정하고 확고한 기반을 잡는다. 이방 나라를 정복했을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행정과 종교, 그리고 군사적인 체제도 새롭게 정비하여 출범시켰다. 요압이 군대장관이 되고, 사독과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되었다. 이렇게 안정과 번영을 누린 이유는 삼하 8:14절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공의와 의로 다스렸다 (삼하 8:15). 여유가 생긴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있는지 살펴본다. 요나단과 맺은 약속을 지키고 은총 (헤세드)을 베풀기 위해서 이다 (삼상 18:3-4).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중 한명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는 므비보셋인데 두 발을 모두 저는 장애인이었다. 므비보셋이 5살 되었을 때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 (삼하 4:4). 이 때 므비보셋은 약 20대 초반으로 사울 가문의 마지막으로 남은 자였다 (삼하 9:12). 어떤 의미에서 그는 다윗의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므비보셋의 뜻은 “수치를 호흡한다” (breathing shame)이다. 그는 육신의 장애로 인해 여러 가지 수치와 불이익 그리고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일어설 수 없고 여호와를 경배하는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참고. 레 21:19). 이런 므비보셋은 길르앗에 있는 ‘로 드발’이라는 도시에 있던 마길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로 드발이라는 도시의 뜻은 “아무것도 없다”이다. 이것도 므비보셋의 비참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만나 “내가 사울의 밭을 다 너에게 주고 너는 내 상에서 먹으라”고 말한다. 이렇게 기대하지 못한 복을 받은 므비보셋은 “죽은 개와 같은 사람을 돌보아 주십니까?”라고 철저히 낮추어 말한다. 다윗은 사울의 종 시바에게 명령한 대로 다 시행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울의 집안을 돌보던 시바는 아들이 15명, 종이 20명이나 되었다 (10절). 시바는 사울의 집의 재산을 관리하던 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권력을 가진 자로서, 므비보셋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삼하 16:1-4절에 보면,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도망 다닐 때, 시바가 다윗에게 음식을 많이 준비해서 다가온다. 다윗이 시바에게 므비보셋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물으니, 시바가 대답 한다: “므비보셋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다윗은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재산을 다 주고 만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삼하 19:24절에 의하면,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이 종결된 후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 올 때 므비보셋이 마중 나간다. 그는 발을 맵시 내지 않았고 (씻지 않았고), 수염도 깍지 않았고, 옷을 빨지도 않았다. 므비보셋의 모습은 남루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의 고난에 동참했던 것이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말한다: “나의 종 시바가 당신을 따르려던 나의 계획을 무산시켰나이다.” 이 때 다윗이 말한다: “시바와 밭을 나누라” (29절). 다윗은 시바를 불러서 자신과 므비보셋을 속인 것을 따져 묻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므비보셋의 진술을 확신하지 못했기에 타협점을 찾아서 재산을 반씩 나누라는 조치를 취한 것 같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불완전함을 본다. 분명히 시바가 거짓말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강탈한 것이 맞다. 하지만 므비보셋은 “왕이 무사히 궁으로 돌아 온 것으로 만족하오니, 시바에게 다 주시옵소서”라고 말한다. 므비보셋은 자기 주인인 다윗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재산은 두 번째 문제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므비보셋은 오직 다윗의 은혜로 왕의 상에서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그는 수치를 겪고 사람들의 속임과 멸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왕의 자리에 앉아서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다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통일 이스라엘의 강력한 왕 다윗의 자녀와 똑 같은 신분으로 하루 아침에 변화된 자신의 신분을 깨닫게 되었다. 3000년 전에 다윗이 므비보셋을 선대한 것은 지금도 왕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에게 자비와 긍휼과 선을 베푸시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적이었고,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었다. 우리는 사단과 죄의 종노릇하며 혼자 힘으로 도무지 왕이신 주님께로 갈 수 없었던 존재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영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부와 존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삼하 9장 뒤의 삼하 10장에는 다윗이 암몬 왕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한다. 요나단을 기억하여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푼 다윗이 이제 암몬 왕 나하스를 기억하여 하눈에게 은총을 베푸려고 한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베푼 은총을 감사히 받고 충성했다. 하지만 암몬 왕 하눈은 오히려 은총을 베풀려는 다윗을 대적하다가 패망하고 만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주님이 죄인을 찾아오셔서 은총을 베푸실 때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생명과 소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오직 파멸만 있을 뿐이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의 상에서 먹게 된 놀랍도록 변화된 나의 복된 신분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릴 수 있도록 확인하고 감사하고 갱신하는 것이다.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헤세드를 가지고 찾아오셔서 우리를 강건케 하시는 주님을 마음 문 활짝 열고 환영해야 한다. 이것이 생명과 화목의 길이다.
대지 2: 우리는 왕의 상에서 먹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보상을 바라보면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압살롬의 반역 때 므비보셋은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 옷을 빨지 않고 발을 맵시내지 않고 오직 무사 귀환만 바라보았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이 땅에 오직 주밖에 없습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구주 대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귀환 한 후에 악한 종 시바와 므비보셋이 재산을 반 씩 나누라고 판정한다. 다윗은 비록 잘못된 판정을 내리지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정확히 판결하시고 그대로 갚아주신다. 주님 오심을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 재미에 취해 살지 않는다. 세상의 멋과 맵시와 유행을 그렇게 값어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의 왕적인 방문을 소망 중에 바라면서 산다. 주님의 공정한 판단을 믿고 보상을 바라며 충성한다. 왕의 상에서 우리가 먹고 누리는 영광이 얼마나 큰지 속히 깨달아야 한다. 왕의 자녀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 알고 충성해야 한다.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소서.
삼하 21장에 사울이 기브온인을 죽인 대가로 3년 기근이 발생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제외하고 사울의 후손 7명을 죽이도록 내주었다.
1600년 전, 방탕하게 살았던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거 참 이상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니 …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신비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되 마치 사랑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신다. 내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지라도 그분은 여전히 나 하나를 위해서라도 기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갔을 것이다. 이상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니.”
말씀을 맺자.
이전에 주님의 원수였던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적인 장애와 소외를 극복하고 왕의 식탁에 앉아 먹게 된 왕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왕의 식탁에 항상 동참하는 자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도 감내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오해와 박해와 이간질과 참소를 당할지라도, 주님 때문에 수치를 당하고 욕을 당할지라도 정절로 살아야 한다. 주님의 온전한 보상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충성스럽게 왕이신 주님이 베푸시는 생명의 잔치에서 힘을 얻어 살자. 죽은 개 같은 우리를 왕의 자녀로 삼으셔서, 왕의 식탁에 앉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아멘.
오후 설교 (살전 1:9-10)
지금부터 2000년 전, 중동 이스라엘에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시(市)
바울은 살아계신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유럽의 그리스로 갑니다. 인구 7만 명의 데살로니가라는 항구 도시에 도착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300년 전, 온 세상을 정복하고 호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신임했던 장군 카산더가 건설한 도시입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대왕의 여동생의 이름을 본 딴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율리우스, 브루투스, 옥타비안, 마크 안토니같은 황제와 장군들이 권력을 잡을 때 마다 힘있는 사람에게 줄을 섰습니다. 매우 현실주의적인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기 전에 많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우상들
제우스(주피터):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는 하늘(천둥, 번개, 비, 바람)을 다스리고 올림피아 신들을 다스린 최고의 신입니다. 헤라의 남편인 제우스가 사용한 무기는 번개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에게, 그리고 거짓말쟁이에게 번개를 던져서 징벌했습니다. 벼락맞아 죽을 놈은 제우스와 관계있습니다. 요즘도 자신의 권세와 지위를 믿고 자기가 제일 잘난 사람인 것처럼 교만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를 두고 많은 여신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바람 피우는 것이 능력이고, 인생의 짜릿한 묘미인 줄 알다가 가정과 인생을 파괴한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 구절- “능력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신다”(눅 1:51-52).
헤라(주노): 제우스의 아내로서 최고의 여신입니다. 사랑과 미와 성과 쾌락과 결혼의 여신입니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와 바람을 피운 여자들을 응징합니다. 현대인은 외모를 꾸미려고 성형 수술을 합니다. 성적 쾌락, 외도, 불륜을 저지르는 현대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잘 압니다.
성경 구절: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잠 31:30).
헤라클레스: 아버지 제우스가 기혼녀 알크메네와 불륜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인데 힘과 용기를 갖추었습니다. 요즘도 자기 힘과 능력만 믿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구절- 자신의 힘을 신으로 삼는 자들은 바람이 몰려가듯이 망합니다(합 1:11).
아폴로: 제우스의 아들로서 음악, 시, 예술, 양궁, 태양, 빛, 약, 치료, 지식의 신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아폴로가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고 깨끗하게 해준다고 믿었습니다. 요즘도 자신의 지식과 똑똑함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람이 있고, 학위나 학벌을 자랑하고, 예술에 심취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 살려고 좋다고 소문난 약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 구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기초다”(잠 1:7). 살아계신 하나님이 치료하신다. 하나님이 빛과 태양을 창조하셨고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아폴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이시스: 데살로니가인들이 이집트에서 수입한 여신 이시스를 섬겼습니다. 머리에 보좌가 있고, 손에 생명과 장수를 상징하는 고리 모양의 십자가를 잡고 있습니다. 이시스는 자연과 마술의 신입니다. 그리고 이시스는 죽은 자와 아이들의 신입니다. 노예와 죄인의 친구라 불립니다. 죽은 남편 오시리스의 시신을 조각하여 다시 살렸습니다. 요즘도 누구나 불로장수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원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건강검진하고 발표를 보러갈 때면 걱정이 됩니다.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 구절-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시고, 아이들을 환영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시는 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잠 22:4).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15-16).
카스토르와 폴룩스: 쌍둥이 형제로서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의 신입니다. 말을 탄 사람으로도 묘사됩니다. 지금도 바다의 신 용왕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쌍둥이 신은 죽어 제미니(쌍둥이) 별자리가 되었습니다. 1977년에 새한 자동차는 ‘제미니’라는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성경 구절- 예수님은 바다의 폭풍을 다스리시고,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하셨습니다.
디오니수스(바카스): 제우스의 아들로서 포도와 포도주, 연극, 풍요, 종교적 광란의 신입니다. 요즘처럼 과학문명시대에도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냅니다. 데살로니가의 일부 부녀자들은 산 짐승이나 자녀를 잡아먹고 피를 마시는 광란의 종교 의식을 행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술을 즐기고 알콜 중독에 빠집니다. 술을 못 마시면 승진이 안 되고, 술 접대를 잘 해야 합니다. “술 마실래, 부지점장으로 있을래?”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잘못된 종교에 빠진 광신자들도 있습니다.
성경 구절- “술 취하지 말라. 방탕한 것이다”(엡 5:18). 우리는 부요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취하야 합니다.
글라우디오 황제(AD 41-54): 어린 시절 앓았던 병으로 다리를 절고 귀가 약간 멀었습니다. 조카 갈리굴라가 암살되자 51세에 5대 황제가 되었고, 영국을 정복했습니다. 도로와 운하를 건설했고, 황제 자리를 견고히 하려고 원로원/국회 의원들을 처형했습니다. 글라우디오는 63세에 아내에 의해서 살해당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글라우디오 황제에게 충성 맹세를 했습니다: “나는 마음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서 황제와 황제의 가족을 일평생 섬기겠습니다. 나의 자녀도 황제에게 바치기를 맹세합니다. 황제의 원수는 나의 원수이므로, 칼을 차고 원수를 추격하여 처단할 것을 맹세합니다.” 황제가 태어난 것이 기쁜 소식이다. 황제에게 충성하면 평화가 찾아온다고 선전했습니다.
성경 구절- 글라우디오는 13년만 통치하다가 죽고 맙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만 왕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칼을 차는 대신, 믿음과 사랑의 가슴막이,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야 합니다(살전 5:8). 기쁜 소식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소식입니다.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평강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해야 평안이 있습니다.
무덤 비석: 비석에 새겨진 흔한 글귀는 “소망이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아무리 무덤과 비석을 화려하게 만들고 장식하더라도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 구절- 예수님은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나사로라는 사람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결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답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죽은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요일 5:21).
살아 계신 하나님: 우상은 죽었습니다. 그냥 나무, 동, 철, 금덩어리일 뿐입니다.
성경 구절: “우상은 헛것이다. 말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사 44:9).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사람과 동물과 식물을 창조하셨습니다(행 14:15). 사자들이 우글거리던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건지신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거인 골리앗을 죽였던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책을 사면 책에 이름을 적어두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장을 찍으셔서,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보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계 7:2).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죄를 지어 수치심과 죄책감에 빠진 사람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면 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습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고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영원한 반석이시며 흔들리지 않는 기초이십니다.
참되신 하나님: 로마의 신들은 서로 질투하고 싸웁니다. 황제도 거짓 선전을 했습니다. 마치 아버지와 유모처럼 잘 먹여 주고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거짓이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고, 사람은 거짓되지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롬 3:4).
다시 오실 예수님(살전 1:10): 죄를 지어 죽어야 할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시면 죽은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영원한 천국이냐 영원한 불구덩이 지옥이냐 심판하실 것입니다. 살다가 죽으면 결코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장차 있을 진노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세계의 4대 성인인 석가와 공자와 소크라데스와 맞먹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단순한 선생도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세상의 소망이요 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지 착하게 살거나 마음 편하려고 다니는 곳이 아니라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 없이 사는 인생은 공허하고 헛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인생만 의미가 있고 복됩니다.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맡기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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