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화원] 14
S#1. 정조의 개인 처소 / 밤
정조 : 병진년, 사라진 사도세자의 예진을 찾으라.
홍도, 윤복 긴장해 서로 보고..
홍도 : 전하. 병진년에는 어진화사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조 : 진실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감췄을 것이다. 분명 어진화사는 있었다.
홍도 : 병진 년이라면 10년 전이온데, 세자저하께서 승하하신 것은 임오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아니옵니까?
정조 : 10년 전, 선왕께서는 임오년의 일(주 :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것을 가리킴)을 깊이 후회하시며,
과인의 아비를 되살릴 방도를 마련해두셨네. 할바마마께서는 도화서 최고의 화원으로 하여금 과인의 아비, 사도세자저하의
예진(주 : 왕이 되지 못한 자의 어진)을 추사(주 : 왕이 죽은 후, 왕에 대한 기억으로 그린 초상화)하도록 하였네.
정조(소리) : (듣고 있는 홍도와 윤복의 얼굴 위로) 허나, 초상이 할바마마의 손에 들어오기 직전,
누군가에 의해 화원들이 살해되었네.
(insert : 강수항이 방에서 죽는 장면, 서징이 칼에 찔려 쓰러지는 장면)
홍도 : 스승님께서 그리신 그림이...(충격받아 정조 보면)
정조 : 과인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공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네.
어진을 그려 봤으며, 추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최고의 화원.
홍도 : 하여.. 경합 문제를 용파로 내신 연유 또한..
정조 : 그렇다. (홍도와 윤복 보고) 하여, 두 사람에게 명한다. 대화원이 남긴 내 부친의 유일한 흔적, 예진을 찾아다오.
홍도와 윤복, 정조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정조 : 지금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부친은 너무나 희미하여 세월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버릴까 두렵네.
그러니 부디 과인의 부친을 되살려주게.
홍도, 윤복 : (진지하게 정조 보며)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S#2. 도화서 / 화서보관실 / 밤
먼지가 떠다니는 화서보관실. 홍도, 앞서가는데...
홍도 : (서가 사이 걸으며) 도화서 기록이라면.. 두 번째 서가에... (찾으며) 갑열 둘째 칸... 여기다!
이것을 그 서책에 옮겨 적도록 해라.
윤복 : (주변 둘러보다 홍도 바라보면) 무엇입니까? 그 책은...
홍도 : (서책 만지며) 이 책에는... 내.. 스승님의.. 죽음의 기록이 담겨있다.
윤복 : 죽음의 기록...
홍도 : (윤복 보고) 시작하자.
윤복 : (들고 있던 서책 펼치고 붓을 든다)
홍도(소리) : 오월 열아흐레. 도화서 화원 김홍도가 수석화원 강수항의 죽음을 보고하다.
S#3. 과거 / 몽타주
1. 강수항의 집, 쓰러지는 장면 위로.
홍도(소리) : 묘시 전후에 도화서 수석화원 강수항이 본가에서 사망했다는 의금부 전갈이 있었다.
수종화사 김홍도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2. 앞의, 쓰러져 있는 강수항이 파랗게 질린 시체로 급격히 변한다.
그리고 주변으로 금부 수사원들이 이곳저곳 들추며 수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홍도(소리) : 현장의 금부관원은 방 안에 반듯이 누운 시신의 사후경직으로 보아 사망시각을 축시 경으로 짐작하고
노환에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자연사로 추정했다.
3. 강수항의 얼굴에 하얀 천이 덮이고, 관 속으로 들어간 후 덮여 땅 속에 빨려들듯 들어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흙이 덮이고 봉분이 완성된다. 그 위로,
홍도(소리) : 도화서에서는 고인의 장례를 성대히 치르고 존호를 수석화원에서 대화원으로 승격할 것을 결정했다.
본관은 진주. 초상화와 인물에 능했다
4. 봉분을 둘러싼 사람들 중, 상주와 그 옆에 상복을 입은 남자가 보이는 위로,
홍도(소리) : 아들로 유언, 진언 형제가 있다.
S#4. 도화서 / 화서보관실 / 밤
윤복, 글을 쓰고 붓을 내려놓는다.
홍도 : 다 적었느냐?
윤복 : (붓에 먹 묻히며) 예.
홍도 : (종이 넘기고) 다음은.., (진지하게 윤복 보며) 내 절친한 벗의 기록이다.
윤복 : (붓 들며 홍도 바라보고)
홍도 : 오월 스무사흘.
윤복 : (서책에 글씨 쓰고)
홍도(소리) : 도화서 화원 서징이 오늘 새벽 자신의 집으로 들이닥친 괴한의 칼에 맞아 숨졌다.
윤복, 서징 부분을 받아 적다가 멈칫 하고..
(insert : 서징. 피 묻은 얼굴 플래쉬)
홍도(소리/ 윤복의 슬픈 얼굴 위로) : 평소 지기인 김홍도가 장례를 주관한다.
홍도 : (서책 접으며 윤복 보면)
윤복 : (공포에 질린 얼굴, 혼란스럽고)
홍도 : 괜찮느냐?
윤복 : (고개 끄덕이며) 괜찮습니다. (하고 일어서는데)
서징(소리) : 비밀의 방에서.. 병열 두번째 서가의 첫번째 두루마리..
윤복 : (마치 누군가의 소리를 들은 듯 뒤돌아보는데, 아무도 없다) 아버지..
윤복, 홀린 듯 손끝으로 화서들을 주르륵 훑으며 무언가를 찾다 멈추면,
윤복의 눈앞에 두루마리 보이고...
서징(소리) : 그리고, 정열 첫 번째 서가의 두 번째 두루마리.
홍도 : (윤복 옆으로 와)
윤복 : (두 그림을 꺼내어 묶여 있는 매듭 풀고 바닥에 펼쳐 보이면)
홍도 : (그림 내려보고) 참으로 조악한 그림이군..소나무 위의 까치와 사군자 중 대나무라...갑자기 이 그림을 왜 보고있는 것이냐?
윤복 : 그것이.. (홍도 보다가, 그림 말며) 그저 손에 걸리는 대로 본 것 뿐입니다.
홍도 : 그럼 그림을 접어 놓거라. 이제... 그럼 내 스승님을 만나러 가자.
홍도, 결연한 얼굴로 앞서 걸어 나가면, 윤복도 홍도를 따라 나가는데...
S#5. 타이틀
붓으로 쓰여지는 글씨, [바람의 화원] 十四畵
S#6. 강수항의 집에 가는 길 / 밤
홍도와 윤복, 나란히 걷고,
윤복 : 스승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홍도 : 나?
윤복 : 스승님의 스승님이요.
홍도 : 스승님은.. 대화원이셨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으셨었지.
S#7. 강수항의 집 / 작업실 / 낮 / 회상
10년 전, 강수항이 산수화를 다 그리고 허리 편다.
젊은 홍도, 강수항이 건네주는 붓 받아서 놓으면, 강수항과 홍도, 그림 보고.. (뒤에, 방에 걸려있는 그림)
S#8. 강수항의 집 앞 / 밤
(마치 눈 앞에 강수항의 그림이 보이는 듯) 앞을 보다가 멈추는 홍도.
윤복이 홍도 옆에 멈춰서면,
윤복 : 연통도 없이 이렇게 와도 됩니까 스승님?
홍도 : 하하. 연통은 무슨 연통? 이 댁 주인 되는 스승님의 아드님은 말이다,
내가 (손을 무릎팍 근처에 가져대고) 요만-했을 때부터 업어 키운 놈이다. 업고만 있으면 그렇게 오줌을 싸댔는데,
(대문 보며) 그 오줌싸개 녀석, 잘 있나 모르겠다. (들어가면) 오줌싸개!
윤복 : (따르고)
S#9. 강수항의 집 / 마당 / 밤
점잖은 선비 한 명(강유언), 깍듯이 인사하고, 홍도와 윤복 그 앞에 서 있다.
강유언 : (정색하고) 그간 무슨 일로 그리 격조하셨습니까?
윤복 : (홍도에게, 작게.. 강유언 가리키며) 오줌싸개?
홍도 : (홍도, 윤복에게 작게 끄덕이고, 유언에게) 아니, 하하, 날세, 나. 모르겠는가? 단원.
이거, 오줌싸개 때 기억은 다 까먹어 버렸나보군? 하하.
강유언 : 삼가하시지요. 보는 눈이 있습니다. (주변 보면, 비질하는 종들 보이고) 무슨 일로 찾아계셨는지요?
홍도 : (헛기침하며) 스승님의 사화서를 좀 보려하네.
강유언 : 따라오시지요.
S#9-1. 강수항의 집 / 사랑채 / 밤
벽에 #7의 산수화 그려져 있고, 홍도, 황당한 듯 주변 둘러보고, 윤복이 옆에 선다.
책시렁이 몇 개 있는, 가지런한 방. 방 안에 그림과 관련된 것이라고는 #7의 산수화 하나 뿐이다.
윤복 : (둘러보고) 스승님, 여기가 사화서였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단서를 찾기가...
홍도 : 그렇군. (둘러보고, 강유언에게) 여기 있던 그림이며 안료며 화구들은 모두 어찌 되었는가? 스승님이 그린 그림들은?
어디에 치워 두었는가?
강유언 : 선친께 보내 드렸습니다.
홍도 : 선친께 보내? 어떻게?
강유언 : (여유롭게) 태웠지요.
홍도 : 전부 말인가?
강유언 : 그리 아끼셨으니, 함께 드리는 것이 옳지요.
홍도 : 허면, 혹, 돌아가시기 전.. 무슨 그림을 그리셨는지... 그런 것은,
강유언 : (자르며) 작업중이실 때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셔서, 선친께서 무슨 그림을 그리셨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홍도 : 스승님께서 평생 그려온 것을 모두 태우다니... 자네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가!!
강유언 : 글쎄요. 그보다, 아버님 제자분이라 문을 열어드렸는데, 괜한 짓을 했나 싶습니다.
돌석아- 여기 화공분 나가신다니, 모셔드려라.
홍도 : (성한 손으로 강유언 옷깃 잡고) 평생 그림밖에 모르던 분이네!
어찌 대화원의 흔적을, 아들 된 자가 다 지워버릴 수 있단 말인가!!!
강유언 : 그만 나가시지요. 예서 이리 소란을 피우지 말고. 돌석아.
돌석 : (홍도 붙잡고 떼어내려면)
윤복 : (돌석 붙잡고) 놓으십시오! (손 떼어내면)
홍도 : (옷 털며) 네 이놈! 요만할 때부터 아버지가 환쟁인 걸 우습게 알더니, 아주, 혼을 다 버려버렸군!! (나가버리고)
강유언 : (혀 차며) 환쟁이들이란.. 여전히 앞뒤 없이 불뚝거리는군..
윤복 : (나가다가) 환쟁이.. 환쟁이라.. 우습게보시는 것입니까? (강유언이 윤복 보면) 10년이나 지나간 스승의 죽음을 오늘 일처럼
기억하는 것 또한, 환쟁이입니다. 자제분께서는 이미 아비를 마음 속에서 죽인 것이 아닙니까? 환쟁이의 마음속엔,
(벽에 걸린 그림 가리키며) 그림만 살아있다면, 그 사람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강유언 : (윤복 보고..) 끝나셨으면, 이만 나가시지요.
윤복 : (강유언 보다가 휙 돌아서고)
강유언 : (옷 털며, 여전히 여유) 돌석아. 소금 뿌려야지. (들어가고)
늙은 종,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는데..
S#10. 강수항의 집 / 대문 앞 / 밤
홍도, 식식거리고 있고, 윤복이 나온다.
윤복 : 스승님! 그리 나가버리면 어떡합니까?
홍도 : 철없는 놈! 스승님께서 살아계실 때도 환쟁이라고 부끄러워하더니... 돌아가신 뒤에 완전히 흔적을 지워버린 게로군!
스승님! 죄송합니다! (퉤! 침 뱉고 가면)
늙은종 : (얼른 달려 나오며) 이보시오!
홍도 : (못 듣고 가면)
늙은종 : (따라오다 지치고, 헉헉거리며) 저기, 이, 이보,
윤복 : (늙은 종 보고) 스승님!
홍도 : (‘썩었군!’ 궁시렁대며 가는데)
윤복 : 스승님!
홍도 : 왜 그러느냐?
윤복 : (뒷쪽 눈짓하면)
늙은종 : 아니, 안들리오? 응?
홍도 : 무슨.. 일이오?
늙은종 : (소매에서 종이 꺼내며, 숨차, 손짓하며) 와, 보시오.
홍도 : (늙은종에게 와) 어찌된 일이십니까?
늙은종 : (종이 건네주며) 주인어른께서 남기신 것입니다.
홍도 : 주인.. 어른? (편지 열어보면)
늙은종 : 주인어른께서, 아드님의 성정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저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홍도 : 무슨 말 말입니까?
늙은종 : 혹 내게 무슨 일이 생길 시에, 이것을 어떠한 사람에게 전해주라고. 어떤 사람인가 하면,
홍도, 윤복 : (보면)
늙은종 : 아드님께 화를 내는 자가 있으면, 그 자가 바로 진실을 밝혀줄 자라고..
윤복 : (홍도 보면)
홍도 : (늙은종에게) 고맙습니다.
늙은종 : 이제 죽어도 되겠군. (비틀거리며 돌아서서) 전했습니다, 어르신.
홍도 : (늙은 종 보다가 편지 열고)
윤복 : 무엇입니까?
윤복, 홍도가 펼쳐든 종이 보면, 다섯 개의 대나무가 그려진 그림 보인다.
윤복 : 대나무 그림..(홍도 보고) 무슨 의미일까요?
홍도 : 글쎄.. (그림 보면)
김조년(소리/ 윤복의 얼굴 위로) : 중요한 화사가 있으니, 필요한 물목을 구해 집으로 오게. 늦어서는 안 되네.
윤복 : 스승님, 저는 가봐야 합니다.
홍도 : (그림 보다가) 어딜 간다는 말이냐?
윤복 :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가며) 익일 찾아뵙겠습니다. (가면)
홍도 : (윤복 쪽 보고) 저 놈이? .. 무슨 일이지? (갸웃 하면서 편지 소매속에 넣고 가려다가 돌아보며) 아무래도 뭔가
숨기는 것이 분명해... (발길을 돌려 윤복을 쫓아간다)
S#11-1. 길 / 밤
윤복, 사람들 헤치며 뛰어가고,
S#11-2. 길 / 밤
홍도가 윤복의 뒤를 따라간다.
S#11-3. 김조년의 집 / 몽타주 / 낮
1. 김조년의 집 마당에 깔리는 돗자리.
2. 종들, 부산하게 청소를 한다, 화로 놓고 불을 피운다, 돌아다니고.
3. 김조년. 한 쪽에 서서 그 모습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걸어놓을 등 들고 지나가는 돌쇠에게,
김조년 : 새로 온 화공은 어디 있느냐?
돌쇠 : (갸우뚱 하고) 글쎄요.. 못 봤습니다만..
S#12. 김조년의 집 / 윤복이의 작업방 / 밤
작업 도구들이 있는 작은 방.
윤복, 급하게 들어와 옷을 바꿔 입고, 그림 도구를 챙기고, 마지막으로 모자 들고 나가고,
S#13. 김조년의 집 / 후원 일각 / 밤
윤복, 모자 갖춰 쓰며 후원으로 들어서는데, 김조년이 앞에 선다.
윤복, 인사하면,
김조년 :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것인가?
윤복 : 들를 곳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김조년 : 들를 곳? 자네가 이곳에 왜 있는지, 잊었는가?
윤복 : 잊지 않고 있습니다.
김조년 : 금일은 그간 수차례 청했으나, 장사치와는 말도 섞으려 하지 않는 콧대 높은 호판 어른을, 겨우 모신 것이네.
김명륜 어른은 도화계에서도 가장 명망 높은 어른이네.
윤복 : 도화계라 하시면.. 그림을 평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김조년 : (끄덕이고) 금일 호판 어른의 매운 눈에 들면, 자네는 비로소 도화계에 성공적으로 입문하는 것이네.
자네에게도, 내게도, 금일은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네. (윤복 눈 보고) 자신이 있는가?
윤복 : 호판 어른이 어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제 마음은 훔칠 수 있게 그리겠습니다. (김조년 보고)
삼돌(소리) : 어르신. 혜민서에서 의녀 기생이 도착했습니다.
김조년 : (삼돌에게) 곧 가서 입성을 보겠다. (윤복 어깨 툭툭 치고 가면)
윤복 : (화구 들고 긴장하여 앞으로 가고)
S#14. 김조년의 집 / 정향의 방 / 밤
파란 치마 입은 정향 보이고(신윤복의 [청금상련]속 모습 같은).
정향, 단장 끝내고 나비 노리개 다는데,..
막년 : 아씨. 드디어.. 도련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정향 : (나비 노리개 만지고, 막년 보며) 어떠니? 화공께서 눈에 담으실 만 하겠느냐?
막년 : 담다 뿐입니까? 눈에 넣고 싶어하실 듯합니다.
정향 : (웃다가, 긴장된 듯) 가자. (밖으로 향하고)
S#15. 김조년의 집 / 후원 / 밤
종들, 화로 가져다놓고 불 넣어 피우면, 그 옆으로 앉는 김명륜 대감, 젊은 한량도 거드름 피우며 들어온다.
한량 : 금일 이 댁에서 재미있는 화사가 펼쳐진다 하여 와봤는데, (둘러보며)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이는군요.
김조년 : 글쎄, 그건 보아야 알 일이지 않은가? 들어가 보게.
(한량 들어가는 것 보고, 김명륜 옆에 와 인사하며) 호판어른 오셨습니까?
김명륜 : (둘러보며, 못마땅한) 아무리 장사치의 집이라 하나, 지나치게 화려하군. (곰방대 들면)
김조년 : 호판 어른을 모시고 화사를 하기 위해, 이 사람이 욕심을 부려본 것입니다.
김명륜 : 그래, 갑자기 나를 청한 연유가 무엇인가?
김조년 : 어르신께서는 화계(주 : 그림을 즐기고 평하는 사람의 모임) 인사들 중에서도 가장 안목이 높기로 이름난 분이라
알고 있습니다. 허니, 금일 화사를 보시어, 이 사람 집에 새로 들인 화공의 실력을 가늠하여 주시지요.
김명륜 : 새로 들인 화공이라?
삼돌 : 어르신! 화공께서 오십니다.
김조년 : (빙긋 웃으며) 어르신. 보시지요. 조선의 화단은, 저 작은 화공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입니다.
(윤복에게) 인사드리게. 호조판서 김명륜 대감이시네.
윤복 : (김명륜 건너편에 깔린 돗자리 앞에 서서) 혜원.. 이라 합니다. (김명륜 보면)
김명륜 : 그래, 화공은 무엇에 능한가? 산수인가 인물인가 영모인가?
김조년 : (얼른 막아서며) 그것은 화공의 그림을 보고 대감께서 알아내심이 좋을 듯 합니다.
김명륜 : 자신만만하군. (안경 꺼내 끼고 매서운 눈으로 윤복 보면)
윤복 : (지지 않고 보고)
김조년 : 두 명인이 만났으니, 금일 화사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삼돌에게) 꽃을 들여 보내거라.
윤복, 앉아서 종이를 펼치고, 안료를 개는데.. 후원으로 들어서는 기생들.
머리에 가리마를 쓴 의녀, 파란 치마에 푸른 저고리를 입은 기생, ([청금상련]속 여인들임) 자리잡고 앉고..
한량, 표정 환해지고..
윤복, 푸른 치마 입은 기생들 보는데... 가야금을 든 익숙한 여인이 보인다.
막년이.. 그리고, 그 앞으로 걸어오는 정향의 고운 모습!!..
윤복, 정향 보자 안료 개던 손 멈추고,
정향, 곱게 미소 지으며 윤복 보며 걷는데.. 정향, 돗자리에 앉고 막년이 가야금 올려주면,
김조년 : 그럼, 화사를 시작하게.
윤복, 넋 잃은 듯 정향 보고..
정향, 윤복 보며, 가야금 퉁기기 시작한다. 마치 도전하듯, 윤복을 보는 정향의 눈빛.
정향(소리) : 이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화공. 말해 주세요. 그간 .. 화공에게 있었던 일을.
윤복(소리) : 길었던 시간을 어찌 다 말하겠소.
정향(소리) : 이 년 또한... (윤복 보고) 그러니, 이 한 가락 곡조로 말할 수 밖에요.
윤복(소리/ 붓 드는 모습 위로) : 그대를 담은 그림으로 말할 수 밖에.
윤복, 붓질 시작하면,
한량, 젊은 기생을 무릎에 앉히고 희롱하고, 김명륜은 곰방대 물고 정향의 가야금 소리 듣고,
그리고 김조년은 윤복과 정향을 본다.
최고의 연주와, 붓질이 교류하고, 윤복의 눈과 정향의 눈빛이 교류하는 순간을 지긋이 보는 김조년.
정향의 가야금 소리 따라 윤복의 붓질 빨라지고, 그림 속 사람들,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S#16. 김조년의 집 입구 / 밤
홍도, 김조년의 집 올려보고,
홍도 : 여긴가? (둘러보고) 이 쪽으로 왔으면, 여기밖엔 없는데, (하고, 들어가면)
S#17-1. 김조년의 집 / 마당 / 밤
홍도, 들어서는데, 삼돌이가 홍도 앞을 막아선다.
삼돌 : 누구신데 여기서 기웃거리시오?
홍도 : (삼돌 보자, 바로) 화공은 어디 있소?
삼돌 : 글쎄, 누구신데,
홍도 : (손 턱언저리에 가져가며) 요만하고, 곱살하게 생긴 화공인데, 그 왜, (귓속말 하듯) 기생 오라비처럼 생긴..
삼돌 : (큭 웃으며) 새로 온 화공 말이군?
홍도 : (‘새로 온 화공’이란 말에 조금 놀라지만, 내색않고) 그렇지! (둘러보며) 어디로 가면되오? (이쪽저쪽 가리키며) 여기? 저기?
삼돌 : 그보다, 누구신데,
홍도 : (버럭) 늦겠네! 어르신께 한 소리 듣고 싶은 것이냐?
삼돌 : (찜찜해 홍도 보면)
홍도 : 어서! (삼돌 등 떠밀며) 어딘가?
삼돌 : (가며) 벌써 연회가 시작되었을 것인데...
S#17-2. 김조년의 집 / 연회장 / 밤
김명륜 대감, 곰방대에 불 붙이고 매운 눈으로 윤복을 보고 있고,
윤복, 연못가에 앉아 정향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청금상련]),
정향, 연주하면서 윤복의 눈 보고,
김명륜 대감 옆으로, 기생을 무릎에 올려놓고 희롱하는 한량 보인다.
윤복 그림 그리는 주변에 보이는 각종 길이의 초들, 윤복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고..
김조년, 부채 너머로 윤복과 정향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 교환 보는데...
S#18. 김조년의 집 / 연회장 일각 / 밤
홍도와 삼돌, 연회장으로 오는 중문 지나며,
홍도 : 아직 멀었느냐?
삼돌 : 여깁니다. (비켜서면)
홍도 :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연회장 풍경에 놀라고, 그들 중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윤복 본다)
삼돌 : (김조년쪽으로 가며) 어르신!
홍도 : (삼돌 어깨 돌려세우고) 됐으니, 가보거라.
삼돌 : (홍도 눈치 보며) 그럼, 쉬십시오. (가는데)
홍도, 연못가에 고즈넉히 앉아 불빛 받으며 그림 그리는 윤복의 모습에 넋을 잃은 듯 보고..
홍도의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는데..
S#18-1. 김조년의 집 / 연회장 / 밤
김조년은 정향을 바라보고 정향은 윤복을 보고... 윤복은 정향을 보고...
정향의 연주가 끝난다. 정향, 가야금 연주 끝나고 손을 한껏 치켜들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윤복, 정향 보고 미소짓는다. 정향도 미소짓는데,
한량 : (휘청휘청 걸어오며) 어디, 그 그림 한 번 볼까? (윤복의 그림 들고, 휘청거리며 서서) 쯧쯧! 포치가 엉망이로군!
김조년 : (김명륜 슬쩍 보고) 죄송합니다. 호판 어른. (한량에게) 아버님께서 호판 어른께 인사라도 드리게 해 달라
부탁하여 불렀더니, 어찌 이리 난장을 만드는가?
한량 : 제 눈엔 말입니다, (윤복의 그림 흔들며) 그저 아이들 놀이로 보입니다.
윤복 : 술자리 유희를 그리긴 했으나, 술자리 유희거리로 전락할 이유는 없소. (그림 한 쪽 잡고) 내놓으시오.
한량 : (윤복 눈 들여다보며, 그림 한 쪽 잡은 채) 유희거리로 왔으면, (그림 잡아당기며) 유희거리로 입 다물고 있던가!
(그림 지지지- 찢어지려 하는데)
윤복 : 놓지 못하겠소?!
홍도 : (성큼성큼 다가와 그림 찢는 한량의 손목 붙잡고) 놓으시오!
김명륜, 김조년 : (홍도 보고)
정향 : (홍도 알아보고) 단원 선생님!
홍도 : (정향을 보고 놀라는, 윤복과 정향 번갈아 보는)
윤복 : 스승님...!
조년(소리) : 스승님? 오라... 저 자가 단원인가 보군.
홍도 : (한량 손목 붙든 채) 어찌 된 것이냐? (애꿎은 한량 손목만 꽉 비틀며) 네가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 물었다!
윤복 : (당황해서) 제 일입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한량 : (홍도가 잡은 손목 아파 찡그리며) 뭐요?
윤복, 홍도 : 가만 계시오!!
한량 : (찔끔 하고, 다시) 일단, 이것부터 놓고,
윤복, 홍도 : 가만 계시라지 않소!!
김조년 : (홍도보고) 허락도 없이 객이 들어와 이 무슨 행패란 말입니까?
홍도 : (한량 손목 패대기치고) 누구시오? 왜 이 아이가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오?
김조년 : 이번에 내 새로 들인 수행화사요. 무슨 문제라도 있소?
홍도 : (윤복을 보며) 수행화사? 그럼 이 집에 평생 묶여있게 된 것이란 말이냐? (조년보고) 그런거요?
조년 : (비웃으며) 그 것은 단원 선생께서 더 잘 아시지 않겠소? 값이 될 만한 그림을 그리니 탐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
홍도 : 값나가는 그림이나 그리게 하면서 이 아이의 영혼을 갉아먹을 작정이오?
조년 : (홍도 비웃으며) 재능있는 화원을 후원하는 것이지요.
홍도 : (기가차서) 후원? 돈으로 화인들을 끌어들여
윤복 : (나서서) 제발 그만들 두십시오!
일동 : (보면)
윤복 : 나가시죠, 스승님. (조년에게)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김명륜 : (곰방대 탕탕 털며) 십년 전 자네 스승이 내 초상화 하나 그릴 때도 그리 부산을 떨더니...
홍도 : 김명륜 대감 아니십니까?
김명륜 : 번잡한 자네 성정은 스승이나 제자나 시간이 지나도 매한가지군.
홍도 : (인사하며) 일간 찾아뵙겠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나가고)
김조년 : (정향에게, 작게) 뭘 하느냐? 가얏고를 울리거라.
정향 : (가야금 켜기 시작 하면서, 윤복이 간 쪽 흘끔거리고)
김조년 : (윤복이 그린 그림의 초 들고)
cut to
김명륜, 윤복의 그림 보고 있고, 옆에 김조년이 앉아서 김명륜을 살핀다.
깐깐하게 뜯어보는 김명륜의 모습.
S#19. 김조년의 집 / 사화서 앞 / 밤
사화서 화원 두 명 흘끔거리고 지나가면, 윤복과 홍도, 사화서 앞 나무 옆에 서있는 것 보인다.
싸우듯, 팔짱끼고 서 있는 두 사람.
홍도 : 어찌된 것이냐?
윤복 : 대행수 김조년 어른의 화공이 되었습니다.
홍도 : 돈에 팔려왔다는 말이냐?
윤복 : 적절한 값어치를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홍도 : 당장 그만 두거라! 어린 놈이 벌써부터 돈에 길들여져서, (옷깃 잡아당기며) 비단 옷에, 술띠까지.. 당장 벗어라!
윤복 : 싫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홍도 : 대체 이유가 무엇이냐! (그럴 리 없지만) 일재 어르신이 널 내치기라도 했더냐?
윤복 : (정곡을 찔렸다.. 홍도 보면)
홍도 : (설마.. 놀라고)
윤복 : (눈 피하고)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홍도 : 너, ... 그게 사실이냐? 일재 어른께서 널 버렸다 그 말이야? 대체 네 아비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윤복 : (홍도의 손 뿌리치고) 제가 선택한 것입니다. 더 이상 형님의 흔적이 가득한 집에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이 곳에서,
제 힘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도화서에도, 아버지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그림을 찾아내겠습니다.
홍도 : 썩은 냄새 진동하는 이 곳에서 무슨 그림을 그리겠단 말이냐! 돈 놀음에 몸과 영혼을 망친 화인이 어디 한둘이더냐?
윤복 : 전... 후회 하지 않습니다.
홍도 : (윤복이 걱정되면서, 그 의지 느끼겠고) 정말, 괜찮겠느냐?
윤복 : (끄덕이고)
홍도 : (걱정되어 윤복 보는데)
S#20. 김조년의 집 / 사화서 / 윤복의 작업방 / 밤
윤복, [청금상련] 채색을 마무리하다가, 고개 들면,
홍도(소리) : 정말, 괜찮겠느냐?
윤복 : (붓 들고 망설이는데)
삼돌 : (윤복 옆에 와) 주인어른께서 불러계십니다.
S#21. 김조년의 집 / 사랑채 / 밤
김조년 앉아있고, 옆으로는 정향, 눈 내리깔고 있고,
김조년 맞은편에는 윤복이 앉아있다.
정향 뒷쪽으로 막년이 앉아 괜히 눈치 보고 있고...
김조년, 윤복의 그림을 들고 보고 있다. 화면 가득 보이는 윤복의 [청금상련].
김조년 : 잘 마쳐 주었군. (그림 정향에게 주며) 보거라.
윤복 : (정향 보면)
정향 : (윤복 보고) 제가 무얼 볼 줄 알아야지요.
김조년 : 괜한 말을 하는군. (윤복과 정향 보고) 내 가장 아끼는 예인 두 명이, 서로 그리 데면데면해서 쓰겠는가?
(정향에게) 보시오.
정향 : (그림 보면)
그림 속, 가야금을 켜는 기생 모습 보자 ‘나를 그려 주었구나’ 싶어 미소 떠돌고, 윤복 보는데..
윤복, 내색은 못하고 정향 보는데.. 김조년의 여인이 된 것이 안타깝고..
김조년 : 보았느냐?
정향 : 예.
김조년 : (정향 지긋이 보다가) 그 그림의 주인이 누구인 듯 하냐?
정향 : 글쎄요.. 어르신이겠지요. 혹은, 그림을 그린 화공이거나.
김조년 : 이 그림의 주인은,
정향,윤복 : (긴장하고)
김조년 : (부채로 가야금 치는 기생 가리키고) 이 금기다. (정향 보고) 이 금기만이, 그림 그리는 화인을 정면으로 보고 있으니..
아니 그런가? (윤복 보고)
윤복 : (당황하면)
정향 : (무슨 뜻인가.. 윤복이 자기의 정인인 것을 아나.. 긴장해 보면)
김조년 : (미소지으며) 잘 해 주었네. 앞으로도, (정향 슥 보고) 내 가장 아끼는 사람의 모습을.. 숨김없이 화폭에 담아주게.
막년 : (안심하고)
윤복 : (정향이 안타깝고) 감사합니다.
김조년 : 배접이 끝나는 대로 대감댁에 들러 그림을 전해주게. 나가보게.
윤복 : 예.
김조년 : (나가는 윤복에게) 헌데, 자네 스승님 손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가?
윤복 : (멈춰서서, ‘나 때문에’ 생각하니 미안해 고개 숙이고)
김조년 : (혼잣말) 이제 단원도 끝난 것인가? (혀 차며) 참으로 아쉽게 되었군.
윤복 : 그렇지 않습니다!
김조년 : (윤복 보면)
윤복 : 스승님께선 반드시, 다시 붓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조년 보면)
김조년 : (윤복 보고)
정향 : (윤복 보고)
홍도 : (소리) 일재 어르신은 어찌 그리 무정하신가 말이네!
S#22. 이인문의 집 / 홍도의 방 / 밤
홍도, 문 벌컥 열며 방으로 들어와 바닥에 앉으면, 이인문 따라 들어와 앉고...
이인문 : 자식을 팔아버린 부모의 그 심정을 남이 된 이상 어찌 알겠나.
홍도 : 자넨 늘 일재 어르신 곁에 있었으면서도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을 몰랐는가?
이인문 : 원로화원으로서 그림재능이 있는 자식을 거두지 못하고 사화서에 팔아 버린 것을 무에 자랑이라 말하겠는가.
단원. 그 아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했다 하지 않았는가. 저 때문에 몰락한 가문을 보고서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홍도 : 걱정이 되어 그러네. 자네도 알지 않는가. 연회나 쫓아다니는 화원이 어찌 제 흥에 취해 붓을 놀릴 수 있을까.
그저 비위나 맞추는 그깟 그림...
이인문 : (홍도 만류하며) 자네가 아니면 그아이를 믿어줄 이가 어디있겠는가. 의지할곳 자네뿐이니 자네가 그아이를 잘 잡아주게.
홍도 : (착잡하고)
S#23. 조영승의 집 앞 / 밤
강유언, 조영승의 집으로 들어서는데...
S#24. 조영승의 집 / 사랑채 / 밤
강유언, 납작 엎드려 있고, 조영승과 김귀주, 장벽수, 그 앞에 앉아있다.
조영승 : 단원이 선친의 그림을 찾으러 왔었다는 말이지?
강유언 : 예.
김귀주 : 그래, 지난번 청나라 사신을 잘 접대한 일로 운봉 어른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고? 잘 하였네.
강유언 : 감사합니다. 모두 어르신들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귀주 : 그래, 그래, 중인 신분인 자네를, 누가 문과에 ‘통’하게 해 주었는지.. 늘 잊지 말게. 알겠는가?
강유언 : 맘 속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영승 : 그래. 혹, 단원이 또 찾아오거든, 연통 주도록 하게.
김귀주 : 또 연락함세. 살펴 가시게.
강유언 : 예.(나가면)
김귀주 : (은밀히) 단원이.. 왜 스승의 집에 불쑥 찾아왔을까요?
조영승 : 혹.. 그 그림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지? 10년 전, 강수항이 그린.. 세자 저하의..
김귀주 : 단원 그 자가 스스로 스승의 흔적을 찾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가?
조영승 : 여태 가만 있다가, 갑자기 왜 찾아 나선다는 말인가?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
(고민하고) 어찌되었건, 단원의 행적을 잘 살피도록 하게.
S#24-1. 몽타주
1. 대나무 숲 / 낮
홍도, 대나무가 무성한 숲을 바라보며 고심하고 있다.
한쪽에서 아이들, 대나무를 깎아 방패연을 만들고 있고, 홍도 무심코 방패연 만드는 모습 지켜 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아이들이 만든 방패연을 뺏어서 본다.
다섯 개의 대나무 살을 엮어서 만든 방패연(맨위 가로, 가로, 세로, 대각선 2)을 손가락 다섯 개를 꼽으며 찬찬히 살펴본다.
이내, ‘이건 아니구나’ 싶은지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일어선다.
대나무 숲만 원망스레 쳐다보다 돌맹이 휙 걷어차는 홍도.
2. 저자거리 / 낮
홍도, 대나무 피리들이 주르륵 놓여있는 노점상에서 요리 조리 살펴보고, 대나무 피리를 불어본다.
심드렁해진 얼굴로 내려놓고, 한숨쉬는,
3. 저자거리 / 낮
홍도, 대나무로 만든 담뱃대 5개를 부채처럼 펼쳐 손에 들고, 곰곰이 생각하고,
담배대 하나 입에 대고 빨아보고, ‘이것도 아니다’ 생각하고 내려놓는다.
S#24-2. 저자거리 / 배첩장 / 낮
홍도, 배첩장 박씨와 얘기중이다.
홍도 : 사군자 중에서도 특히 대나무를 치는데 뛰어난 기량을 가진 자들을 찾고 있소.
박씨 : 글쎄요... 대나무라... 에이, 붓질 좀 한다하는 환쟁이들 치고 대나무 그림 못 그리는 사람이 어딨답니까?
한양땅에 사는 환쟁이들 이름을 다 대란 말이오?
홍도 : 그럼, 손님들 중에 대나무 그림을 유난히 좋아한다던지, 대나무 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사람이 없겠소?
박씨 : (홍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원, 바쁜 사람 붙들고 시덥잖은 소리는...가시오! 가!
홍도 : (후... 한숨 쉬며 허탈한)
S#25. 저잣거리 / 방물점 앞 / 낮
윤복, 저잣거리 구경하며 걷고, 화공1, 종이며 붓, 안료 뭉치 등을 들고 윤복 따르며,
화공1 : 그래, 어제 화사를 한 이야기를 더 해 보시오. 그, 정향이는 어떻소? 천하 미색이라는데,
우리는 달포가 지나도록 보지 못했던 정향이를 오자마자 보다니, 운이 참 좋소,
윤복 : (방물점 지나가다가 멈춰서고, 방물점에 놓여있는 선글라스 본다)
화공1 : 왜, 색이 있는 애체를 무엇에 쓰려고?
윤복 : (집어들고) 얼마입니까? (전대 뒤지면)
화공1 : 어디 쓰냐니까?
윤복 : (들고 있던 안료통 화공1의 짐 위에 올리고) 다녀올 곳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시오. (가면)
화공1 : 이보게! 혜원! 혜원!
S#26. 이인문 집 / 홍도의 방 / 낮
(앞 씬의) 돋보기 보이고, 돋보기 들고 있는 윤복의 손 보인다.
돋보기를 통해 보이는 홍도, 돌아누워 있는데.
윤복 : 스승님, 그러지 말고, 이렇게 돌아 보십시오.
홍도 : 글쎄, 됐다지 않느냐.
윤복 : (홍도 머리맡에 돋보기 두고) 여기 두겠습니다. 그 편지는 어디 있습니까?
홍도 : (시렁에서 편지 툭 꺼내 윤복에게 주고 누우면)
윤복 : (편지 펼쳐 보며) 대나무... 대나무.. (대나무 세어보며) 다섯 개의 대나무 그림...
이런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에 무언가 남기신 것이 아닐까요?
홍도 : 그렇게 막연한 소리가 어디 있느냐?
윤복 : 무얼까요... (돋보기 슬그머니 홍도에게 더 밀어놓으면)
홍도 : (돋보기 보고, 윤복 보며) 화사는 잘 마쳤느냐?
윤복 : 채색을 마쳤습니다. 배접을 하여 대감님에게 드리면 됩니다.
홍도 : 김명륜 대감은 여간 그림 보는 눈이 높질 않다. 그 마음에 단박에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복 : 김명륜 대감을 어찌 아십니까?
홍도 : 스승님의 그림을 애호하던 분이셨지. 헌데, 스승님께서도 쩔쩔 맬 정도로 깐깐한 눈을 갖고 계셔서
그 취향을 맞추기 어려웠다지.
(insert.
김명륜 : 십년 전 자네 스승이 내 초상화 하나 그릴 때도 그리 부산을 떨더니...)
홍도 : (골똘히 생각하는) 십년 전 초상화라...
윤복 : 스승님?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십니까?
홍도 : (혼잣말) 그래.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수 밖에... (윤복에게) 대감님 댁에는 언제 가느냐?
S#27. 김명륜의 집 / 사랑채 앞 / 낮
홍도와 윤복, 사랑채로 들어서는데, 사랑채 옆으로 지나가는 김명륜의 아들(열 네 살 정도의 남자아이).
홍도 : (아들 보고) 젖먹이 때 봤는데, 많이 컸군!
아들 : (못 들은 척 지나가 버리면)
홍도 : (무안해) 저 놈이? (아들 보고)
윤복 : 스승님, 일단 들어가시죠.
S#28. 김명륜의 집 / 사랑채 / 낮
각종 붓과 벼루가 잘 정돈된 사랑채 내부.
서안마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두루마리들이 보이고,
김명륜, 서안 앞에 정자세로 앉아 흡족하게 웃고 있다.
시선 따라가면 그 아래 배접되어 있는 청금상련 보이고...
김명륜 : 수평구도만 두드러지면 자칫 단조로울 뻔하였는데, 앞부분에 대각선으로 올라가는 연못의 구멍을 놓아 변화를 만들었군.
윤복 : (엎드리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고개 들고)
김명륜 : 양반들의 놀음이라... 조선에서 좀체 볼 수 없었던 발칙하고 과감한 그림이다. 과연, 단원의 제자라 할 만 하군.
그래, 어떤 일로 날 찾게 된 것인가?
홍도 : 그것이... 여쭈어 볼 것이 있어 왔습니다.
김명륜 : 무엇인가?
홍도 : 어르신께서 저의 스승이셨던 강수항 대화원과도 교류가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명륜 : 대화원 강수항.. 화계 사람이라면 모두 흠모하는 이름 아닌가?
홍도 : 먼저 번 후원에서 십년 전 스승님이 남긴 초상화가 있다고 하던데... 자세히 듣고자 왔습니다.
김명륜 : (김홍도 보다가) 그것을 왜 묻는가?
홍도 : 스승의 발자취를 좇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이 남긴 그림과 문장을 정돈하여 두고자..
김명륜 : 아름다운 생각이로군. (턱 고이며) 십년 전... 십 년 전이라...
S#28-2. 김명륜의 집 / 사랑채 / 밤
김명륜 앉아있고, 초상의 초를 뜨는 강수항의 뒷모습 보인다.
김명륜(소리) : 대화원께서는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초를 떠가셨네.
S#28-3. 김명륜의 집 / 사랑채 / 낮
김명륜 : 그리고 며칠 후, 대화원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지.
홍도, 윤복 : (심각한데)
홍도 : 하면, 그 그림이... 대화원께서 남기신 마지막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김명륜 : 안 그래도 그 때문에 그 그림을 버리지도 못하고 찜찜하게 생각하고 있네.
윤복 : 대화원의 그림을, 왜 버리려 한다는 말입니까?
김명륜 : 그건, 그 그림에 묘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네.
윤복 : 묘한.. 구석이라.. 무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김명륜 : (그림 생각 하다가, 정색) 헌데, 갑자기 그 얘길 묻는 연유는 무엇인가?
홍도 : 대감. 그 그림을.. 제게 보여주시겠습니까?
김명륜 : 그림을 보여달라... 단원. 도화계의 법도를 알고 있겠지? 엄격하기로 유명한 우리 오죽회의 법도를 말이네.
홍도 : 알고 있습니다.
김명륜 : (웃으며) 기대하고 있겠네. 준비가 되거든 연통을 주게.
홍도 : 그리 하겠습니다.
윤복 : (‘무엇일까’ 싶어 홍도 보고)
S#29. 김명륜의 집 앞 길 / 낮
홍도와 윤복, 나란히 걷는데,
윤복 : 도화계의 법도란 무엇입니까?
홍도 : 화계에서 다른 사람의 그림을 청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그림을 그려 주어야 한다.
윤복 : 허면, 스승님께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홍도 손 걱정스레 보면)
홍도 : (오른손 잠시 움직여 봤다가) 그보다, 저 괴팍하고 안목 높은 어른이 무슨 화제를 낼지, 그것이 더 걱정이다.
만족할 만한 그림이 아니면, 스승님의 초상은 구경도 하기 힘들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금일 밤, ... 어디서 한다..
유춘이 눈치채면 정숙이까지 이것저것 묻고 걱정할 텐데..
윤복 : 저... 스승님...
홍도 : (윤복 보면)
윤복 : 이만 가봐야 합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홍도 : 그 사화서로 말이냐?
윤복 : 예... (생각하다가, 표정 밝아지고) 잠시 후 달이 뜨면 앙앙루로 오시겠습니까?
홍도 : 내가 거길 왜 가느냐? 싫다.
윤복 : 뒤쪽으로 돌아오시면 중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 들어오시면 누구와도 마주칠 일이 없고... 또...
홍도 : 안 간다지 않느냐.
윤복 : 저는 자유롭게 밖으로 나다닐 수 없는 몸입니다.
홍도 : 싫다. 나는 네가 그 집에 있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윤복 : 이 수사는 전하께서 내린 우리 둘의 임무입니다. 함께해야합니다. 스승님...
홍도 : 싫다지 않느냐!
윤복 : 기다리겠습니다.
윤복, 미안한 듯 인사하며 자리 뜨고... 홍도, 윤복 보는데...
S#30. 빈청 / 빈청 앞 마당 / 낮
김명륜과 대신들, 빈청을 나서고 있는데... 김귀주와 대신들이 빈청을 들어서고,
김귀주 : (살갑게) 호판 어르신. (공손히 인사하며) 그동안 평온하셨는지요.
김명륜 : (고개 끄덕이며) 자네도 잘 지냈는가.
김귀주 : 어르신 덕분에요. (슬쩍 눈치보고) 근래에 어진화사로 물의를 일으킨 화공들이 호판 어르신 집에 왕래했다 들었습니다.
김명륜 : 단원은 내 옛적부터 알던 사이니 내 집을 찾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지.
김귀주 : 초상화라도 한 점 제작하시렵니까.
김명륜 : 아니. 아니. 그 반대네. 단원이 10년 전 제 스승이 남긴 내 초상화를 달라고 하더군.
김귀주 : 허! 환쟁이들 주제에 감히 호판 어르신께 초상화를 내달라니요. 어진을 찢더니 정신이 나갔나봅니다.
절대 내주시면 안 됩니다.
김명륜 : 단원의 스승은 내 절친한 벗이기도 한데. 어찌 그 청을 쉬이 넘어갈 수 있겠는가.
김귀주 : 그렇지요. 그런 자들에게 초상을 보이다니요, 안될 말이지요.
김명륜 : (보다가) 담장 너머 일에는 눈길만 대도 싸움이 붙는다 하였네. 그 일은 내 소관이니 더 이상 참견 말게.
김명륜, 도포 날리며 마당을 가로 지르면... 김귀주, 그 뒷모습 보는 위로...
정순왕후 : (소리) 단원이... 10년 전 강수항이 그린 초상화를 찾는다...
S#31. 정순왕후 처소 / 낮
정순왕후 마주하고 김귀주, 조영승 앉아있는데...
김귀주 : 그 초상화에 비밀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순왕후 : 강수항이라는 자는 영리하니, 그림 어딘가에 비밀을 숨겼다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그 당시 그린 초상화가 그 한 점 뿐이랍니까.
김귀주 : 그 것은... 좀 더 알아봐야...
조영승 : 단원이 강수항의 전적을 밟는다는 것은 필시 다시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정순왕후 : 서두르세요. 단원 그 자가 초상화를 손에 넣기 전에 우리가 초상화를 먼저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단원이 수사를 진행할 수 없도록 발목을 묶으세요.
S#32. 김조년의 집 / 사화서 / 윤복의 작업장 / 밤
윤복, 잘라 논 대나무 다섯 개를 펼쳐 놓고 고심하는 중이다.
윤복 : (창 밖 보는데)
김조년(소리) : 화공. 깨어 있는가?
윤복 : (허둥대며) 드... 들어오십시오.
S#32-1. 김조년의 집 / 사화서 뒤 쪽문 앞 / 밤
홍도, 끼이익 쪽문을 열고 사화서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윤복이 사는 곳이 이 곳이구나... 주변을 휘이- 둘러보는데...
S#32-2. 김조년의 집 / 사화서 / 밤
삼돌, 작은 술상 놓아주고 윤복과 김조년에게 한 잔씩 따라주고 가면,
김조년 : (잔 들고) 들게.
윤복 : (마시고, 긴장) 무슨 일로 이 시각에...
김조년 : 김명륜 대감님 댁에서 연통이 왔네. 자네의 그림으로 호조판서인 김명륜 대감의 마음을 사로잡아
우리 상단의 물목이 궐 안까지 미치게 되었으니 상주를 주려 왔지.
윤복 : (무심하게) 제 몫의 일을 해 낸 것일 뿐.
김조년 : (한 잔 들이키고 뜸들이다) 그리고... 일전에 보았던 금기... 정향이 일로 자네와 상의할 것이 있어 왔네.
윤복 : (잔 입에 대다가 긴장해 보면)
김조년 : 정향에겐 정인이 있네.
윤복 : (술잔 만지던 손 멈추고)
김조년 : (잔 만지며) 남자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 정인이 부럽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자를...
윤복 : (조년 보고)
김조년 : (윤복 보다가) 하여, 부탁을 하고자 하네. 언젠가 정향이가 내 진심을 보아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네.
그 때 까지.. 자네가 잘 살펴주게. 정향이 주변에, 그 정인이 다가오지 않도록.
윤복 :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김조년 : 자네는 화인으로서 누구보다 날카로운 눈을 가졌으니, 여인의 마음이 떨리는 순간을 알아낼 수 있을 것 아닌가.
그 자를 보거든.. 화폭에 담아, 내게 일러주게. 아무도 모르게..
윤복 : (김조년 보는데)
S#32-3. 김조년의 집 / 사화서 앞 / 밤
홍도, 사화서 담장 밖에 서서 안쪽 보면,
윤복(소리) : 담장 밖에 와서 스승님인 줄 알 수 있는 소리를 내십시오.
홍도 : 대체 무슨 소리를 내야 하는 건지.. (하늘 보는데)
달이 검은 구름에 가려 사라진다.
S#32-4. 김조년의 집 / 사화서 / 밤
홍도(소리) : 찍! 찍찍찍찍! 찍!
김조년 : (쥐 소리 의식하며) 이 무슨 소린가?
윤복 : (홍도임을 알고, 난감한) 본래 이 시간엔 쥐가 활동을 시작하지요. 허허...
김조년 : (술병 들며) 한 잔 더 하시겠나?
윤복 : (술 잔 내밀며) 좋습니다.
S#32-5. 김조년의 집 / 사화서 앞 / 밤
홍도 : 이 녀석... 소리가 작나....
S#32-6. 김조년의 집 / 사화서 / 윤복의 작업장 / 밤
홍도(소리) : (더 크게) 이야오옹~ 이야오옹~
김조년 :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윤복 : (헉, 놀라 진땀 나는) 쥐가 끓는 곳에 응당 고양이도 있지요.
홍도(소리) : 이야오옹~
윤복 : (난감해하며 조년 보고) 하하하... 무척 배가 고픈가봅니다.
김조년 : 이런... 덫이라도 놔야겠군. 당체 시끄러워 집중할 수가 없겠네.
S#33. 김조년의 집 / 사화서 앞 / 밤
홍도 : (사화서쪽 향해) 이야오옹~
윤복 : (2층에서 고개 내밀고) 쉿! 쉿!
홍도 : 응? 쉿?
윤복 : (숨으라는 듯 제스쳐하며 발을 동동 굴리고)
홍도 : (무슨 뜻인지 몰라 황당해하다가 사화서 앞으로 김조년 지나가는 것 보고 장독대 밑으로 몸을 숨긴다)
김조년, 장독대 옆을 스쳐가면...
홍도, 순간 내가 왜 숨어야 하나 싶어 벌떡 일어나고...
윤복, 놀라 사화서 앞으로 후다닥 뛰어 내려가고... 김조년, 사라지고 없다.
홍도 : (흠칫하며) 아이고. 깜짝아.
윤복 : 쉿! 대체 찍찍은 뭐고 이야옹~은 뭡니까.
홍도 : 네 놈이 쥐콩이니 생각나는 게 별 수 있겠냐.
이때, 바깥쪽에서 ‘에취’ 삼돌이의 재채기 소리와 발자국 소리 들린다.
윤복 : (놀라) 숨, 숨으십쇼!
홍도 : 어디루 말이냐? (우왕좌왕)
삼돌이 : (바깥쪽에서) 거 누구요? 화공이십니까?
윤복 : (홍도의 손을 잡고, 잽싸게 장독대 뒤로 숨는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삼돌이, 마당으로 막 들어온다. 주위를 살펴보고, 아무도 없자 갸웃 하면서 나가려다, 장독대를 본다.
장독대로 가서 살펴보는, 홍도와 윤복 둘이 달라붙어 숨을 죽이고 있는데...
홍도와 윤복, 서로의 얼굴이 닿을 듯 가깝다. 괜히 서로 기분 야릇해지고...
아슬아슬하게 홍도와 윤복을 보지 못한 삼돌이 자리를 뜬다.
홍도와 윤복... 여전히 그 자세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S#33-1. 김조년의 집 / 사화서 / 윤복의 작업방 마당 / 방
윤복, 불 들고 앞장서 걷고,
홍도, 윤복 따라 들어오며 작업방 둘러보는데..정갈하게 정돈된 고급스런 작업방 내부.
어두운 방 안, 초 몇 개 은밀히 빛나고..
윤복 : 앉으시지요. 스승님.
홍도 : (주변을 둘러보며) 아방궁이 따로 없구나.
윤복 : (분위기 바꾸려) 무엇일까요? 스승님의 스승님이 남긴 초상화 속에 무언가... 숨겨 둔 비밀이라도 있을까요?
홍도 : (촛불 속에 빛나는 윤복의 눈빛 보자 자꾸 마음이 흔들리고) 모르겠다. 일단 뭐든지 매달려 봐야지...
윤복 : 그림 속에 암호나 기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홍도 : 그림을 보면 알게 되겠지. 문제는 그 그림을 받는 것인데...김명륜 대감은 도화서 화계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다는
오죽회의 터줏대감이다. 스승님께서도 쩔쩔 맬 정도로 깐깐한 눈을 갖고 계신... (하다가, 뭔가 느낀 듯 말 느려지고) 가만...
윤복 : 아.. 대화원이었다는 스승님의 스승님께서도 쩔쩔 매셨다니..
홍도 : (무릎 탁 치며) 그래! 그것이었어!
윤복 : 무엇입니까?
홍도 : (돌아보고) 다섯 개의 대나무란, 다섯 오, 대나무 죽! 오죽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윤복 : 다섯 개의 대나무... 그럼, 필시 다섯 계원 모두에게 단서가 있을 것입니다.
홍도 : (흐뭇하게 웃고) 그럴 수도 있겠다. 영민한 놈. 내가 오늘 밤, 오길 잘 했구나.
윤복, 스승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한 자신이 뿌듯하여 웃고...
홍도, 순간 촛불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윤복의 눈빛 보며 마음 흔들리는데...
홍도 : 정향 때문이냐?
윤복 : (홍도 보면)
홍도 : 이 집에 온 것이...
윤복 : 보셨습니까...
홍도 : (정향 때문이라 짐작하고) 그래... 남녀의 정이 그렇게 쉬이 끊어질수 있는 것이더냐.
윤복 : 그 얘긴 영원히 비밀로 묻고 싶습니다.
홍도 : 비밀이라.. (윤복 보다가) 용이 눈을 감는 날을 아느냐?
윤복 : 그것이 무엇입니까?
홍도 : (창밖으로 나가 구름에 감춰진 달 보며) 아주 가끔씩, 달빛이 검은 구름에 감춰져서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하늘을 지키는 용도 눈을 감는 날이라고 한다.
윤복 : (함께 창밖으로 가, 그 감춰진 달 보며) 그런 것이 있습니까?
홍도 : (윤복 보고) 그런 날에는, 마음 속 깊이 숨겨놓았던 비밀을 말해도, 그것이 묻힐 수 있다고 한다.
윤복 : 그것 재미있겠습니다. 스승님께도 있습니까? 숨겨놓은 비밀이? (놀이하듯, 밝게 홍도 보면)
홍도 : (윤복 보다가) 너는 있느냐?
윤복 : (홍도 바라보고) .... 그립습니다. 스승님이...
홍도 : (불빛에 일렁이는 윤복 얼굴 보는)
윤복 : 여인이라면... 제가 여인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홍도 : (윤복의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 보며 ‘대체 넌 누구냐’ 싶고.. 괴로워 보면)
윤복 : (홍도 보며, 여자인 것 밝히지 못한 것이 괴롭고)
S#34. 길 / 낮
홍도, 윤복과 만나는 길로 가는데.. 윤복이 나무 아래 서 있는 것 보인다.
홍도, 윤복에게 가면,
윤복 : (어색함 감추려) 지난 밤에는 잘 주무셨습니까?
홍도 : (어젯밤 일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듯) 넌 잘 잤느냐?
윤복 : 예.
홍도 : 그래. 그래야지. 가자. 화사를 하러.
윤복 : 예.
홍도와 윤복, 나란히 가다가 어색해 서로 다른 쪽 보고 걷는데.
S#35. 김명륜의 집 / 낮
홍도와 윤복, 김명륜의 집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데, 앞에서 다다다 뛰어오던 아이와 홍도가 부딪힌다.
아이 꽈당 넘어지고,
홍도 : (아이 일으켜 세워주고) 어디 다친데 없느냐?
아이 : (대꾸없이 흙을 툭툭 털고, 홍도를 한번 보곤 다다다 뛰어간다)
윤복 : 괜찮으십니까?
홍도 : 그래...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cut to,
대청에 서있는 김명륜,
김명륜 : 왔는가?
홍도, 윤복 :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김명륜 : (홍도와 윤복 보다가) 자신 있는가? 그 손으로?
홍도 : 화제는 무엇입니까?
S#36. 김명륜의 집 / 대청 / 낮
홍도와 윤복 앉아있고, 김명륜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아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고,
김명륜 : 그림을 그려, 내 아들을 웃게 하는 것이 화제네.
홍도, 윤복 : (심란하게 김명륜 아들 보다가)
김명륜 : 할 수 있겠는가?
cut to,
대청, 돗자리 위에 그림 그리는 도구들 준비되어 있고,
윤복, 안료들 하얀 접시에 옮겨 담는다.
윤복 : (홍도에게, 작게) 무엇을 그리시겠습니까?
홍도 : (근엄하게 있다가, 작게) 모르겠다.
윤복 : (잠시 당황하다 홍도 보면)
홍도 : (여전히 근엄한 표정)
윤복 : 화사에 쓸 물을 떠 오겠습니다. (일어서고)
S#37. 김명륜의 집 안 / 우물가 / 낮
윤복, 우물에서 물을 떠서 일어나는데, 여종 둘이 물 긷는 모습 보인다.
윤복, 물그릇 들고 오다가, 돌아간다.
윤복 : 말씀 좀 묻겠소.
여종둘 : (윤복이 말 시키자 킥킥 웃다가)
여종1 : 말해 보시오.
윤복 : 요 앞, 호조판서 대감댁 도련님은, 언제부터 웃질 않소?
여종1 : 글쎄... 그것이 언제더라? 아무튼, 어릴 적에, 역병이 돌아 마님과 도련님이 앓아누웠는데,
마님은 돌아가시고 도련님은 겨우 살았다고 해요.
윤복 : (생각에 잠기고) 그 당시 얘길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소.
S#38. 김명륜의 집 / 대청 / 낮
홍도,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윤복이 물그릇 들고 옆에 온다.
홍도 : 다녀왔느냐?
윤복 : 스승님.. 혹.. 도움이 될 지 모르겠으나..
홍도 : 무엇이냐?
윤복 : (홍도 귀에 대고 얘기하면)
홍도 : (빙긋 웃는다) 좋은 이야기를 물어왔구나. (윤복에게 미소짓고)
윤복 : (얼굴 붉어지고)
김명륜 : 화사를 시작하겠는가?
홍도 : 예. 시작하겠습니다.
홍도, 손 내밀면, 윤복이가 아픈 손에 붓 쥐어주고, 정성스럽게 끈으로 붓을 손에 단단히 동여매 준다.
- 14부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