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 퓨리(Fury), 2014
주일 오후 집에서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퓨리(Fury), 전쟁영화다.
제2차세계대전의 이야기다. 때는 1945년 4월, 독일군의 항복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합군은 계속 독일 본토를 공격한다. 이 영화는 육군이 마을들을 차례로 점령해가는 장면을 그린다.
설교 시간에 자주 인용되는 D-Day와 V-Day는 노르망디상륙작전이 개시된 1944년 6월 6일과 독일의 제3제국이 패망하고 연합군이 완전한 승리를 거둔 1945년 5월 7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승리를 이미 얻은 결정적인 D-Day로 비유하고 예수님의 재림의 날 만국을 완전히 통치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완성하는 그 날을 V-Day로 비유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already)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not yet)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그 사이에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영화는 설교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사용하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이 ‘너무 이상적인’(too idealistic)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사이에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고 혹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세가 기울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쟁은 가만히 두면 금세 역전되고 말 것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단단히 준비를 하고 싸움에 임해야 하는지 다시금 비장한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극중 인물 워대디(Wardaddy)인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한 대사를 적었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Ideals are peaceful, history is violent!) 여러 전투를 치르면서 몸의 여러 곳에 상처를 입은 워대디는 신참인 노먼에게 전쟁은 장난이 아님을 가르치면서 이 말을 했다. 영화를 보면, 워대디는 성경을 제법 많이 알고 있다. 아마 그는 주일학교를 충실히 다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단지 교회에 다니고 세례를 받은 노먼보다 더 신앙심이 깊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현실을 경험하고 난 후에 신참으로 들어온 기독교인인 노먼을 일깨워주려고 한 말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지금처럼 평화롭지는 않았다. 제2차세계대전을 치른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 아버지 세대도 있다. 전쟁이 터지면 젊은 사람들은 전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마치 내가 징집되어 군복무를 해야 했던 것처럼. 그 전쟁의 한복판에서는 사람을 죽여야 하고 자신을 지키고 동료를 위해 나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을지 아니면 달아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은 이 땅을 살아간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럴 때가 있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총성이 울리는 전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나는 1987년에 대학에서 헬라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 때 문법책에서 배운 단어 중 하나는 아즈베토스(asbestos)였다. 그 의미는 억제할 수 없는(inextinguishable) 또는 억누를 수 없는(unquenchable),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irresistible)이었다. 오늘날 이 단어는 불에 타지 않는 석면(asbestos)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전쟁에서 임무를 맡은 병사는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적군을 맞서야 하고 총격으로 사살해야 한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임무다. 결코 피할 수 없다. 그 자리를 피하여 달아나 탈영병이 되기 전에는 어찌할 수 없다. 오늘 전시가 아닌 지금도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담벽과 같은 현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각 사람이 마주한 환경에서 그런 일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나의 경우에 최근에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던 중에 그의 생각과 더 이상 논쟁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나는 담벼락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나의 동료요 나의 교우요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더불어 살아야만 한다.
제2차세계대전에 독일 본토 한 가운데서 치르는 매일의 전투, 그것이 인생이다. 그것은 77년 전에 이 땅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현실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 중에는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총살당한 디트리히 본훼퍼도 있다. 1945년 4월 9일, 본훼퍼는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에 던져진 존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임무가 하달된 군인이 전투에 임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 앞에 주어진 상황과 임무에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그 탱크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군인들처럼 우리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신참병 노먼처럼 행정병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최전방에 배치된다. 이것은 틀림없이 어떤 착오로 된 것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실전을 배우고 적을 사살하는 체험도 한다. 전에는 자기 양심상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이제 거리낌없이 해치운다. 아니 그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이것은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배우고 겪는 일이다. 그래서 영화나 게임에도 연령에 따른 등급이 있지 않은가! 아이는 청년이 되고 청년은 아비가 된다. 신참은 베테랑이 된다.
이렇게 거대한 세계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의 삶은 단지 거대한 세상에 던져져 의미 없는 싸움을 끝도 없이 하는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히틀러를 암살하여 이 비극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행동한 본훼퍼도 이상(ideal)을 좇아서 살았고, 탱크 속에서 인생이 끝날 것을 감지하면서도 독일군을 퇴치하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병사들도 그 신념을 따라 살았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한 말을 뒤집어 다시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역사는 폭력적이나
이상을 따라 자신을 바친 사람들을 통해서 평화의 세상이 온다.”
(History is violent, but the peaceful world will come
through those who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 sake of their ideals.)
전쟁은 사람을 야수로 만든다. 그래서 전시에 인간이 행한 범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이상을 따라 살고자 노력한다. 이 영화에서는 독일인 아가씨 엠마를 지켜주려는 워대디(브레드 피트)와 노먼의 노력이 그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서 독일인 병사는 탱크 밑에 숨은 노먼을 보고 자기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지나친다. 그 둘은 비슷한 또래의 청소년들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수많은 해외용사들도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이상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물론 그들은 징집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성경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상과 현실을 보여준다. 공허와 혼돈으로 어지러운 현실을 어떻게 질서와 조화, 그리고 생명으로 충만하게 만들어가는지 들려준다. 그리고 세상이 망가지고 황폐해질 때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 대리인들을 부르셔서 새롭게 하시며 충만하게 하시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작업이 창조활동임을 가르쳐준다. 어쩌면 성경은 처음부터 인간이 공허와 혼돈 가운데 사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이상을 제시하며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계명과 규례를 충실히 따를 때 생명의 평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형상이며, 에덴동산의 이미지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판타지며, 예언자들의 환상 속에 그려진 비전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이상을 제시한다.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완벽하고 충만한 세상이다. 평화롭고 폭력이 없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자녀나 청년들이나 아비들이 모두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에 정통한 세상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되는 세상이다. 그것은 공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세상이다. 이런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고 그 세상을 바라며 오늘 황량한 광야를 일구는 존재,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택하신 백성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이상만으로는 살 수 없다. 처절하고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그 이상이 구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혼돈된 세상에서 이상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그 자체로 짐승이 된다. 그리고 인간 때문에 세상은 더 빨리 더 넓게 황폐화된다. 그렇게 인간이 중요하다! <끝>.
추가 자료: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1
https://cafe.daum.net/Wellspring/8Rmj/198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2
https://cafe.daum.net/Wellspring/V1q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