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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타악 명품영상 ★ 스크랩 글방 남원 금지농악 명인, 류명철 선생의 인생과 농악 이야기
꿈이여 사랑이여 추천 0 조회 103 13.05.29 00: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농촌을 그린 작가 | 농어촌과 예술

 

 

“50년 세월, 가락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

 

남원 금지농악 명인,
류명철 선생의 인생과 농악 이야기

 

 

글 | 정보현, 사진 | 한승호(홍보실)

 

 

 

 

 

호남 좌도농악의 자랑, 남원 금지농악

 

 


 

 

농악은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농사일을 할 때 꽹과리, 징, 장구, 북과 같은 타악기를 가지고 벌이는 음악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농사일의 고됨을 잊게 하고 흥을 돋구는 역할은 물론, 우리 민족 특유의 공동체문화와 음악성을 엿볼 수 있는 전통예술이다.


지금도 지역 곳곳마다 농악의 명인들이 소중한 문화유산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류명철 선생(69)(전라북도 무형문화재 7-4호)은 호남좌도농악의 한 부류인 남원 금지농악의 계보를 유일하게 잇고 있는 명인이다. 평생 농악과 함께 해온 그의 삶에는 농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자부심이 있다.


“농악은 대부분 지역마다 마을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이어져 오기 마련인데, 유독 남원농악은 140~150년 전부터 농악대가 각 지방을 돌며 굿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농악을 공연예술로 활용을 했던 것이죠. 전라도 농악의 특성을 골고루 지니고 있어 가락이 다양하고, 단원들이 모두 상모를 쓰고 굿을 치기 때문에 보기에도 듣기에도 신명 나는 농악이죠.”

 
류명철 선생은 해방 직후 남원농악의 맥을 이은 명인 故류한준 옹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농악을 듣고 자란 그는 16살 되던 해 처음으로 농악을 배웠다.

 

 

상쇠는 나의 운명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옆에서 보고 겪다보니 자연스럽게 농악과 친해지고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왠지 나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작정 가르쳐달라고 따라다니기 시작했죠. 악기 없이 상모만 쓰고 상쇠 뒤를 따라다니면서 조금씩 체득해 갔죠. 18살이 되던 해 전국대회에 출전해서 우승을 하고, 주위에서 아버지보다 잘할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 농악이 내 천직이구나 싶은 생각을 했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남다른 재능과 열정은 그를 남원 금지농악의 대표적인 인물로 성장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농악 인생이 늘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세상의 편견이 그로 하여금 잠시 농악을 접게 하기도 했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생기던 때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제가 어릴 때부터 하늘을 향해 머리를 흔들어 대서 그렇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런 말들이 많은 상처가 되었고, 농악이 하기 싫어졌죠. 그래서 10년 가까이 농악을 내려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연이 질긴 때문인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제자들의 끈질긴 설득과 남원농악의 전통이 끊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는 다시 꽹과리를 들고 남원농악의 맥을 잇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농악의‘興’, 많이 즐겨 주시길


농악을 다시 시작한 그는 다수의 공연 외에도 92년 남원농악 보전회를 창단하고 99년도에는 시립농악단 창단에 참여해 부단장으로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가락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지금은 여러 곳에서 강의도 하고, 제자도 많이 생겨 더 보람이 생깁니다. 농악의 보전과 발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죠.”

남원농악보전회와 류명철 선생이 열심히 활동한 결과 지금 남원에는 23개 읍면동마다 농악단이 하나씩 생겼고 경연대회도 매년 열리고 있다. 농악이 지역민들의 취미생활로 자리 잡은 셈이다.


“농악을 즐기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참 좋아요. 그만큼 농악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예술로 변모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도 도입을 많이 하고 창작활동을 많이 해야 농악이 더욱 보편화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 설계가 완료된 남원농악 교육관이 하루 빨리 완공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는 그. 그의 농악 인생에도, 우리 농악의 보전에도 신명나는 앞길만 있었으면 한다.

 


「남원 금지농악」

 
한국의 농악은 현재 크게 지역별로 영동농악, 경기 충청 농악, 영남농악, 호남농악으로 구분된다. 이 중 호남농악은 다시 전라도 서부의 호남우도 농악과 산간이 많은 동부지역의 호남좌도농악으로 나뉘며, 호남좌도농악 중 현재까지 계보가 전승되는 주요 농악이 충남의 금산농악, 전북 진안 중평농악, 임실 필봉농악, 남원 금지농악, 전남 곡성 죽동농악 등이다. 남원농악은 남원, 운봉, 곡성지역을 대표하는 농악으로, 좌도농악의 특징을 뚜렷하게 지키면서도 진안농악과 임실농악의 장점들을 가장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농악으로 평가받는다. 일찍부터 여러 고을을 상대로 하는 걸립농악, 연예농악으로 발전하여 수준이 높고 흥겹다. 류명철 선생이 현재 남원 금지농악을 계승하는 유일한 명인이다.

 

 

 

출처 : 흙사랑물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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