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룡놀이의 모태가 되고 있는 단야낭자의 전설이 전해오는 벽골제는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 축조되어 있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충북 제천의 의림제(義林堤), 경남 밀양의 수산제(水山堤)와 함께 삼한시대의 3대 수리시설 중 하나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신라본기(新羅本紀)」2 흘해니사금(訖解尼師今) 21년조에, “처음으로 벽골지(碧骨池)를 개착(開鑿)하니 언덕 길이가 1,800보(步)이다(二十一年 始開碧骨池 岸長一千百步).”라고 하여 330년에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벽골제의 축조는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인위적으로 가두어 두었다가 농번기에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기 위함으로, 그 방대한 규모는 당시의 토목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벽골제 전설에 의하면, 현재 전북 김제시 월촌동과 김제시 부량면의 경계를 이루는 원평천을 가로막은 벽골 제방에서 약 2백 미터 하류 지점의 신털미산[草鞋山] 북쪽 끝에 있는 커다란 웅덩이인 용추(龍湫)에 백룡(白龍)이 살면서 벽골제를 수호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용을 벽골룡이라 불렀다. 한편 벽골제 중간 제방 약 1백 미터 하류지점인 부량면 용골마을 남단의 연포천(蓮浦川)에는 청룡(靑龍)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두 곳을 가리켜 쌍룡추(雙龍湫)라 하고 백룡과 청룡을 쌍룡이라고 불렀다.
백룡은 온후(溫厚)하여 인명을 수호하고 제방을 지켜주며 재난에서 인간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청룡은 본래 성질이 사납고 이따금 비바람에 의한 재난을 일으켜 제방과 가옥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인명까지도 해치고 있었다. 이에 이웃에 살고 있는 백룡이 충고하였으나 청룡의 난폭한 행동은 계속되었고 끝내는 쌍룡의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붕괴 직전에 놓인 벽골제 보수 공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청룡은 안전한 축제(築堤)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보장하며 김제태수(金堤太守)의 외동딸 단야의 목숨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결국 단야낭자는 수많은 장정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쌓은 벽골제를 지키고 김제, 만경평야의 풍년을 가져오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되고, 이러한 단야의 거룩한 희생정신에 감복한 청룡은 물러나고 인신 제물의 악습도 없어지게 되어 평화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놀이의 내용을 보면, 쌍룡놀이는 벽골제에 전승되는 단야낭자의 설화를 중심으로 하여 축제공사 현장 - 쌍룡놀이 - 단야의 희생 - 단야의 소생 순으로 전통 방법에 근거하여 진행된다. 놀이에 등장하는 쌍룡 및 의상과 도구들 모두 전통 쌍룡놀이에 근거하여 그대로 제작하였다.
제1장 축제 공사 현장에서는 청룡의 심술로 어렵게 쌓아올린 벽골제가 무너져내린다. 이때 국가에서 기술자 원덕랑을 파견하여 김제태수와 인부를 동원하여 보수공사를 한다. 김제태수 유품(由品)은 원덕랑을 도와 인부들을 독려하고, 둑을 쌓기 위해 인부들은 토석을 운반하면서 말박기 노래를 부른다. 이때 부르는 말박기 노래는 다음과 같다.
어야라 동동 상사도야 들어라 동동 상사도야
얼럴럴 상사도야 얼럴럴 상사도야
삼백근 몽기가 상하를 물고
얼럴럴 상사도야 얼럴럴 상사도야
삼발대 밑에서 벌나듯 한다.
얼럴럴 상사도야 얼럴럴 상사도야
열두자 말을 박을라면
얼럴럴 상사도야 얼럴럴 상사도야
우리네 인부들 욕들보겠네.(후략)
제2장 쌍룡놀이는 한참 공사를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천둥과 번갯불이 일며 비바람이 몰아닥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동편에서 청룡이 괴성을 지르며 공사장에 나타난다. 놀란 사람들이 원덕랑을 원망하면서 도망가고, 서편에서 백룡이 고갯짓을 하면서 청룡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백룡은 둑을 수호하기 위해 몇 번인가 청룡을 달래보지만 포악한 청룡은 듣지 않고 둑을 무너뜨리려 한다. 결국 백룡과 청룡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끝내는 백룡이 당하지 못하여 패하고 다시 서편으로 사라진다.
제3장 단야의 희생에서는 승리한 청룡이 완공되어 가는 둑을 무너뜨린다. 이때 이속(吏屬)이 앞에서 지휘하며 교자상에 보쌈한 여인(월내)을 싣고 청룡 앞으로 다가온다. 청룡 앞에 여인을 내려놓고 이속들은 포대를 벗긴다. 이윽고 포대가 벗겨지는 순간 월내낭자가 아닌 태수의 딸 단야임을 알자 이속들은 놀라며 뒷걸음질로 도망친다. 이때 단야의 창이 나온다. 창이 끝날 무렵 단야는 먼저 부모님께 비통하게 고별 인사를 올린다. 원덕랑과 월내가 결혼하여 누대토록 영화를 누리라고 축원한 뒤 스스로 제물이 되고자 서서히 청룡 앞으로 다가가다 쓰러진다. 이러한 단야의 태도를 지켜보던 청룡은 단야의 의에 감화되어 머리를 끄덕이고 뒤로 사라진다.
마지막 제4장 단야의 소원무에서는 단야가 기절한 뒤 김제태수 유품이 뒤늦게 이속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달려온다. 다행히 단야가 죽지 않고 기절해 있음을 확인한 태수는 딸을 얼싸안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단야의 거룩한 정성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단야는 의식이 들자 아버지 품안에서 머리를 묻고 감회 어린 울음을 터뜨린다. 이때 이속들과 몸종 다복이 그리고 인근에 있던 백성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모여들어 단야의 의로운 치성에 천우신조가 있었다면서 감격한다. 잠시 후 이 고을은 경사를 맞은 듯 백성들이 농악을 치고 농부가를 부르며 군무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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