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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시죠? 6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7월이에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달력상의 구분에 지나지 않죠. 누가 연속적인 시간을 분철해서 나눌 수 있겠어요?
그저 인간의 편의에 따라 구분할 뿐이죠.
각설하고, 최근 읽은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책은 고전이에요.
도서명: 작은 아씨들
저자: 루이자 메이 올컷
* 이 책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4번 일반소설 부문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어릴 때부터 고전을 접한 경험이 있다. 물론 책으로는 아니었다. 만화, 즉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왜 굳이 재미없을 것 같은 책을 펼치리오. 그래서 빨간머리 앤, 플란더스의 개 등의 고전을 생각하면, 책보다 만화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번에 독서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접하지 않았다. 아니, 설령 보았더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게는 보지 않은 것과 같다. 말하자면 만화 이전에 정식으로 책을 통해 접한 고전인 셈이다.
1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사랑받는 네 자매의 이야기
“난 우리 아이들이 내가 한 말을 기억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소. 엄마의 착한 딸들이 되고, 자기 책임을 성실히 실천하고, 내부의 적과 용감하게 맞서고,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서 내가 그 애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 작은 아씨들에 대해 더 큰 애정과 자부심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해주시오.”
이야기는 네 자매가 어머니를 기다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계절은 겨울,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 네 자매는 첫째 메그(마거릿), 둘째 조(조세핀), 셋째 베스(엘리자베스), 넷째 에이미로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메그는 장녀답게 의젓하지만 패션이나 치장에 관심이 많다. 조는 망아지 같은 겉모습과 똑같이 매우 활달한데, 한편으로는 독서와 글스기를 아주 좋아한다. 베스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가정적인 소녀고, 피아노와 아기 고양이와 인형들을 사랑한다. 에이미는 그야말로 철부지 막내의 이미지인데, 성격 역시 인상과 다르지 않다. 그림 그리기가 취미이자 특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네 자매 모두 제각각 다른 성격이라 종종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다. 이런 자매의 옆에는 어머니 마치 부인과 집안일을 거드는 가정부 해나 부인뿐이다. 아버지가 남북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제법 부유했으나 재산을 잃어서 지금은 검소하게 살고 있다. 집안에 남자가 없고 오직 여자들뿐이라 얼핏 불안해 보일 것 같다. 하지만 마치네 가족들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그 시간들을 견딘다. 메그는 가정교사 일을 하고 조는 친척 할머니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한다. 베스는 해나 부인을 도와 집안일을 맡았고, 막내 에이미는 학교에 다닌다. 한편 어머니는 군대에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봉사 활동을 한다. 가족은 고단한 하루를 보낸 후 저녁에 모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날을 마무리한다. 아버지의 편지가 있다면 그 하루는 가장 행복한 날이다. 이런 마치 가족에게 일년 사이에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웃에 사는 로런스 씨의 손자 로리, 그의 학업교사 존 브룩 씨와의 어울림, 로런스 할아버지의 배려, 친구들의 사교 파티 참석, 로리와의 캠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며 보내는 하루하루에 대한 실험 등등. 그런 나날 가운데 마치네 네 자매는 영국 소설가 존 버니언의 실제 작품 ‘천로역정’이라는 소설을 길잡이 삼아 각자 가진 결점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편지에 따라 ‘자랑스러운 작은 아씨들’이 되도록 노력한다. 비록 일상은 기쁜 일보다 힘든 일이 많고, 화려함과 부유함 대신 가난에 밀려 소박한 형편이지만 그들은 평범한 하루와 그저 그런 시간에 상상을 덧입히면 더욱 즐거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나날 속에 마치가의 네 자매는 각자가 조심하리라 다짐했던 것들, 메그의 허영심, 조의 욱하는 성격, 베스의 수줍음, 에이미의 오만함을 조금씩 다듬어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물론 계획이 있고말고. 세상 모든 어머니들처럼 내게도 아주 많은 계획들이 있단다. 딸들에게 그런 말을 전하는 데에는 어머니의 입술보다 더 좋은 게 없단다. 내 계획을 잘 듣고 마음에 들거든 엄마가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다오.”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고전이 된 이 이야기는 루이자 메이 올컷이 1868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당시 미국은 여성들의 직업이나 참정권 획득 등의 주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던 시기였다. 소설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 있는데 ‘올바른 숙녀의 몸가짐’을 배우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을 존중하는 내용이 그렇다. 이때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몇 개 되지 않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직업이 ‘작가’였다. 루이자 메이 올컷 역시 작가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렸다. ‘작은 아씨들’은 소녀들을 위한 소설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고전은 1부 ‘작은 아씨들(little girls)’와 2부 ‘좋은 아내(good wives)’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부에서는 마치 자매의 유년 시절을 그리고, 2부에서는 어른이 되고 각자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3년 뒤의 모습을 다룬다.
1부에서 재미있었던 대목은 네 자매가 일상에서 여러 상상과 온갖 놀이를 덧입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초반에 나온 연극 장면이나 피크위크 클럽 모임은 옛날 역할극 놀이하던 때랑 초등학교 1~2학년 때 방학 숙제로 만든 가족 소식지 ‘달빛 신문’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신문의 표지를 기억한다. 남색에 가까운 파란 밤하늘, 노란 보름달, 그 아래 3개의 삼각형으로 솟은 초록빛 산, 보름달 안에서 연지를 바른 듯 떠 있던 홍빛 글씨의 ‘달빛 신문’까지. 물론 그 안에 실었던 그림 및 글 등의 내용도 기억한다. 내가 그린 유치원 꼬마 그림이라든가, 조악하지만 짧은 시라든가, 역시 어설프지만 독서 감상문, 가족에게 전하는 소식들까지. 가위질을 하고, 딱풀로 붙이고, 파스텔로 작업한다고 밤에 온 가족이 둥그런 상에 모여 앉아 휴지를 제법 소비했던 것도 생생하다. 그 정성 덕분인지 제2탄까지 발행된 우리 가족의 ‘달빛 신문’은 전교에서 2회 연속 최우수상을 받기까지 했다. 어릴 때 그저 좋고 재미있었던 일이 세월이 지나 추억이 된 내 경험처럼 마치네 자매들의 천로역정 놀이나 우편함에 얽힌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무신경한 말 한마디로 인해 벌어졌던 원고 방화 사건 같은 일화 등은 성인이 된 그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유년 시절 기억은 아무리 나쁘고 싫은 경험일지라도 훗날에는 추억 보정이 걸려서 상당히 미화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래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한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마치네 부모님의 교육 방침은 오늘날 가정 교육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자녀들을 믿어주고 자리를 비웠음에도 버팀목이 되며 옳바르게 인도하는 아버지, 자식을 위한 충고를 아끼지 않지만 때로 스스로 깨닫도록 결과를 알면서도 지켜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소설을 읽는 내내 퍽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 한편 차츰 자신의 결점을 고치며 성장하는 마치가의 네 자매, 메그와 조, 베스와 에이미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이 소설은 네 자매의 성장기임과 동시에 마치가의 가정사를 다룬 기록이며, 작가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쓴 자서전이기도 하다. 루이자 메이 올컷 역시 네 자매 중 둘째였고 소설가였다. 그리고 작가의 바로 밑에 여동생도 성홍열을 앓았고 언니는 현모양처 유형이었고, 막내는 그림의 재능이 뛰어나서 작가가 번 돈으로 유럽에 유학을 보냈단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의 인생 여정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여기서 잠시, 성홍열에 대해 짧게적고 넘어간다. 왜냐, 내가 이 질병이 뭔가 싶어 따로 찾아봤으니까.
성홍열은 목의 통증과 함께 고열이 나고 전신에 발진이 생기는 세균 감염성 전염병으로 발진이 생긴 피부의 붉은색이 원숭이의 일종인 성성이의 색과 유사한 열병이라 하여 성홍열이라 명명되었다. 영문명인 scarlet fever도 피부색의 변화에서 유래되었단다.
오늘날에도 먹힐, 현실의 한계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한 ‘신여성들’
2부는 3년간 마치가의 근황을 소개하며 유쾌한 결혼식으로 그 막을 연다. 첫째인 메그는 평범하게 결혼해 쌍둥이의 엄마가 되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갈등을 빚는 등 전형적인 그 시대의 여성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허영심과 화려함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하고, 그와의 미래를 그려가는 아내요, 어머니이자, 한 인간으로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비중으로 보자면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작가의 분신 캐릭터인 둘째 조는 말할 것도 없다. 1부에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머리칼을 희생해 돈을 마련하는 모습으로 진취적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로리와의 관계에 부담을 느끼고 그를 스스로 정리한 뒤 떠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한 남자 사람 친구에게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등 뒤끝도 없고 쿨하다. 베스를 끝까지 지킨 것도 결국 그녀이지 않던가. 자신의 글쓰는 재능으로 인기 소설가가 되고, 마지막에 독일인 교수 프리드리히 바에르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 또한 누군가의 강요나 상황에 떠밀린 것이 아닌, 그녀의 적극적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 소설 속의 인물 중, 요즘 여성상에 제일 근접한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한편 셋째 베스의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 구성 중에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눈이 가는 캐릭터이기도 해서 더욱 그랬다. 조가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캐릭터라면, 베스는 특유의 선량함에 뭔가 챙겨주고 싶어서 이목이 간다. ‘마치가의 작은 양심’으로 통했던 게 괜한 것이 아닌 셈이다. 네 자매중 크게 비중이 있는 건 아니지만 피아노를 통한 로렌스 씨와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 그리고 그에게 피아노를 받고 감사의 표시로 직접 슬리퍼에 수를 놓아 선물한 에피소드는 그 훈훈함 덕택인지 마음에 깊게 남았다. 그래서 작가가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이야기가 현실을 반영한다지만, 베스마저 자신이 겪은 결말을 적용시키다니! 나 같으면 오히려 그 반대로 나갔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내가 쓰는 소설에서 그랬으니까. 물론 현실을 반영했지만, 죽었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서든 인연을 다시 이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싶어서 장르가 판타지인 거다. 하지만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야기는 일반 소설이다. 그러나 꼭 자신의 과거를 답습했어야 했나 싶은 원망이 든다. 어쩌면 작가는 베스의 일화를 통해 죽음을 직면하는 개인의 태도, 가족들이 가지면 좋을 심경 및 자세를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막내 에이미도 꽤나 성숙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1부에서는 철부지 이미지로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고, 베스가 주인공인 조와 180도 다르면서도 서로 많이 의지하고, 캐미를 자랑한 데 반해 에이미는 맡언니 메그의 지지와 보살핌을 받는 인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랬던 꼬마가 2부에서는 파리로 공부를 하러 가고, 실연당한 남자를 위로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느끼며, 돈이나 사교계 등 기존의 가치관을 뛰어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신했다. 다만, 사랑의 대상이 되는 남자가 부자의 손자라는 설정이 어쩐지 예의 할리퀸 로맨스 같아서 역시 소설은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했다. 또 결국 다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 잘 사는, 뭔가 최근 양성평등 시대 혹은 진취적인 여성을 강조하는 현대의 트렌드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마치가의 자매들은 시대적 한계와 배경 하에서도 자신들의 주체성을 발휘한 능동적 여성들이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며 삶을 개척했으니까. 그 시대를 고려할 때 가장 ‘신여성’다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자립과 독립에 도취되어 이기적으로 굴지 않고 여성성을 내버리지 않으면서, 전통적 가치관인 가족에 대한 사랑도 지키는, 삶에 겸손함까지도 배워 실천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캐릭터들 아닌가? 이런 교육적인 내용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작품 전체에서 보인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색채가 강한 점이 그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저 아래 있는 그분은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시네. 낮은 곳에 임하시는 그분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시네. 언제나 겸손한 그분은 주님을 안내자로 삼으시네. 적거나 많거나 내가 지금 가진 것으로 족하다네. 짐은 순례의 길을 떠나는 그들에게 축복일지니. 대대손손 주님의 은총이 있으리라.”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네 자매의 삶의 성장과정을 통해 사랑과 가족의 위대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소설이지 싶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한계는 있지만, 그속에서 보이는 주인공들의 능동적인 삶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솔직히 사회적인 한계나 시대적인 제한과 갈등은 그 어느 세대든 존재한다. 없을 수가 없다. 오늘날에도 남자든 여자든 한계가 있고 모순이 있다. 장애인이든 일반인이든 각자 제약은 있고, 노년층이든 젊은이든 나름의 상한선이 존재한다. 중요한 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며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다소 과장스러운 문체 등이 아쉬움으로 남고, 전자도서 제작 과정 중 디테일한 사진 설명을 생략하고, OCR 기능처럼 그저 내부에 있는 문장만으로 해설을 때운 점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고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