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큰 어른이었던 전 동산문도회 문장 능가 스님의 삶
금정총림 범어사 근현대사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능가 스님.
지난달 29일 입적한 능가 스님은 금정총림 범어사의 큰 어른이었다.
법납 70세, 세수 97세였다.
능가 스님은 李씨로 1923년 충북 괴산에서 출생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으나, 철학에 심취한 스님은
1950년 범어사 동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得度, 출가)했다.
그는 불교 정화에 힘을 쏟고 수행가풍을 진작한 선각자였다.
범어사는 1950~1960년대 불교정화운동을 직접적으로
추동한 승려들의 본산이었는데 스님은 동산 문도의 제1세대로서
1960년대 범어사의 이상주의자로 불렸던
‘중견 삼총사 승려’(지효, 능가, 광덕)의 한 명이었다.
그는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종교 통합의 큰 원을 세웠다.
이는 당대 현실에서 불교정화운동을 승화시킨 것이었다.
능가 스님은 조계종총무원 사무처장과 불국사· 조계사·
범어사 주지를 지내면서 1965년 한국 현대사에서 종교간 대화를
시도한 최초의 단체인 한국종교연구협회(한국종교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2·3대 회장은 강원용 목사와 노기남 대주교였다.
나아가 1970년 세계불교도대회 사무총장과
1971년 한일불교도연맹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동산 스님의 뜻을 이어받은 능가 스님은 범어사
근현대사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불교인의 역사의식과 시대사명의 확고한 자각과 인식을 강조했는데
이에 기초한 승려 양성이
한국불교의 미래를 약속하는 관건이 될 거라고 봤다.
그는 1960년대 이후 불교정화운동의 방편으로
당시 범어사 주지 지효 스님을 도와 범어사 총림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스님은 2002년 동산 스님의 유지를
계승한 고승으로서 동산문도회 문장(文丈)으로 추대됐다.
2008년 문장 착좌식을 가지면서 승풍을 개혁·진작해야 한다는
‘능가 선언’을 발표해 범어사의 승풍을 일신했다.
능가 스님의 면모는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스님은 뒤늦게 큰 유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1996년 삼보불교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이웃들의 복지 증진에 앞장서
자비행을 실천해 왔다. 스님은 “부처님 말씀이 잘 전달돼
개인의 삶에 전환점을 줘야 한다”는 원력으로
법보시 운동을 전개해 매년 6만 부 이상의 <불교성>을
각계각층에 무료 배포하며 불법 홍포에 앞장섰다.
이 같은 공로로 2008년 조계종 제20회 포교대상 대상(종정상)을
수상한 바 있다.
스님은 오랫동안 범어사 내원암 회주를 지냈다.
1982년 화재로 큰 피해를 본 내원암의 중창 불사를 주도해
오늘날 면모를 갖추게 했다. 큰 도량의 지혜로 구순을 넘기면서도
하루 책 한 권씩을 읽었다고 한다.
능가 스님은 “만유(萬有)의 원리는 천지가 같은 뿌리(同根)요,
만물이 한 몸(同體)이요, 과거·현재·미래와 전생·금생·내생의
삼세가 하나(同命)”라며 “이걸 현실 생활에 반영시키는 것이
역사가 가야 할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천지 만물이 총동원돼 한 송이 꽃이 피고,
우주가 총동원돼 인간 하나하나가 만들어졌다. 이걸 알아야 한다.
지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했다.
능가 스님 영결식은 지난 2일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동산문도회 문도장으로 엄수됐다.
최학림 선임기자
2020. 6. 9.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