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 편 (38).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꽃씨
고형렬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었습니다
모든 꽃은 자신이 정말 죽는 줄로 안답니다
꽃씨는 꽃에서 땅으로 떨어져
자신이 다른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몰랐답니다
사실 꽃들은 그것을 모르고 죽는답니다
그래서 앎대로 꽃은 사라지고 꽃씨는
또다시 죽는답니다
모진 추위에 꽃씨는 얼어붙는답니다
얼어붙는 꽃씨들은 또 한번 자신들이 죽는 줄로 안답니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약속과 숙지가 없었습니다
오직 죽음만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꽃씨들은
꽃을 피웠지만 다시 살아난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꽃은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작년의 꽃을 모릅니다
그 마지막 얼었던 꽃씨들만 소란한 꽃을 피운답니다
돌아온다는데 꽃이 소란하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자신의 작년의 꽃을 모릅니다
(윤회를 믿으면서도 자신의 전생을 모르는 사람처럼, 꽃씨도 땅으로 떨어지면서 자신이 그저 죽는 줄만 안다고 한다. 다시 꽃으로 핀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시인은 어떻게 이런 것까지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꽃과 꽃씨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으면 꽃의 운명까지 연구하게 되었을까? 자그마한 꽃씨들을 자그마한 화분에 심어 물을 주면, 싹이 올라온다. 그들에게 물어 본 적 없었다. 전생에 어떤 꽃이었냐고, 시인의 시인다운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우리는 무슨 꽃의 씨앗이었을까? 꽃처럼 아름다운 새해이기를~~~)
* 설날입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 광주광역시 전일빌딩(518역사현장)에 걸린 현수막 사진입니다. 카톡방에서 퍼온 사진임을 밝힙니다.
첫댓글 자분자분하게 들려준 꽃씨 이야기 잔잔한 감동입니다.
감상 잘 했어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쁜 꽃으로 피어 날 꽃씨라고 생각하면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