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99040/story
사할린 동포를 아십니까?
모르시나요? 그럼, 사할린(sakhalin)은 알고 계실까요? 타이틀의 배경 사진은 현 브이코프(과거 일본명 나이부찌) 탄광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모습입니다. 두 나라의 지명이 있는 이곳은 현재 러시아의 영토인 사할린 섬입니다. 러시아의 유일한 섬이자, 세계에서 23번째로 큰 섬입니다. 길이가 한반도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이 섬은 원래 시베리아 등의 다양한 원주민들이 살던 곳이었지만, 제국주의 시대가 되면서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이 각축을 벌였습니다. 결국 러시아 영토로 되었지만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북위 50도를 기준으로 남쪽을 얻게 됩니다.
https://youtu.be/IIeQnnu9FZE
끝나지 않은 이별, 사할린 YTN특집
일본은 점령 이후 질 좋은 석탄이 많고 풍부한 산림과 수산자원이 있는 사할린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를 위해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이곳 사할린에 많은 조선인들이 왔고, 그렇게 간 이들의 가족들도 이들을 찾아 사할린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다 1945년 8월 소련군의 점령으로 일본땅에서 소련 땅으로 편입되면서 사할린에 남게 된 조선인들을 우리는 사할린 동포라 합니다. 한편,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 영토였던 북사할린에 있던 천여 명의 조선인들은 1937년 강제이주 당시 연해주 지역 조선인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갑니다. 그래서 사할린 동포라 하게 되면 대부분 일본땅으로 갔던 조선인들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동포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에서는 만세의 함성이 높아 갔지만, 이곳 사할린에서는 죽음의 광기가 휘몰아쳤습니다. 소련군과 일본군과의 전투가 계속되었고, 급기야 "조선 사람이 소련군 스파이 짓을 했다"는 괴소문과 함께 작은 농촌마을에서 자경단이 조선인들을 급습, 아이와 여성까지 무참히 살육했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급하게 피난 가는 행렬에서 조선인들만 체포하여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고 총살 후 방화하고 후퇴하는 경찰과 헌병들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8월 15일 이후에 일어난 학살 사건들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조선인 학살 시도가 탄광촌을 중심으로 있었던 것이 동포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YGmF9L99ULQ
“6개월 갓난아기까지 학살”…사할린 학살 재조사 필요
소련사회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동포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냉전의 시대에서 고향을 원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둔갑하였기에 드러내 놓고 한반도로의 귀환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귀환 요구를 하는 아이들을 포함 한 가족들 40여 명을 북한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적성국가의 국민이었던 터라 50년대까지는 거주지, 이동제한 등 여러 가지 제한도 많았습니다. 직장에서는 차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교육만큼은 열심히 시켰고, 고유의 풍습과 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으로의 방문과 귀국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jf96zEkMu7c
북으로 추방된 가족…냉전과 분단의 비극이산의 아픔, 극복을 위한 처절한 투쟁
1946년 소련과 미국은 소련군 점령지역의 송환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할린에서는 조선인은 제외되었습니다. 일본인의 기준을 일본 내지 호적에 등록된 자들로만 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조선 호적으로 별도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58년 소련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일본인들의 2차 송환이 시작되는데, 이때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조선인 남성들도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부두에서 우리를 잊지 말라 통곡하는 동포들을 바라보며 일본에 도착, 귀환운동을 펼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계섭, 박노학, 이희팔 세 사람을 중심으로 '화태귀환재일한국인회'가 결성되어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이들은 사할린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아 다시 한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영주귀국 희망자 명부를 작성하기도 하여 훗날 영주귀국사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의 방문이 가능하기 전인 80년대에 사할린과 한국의 이산가족들을 일본으로 초청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기도 했습니다. KBS 한민족 방송의 전신인 '사회교육방송'은 이들의 요청으로 중국과 소련의 이산가족들을 위한 방송에서 시작하였습니다.
https://youtu.be/7W0SnpN5LAQ
이산가족의 시작은 일제가 만들었다
이희팔(1923~2020) 선생님의 구술을 담은 기록 "유언"의 한국어 출판은 그래서 꼭 필요합니다. 사할린 동포를 이해하고, 그들의 귀환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할린 동포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올해는 달력 제작뿐만 아니라 "유언"의 한국어 출판을 위한 모금도 포함하였습니다. 10여 년간 이희팔 선생을 만나면서 구술 기록을 해온 나가사와 시게루 선생님의 꼼꼼한 기록 덕분에 "유언"은 마침내 2019년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옮깁니다. 어지러운 국제정서와 여전한 분단, 그리고 사할린 동포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우리 민족을 돕는 것은 일본이 해줄 리도 없고 미국이 해줄 리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해왔습니다. 나는 고향에서 소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인양된 사람 중에 그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한 사람들은 우리들뿐이었습니다. 나는 누가 뭐라고 말하더라도 민족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해온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누가 칭찬하던 하지 않던 상관없이,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https://youtu.be/bhxZ0sTg3Q8
KIN 네트워크 포럼 "해방되지 못한 사할린 한인"10번째 달력!
2013년부터 제작한 달력이 올해로는 벌써 10번째가 됩니다. 아, 무슨 달력이냐구요? 고향의 향수를 달래는 고유의 풍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1세 분들에게는 무엇보다 음력이 필요합니다. 크고 작은 집안일부터 농사, 바닷가 물때까지 음력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쓰이지만, 요즘 러시아에서 음력달력 구하기는 어렵죠.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동네 어르신이 음력을 계산해서 공책에 쓰면 온 동네사람들이 베껴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필요한 음력을 1세분들께 드리자! 기왕 필요한거 드릴거면 러시아 달력에 음력을 병기하고, 절기와 한국의 국경일도 넣어서 만든 "세상에 하나 뿐인 달력"을 동포분들께 선물하자!하여 시작된 달력 프로젝트입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사할린 곳곳을 다녔습니다. 동포들이 거주하는 주요 도시 중 한곳을 제외고 적어도 한번씩은 가서 달력을 전했습니다. 사할린주의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 300~400km 떨어진 보쉬니아코보에도 갔습니다. 동포들도 외져서 웬만하면 가지 않는 곳입니다. 오히려 동포들이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눈오는 겨울에 거기까지 갔냐며.
https://youtu.be/Cj5x6klY524
우리가 만난 사할린 동포들, 15년의 기록그럼 왜 갔을까요? 2019년 달력 제작 스토리에는 이렇게 적었네요.
"만나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그 마음들 때문입니다. 한인회의 봉고 버스가 무심하게 속도를 내며 멀어져도 끝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 마음. 자식도 아닌데, 해마다 오는 것을 알고 올해는 우리한테 올까? 내심 기대하는 그 마음. 밥해줄게 우리집에 가자며 손목을 잡는 그 마음. 그 마음들은 수많은 시민들의 정성이 모여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직접 만나는 저희는 그저 달력하나 전달하는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그리고 동포들의 그마음을 한국의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당신들의 정성이 동포들의 향수를, 고국에 대한 갈증을 이처럼 풀어주고 있다고." 올해도 동포들에게 고국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많은 참여와 관심, 주변에 공유와 권유가 필요합니다. 사할린 동포 역사 캠페인에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