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의 꿈
선홍빛 살 한 점이 고요히 누워있다. 횟집 창가에 반사된 연어회 살 한 점에 차마 젓가락을 대기 미안하다. 녀석은 어떤 헛된 꿈을 꾸다가, 어느 물결 속을 조심도 없이 헤엄치다 저리 되었을까.
녀석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 어느 일급수였을 것이다. 철없던 치어 시절 친구들과 마냥 즐거이 돌 틈 사이로 흐르는 냇물에 뛰놀며 몸을 키우며 제 몸에 맞는 물골을 찾아 유영했겠지. 그리고는 강원도의 울퉁불퉁한 물줄기를 따라 바다에 이르러는 동해의 해류 온도 변화를 아랑곳 않고 바다 속 천적들의 공격을 잘도 피하여 다니다가 대만해역에까지 이르는 대장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본능이 일러주는 대로 고향인 홍천 골짜기 방향으로 유턴하였을 것이다. 격한 몸부림으로, 억센 힘으로 콧노래 부르며 지느러미를 움직이다가 어느 꿈자리 사나웠던 날 부산 앞바다나, 원양遠洋의 어디쯤에서 안타깝게도 어부의 콧노래감이 되었기에 이렇게 횟집 손님상에 누운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귀향에 실패한 통한의 눈물이 배인 듯 촉촉한 살점에 젓가락을 대기가 그래서 미안하다. 사람들은 연어의 이런 대장정을 가리켜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 일컫는다. 그게 어디 연어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서른다섯 살, 치어稚魚 수준의 목사를 받아준 청주 농고 바로 옆의 교회는 내가 돌아갈 모천母川이다. 내 병아리 목사 시절의 뼈를 굵게 하며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도 했거니와, 거기서 장만해 준 살림 밑천으로 내 담임목회 시작부터 마침까지의 대장정을 마음껏 유영할 수 있었으니까. 내 영혼의 고향을 떠올릴 적마다 단 한 번도 다른 곳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날 어느덧 중년重年에 다다른 연어는 야무진 꿈을 꾸었을 것이다. 부산포를 거쳐 계속 치고 올라가 동해의 어느 앞바다에 이르고 힘을 내어 상류를 따라 강원도 험산險山 골짜기를 거쳐 드디어 어린 시절 떠나온 홍천에 당도하는, 본능이 주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하여 알을 낳고 장렬하게 생을 마감한 후 제 몸을 어여쁘고 철부지한 새끼들에게 모유처럼 먹임으로 자신의 생명 순환을 노렸을지 모른다.
감사하게도 나의 환향還鄕은 실패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어색하긴 했다. 그날 아침, 고향집 대문을 열던 결정적인 순간, 흥분한 탓일까. 검지 끝을 다쳐서 선혈이 뚝뚝 떨어지며 가벼운 통증도 몰려오는 걸 참고 갔다. 돌아간 고향은 손가락 끝의 통증 같은 가벼운 어색함이 있었지만, 군문軍門에서 제대하여 돌아온 아들을 반기는 엄마 같은 얼굴들로 인하여 곧 내 집에 왔음을 느끼며 안온함을 찾았다.
나의 고향을 떠나있던 세월은 연어의 회귀 과정과 흡사했다. 아름답게 보이는 강과 골짜기에는 얼마나 많은 돌과 수초가 길을 막는가. 심해深海에 상존하는 먹이사슬의 험난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숭고하게 보이는 성직자聖職者의 길이지만, 가난에 서러웠고, 기도에 고독했고, 전도에 외면 받았는가 하면, 배신의 칼끝에 모진 아픔까지를 겪어야 했던, 모천을 향하는 31년간의 대장정이었다. 두어 달 전, 그것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받은 꽃다발은 고독한 싸움의 승리자에게 주는 갈채이기도 했다.
그래, 나는 꽃다발을 받고 돌아왔다. 나를 키워준 이 맑은 물에서 늙은 연어의 할 일이 무엇일까. 홍천에 돌아온 연어가 알을 낳고 장렬히 산화하여 제 몸을 치어에게 나누어주듯, 지금은 내 여생을 묵묵한 모습으로 소리 없이 새로운 세대에게 나누어 준 후 궁극의 모천, 영원의 공간으로 귀향할 수 있기 위해 꿈을 꾸는 시간이다.
첫댓글 수필가 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일간지 발표 글입니다. 어여삐 읽어 주세요^^
선생님 신운에 글을 올리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수필교실에 처음 오셔서 삼교시 시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나는 시로 등단한 시인이고 수필도 등단하고 싶고 좋은 글을 써서 책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셨는데 다 이루셨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청주를 넘어서 중앙 문단에서 이름을 알릴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모르는척하시면 눈흘킬겁니다
슈베르트의 말
"나의 음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라고 한 것처럼 나의 문학은 시작되었고 중암문단에는 이미 섰습니다. 제가 중앙인걸요. 히히히..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조선생님을 전태 모른 척 하지 않고 있으니 눈 흘기면 아니되옵니다요^^
오랜 내공을 보았습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의 내공 역시 탄탄하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