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界上下 乃至 使乙 遣其民 慰撫其民 留那億慕不戰 曰 敵若留那 絜絜三人 治他 智不聞 高那 盡平云 留那 回軍 哇王 大喜 高那王乙對 絜絜 不受吳 易思周十二邑 乙加封 亦辭 不受 爰時 智那 年才下 豪傑七十人 有烏伊席烏陜文陜苔等 兼夫余 四豪舍 三百斤鐵 雅乙使 服黃葉大澤臣屋 龍起 曰 者成 鐵 斬 平 梗多 千里走 蓂七等 齊力 有名 古 弩 弓 手肅守人 方 徹子文 何匠 刱伊等 絜 釣手 兵 密 林霜兵繪 才月次 摘股等 八武藝 進 智那 年 擁衛 奏
세상의 위아래가 마침내 이르렀다. 사신을 보내 그 백성들을 위로하고 다독였다. 유나(留那)의 억모(億慕)는 싸우지 않고 말하기를, "적들이 만약 유나(留那)에 머문다면, 결결(絜絜) 등 세 사람이 다른 곳을 다스릴 것이니, (억모는) 지혜를 듣지 못하였다.
고나(高那)가 모두 평정되었다고 전하니, 유나(留那)에서 군대를 돌렸다. 이에 '와왕(哇王)'이 크게 기뻐하며, 고나왕(高那王)에게 대면하기를 원했으나, 결결은 오(吳)나라의 것을 받지 않았고, 역사(易思)의 주(周) 12읍을 더해 봉하였으나, 또한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때 지나(智那)의 나이가 아직 어렸으나, 호걸 70인이 있었으니, 오이(烏伊),석오(席島),험문(陜文),험태(陜苔) 등이 있었으며, 동부여(夫余)의 네 호걸과 함께 사백 근의 철을 지니고 아을(雅乙)로 하여금 황색 옷을 입게 하였다.
'대택신옥(大澤臣屋)'에 용이 일어나니, 말하는 자들이 이르기를 "철로 베어 평정하니 가로막힌 곳이 많았으나 천 리를 달렸다"고 하였다. 명칠(蓂七) 등 일곱 사람이 힘을 가지런히 하니 이름이 높았고, 옛 노(弩)와 궁(弓)을 잡은 수인(守人)들이 사방을 지켰다. 철자문(徹子文)과 하장(何匠), 창이(刱伊) 등이 깨끗하게 낚시꾼과 병사들을 밀림의 서리 속에 숨겼다. 군사들의 재주가 달을 거듭할 때마다 넓적다리를 치며 찬탄하였고, 여덟 가지 무예가 나아가니, 지나(智那)가 해를 거듭하며 옹위하고 아뢰었다.
辛巳春二月 好人宮 禮公 禮公
巡視 加設公 來迎 潔鞨之策 議 人民 進供
物 滅 呈 上京役 罷 烟城 之軍 故 萱花宮 易思
留 齋 此時 上 南奔計 已定 烝五月 雨 爇日
出 獵 帶索 射 暗殺 故路 阻 伏 樹上 夫
憂 世儔 劒 擊 聲 電火 閃光 劒 斬 折 帶
襄 宿 樹 暗中 遁 去 翌上 日 義宿 小東 衆 木
幸 毎菴 公 示 獨 卽 屬 風
此外 十九年 上
攷 長 母親 憂 恩 妻子 可憐 情理 不得 忝
時 禮公主 妊孃腹中 道路 同伴 不可能 夭
신사년(辛巳年, BC40년) 봄 2월에 '호인궁(好人宮)'의 예공(禮公)이 순시를 하니, 가설공(加設公)이 와서 맞이하였다. 결갈(潔鞨)을 막을 책략을 의논하니, 인민들이 나아가 공물(供物)을 바치고 (조공의 폐단을) 멸하여 드렸다. 상경(上京)하는 부역을 파하고 연성(烟城)의 군대를 물리쳤으므로, '훤화궁(萱花宮)'의 역사(易思)가 머무르며 재계하였다.
이때 상(上)이 남쪽으로 달아날 계획을 이미 정해놓았는데, 마침 5월에 비가 내리고 더운 해가 떠올랐다. 사냥을 가며 밧줄을 띠고 쏘았는데, 암살하려는 자가 옛 길을 가로막고, 나무 위에 엎드려 있었다.
세상의 무리들을 근심하며 칼로 격격히 치는 소리가 마치 번갯불의 섬광 같았고, 칼로 베어 띠가 부러졌다. 나무 위에서 유숙하다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가 도망쳤다. 이튿날 상(上)이 조회하는 날에 의숙(義宿)과 소동(小東)의 여러 무리들이 다행히 매암(毎菴) 공에게 나아가 홀로 즉시 바람처럼 속하였다. 이외에 19년 동안 상(上)이 고찰해보니, 어머니에 대한 우환과 은혜, 그리고 처자식이 가련한 정리가 법도에 맞지 않아 실추되었다.
이때 예공주(禮公主)가 뱃 속에 아이를 배고 있어서, 도로를 동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요절하고 말았다.
<추모경연의>를 보고 있는데,
매암(毎菴) 공이 사람 이름인데도, 지명으로 생각하여 찾아 봤어요.
오이 등 사람 이름은 오타가 나있는 상태.
글자 오타 투성이.. ㅋㅋ
1904년 지도에는 나오지도 안는데, 지가 알아서 찾네요~
위의 한문은 정리가 안 된거라.. 그대로 믿으면 안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