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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龍王의 降雨
復次佛子야 譬如海中에 有大龍王하니 名大莊嚴이라 於大海中降雨之時에 或降十種莊嚴雨하며 或百或千하며 或百千種莊嚴雨하나니 佛子야 水無分別호대 但以龍王의 不思議力으로 令其莊嚴하야 乃至百千無量差別인달하야 如來應正等覺도 亦復如是하야 爲諸衆生說法之時에 或以十種差別音說하며 或百或千하며 或以百千하며 或以八萬四千音聲으로 說八萬四千行하며 乃至或以無量百千億那由他音聲으로 各別說法하사 令其聞者로 皆生歡喜하나니 如來音聲은 無所分別이로대 但以諸佛이 於甚深法界에 圓滿淸淨하사 能隨衆生根之所宜하사 出種種言音하야 皆令歡喜니라 佛子야 是爲如來音聲第九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또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바다 가운데 큰 용왕이 있으니 이름이 ‘대장엄’이라. 큰 바다에 비를 내릴 적에 혹 열 가지 장엄한 비를 내리기도 하고, 혹은 백 가지, 혹 천 가지, 혹 백천 가지 장엄한 비를 내리기도 하느니라.
불자여, 물은 분별이 없고 다만 용왕의 부사의한 힘으로 장엄케 하며 내지 백천 가지 한량없는 차별이 있게 하느니라.
여래 응공 정등각도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들에게 법을 말할 적에 혹 열 가지 차별한 음성으로 말하고, 혹 백 가지, 혹 천 가지, 혹 백천 가지, 혹 팔만사천 가지 음성으로 팔만사천 가지 행을 말하며, 내지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음성으로 각각 차별하게 법을 말하거든 듣는 이가 모두 환희하지마는 여래의 음성은 분별이 없고, 다만 모든 부처님들이 깊고 깊은 법계를 원만하고 청정케 하여 중생들 근기에 마땅함을 따라서 갖가지 음성을 내어 모두 환희케 하느니라.
불자여, 이것이 여래 음성의 아홉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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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부처님은 무상이라서 모양이 없다. 모양이 없는데 허공에다 무슨 목걸이를 걸 것이고, 허공에다가 귀걸이를 갖다 붙일 것이고, 영락을 어떻게 갖다 붙일 것인가?
부처님은 모습이 없는데 중생을 위해서 다양한 8만 4천 모습 장엄으로 보여준다. 장엄 자체가 가르침이다.
중생은 상견중생이라 보여줘야 믿기 때문에 형형색색으로 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 불자야
비여해중(譬如海中)에 : 비유하면 마치 바다 가운데
유대용왕(有大龍王)하니 : 큰 용왕이 있다.
용은 바다 같은 데 살아야 되는데 도랑에 잘못 살다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중이 화엄경 속에서 살다가 죽어야 되는데 화엄경을 안 살고 이상하게 잡사나 하며 살다가 죽어버리면 도랑에 사는 용하고 똑같다.
화엄경 같은 데, 바라밀에서 안 살고 이상하게 잔머리 굴리고 살다 보면 마치 범이 산에 안 사는 것과 같다. 범이 마실 다니다가 똥개한테 물리면 얼마나 창피스러운가? 똥개하고 호랑이하고 싸우면 이겨도 창피스럽고 져도 창피스럽다.
요새 그런 경우가 세월이 발전되다 보니 너무 많잖은가.
저부터라도 그런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고 살았지만 화엄경 속에서 살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화엄경을 매일 본다.
안 볼 수도 없고 팔자가 화엄경을 매일 봐야 된다.
화엄경을 매일 보는데 숨 쉬는 것이 매일 힘들지 않듯이, 경전 보는 것이 매일 힘들지 않다.
어제 아레 운문사에 가니까 화엄반이 자기들끼리 따로 면담해달라고 해서 2시간 강의를 따로 해주었는데 ‘왜 한문이 안느느냐, 왜 어렵느냐, 쉽게 보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쉽게 보는 방법이 있다. 가르쳐 주면 가르쳐 준 대로 할라냐?’하니까 ‘예’ 하길래 ‘쉬지 말고 계속 읽어라’라고 말해주었다.
학도지문(學道之門)은 별무기특(別無奇特)이라, 별로 특별한 방법이 없다.
‘스님이 읽으면 음성이 좋아 보이는데 우리는 그 소리가 안 나와요.’
‘계속 해라.’
저도 처음에 그렇게 했다. 억지로 쥐어짜는 억양으로 ‘부차불자야 비여해중에 유대용왕이’ 그렇게 했다.
그러다 나중이 되니까 편안한 운율로 ‘부차불자야 비여해중에 유대용왕하니’ 글자를 길게 뺄 것은 빼고 뜻을 새기면서 간경을 한다. 생나물을 갖다가 소금 주고 간장 준다고 처음부터 잘 무쳐내는가? 푹 삶아서 간을 짜게 했다가 싱겁게 했다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소금을 넣을 때 넣고 양념도 먼저 넣을 것, 나중 넣을 것을 넣는다.
글을 읽는 것만 봐도 ‘아 뜻을 알고 읽는구나, 뜻을 모르고 읽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안다.
글을 한 번 척 읽으면 ‘오늘 법문 들을만 하겠구나, 오늘 귀 째지겠구나, 귀따갑겠구나’하는 것을 다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선사들은 모습만 봐도 환할 것이다.
그 가운데 대용왕이 있어서
명대장엄(名大莊嚴)이라 : 이름이 ‘대장엄’이라.
대장엄, 앞에 쪼잔한 용왕들이 나오다가 대용왕이 나와서 이제 제법 큰 법문을 하려는 것 같다.
대용왕이니까 이름이 대장엄이다.
부처님은 뭘로 장엄을 하는가?
무상 중에 복과 지혜로 장엄한다.
귀의불 양족존이다.
복과 지혜로 장엄을 한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서 한없는 복이 필요할 것이고, 중생을 위해서 한없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어대해중강우지시(於大海中降雨之時)에 : 그 큰 바다 중에서 강우지시에 참 신기하다.
하늘에서 그 많은 비가 저 바다에 떨어지는데도 바다는 다 받아들인다니까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다 같은 넓은 마음이 있다면, 부처님의 화엄경이 아무리 많아도 많지가 않다.
우리 어른스님께서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이 화엄경 80권이 뭐가 많은가?’
사실 많지 않다.
화엄경은 8천 권을 쓰든지 8만 권을 써도 화엄경에 다 쓸 수가 없다고 입법계품 해운비구(海雲比丘) 편에 나온다.
수미산 같은 붓자루를 다 쌓아놓고 붓을 수미산 같이 태산같이 쌓아놓고 바닷물 같은 잉크로 찍어낸다 하더라도 일언일구도 다 받아 적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경 양이 많아서 ‘스님 딱 한 권으로 이런 거 간단한 거 없습니까?’
‘간단하게? 있재.’
‘화엄경 간단한 것, 어떻게?’
‘화엄경 80권 다 읽어봐라.’
계속 읽어야 된다.
저하고 잘 아는 스님이 있는데 성격이 굉장히 안 좋다. 저하고 요번에 대만도 같이 갔다 오고 했는데 화가 나서 서로 막 싸웠다. 같이 막 싸우니까 저도 화낸 줄 알고 그 스님도 화낸 줄을 안다. 서로가 화낸 줄을 안다.
그런데 ‘왜 스님, 화냈냐?’고 ‘스님이 화냈지, 내가 왜 화를 내냐?’고 서로 ‘화 안 냈다’ 고 한다. 앉아서 별거 없으니까 죽이고 살리고가 아니고, 편한 김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열이 받으니까 물을 300cc짜리 4개를 한꺼번에 마셨는데도 계속 열이 났다는 것이다.
희한하지 않은가?
화는 몸이 내는 것인가, 마음이 내는 것인가.
법신인 마음이 낸 것 같은데, 육신이 물을 먹어야 된다. 희한한 일이다.
화는 누가 냈는가? 분명히 법신이 냈는데, 물은 육신이 먹어야 된다.
법신이 선악을 저지르고 못된 생각을 하면 무조건 육신이 고초를 받는다. 과보는 무조건 육신과 분별심이 받게 되어 있다.
일심의 자리에서는 과보를 안 받는다.
하여튼 자기가 법신을 잘못되게 운영해서 쓰고 나면 이 색신이 괴롭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다. 물을 4개 먹었는데도 열이 안 가라앉아서 더 먹어지더라는 것이다.
‘119 부르죠.’
제가 그랬다. 소방서에 신고할 뻔했다.
큰 바다 속에서 비를 내릴 적에
혹강십종장엄우(或降十種莊嚴雨)하며 : 열 가지 장엄한 비를 내리기도 하고
혹백혹천(或百或千)하며 : 또 백 가지 천 가지
혹백천종장엄우(或百千種莊嚴雨)하나니 : 백천 가지 장엄한 비를 내리기도 한다.
우리에겐 어떠한 비가 내리는가?
하늘의 물줄기 비만 내리는가? 하늘의 보배비가 내리는가? 하늘의 꽃비가 내리는가? 하늘의 자비비가 내리는가?
우리는 무슨 비로 우리 인생을 장엄하는가?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수무분별(水無分別)호대 : 물은 분별이 없고
단이용왕(但以龍王)의 : 다만 용왕의
부사의력(不思議力)으로 : 불가사의한 힘으로
영기장엄(令其莊嚴)하야 : 장엄하게 하며
내지백천무량차별(乃至百千無量差別)인달하야 : 내지는 한량없는 차별이 있게 되나니라.
부처님의 진짜 법신은 유약허공이라.
불진법신(佛眞法身)은 유약허공(猶若虛空)이라, 비유하면 마치 저 허공과 같지만 응물현형(應物現形), 중생에 응해서 모습을 나툴 때는 어떻게 나투느냐? 여수중월(如水中月)이라. 마치 물이 있는 강에 달이 뜨는 것처럼 모습을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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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도 : 여래 응공 정등각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그와 같아서
위제중생설법지시(爲諸衆生說法之時)에 : 중생들에게 법을 설할 적에 어떻게 하느냐?
혹이십종차별음설(或以十種差別音說)하며 : 혹은 열 가지 차별한 음성으로 말하고, 12연기를 9연기로도 이야기하고 5연기로도 이야기하고 2연기로도 이야기하고 연기를 다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다.
50연기로도 이야기하고 100연기로도 이야기하고 계속 그렇게 차이가 날 수도 있다.
혹백혹천(或百或千)하며 : 백 가지, 천 가지
혹이백천(或以百千)하며 : 백천 가지
혹이팔만사천음성(或以八萬四千音聲)으로 : 팔만사천 가지 음성으로
설팔만사천행(說八萬四千行)하며 : 팔만사천 가지 행을 말하며.
중생들의 근기가 8만4천 가지다. 제가 그렇게 대장경에서 해석해 놓은 것을 보았다. 소개시켜 드린다고 해놓고 못 소개시켜드렸는데, 8만 4천 가지를 분류하는 방법을 딱 써놓고 ‘거기서부터 팔만사천이 비롯됐다’ 그렇게 나온다.
해인사하면 팔만대장경인데 화엄경에 벌써 팔만사천이 나왔다. 언제부터 쓰여진 건가, 팔만사천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 중생이 8만 4천이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체 음성’이라고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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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혹이무량백천억나유타음성(乃至或以無量百千億那由他音聲)으로 :내지는 한량없는 무량 백천억 나유타 음성으로
각별설법(各別說法)하사 : 각각 차별하게 법을 설하거든
영기문자(令其聞者)로 : 영(令) 뭐뭐로 하여금, 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는가?
개생환희(皆生歡喜)하나니 :모두 다 환희심을 내게 하나니
여래음성(如來音聲)은 : 여래의 음성은
무소분별(無所分別)이로대 : 무소분별이다.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겠는가? ‘여래음성은 무소분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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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이제불(但以諸佛)이 : 다만 모든 부처님께서, 제불께서
어심심법계(於甚深法界)에 : 심심법계에, 좀 신기하잖은가, 저절로 눈 뜨고 저절로 덥고 이렇게 환하고, 텅 빈 것이 이렇게 꽉 차 있고, 진공에다 묘유로다. 법계를
원만청정(圓滿淸淨)하사 : 원만하고 청정케 하고, 그 청정하다고 하는 것, 텅 빈 것이고 원만하다고 하는 것은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법계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능수중생근지소의(能隨衆生根之所宜)하사 : 중생 근기에 의당한 바를 따라서 근기에 딱 맞춤형으로, 눈높이에 맞추어서
출종종언음(出種種言音)하야 : 출종종언음이다.
부처님은 무음이지만 무음이라서 진짜의 음성이 되고, 진짜의 음성이라서 항상 할 수 있고, 항상한 삶이라서 원만한 음성이 될 수 있고 일음(一音)이 될 수 있다.
부처님 음성을 일음연창(一音演暢)이다, 진음(眞音)이다, 상음(常音), 통음(通音), 원음(圓音)이다, 라고 말씀한다.
갖가지 음성을 나타내어
개령환희(皆令歡喜)니라 : 모두 환희하게 한다.
큰 빗줄기를 확 낸다는 것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인가?
진짜 깊고도 깊은 부처님의 음성이, 다양한 차별이 있는 그 깊은 법계의 흐름에 따라서, 부처님이 설하시는 바가 다르다, 이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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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여래음성제구상(是爲如來音聲第九相)이니 : 이것이 여래 음성의 아홉 번째 모습이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모든 보살마하살이
응여시지(應如是知)니라 : 응당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마지막에 열 번째 용왕이 나오는데 여기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다. 그래서 오늘은 중간쯤 가다가 끊어야 될 것 같다.
열 번째 하다가 시간 되면 마치겠다.
차. 龍王의 大自在力
ㄱ.龍王의 興雲
復次佛子야 譬如娑竭羅龍王이 欲現龍王의 大自在力하야 饒益衆生하야 咸令歡喜하야 從四天下로 乃至他化自在天處히 興大雲網하야 周帀彌覆하니 其雲色相이 無量差別이라
或閻浮檀金光明色이며 或毘瑠璃光明色이며1 或白銀光明色이며 或玻瓈光明色이며 或牟薩羅光明色이며 或瑪瑙光明色이며 或勝藏光明色이며 或赤眞珠光明色이며 或無量香光明色이며 或無垢衣光明色이며 或淸淨水光明色이며 或種種莊嚴具光明色이니 如是雲網이 周帀彌布하고 旣彌布已에 出種種色電光하나니 所謂閻浮檀金色雲은 出琉璃色電光하고 琉璃色雲은 出金色電光하고 銀色雲은 出玻瓈色電光하고 玻瓈色雲은 出銀色電光하고 牟薩羅色雲은 出碼𥔥色電光하고 碼𥔥色雲은 出牟薩羅色電光하고 勝藏寶色雲은 出赤眞珠色電光하고 赤眞珠色雲은 出勝藏寶色電光하고 無量香色雲은 出無垢衣色電光하고 無垢衣色雲은 出無量香色電光하고 淸淨水色雲은 出種種莊嚴具色電光하고 種種莊嚴具色雲은 出淸淨水色電光하고 乃至種種色雲은 出一色電光하고 一色雲은 出種種色電光하며
“또 불자여, 비유하면 저 사갈라(娑竭羅)용왕이 크게 자유자재한 힘으로 중생을 이익하여 다 환희케 하려 할 적에 사천하로부터 타화자재천에 이르기까지 큰 구름그물을 일으켜 두루 덮거든, 그 구름 빛깔이 한량없이 차별하니라.
혹 염부단금 광명빛이며, 혹 비유리 광명빛이며, 혹 백은 광명빛이며, 혹 파려 광명빛이며, 혹 모살라 광명빛이며, 혹 마노 광명빛이며, 혹 승장 광명빛이며, 혹 적진주 광명빛이며, 혹 한량없는 향 광명빛이며, 혹 때 없는 옷 광명빛이며, 혹 깨끗한 물 광명빛이며, 혹 가지가지 장엄거리 광명빛이라. 이와 같은 구름 그물이 두루 덮이었느니라.
이미 두루 덮이고는 갖가지 빛의 번개를 내나니, 이른바 염부단금빛 구름은 유리빛 번개를 내고, 유리빛 구름은 금빛 번개를 내고, 은빛 구름은 파려빛 번개를 내고, 파려빛 구름은 은빛 번개를 내고, 모살라빛 구름은 마노빛 번개를 내고, 마노 빛 구름은 모살라빛 번개를 내고, 승장보배빛 구름은 적진주 빛 번개를 내고, 적진주빛 구름은 승장보배빛 번개를 내고, 한량없는 향빛 구름은 때 없는 옷빛 번개를 내고, 때 없는 옷 빛 구름은 한량없는 향빛 번개를 내고,깨끗한 물빛 구름은 갖가지 장엄거리빛 번개를 내고, 갖가지 장엄거리빛 구름은 깨끗한 물빛 번개를 내고, 내지 갖가지 빛의 구름은 한 빛의 번개를 내고, 한 빛의 구름은 갖가지 빛의 번개를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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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龍王)의 대자재력(大自在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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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龍王)의 흥운(興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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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이 구름을 일으킨다.
용왕이 자유자재한 힘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용왕이 큰 구름을 일으키는 것에 먼저 비유를 한다.
큰 구름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 음성의 보변성, 널리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햇빛이 골고루 다 비추듯이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음성을 전할 때 전화를 하든지 뭘 하든지간에 친한 사람에게만 한다. 친소가 분명하다. 친하지 않은 사람의 음성은 듣지도 않고 전화가 오면 꺼버리고 받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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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또 불자야
비여사갈라용왕(譬如娑竭羅龍王)이 :비유컨대 사갈라(娑竭羅)용왕, 화엄경에서는 사갈라용왕을 대해(大海)라고도 번역한다.
사갈라는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큰 바다라고도 하지만 쇠처럼 무너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바다가 다 마르지도 않고 다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탄탄한 것을 사갈라 용왕이라고 한다.
방생 갈 때 전부 사갈라 용왕을 정근한다.
‘사가라용왕 다 사가라 용왕 더 사가라 용왕’
능엄경 구절을 굳이 소개시켜 드리자면 능엄경 제3권 말미에 이 사갈라심에 대해서 나온다.
사갈라심은 바다 같은 마음이다.
순야다성(舜若多性)이 가소무(可銷亡)이언정,
순야다라고 하는 것은 허공이다. 능엄경 3권 말미에 허공이 차라리 높고 없어질지언정 삭가라심(爍迦羅心)은 무동전(無動轉)이라, 바다 같은 내 마음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시적으로 표현해도 굉장히 과장법 은유법으로 훌륭한 시 같다. 허공이 녹아 없어질지언정, 허공이 어떻게 녹는가?
이런 것을 보면 능엄경에도 아주 훌륭한 글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너무나 좋은 글들이 많다.
그런 것은 지우개로 아무리 지우고 싶어도 어릴 때부터 박혀서 문신이 되어버렸다. 지워지지도 않는다. 웬만한 것은 지워지는데 문신을 몸에 새겨놓으면 지우개로 안 지워지고 때를 밀어도 안 지워진다.
공부가 자기 가슴에 콱 박혀 버린 것들은 혓바닥이나 뇌리에 박혀서 아무리 지우려 해도 안 지워지는 것 같다.
욕현용왕(欲現龍王)의 : 사가라용왕이
대자재력(大自在力)하야 : 크게 자유자재한 힘으로, 대자재력하야, 자기가 꽁꽁 묶여 있으면 중생을 이익하게 해주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다.
요익중생(饒益衆生)하야 :요익중생이라, 그러니까 자기가 자재한 힘으로 중생을 넉넉하게 이익되게 해서
함령환희(咸令歡喜)하야 : 함(咸)자 이런 글자들이 우리 절간에서 공부할 때 중요한 것이다. 함(咸)은 자타일시성불도 할때 넓을 보(普)자와 같다. 함께 할 함(咸)자, 항상 상(常)자, 상방광명(常放光明) 함방광명(咸放光明) 보방광명(普放光明) 능출광명(能出光明)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똑같은 뜻이다.
마산 옆에 가면 함안이 있잖은가.
함안(咸安) 자타일시성불도 함안, 모두 다 평안하라고 함안이다.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함방광명도 나오고 보방광명도 나오고 상방광명도 나온다.
함령환희라 모두 다 환희하게 했다.
몇 명도 빠뜨리면 안 된다. 다 환희하게 했다.
종사천하(從四天下)로 :사천하로부터
내지타화자재천처(乃至他化自在天處)히 :내지는 타화자재천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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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대운망(興大雲網)하야 : 53선지식 중에서 운망해탈을 얻으신 분은 대천신(大天神)이다. 구름부터 먼저 색깔을 나타내고 있다. 구름도 다르고 비도 다르다. 비도 내리는 색깔이 다르고 향기도 다르고 양도 다르다. 구름도 다 다르다.
그 각각이 뜻하는 바가 있다. 큰 구름 그물망을 일으켜서
주잡미부(周帀彌覆)하니 :두루 덮거든
기운색상(其雲色相)이 : 그 구름 빛깔 색상이
무량차별(無量差別)이라 :한량없는 차별이 있나니
혹염부단금광명색(或閻浮檀金光明色)이며: 염부단금 광명색이라. 그리고
혹비유리광명색(或毘瑠璃光明色)이며 : 비유리 광명색이요
혹백은광명색(或白銀光明色)이며 :백은 광명색이요
혹파려광명색(或玻瓈光明色)이며 : 파려 광명색이고
혹모살라광명색(或牟薩羅光明色)이며 :모살라 광명색이고
혹마노광명색(或瑪瑙光明色)이며 : 마노 광명색이고
혹승장광명색(或勝藏光明色)이며 : 승장광명색이다. 좋다는 것은 다 갖다 붙여놓았다.
혹적진주광명색(或赤眞珠光明色)이며 : 적진주 광명색이고
혹무량향광명색(或無量香光明色)이며 : 무량향 광명색이고
혹무구의광명색(或無垢衣光明色)이며 : 때구정물이 없는 옷 광명색이고
혹청정수광명색(或淸淨水光明色)이며 : 청정수 광명색이고
혹종종장엄구광명색(或種種莊嚴具光明色)이니: 종종장엄구의 광명색이다.
여시운망(如是雲網)이 :이와 같은 구름 그물이
주잡미포(周帀彌布)하고 : 두루두루 다 덮였다.
여기서는 첫 번째 구름이 나오고 그다음에 번쩍하는 번개가 나오고 그다음에 우레 뇌(雷)가 나온다.
주역 같은 것을 예로 들자면 지뢰복괘(地雷復卦)나 산지박괘 (山地剝卦)를 보더라도 땅이 꽁꽁 얼었어도 한 번 ‘꾸릉’하고 울었다 하면, 그 한 번의 울림으로 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해서 점점점점 얼었던 것이 녹아서 풀리기 시작한다.
그런 것처럼 이렇게 여기서 우레라고 하는 것도 우리 가슴 속에서 한 번 울린 것이다. 우리 쬐맨할 때 전부 십대 때 이십대 때 중 된다고 한 번 ‘두웅’ 해서 어느 날 발심 한 번 ‘투웅’ 쳤는데 어떤가? 계속 우레가 자라서 나중에 먹구름이 되고 비가 내리고 만곡식을 자양분으로 해서 우리 인생을 수행자로 살아가도록, 열매를 맺도록 한다. 그런 것으로 살아간다.
그때 한번 울었던 우레 한 번, 스쳐 지나갔던 번갯불, 이런 것이 있잖은가. 그때 지나갔던 구름 이런 것들, 그때 만났던 스님들, 그때 한번 봤던 책 쪼가리 하나, 그리고 그때 맡았던 절에서의 향 냄새, 한 개 얻어먹었던, 괜히 그 떡은 뭐하려고 얻어먹어서 절에까지 잡혀 왔는지, 떡 한 개 얻어먹고 또 스님들 놀린다고 뒤에 따라다니면서 ‘중중까까중’ 하고 놀리고, ‘중중까까중’하고 그게 염불인지도 모르고 염불하고, 결국은 그 한번 울었던 것들이 다 염불 소리가 되어서 ‘중중까까중’ 하다가 지금은 ‘흑마노광명색’하고 있다.
이렇게 모두 그물이 확 덮였다.
화장세계품에 보면 그런 대목이 자세하게 나온다.
부처님의 구름이라고 하는 것은 자비의 구름이라서 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라고 하는 것은 한량없는 설법을 나타낸다. 구름이 있어야 비를 내리지 법신에서 쏟아지는 것이 법문이다. 법문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쏟아지는 법이라고 하는 것도 또 전부 다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가?
마치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법이라고 하는 것, 일체유위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이라. 일체법이라고 하는 것이 유위법이 됐든 무위법이 됐든 법이라고 하는 것은 여몽환포영이다. 화엄경 십인품에 보면 그 대목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메아리와 같다, 여향인(如響忍)이다, 여영인(如影忍)이다, 달그림자와 같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이런 것 있지 않은가? 십인품에 보면 법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생인이다, 무생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엔간하면 장대들고 보름날 동산에 올라가면 달을 딸 것같이 하고, 조금 앉아 있다가 화두가 돼서 우화등선해버릴 것 같지 않은가.
개금을 안 해놔도 부처님 같고, 입만 떼면 견성성불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견성성불은 화엄경의 시초가 견성성불이고 그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견성을 했든지 안 했든지간에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니까 그 이치만 알고 그 다음부터는 어떤가? 견성성불한 사람의 행동에 걸맞게 하는 것을 우리는 보현행원(普賢行願)이라고 한다.
요즘 그걸 줄여서 석자로 이야기한다. ‘보빼시’라고 들어보셨는지 ‘보현행원 빼면 시체다’ 보빼시, 보현행원을 빼면 시체다,라고 해서 ‘보빼시’다.
아무리 하늘의 구름이 쏟아지고 비가 쏟아지더라도 받아들이는 용량이 다르다.
지난 시간에도 살짝 이야기를 했지만 법화경 약초유품에서 이승(二乘)은 약초에 비유된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한테 약초가 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문 연각 아라한 벽지불은 약초일 뿐이다.
세상에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되고 서까래가 되려면 뭐가 되어야 하는가? 보살이 되어야 한다.
시교보살(十敎菩薩)은 서까래 정도 되지만 화엄경을 보는 보살은 일승보살(一乘菩薩)이다. 보현행원을 하는 사람이 일승보살이라 하잖은가. 일승별교(一乘別敎)라고 한다.
일승동교(一乘同敎)라고 하는 것은 삼승이 무릇, 같이 있는 것을 함께 동(同)자를 써서 동교(同敎)라고 하는 것이다.
일승으로 가는데 작은 사람 큰 사람 다 포함해서 대소승이 있잖은가. 법화경은 큰 의미에서는 일승동교이고, 화엄경은 큰 의미에서는 일승별교다. 화엄경에서는 특별한 근기라고 완전 대들보만 이야기한다. 하늘에 큰 달과 태양은 하나만 있지 않은가. 이것을 일승별교, 불승이라고 보면 된다.
‘화엄속에 동교도 있지만, 크게 봐서 화엄은 일승별교라 봐야 되고, 법화경은 그 속에 일승별교도 있지만 일승동교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는 견해다.’
종경록에 보면 그렇게 나온다.
영명연수선사가 보통 분인가. 정토염불도 하고 선종 종장이기도 한데, 그런 분들의 의견도 우리가 따라갈 필요가 있다.
기미포이(旣彌布已)에 :이미 구름이 꽉 덮이고 나니까 구름에서 뭔가
출종종색전광(出種種色電光)하나니 : 툭 튀어 나오는데 출 종종색의 번갯불이 나온다.
구름에는 번갯불도 나오고 뇌성도 나오고 바람도 나오고 비도 나오지 않는가.
그러면 다음 시간에는 번갯불의 의미가 뭐냐, 뇌성의 의미가 뭐냐, 바람의 의미가 뭐냐, 요렇게 짚어야 될 것이다.
*
소위염부단금색운(所謂閻浮檀金色雲)은 :소위 염부단금빛 구름은
출유리색전광(出琉璃色電光)하고 :유리빛 번개를 내고
유리색운(琉璃色雲)은 : 유리빛 구름은
출금색전광(出金色電光)하고 : 금빛 번개를 내고
은색운(銀色雲)은 :은빛 구름은
출파려색전광(出玻瓈色電光)하고 : 파려빛 번개를 내고
파려색운(玻瓈色雲)은 :파려빛 구름은
출은색전광(出銀色電光)하고 :은빛 번개를 내고
모살라색운(牟薩羅色雲)은 :모살라색 구름은
출마노색전광(出碼𥔥色電光)하고 :마노빛 번개를 내고
마노색운(碼𥔥色雲)은 :마노빛 구름은
출모살라색전광(出牟薩羅色電光)하고 :모살라색 번개를 내고
승장보색운(勝藏寶色雲)은 : 승장보배색 구름은
출적진주색전광(出赤眞珠色電光)하고 :적진주빛 번개를 내고
적진주색운(赤眞珠色雲)은 : 적진주빛 구름은
출승장보색전광(出勝藏寶色電光)하고 : 승장보배빛 번개를 내고
무량향색운(無量香色雲)은 :한량없는 향빛 구름은
출무구의색전광(出無垢衣色電光)하고 :때 없는 옷빛 번개를 내고
무구의색운(無垢衣色雲)은 :때 없는 옷빛 구름은
출무량향색전광(出無量香色電光)하고 :한량없는 향빛 번개를 내고, 서로서로 짝이 되어 있다.
청정수색운(淸淨水色雲)은 :깨끗한 물빛 구름은
출종종장엄구색전광(出種種莊嚴具色電光)하고 :갖가지 장엄거리빛 번개를 내고
종종장엄구색운(種種莊嚴具色雲)은 :갖가지 장엄거리빛 구름은
출청정수색전광(出淸淨水色電光)하고 :깨끗한 물빛 번개를 내며
내지종종색운(乃至種種色雲)은 :내지는 갖가지 빛의 구름은
출일색전광(出一色電光)하고 : 한 빛의 번개를 내고
일색운(一色雲)은 :한 빛의 구름은
출종종색전광(出種種色電光)하며 : 갖가지 빛의 번개를 내느니라.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마지막은 뜻을 알겠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구름 속에서 천둥번개 친다’ 는 대목을 하도록 하겠다
오늘 강의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큰스님의 의보
불교사전에는 우리들 심신이 의지할 곳, 국토세계, 환경을 의보(依報)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큰스님께서는 요즘 거의 날마다 화엄경 법문을 하시는데 입법계품 스물네 번째 선지식인 사자빈신비구니를 법문하시면서 ‘저의 의보를 소개하자면 반드시 소개해야 할 800년 된 소나무가 저에게도 있습니다.’하셨다.
7월 9일 문수사경반이 큰스님을 친견하면서 찍은 단체사진에는 이 소나무가 함께 늠름하게 찍혀졌는데, 휠체어가 오갈 수 있도록 경사지게 놓인 ‘데코’에 사경반분들과 큰스님이 서 계시고, 마침 비 그친 후라 안개도 끼어있어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진이 만들어졌다.
*
7월달 화엄법회가 끝나고 올라오는 길, KTX 매거진에는 함안(咸安) ‘모두 다 편안하다’라는 글이 있었다. 마침 용학스님도 법문에서 함(咸)자를 설명하시면서 함안을 예로 들으셔서 땅 이름이 그렇게 아름답구나,하고 처음으로 알았다.
이날 핸드폰에서 유튜브 생방송 알람이 뜨고 큰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만나서 무슨 일 때문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참 섣불리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섣불리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쪽 사정은 또 어떤 미세한 생각의 흐름, 미세한 감정의 작용이 있었고, 어떤 말이 오고 갔는데 그 말이 예를 들어서 상대에게는 또 어떤 감정의 변화를 줬는지. 그 순간에 그 사람 아니고는 도저히 그걸 정확하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도대체 한 말도 붙일 수가 없어요. 말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아, 사람 관계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복잡미묘하고 오묘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그런 말들에 마음속으로 밑줄을 그으면서 기차안에서 듣는 라이브 저녁 법문이 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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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도 저녁 시간에 큰스님께서 법문을 해주셨다.
“옛날에 내가 화엄경을 할 때 하고 또 지금 아는 거하고는 아주 천지차이예요. 이걸 내가 좀 더 일찍이 이 화엄경의 가치를 알았더라면 더 많이 보시를 하고, 더 많이 여러 가지로 방법을 동원해서 화엄경을 펴고, 그렇게 했을 텐데, 그런 걸 알고 보니까 이제 여러 가지 병도 중하게 들고 또 세월도 많이 갔고 몸도 따라주지가 않고 그래서 아주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납니다.‘좀 일찍이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이 간절해요. 여러분들은 좀 하루라도 빨리 화엄경의 가치를 깨달아서, 가치를 깨닫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가치를 깨달으면 후회하죠. ‘아 왜 내가 일찍이 이걸 몰랐던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빨리 가치를 깨달아서 복을 많이 짓고 공덕을 많이 짓고 많은 사람들을 건지고 제도하고 교화하는 데 힘을 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라고 하셨다.
“오늘 화엄경을 안 읽으면 오늘은 또 그냥 지나가 버린다, 화엄경을 안 읽는 날은 의미 없는 날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길가에 다이아몬드가 흩어져 있다면 그걸 우리가 줍지 않고 어떻게 배기겠습니까? 화엄경은 부처님 말씀 중에서도 특히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그렇게 가치를 깨닫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그런 가치가 분명히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 불자들은 어차피 불교를 믿고, 부처님께 의지하고 부처님 공부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화엄경 시간에 이렇게 들어와서 함께 하니까, 그렇다면 이 화엄경이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값지고 소중하고 그야말로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깊이 가슴 저리도록 느껴서 그것을 한 사람에게라도 널리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나 복이 되겠습니까?”
라고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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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 귀중한 인생, 한순간이라도 참 정말 값지게 살아야 되는데, 어떻게 알면서도…”
부산에서 돌아오는 날, 사홍서원이 끝난 뒤에도 혼잣말처럼 말씀하셨었는데, 이틀 뒤 구족우바이를 법문하시면서 말미에 본격적으로 시간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하루 24시간이라고 하는 밑천을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또 한마음 자리 여의주 진여자성 진여불성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도 또한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평등하고 똑같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절대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핑계대거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하루 가운데 24시간 동안 그 진여자성을, 우리 불성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좌우된다고 하는 사실,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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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에는 운동을 하시는 대신에 아침에 유튜브 화엄법문을 하셨다.
여래성 보살님의 말씀으로는 아침마다 범어사 승가대학원 학장이신 정한스님이 화엄전에 올라가셔서 큰스님과 차 한잔을 드시고, 큰스님께서 운동하시는 것을 지켜보신다고 하셨다.
정한스님은 큰스님의 상좌이시다. 비가오는 날에는 어떻게 하실지 문득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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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가 그렇게나 효험이 좋은 치료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연공최귀(連功最貴)라고 큰스님께서도 가끔 말씀하셨는데, 요즘 유행하는 ‘몰입’이나 ‘명상’이 결국은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배웠다.
날마다 우리가 큰스님의 음성으로 화엄명상을 한다.
큰스님은 ‘내 음성이 좋았더라면’하고 가끔 말씀하시는데 ‘엄마의 음식이 제일 맛있는 건 익숙하기 때문이다’라고도 하셨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익숙한 스승의 음성으로 세상에서 가장 최고인 화엄경에 몰입하는 우리의 날들이 함안하다.
날마다 자비
상설변설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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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
보살님, 감사합니다
'말미에이, 여몽함포영' 이것은 오자인지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연기의 도리와 인생을 알고자 말미에 이, 라고 띄어쓰기를 해야하고,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이라고 환으로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慧明華 여기 계시는 여러 보살님 덕분에 잘 보고 있습니다. 보살님마다 특색이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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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