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병원장에게 웬 남자가 찾아 왔다.
병원장은 내게 그 사람이 연변에서 온 도사라고 웃으면서 소개를 했지만, 수염을 길렀다는 것 빼고는 어디를 보나 도사의 포즈를 느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던져도 우물쭈물 대답도 못하는 걸 보면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이던가 그런 예법 따위는 아예 배운 적도 없는 촌무지렁이같이 보였다.
단지 쳐다보는 눈빛이 강렬한 게 예사 사람은 아닌 듯도 싶었다.
어쨌거나 병원에 온 손님이니 차려 놓은 내 저녁 식사를 그 사람에게 양보하고 나왔다.
다음 날도 그 사람은 병원장을 따라 다니고 있었다.
너무 늦어 하룻밤 잠을 재웠는가 했더니 병원장이 며칠이라도 그 사람을 데리고 있고 싶다는 청을 하는 거다. 그 남자는 자신이 손만 대면 통증도 가라앉고 암의 크기가 줄어 드는 신통력을 가졌다며 자신을 시험해 보고 병원에서 써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만약 정말로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중국에서도 찾는 사람이 많았을텐데 굳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도 석연치 않고, 또 그 능력이 입증된다 해도 의료인도 아닌 사람에게 치료를 맡길 수 없는 일 아닌가.
병원장이 그런 걸 모를 리 없지만 그 못말리는 호기심 때문에 그 사람을 돌려세우기가 너무 아쉬웠나 보다. 어쩔 수 없이 1주일이란 단서를 달고 병원장 손님으로 대접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더위에 갈아 입을 속내의 한 벌도 없이 빈 몸으로 왔다는 거다. 병원의 직원 유니폼을 내주고 속내의랑 양말 등을 챙겨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룡강 출신으로 연변에 온 지 6년 되었다는 것과 이름만 물어서 알아낸 것 뿐 신원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을 무턱대고 받아 들였다는 게 마치 그 사람이 도술이라도 부려 우리를 홀린 것만 같았다.
기공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락 마사지를 배운 것도 아니고 자기 말처럼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재주를 가지고 뭘 보여 주겠다는 건지 그걸 믿고 받아주었다는 사실이 누가 보더라도 상식 밖의 일이다. 혹시라도 입원 환자들 카드라도 훔쳐 달아나면 도대체 어디에서 그 사람을 찾아낸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병원장에게 그만 보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엄마 손은 약손" 하며 통증을 풀어주는 것 쯤은 나도 할 수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조금쯤 배운 사람이면 그 정도 재주는 다 부린다고 내가 집요하게 설득을 하니 병원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 못해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사실 나로서도 손님으로 받아준다 해놓고 하루 만에 그만 돌아가게 하라고 말하기가 껄끄러웠지만 시간을 끌수록 그 사람에게 쓸 데 없는 기대를 주게 될테니 그것도 못할 노릇이란 생각에 다른 때와 달리 단호하게 나갔다. 그런데 다음 날 출근을 하니 그 손님은 아침 일찍 가버리고 없었다. 병원장이 나와의 약속을 지켜 보냈는가 했더니 밤새 병원 안에 사건이 생겼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그 사람이 방문했던 입원 환자의 휴대폰이 없어졌는데, 금 1돈짜리 거북이인지 돼지인지 휴대폰 걸이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분명 머리맡에 두었는데 없어진 걸 보면 연변 사람 짓이라고 그 환자분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당황한 병원장이 그 사람을 찾으니 보이지 않자 더 의심이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아침 밥을 사먹고 와서 자기 방에 앉아 있더라며 자초지종을 물으니까 그냥 보내도 갈텐데 도둑으로 누명까지 씌운다고 너무 억울해 하더라는 것이다. 사정이 그런데 더 이상 있게 할 수 없는 노릇이라 차비를 주어 보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훔쳐갔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 핑계로 사람을 몰아냈다는 게 병원장으로서는 마음이 아팠던지 온종일 시무룩해 있었다.
"병원장님,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인연이 없는 사람이예요. 계속 여기 남아 있으면 두고 두고 병원장님의 짐이 되었을 거예요," 별 위로는 안되겠지만 그렇게 밖에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자신도 그 사람이 볼품없는 초라한 늙은이라고는 해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댈 사람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다. 지금이라도 어디서 휴대폰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생각하면 이 해프닝이 '한 여름 밤의 꿈'만 같다.
그 꿈 속에서 그 남자가 진짜 연변 도사였는데 우리 모두는 그를 못알아 봤다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으면 참 좋겠다. 사기꾼도 아니고 겨우 좀도둑이라니 그건 도사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지니까 말이다.
첫댓글 연변도사가 기인이긴 했던 모양인데 직업의식이 동하셨는지...
이런일은 여자들의 직감이 정확하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은 들지만 ... 느티나무님의 글 속으로 홀릭당했습니다.
요즘 이런 저런 일로 마음 쓸 일이 많았네요. '우결'에 우리 병원이 예고편만 나왔을 뿐인데 요며칠 데스크가 전화받느라 즐거운 비명이예요. 23일 오후 5시 15분 방송편을 꼭 봐주세요. 우리 병원장님이 도사처럼 나올테니..ㅎㅎ
꼭 챙겨서 보고싶어지네요? ㅎㅎ
지난번 모임때 꽃마을에서 "우결" 촬영할거라는 귀뜸을 하셨는데 비밀지킨다고 숨막혔어요 ㅋㅋ
도사님이랑 김원준과 박소연의 팬인데 이젠 방송을 해야겠어요~
ㅎㅎㅎ 그 예사롭지 않다는 그 사람의 눈빛에 뭔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 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