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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본문/고후6:7절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본문이 말하는 주제는 기독교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세상에 구별되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중에 따로 나와 있으라”고 말하면서 강조한 것이 바로 이 의무입니다.
우리가 진짜로 예수님의 나의 구주와 임금으로 모셨다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주제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하고 또 따라가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아주 중요한 표식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안에 새로운 피조물이된 사람은 항상 “세상에서 나와”구별된 삶을 살기를 힘썼습니다. 삶에서 이런 자세가 되어 있는 않은 신자들은 항상 세상으로부터 “나와 따로 있는 삶”을 싫어했습니다.
오늘날 수 많은 목회자들은 신자들의 삶을 즐겁고 편한 삶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을 따라가고 십자가를 져야하는데 최대한 무담을 주지 않도록 설교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편협하고 배타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신자는 어디서든지 항상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중에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짜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새롭게된 자라면 이 중요한 말씀 앞에 진지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1.먼저 세상은 인간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라고 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인 세상 즉 하늘이나 땅 아래 있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해롭지 않습니다. 가령 해와 달, 별들, 산과, 골짜기, 바다와 호수 등등,,, 그 자체로는 선한 것입니다.(창1:3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창조물은 하나님의 지혜로 능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세상이라고 할때는 이 세상의 것만을 생각하고 오는 세상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항상 하늘에 속한 것보다 이 땅에 속한 것을 더 생각합니다. 영원보다는 현세를 더 생각합니다. 영혼보다는 육신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사람을 더 기쁘게 합니다.
세상이라고 할 때 우리가 지칭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상태 습관 사고, 생각, 행동, 성향, 목적, 정신, 어조, 등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런 “세상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세상에 대한 말씀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말한 세상, 사도 요한이 말한 세상, 야보고가 말한 세상과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에 대한 말씀을 한번 새겨 보겠습니다.
바울서신에서, 롬12:2절에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전2:12절에서,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갈1:4절에서는,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엡2;2절에서,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딤후4:10절에서,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야고보의 서신에서 약1:27절과 4:4절에서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사도 요한도 요일2:15절에서,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3:1절에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일4:5절에서,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요일5:4절,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19절,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주님께서도 마13:22절에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요한복음8:23절에,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한14:17절에,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5:18절에,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한15:19절에,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16:33절에,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17:16절에.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세상에 대한 이 19개의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각 구절마다 분명한 증거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보시멵서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원수요 세상의 벗된 것과 그리스도의 벗된 것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이야기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본문의 말씀은 정오의 태양같이 분명한 말씀입니다.
세상만큼 우리 믿음의 신자들에게 믿음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앗아가는 것은 현저한 죄나 공공연한 불신앙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두려움, 세상의 염려, 세상에 속한 일, 세상의 재물, 세상의 쾌락,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바심과 같은 것이 바로 예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들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신앙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는 여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기독교 인상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죄의 길로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애착을 가하면서 끊지 못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천국을 향해 힘차게 출발을 하고 신앙의 경주도 잘하던 사람이 성인이 되면서 곁길로 빠지기 시작하고 결국 멸망으로 난 넓은 길로 빠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작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길을 걸어갔지만 끝은 데마와 롯의 아내와 같은 길을 걸어갑니다.
“세상”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도살했는지는 마지막날에 주님앞에 설 때 심판대 앞에서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 다수가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여러서부터 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치 포부를 안고 항구를 떠나던 고깃배와 같은 자들입니다. 부모의 기대와 축복속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미혹을 받아 바른 항로를 이탈하고 결국 죽음의 길로 항해를 마감하는 어리석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많은 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이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는 이 바울의 권면에 귀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2.두번째로, 세상에 나와 따로 있으라는 말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것을 살펴 보시겠습니다.
먼저 세상과 구별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의도를 가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구별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게서 명하신 대로 하고 있다는 굳은 확신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오해입니다. 이런 오해는 막대한 해를 끼칩니다. 이런 오해 가운데 있는 자들은 자기 확신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믿음의 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 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비방거리고 삼는 행위와 같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거치는 것이 되는데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확신속에 살아가는 자는 더더욱 십자가의 도는 비방거리로 전략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는 것에 대한 논의를 계속 말씀드리기 이전 이 부분에 대해 우리는 먼저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가령 우리가 살면서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 있으면서 자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할수 있다는 것입니다.(요16:2/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올바른 지식”에 합하지 않는 열심을 내고 있는 경우가 신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 사실을 성경에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롬10:2절에서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세사응로 부로오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판단과 구별된 사실을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1)첫재로, 사도 바울이 “세상에 나와 다로 있으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모든 세상 직업과 일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군인 선원 변호사, 의사 상인, 은행가, 자영업,...등등을 금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은 이런 행동을 바른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고넬료는 백부장입니다. 누가는 의사입니다. 세나라는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이들은 율법교사입니다. 어떤 직업보다 게으름이 큰 죄악입니다. 합법적인 직업은 오히려 나태와 게으름에서 빠져나오도록 돕습니다. 성경 데살로니가 후서3:10절에서 경고하는 말슴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직업은 생게를 위한 것인데 이것을 포기하고 태만하고 게으름속에 사는 것은 악한 죄인의 행위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우리의 믿음을 실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에 방해가 된다는 그럴듯한 자기 변명속에 직장을 포기하고 일을 그만두는 것은 옳은 행위가 아닙니다.
(2)둘째로, 사도 바울의 “세상에 나와 따로 있으라”는 말씀은 회심하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끊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주남과 제자들은 결혼잔치에 가기도 하셨고, 바리새인들과 한자리에서 식사도 하셨습니다.
성경은 “불신자 중에 누가 청하면”가면 안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갔을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고전10:27절/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더구나 거듭난 신자가 누구이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이지 어느 모임이 경건하고, 어느 모임이 경건하지 않은지 필요 이상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는 몇 사람이라도 아무쪼록 구원하기위하여 사람들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고전9:22절/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3)셋째로, 바울이 “세상에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한 것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은 신앙 이외에는 전혀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학, 예술, 문학, 정치, 등등을 무시하는 것은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지 말고 읽지 않고 신문도 전혀 거들떠 보지 않고, 세상에 무슨 일이 돌아가는지 알려하지 않고,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정상적인 신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태함과 이기심으로 신자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말씀을 보시면 신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딤전2:2절에서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즉선한 정부를 뒤도록 기도하라는 것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좋은 정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에 무지한 것이 경건한 일이라도 되는 양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도리어 기독교 신앙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가 있습니다.
(4)넷째로, 세상에 나와 따로 있으라는 바울의 말이 곧 신자는 옷차림과 메너와 행실과 말소리가 사람들과 구별되어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신자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앞에 설때에 모든 사람드르이 시선을 끌만한 옷차림이나 색깔은 삼가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롱할 빌미를 재공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때로는 거만하게 보일수도 있고, 가식적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경문의 띠를 넓게하며 옷술을 길게한다는 비난하셨습니다.(마23:5/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진정한 거룩과 성결한 모습은 이런 것과는 다릅니다. 눈에 뛸만큼 혐오스럽고 괴상하게 옷을 입고, 우는 듯한 애처러운 어떤 행위나 말하는 것은 꾸며낸 행위로 보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5)다섯째로, 바울은 “세상에서 나와 따로 있으라”는 말씀을 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따로 지내야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세상과 단절된 환경을 만들어 지내는 것이 카톨릭에서 가르치는 잘못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영성생활을 안하면서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절과 같이 단절된 채로 수녀와 수도사와 같이 지내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시간을 갖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17장 기도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17:15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인내와 온유함과 순전함과 담대함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굴이나 세상 한귀퉁이로 숨어사는 것이 세상과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지킬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세상에사 나와 따로 있으라”고 말했을때는 회심하지 않은 교인들이 섞여 있는 교회를 떠나라거나,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말라거나,그런 행위를 중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정죄 받을 행위입니다.
가룟유다가 도덕놈인줄 아시면서도 삼년 동안 사도들과 함께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와 함께 성찬을 나누셨습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주님은 회심한 신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고 합니다.(마13:30절)
계시록 7교회에 보낸 주님의 편지가운데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교회의 잘못과 부패가 자주 언급되고 그런 이유로 교회를 저버리거나 교회의 규레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즉 어린양의 혼인잔치 때까지 완벽한 교회와 완벽한 회중, 완벽한 성찬은 불가능합니다. 혹이 정상적이지 않은 신자들도 많고,그렇기 때문이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모이는대 힘쓰지 않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매우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세상과 구별될 것을 말씀하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구별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6가지 어류들을 차분하게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사실 믿는 자들 이라고 하면서 이런 오류들 속에 속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잘 분별하고 겅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을 만난 첫 사랑이 너무나 강해서 너무나 극단적으로 극단적인 선악에 대한 이중적인 분류로 성급하게 행동 해서는 안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고자 하는 자들이 조급하고 까다롭고 무정하고 시무룩하고, 무뚝뚝한 태도를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시면 “말로 말미암지 않고”신자의 거룩한 “행실로 말미암아”구원에 이르게 되는 불신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벧전3:1절/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우리는 유쾌하고 친근하고 원만한 성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데 힘쓰고, 순전하고 선한 증거를 받는 모든 일에 기꺼이 힘쓰는 것은 우리가 믿는 삶과 신앙의 원리라는 사실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자들에게 이 사실을 보여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세상과 구별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우리의 잘못된 행실로 말미암아 조롱거리가 되고, 비판을 받는 저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자들이 세상과 구별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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