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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지음
단 한개의 점포에서 출발, 10년만에 2000개의 스토어를 거느리며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성장한 스타벅스. " 인간중심 " 경영의 승리를 증언하는 그 도전과 성공 스토리를 만날수 있습니다.
▣ Short Summary
커피 산업에서 신화적인 기업인 스타벅스는 단 1개의 소매점에서 출발해 제너럴 푸드(General Foods), 네슬레, P&G 등 커피 산업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오늘날 전 세계 2,000여 소매점을 거느린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책은 신화의 주인공인 하워드 슐츠 회장이 자서전의 형식을 빌어 스타벅스의 역사와 경영 방침, 자신의 경험과 경영 철학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자기 과시나 신변 잡기 식의 여타 자서전들과 달리 스타벅스의 발전과 그 과정에서 최고경영자인 자신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문제들을 솔직 담백하게 소개함으로써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인간 중심’ 경영의 승리를 증언하는 그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를 만나보자.
제1부 커피의 재발견
1. 상상, 꿈, 그리고 초라한 어린 시절
2. 원칙 외에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3. 에스프레소의 로맨스를 발견하다
4. 행운이란, 계획의 결과
5. 부정적인 사람은 결코 위대한 기업을 세울 수 없다
6. 사람은 존경과 품위로, 기업은 가치관과 원칙으로 다룬다
제2부 커피 경험의 재창조
7. 눈을 크게 뜨고 꿈을 펼쳐라
8. 당신을 사로잡는 것이라면 반드시 다른 사람도 매혹시킬 것이다
9. 직원은 기계의 부속품이 아니다
10. 100층짜리 건물은 먼저 튼튼한 기반이 필요하다
11. '예스맨'을 멀리하고 '아이디어맨'을 가까이하라
12. 독단성과 융통성의 사이에서
제3부 기업가 정신의 재창출
13. 주가에 울고 웃지 말고 경영에만 집중하라
14. 기업을 계속 성장시키려면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15. 직원의 작은 아이디어가 회사를 살린다
16. 완벽하게 보일지라도 다음 단계의 도약을 준비하라
17.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18. 일류브랜드는 광고 회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19. 2,000만 명의 새 고객을 위한 것이라면 모험할 가치가 있다
20. 성장하면서도 작은 것에 세심할 수 있다
21. 기업은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22. 기업 성장과 개성을 맞바꾸지 말라
23. 무언가에 집중할 때 근시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24. 성공은 나누어 가질 때 가장 달콤하다
아버지 프레드 슐츠는 한 달 이상이나 집에서 쉬셔야만 했고 일을 못 하셨으므로 봉급도 받을 수 없었다. 어머니도 당시 임신 7개월이셨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다. 식탁에서 나와 누이가 말없이 저녁을 먹는 동안 부모님은 누구한테 얼마를 꿀 수 있는지를 의논하곤 하셨다. 저녁에 가끔 전화벨이 울리곤 했는데 만일 빚쟁이면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말하라고 시키셨다.
양키즈팀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주말이면 우리와 같이 야구를 해 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패배자였다. 트럭 운전, 공장 노동, 택시 운전 등 블루칼라 일을 전전하면서 결코 집 한 채 소유해 보지 못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노력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비참한 현실에 화가 났다. 1988년 1월 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저축도 연금도 없었다.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당신이 종사하셨던 직업에서 아무런 긍지도 만족감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아버지를 부당하게 판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사회에 버림받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만일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면, 사람들을 가장 중시하리라.’
스타벅스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과 성공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부류의 회사들과는 전혀 다른 회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의식적으로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스타벅스는 내 아버지의 살아 있는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그것은 한 회사가 어떻게 마음과 영혼을 살찌우는 동시에 돈도 벌 수 있느냐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이다. 스타벅스는 고객, 주주, 종업원 등의 사람들과 정서적인 일체감을 이루고 있다. 기업은 단지 이윤 추구가 아닌 진정한 가치에 의해 경영될 때 열정과 개성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이다. 나는 모든 커피 한 잔 한 잔에 나의 마음을 쏟아 붓는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나의 파트너들도 마찬가지이며, 고객들 역시 그것을 감지할 때 우리와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야르짜이트’라고 하는 유대 민족의 전통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일 전날 밤에 가까운 친척들이 24시간 촛불을 켜 두는 의식이다. 나는 매년 아버지를 위해 그 촛불을 켠다.
상상, 꿈, 그리고 초라한 어린 시절
내가 세 살 때인 1956년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아파트에서 정부 보조 공동주택단지인 베이뷰로 이사했다.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 일하는 가난뱅이였다. 우리의 가정형편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달은 것은 나이가 더 들어서였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중국집에 갔는데, 부모님은 그날 아버지의 지갑 속 현금 액수에 맞춰서 어떤 음식을 주문할 것인가를 의논하시곤 했다. 세 아이 중 맏이인 나는 빨리 성장해야만 했다. 즉 어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야만 했다. 나는 항상 어머니께 번 돈의 전부를 드렸다. 어머니가 달라고 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처한 어려운 형편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나는 보조 주택단지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한번은 뉴욕에서 온 한 소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내게 몇 마디를 물어 보는 동안 표정이 어떻게 일그러지는가를 똑똑히 보았다. 너 어디 사니? 브루클린에 사는데요. 브루클린 어디? 카나지요. 카나지 어디? 베이뷰 보조 주택단지요. 오 저런!
1975년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나는 뉴욕에 있는 제록스 사에 취직해 세일즈 교육을 받았다. 나는 그 곳에서 대학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나는 잠재 고객에게 하루에 50통의 전화를 하면서 6개월을 보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이 나타내는 반응은 비즈니스를 위한 대단한 훈련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고가 되고자 노력했고 그 일을 잘 극복해 나감으로써 세일즈맨의 모범을 보였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수료를 받는 프로 세일즈맨이 되었다.
1979년 나는 쉴 새 없이 바빴지만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가정용품을 파는 해마플라스트라는 자회사를 미국에 진출시키려는 스웨덴 회사에 대해 말해줬고, 나는 그 기회를 잡아 그 자회사의 부사장이자 총 매니저로 뉴욕으로 발령받았다. 그들은 나에게 75,000달러의 연봉뿐 아니라 회사차, 판공비, 1년에 4차례의 스웨덴 방문을 포함한 무한정의 여행권을 제공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나는 고급 주택들이 늘어선 어퍼이스트 사이드에 멋진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6년 만에 성공적인 직업 경력과 함께 높은 봉급과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부모님의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이러한 성공 뒷편에서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서서히 감지하고 있었다. 점점 안절부절 못하는 이유를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고, 특히 나의 부모님은 더했다.
1981년 해마플라스트에서 일하고 있을 때 나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시애틀에 있는 조그만 소매업체가 이례적으로 한 종류의 드립식 커피 추출기를 대량 주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보온병 위에 플라스틱 여과필터를 얹어 놓은 간단한 커피 추출기였다.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커피를 전기 퍼콜레이터나 드립 커피 머신으로 만들고 있는데, 왜 시애틀에서는 이 구식 제품을 선호할까?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시애틀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도착하자 나는 스타벅스의 판촉 매니저인 린다 그로스맨을 만났다. 그녀는 유서 깊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구역에 위치한 스타벅스의 본점으로 나를 안내했다. 닳아서 반질반질한 나무로 만든 카운터 뒤에는 수마트라, 케냐, 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등 전 세계의 각종 커피를 담은 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피 하면 캔 커피를 연상했지 커피의 원두를 연상하던 때가 아니었는데 오직 진정한 원두 커피만을 파는 숍이 바로 여기 있었던 것이다.
린다는 왜 고객들이 콘 모양의 보온병 커피 추출기를 좋아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손으로 직접 커피를 추출하는 것을 권합니다. 왜냐하면 전기 커피메이커로 추출하면 커피가 덜 추출되며 그 주변에 달라붙어 타 버리기 때문입니다.”
린다는 나를 태우고 스타벅스의 배전 공장(커피 원두를 볶는 공장. 원두를 볶기 전 상태를 ‘그린 빈’이라고 하며 이 때는 커피 맛이 나지 않는다)으로 데리고 가서 회사의 소유주들인 제럴드 벌드윈과 고든 보우커를 소개해주었다. 그들은 당시 삼십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이미 10년 전에 스타벅스를 창업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면서 두 사람 모두 영리하고 지적이며 견문이 풍부한, 고급 커피에 대한 절대적인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반해버렸다. 내 앞에는 얻어야 할 지식, 개척해야 할 것들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문화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럴드는 스타벅스의 초창기와 정통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스타벅스, 이 회사의 창업자들은 원래 사업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문학이 전공인 제럴드는 영어 교사였고 고든은 작가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파트너인 제브 시글은 역사 교사였다. 스타벅스의 정신적인 대부는 미국에 강배전(강하게 볶는 것) 커피를 처음 도입한 네덜란드인 알프레드 피트였다. 그는 세계적인 고급 커피나 티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몇 시간이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이었다. 제리와 고든은 피트가 운영하는 조그만 스토어에서 커피를 우편으로 주문해 마셨는데 1970년 8월의 어느 청명한 날 갑자기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렇게 커피를 사러 다닐게 아니고, 시애틀에 직접 커피 스토어를 열어보자!‘
1960년대에 미국 커피 회사들은 가격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품질과 향을 무시하고 값싼 원두를 섞어서 캔에 담아 팔았으며, 캔 커피는 커피가 찌들 때까지 슈퍼마켓 선반 위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캔 커피의 질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커피가 굉장한 맛이라고 떠들며 광고했다. 그러나 제리와 고든, 제브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들 셋은 결국 그들의 고급 커피가 단지 소수의 커피 애호가에게만 팔릴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커피 스토어의 개점을 강행했던 것이다.
나는 자기 제품에 대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그들과 헤어지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스타벅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반짝이는 보석처럼 보였다. 나는 물 같은 기내 커피를 한 모금 먹어 보고는 얼른 치워 버렸다. 나는 가방에서 수마트라 커피 원두를 꺼내 뚜껑을 열고 그 그윽하고 자극적인 냄새를 가득히 들이마셨다. 나는 의자 뒤로 몸을 기대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스타벅스에는 내가 사업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열정과 진실성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케네디 공항에 착륙했을 때 나는 마음 속 깊이 ‘아! 바로 그거다!’하고 느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스타벅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스타벅스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이후에도 변함없이 제품의 질을 회사 윤리 강령의 가장 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 그러나 종종 의사 결정이 힘들 때나 기업의 관료주의적인 발상이 들 때, 나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있는 스타벅스의 첫 번째 스토어를 방문한다. 이제는 낡아버린 목재 카운터를 쓰다듬으며 강배전 커피 원두를 한 움큼 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흘려본다. 손에 묻은 반짝반짝 빛나는 향기로운 커피 기름을 바라보면서 나와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그 전에 왔던 고객들에게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다짐한다. 항상 최고 품질의 원두 커피를 팔아야만 한다는 원칙! 이 원칙 이외에는 모든 것을 고치고 혁신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타벅스의 유산이다.
스타벅스의 마케팅 책임자로 처음 들어간 후, 1987년에 스타벅스는 드디어 나의 것이 되었다. 그것은 너무 흥분되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스타벅스 코포레이션’의 전신은 일 지오날레다. 일 지오날레는 1985년 설립되어 1987년에 스타벅스를 합병한 이래 그 이름이 스타벅스 코포레이션으로 바뀌었다. 제리와 고든이 설립한 그 최초의 회사는 스타벅스 커피 컴퍼니라고 불렸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그 이름에 대한 권리도 양도했다. 나는 그 때 34세로서 굉장한 모험을 시작하고 있었다.
스타벅스 인수 계약을 마무리한 후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니 8월의 오후 햇살이 나를 반겼다. 다음날 아침, 예전에도 수없이 해 왔듯이 낡은 배전 공장 앞문으로 들어섰다. 나는 곧 배전 기계로 향했다. 갓 배전하여 따뜻하고 향기로운 커피에 손을 넣고 한 움큼 집어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비벼 보았다. 배전한 커피를 만져 보는 것은 오늘의 스타벅스가 있기까지 나의 원칙이자 매일의 습관이 되었다.
오전 10시, 전체 모임을 갖기 위해 배전공장 마루에 모든 이들을 소집했다. 그 이후로 이어질 수많은 회의 중 첫 번째였다. 불안하기보다는 흥분되었다. 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5장 정도의 메모지에 몇 가지 강조점들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일단 말을 시작한 다음에는 메모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년 전 이 회사를 위해 내 삶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인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과 일원이 되기를 평생 꿈꾸어 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서 그 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나는 이 회사를 사랑하므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이 회사가 상징하는 비전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함께 일함으로써 시애틀 사람에게 그토록 소중한 스타벅스의 모든 것을 지키고, 아울러 전국적으로 스타벅스에 대한 사랑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커피에 대한 사명을 더욱 폭넓게 나눌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중 어느 누구도 뒤로 홀로 남겨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약속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회사가 상징하는 바를 희석시키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의 목표는 우리 모두 자랑할 수 있는 원칙과 가치관을 가진, 그리고 전국에 스토어를 가진 회사의 구축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성장에 대한 비전을 토론했고, 어떤 면에서나 스타벅스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은 없으리라고 다짐했다.
독단성과 융통성의 사이에서
모든 기업은 무엇인가를 대표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믿을 만한 제품이 그 기업의 핵심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고객이 요구하는 것에 ‘예’라고만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는데 그 하나가 프랜차이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프랜차이즈로는 품질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공적인 향을 첨가한 커피였다. 우리는 우리의 고급커피를 화학물질로 망가뜨리지 않는다. 또 하나는 슈퍼마켓 판매였다. 우리는 커피가 상할 수 있는 투명 플라스틱병에 우리의 커피를 넣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최상의 생두를 구입하여 완전하게 배전한, 완벽한 커피 한 잔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깨끗한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우리의 가치와 욕구는 때로는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것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기업이 그렇게 한 것처럼 슈퍼마켓 판매로 2배 또는 3배를 팔 수도 있었지만 식료품 가게 커피와 분명한 구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는 우리 커피를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경쟁회사들이 프랜차이징 방식을 이용하여 전국적 영업망을 확장할 때도 우리는 직영 스토어를 주장했다. 나는 점차 타협의 필요성도 배우게 되었지만 매우 중요한 우리의 가치들은 타협하지 않는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열심히 토론했다. 그리고 우리가 상징하는 완벽성을 희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할 때에만 새로운 방법들을 채택했다.
우리의 가장 독단적인 견해 중 하나를 버리게 한 사람은 하워드 비하였다. 우리는 그가 입사하기 전까지 커피에 대해 경건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워드는 달랐다. 그가 1989년에 스타벅스에 합류했을 때 그는 이미 소비자로서 스타벅스에 친숙했다. 그는 즉시 스토어를 자주 방문하여 고객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고객의 소리 카드를 읽어 본적이 있습니까? 무지방 우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십시오.” 나는 금년에 무지방 우유를 사용했었는데 그 맛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해 주었다. “누구에게 맛이 안 좋았나요?” 하워드는 나의 대답을 몹시 못마땅해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나와 데이브 올센이 맛을 보았지요.” “고객의 소리 카드를 읽어 보십시오. 고객은 무지방 우유를 원합니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무지방 우유를 주어야 합니다.”
스타벅스 역사의 그 시점에서 무지방 우유를 언급하는 것은 배신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그러하듯 우리의 목표는 순수한 커피를 지향하는 이태리 에스프레소 바를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리의 가장 충성스러운 한 직원이 그의 사무실 밖 복도에서 하워드와 마주쳤다. 얼굴을 맞대고 서서 그가 하워드에게 말했다. “당신의 그런 정신은 우리 커피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고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바로 그거야. 우리는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 거야.” 하워드 비하의 대답이었다.
나는 밤새도록 쉼 없이 그 생각과 씨름하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스토어 중 한 곳을 들렀다. 그리고 신문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주문하는 것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마침 조깅을 막 마친 것 같은 젊은 여자가 스토어에 들어왔다. “무지방 우유를 넣은 더블 라떼를 주세요.” “죄송합니다. 우리는 무지방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녀의 실망 섞인 한숨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성큼 성큼 스토어를 나가 경쟁 스토어로 갔다. 잃어버린 한 명의 고객! 더 이상 논쟁은 필요 없었다.
6개월도 안 되어 우리의 모든 스토어에서는 무지방 우유를 제공했다. 우리는 고객이 옳았다고 인정해야만 했다. 하워드 비하가 옳았다. 우리 고객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커피를 즐길 권리가 있다. 다만 우리는 주재료의 품질을 저해하는 것을 섞지는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표준이며 활력의 근원이며 우리의 유산이다. 우리가 우리의 제품을 존경할 때, 우리의 고객들이 스타벅스 스토어에 들어와 세계적인 커피를 구매할 때, 우리가 우리의 신상품에 변치 않는 품질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 때야 편안한 마음으로 고객들이 우리의 커피를 즐기도록 여러 다른 방법들을 제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보다 폭 넓은 사람들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소개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2,000만 명의 새 고객을 위한 것이라면 모험할 가치가 있다
1996년 1월, 하룻밤 사이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수가 2배로 늘어났다. 유나이티드 항공사가 우리 커피를 기내에서 제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몇 주에 걸쳐 우리는 전국으로부터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만두십시오.”라고 사람들이 불평했다. “유나이티드 기내 커피는 약하고 차갑다.” “그 커피가 정말 스타벅스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영광의 순간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 오히려 재앙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큰 도박을 했고, 그에 대한 초기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여행자들은 항공사의 기내 커피가 형편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 스타벅스는 커피의 명성을 최고의 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썼는가? 이유는 이제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 즉 기내 커피의 이미지를 다시 정립하는 기회에 도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나이티드에 도박을 함으로써 스타벅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신뢰’를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 사람들이 스타벅스 이름에 대해 좋은 커피의 대명사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브랜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 커피의 가격이 경쟁회사보다 2배 이상 높았지만 유나이티드는 시카고에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항공사 직원들과 소유주들의 대부분이 스타벅스를 알고 있어 그 가능성에 대해서 흥분하였다. 위험하기는 했으나 이것은 큰 기회였다. 1년에 거의 8,000만 명의 사람들이 유나이티드를 이용하고 그 중 25∼40%는 커피를 요구한다. 즉 그것은 연간 최소 2,000만 명의 잠재시장이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맛 볼 것이다. 다만 유나이티드 항공의 경우, 장거리 비행 시에 기내에서 커피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 과정은 스토어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항공사는 모든 도시에서 물을 가져오므로 물맛과 물의 품질이 다양했다. 대륙과 대양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비행에서 승무원들은 우리가 제한한 최고 20분보다 훨씬 오랫동안 버너 위에 커피를 올려놓고 만다. 항공기 내 추출 기계는 품질이 다양할 뿐 아니라 최대한 가벼운 것을 실어야 했고 커피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22,000명 이상의 승무원들을 훈련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우리는 9월에 유나이티드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우리와 제휴하고 싶어했다. 결국 협상은 다시 재개됐고, 우리는 그들이 가장 좋은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는 확실한 보증을 요구했다. 우리는 모든 비행 종사자들에게 커피를 추출하는 것과 신선하게 보존하는 기초뿐 아니라 스타벅스의 역사와 가치들을 교육시키기를 원했다. 우리는 포괄적이면서도 엄격한 품질보증 프로그램의 도입을 주장했다. 또한 1회 계량분, 분쇄커피부터 정수시스템까지 모든 것을 조사하였다.
오늘날 유나이티드 항공사는 어린이용 해피밀 식사의 제공과 더불어 스타벅스 커피 제공이 지금껏 내린 결정들 중 최상이었다고 평가한다. 1996년 4월, 우리가 행한 조사에 따르면 유나이티드 항공기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중 71%는 그것을 탁월하거나 좋은 커피라고 표현하였다. 결과적으로 유나이티드와 스타벅스 두 회사는 모험할 가치가 있었다고 양 사의 파트너십을 평가하고 있다. 2,200대의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 2,000만 명의 승객들이 35,000피트 상공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기업은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1994년 후반기에 어느 과테말라 노동운동가 그룹이 우리를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우리의 스토어에 전단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과테말라의 커피 종사자들이 커피 1파운드에 고작 2센트를 벌기 위해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할 때 스타벅스는 배전커피를 1파운드당 9달러까지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전단은 이들 노동자들이 스타벅스에 고용되었으며 스타벅스는 차액을 착복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우리는 당황했다. 우리는 책임있게 행동했을 뿐 아니라 어느 다른 회사가 했던 것보다 솔선수범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예로, 스타벅스는 상장 회사로서 스토어들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사회와 우리의 커피가 재배되고 있는 나라에 가치 있는 목적을 지원해야 한다는 믿음 하에 수익이 나던 때부터 CARE(세계적인 구제 개발재단)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교육하고 보다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왔다. 더군다나 CARE의 기부금을 해마다 증액한 결과 1993년에 우리는 미국에서 CARE에 가장 많은 연간 기부금을 내는 회사였다. CARE에 대한 스타벅스의 기부금은 커피 생산국가인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케냐와 에티오피아 4개국에 정수 공급 시스템, 건강 위생 교육, 문맹 퇴치, 그리고 최초로 커피가 재배되었다고 알려진 에티오피아의 제게 반도의 농부들을 돕기 위한 계획들을 지원했다.
스타벅스의 CARE 프로그램 지원을 홍보의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사태가 터지자 오히려 홍보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쨌든 우리는 모함에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는 세계 커피의 1%의 1/20 미만을 구입하고 있었고 커피 가격은 국제 상품교환시세로 정해지는 것이라서 단독으로 그것을 바꿀 힘은 없었다. 사실 우리 지지자들은 “과테말라의 커피를 더 이상 구매해 주지 말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불매운동이나 불매위협은 힘없는 농장 일꾼들에게 곧바로 해를 입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스토어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 모든 집단들의 압력에도 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1995년 9월까지 커피 재배 국가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별한 단기 수칙뿐 아니라 우리의 신념과 열망을 나타내는 ‘스타벅스 수칙’ - 우리가 이를 발표한 후 어떤 사람들은 스타벅스가 그것을 실천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 을 만들었다. 1997년 초에는 과테말라의 영세 커피 농사꾼들이 수확물의 품질을 개량하고 시장에 직접 접근함으로써 수입을 증가시키도록 국제기술 관련기구와 결연을 맺는 일도 계획하였다. 첫 해에는 생산자협동조합 회원이 대부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기금을 만들고, 환경보호를 극대화하기 위한 습식 커피 처리설비를 도입하도록 했다.
우리가 돕고 있는 재배자들의 대부분은 아주 작은 토지의 수확물로 호구지책을 삼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리고 질병과 영양실조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기타 커피 생산국가로 확장되어 커피 농부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기를 소망했다.
높은 윤리적 기준을 지키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또 다른 딜레마를 제공한다. 한 예로, 스타벅스는 10년 이상 종이컵 안에 커피를 넣어 플라스틱 뚜껑을 닫아 손님들에게 커피를 팔아오고 있다. 그러나 그 컵은 우리가 직면한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가 되었으며 우리의 가치관과 브랜드 이미지, 고객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충돌하는 어려운 문제였다.
나는 시애틀같이 환경문제에 민감한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에 무척 신경이 쓰인다. 이러한 관심사에 대한 해답으로 스타벅스는 지역 사회의 환경노력에 공헌할 뿐 아니라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들을 찾을 사내 환경 위원회를 발족했다. 모든 지역의 스타벅스 스토어 관리인들로 구성된 ‘그린팀(Green Team)’을 창설한 것이다. 그들은 1년에 3번씩 환경 관련 최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정하여 자기들의 지역에 적용시킨다. 그것은 환경적으로 민감한 우리의 파트너들로부터 최상의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다.
1995년에는 환경, 구매, 마케팅, 연구개발, 소매관리 및 식음료 부서들의 멤버로 구성된 ‘핫 컵 팀’을 조직했다. 그들은 종이컵 대신 사용할 근본적인 대안으로 뜨거운 음료를 종이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차단해 주고 재활용할 수도 있는 ‘폴리스티렌’을 생각해 냈다. 그러나 그 컵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고객들의 컵이 회수되지 않아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 더 좋은 종이컵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뜨거운 커피에 사용되는 2개의 컵 대신에 종이컵 중간 둘레에 주름진 둥근 마분지를 끼워보았다. 이 종이컵으로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없었으나 종이를 다소 적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것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96년 8월에는 환경연맹과 함께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하여 함께 일하기로 합의했다. 우리의 목표는 재활용이 가능한 컵의 사용을 증가시키고 환경 친화적인 새로운 1회용 컵을 소개함으로써 일반적인 1회용 컵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스타벅스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약 45개의 컵 공급업자, 산업디자이너 등과 접촉했다.
보다 높은 기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많은 회사들은 고려하지 않는 문제들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소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 문제들을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투쟁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우리의 파트너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고객이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살핀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
성공은 나누어 가질 때 가장 달콤하다
브루클린의 어린 시절, 나는 나의 미래를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을 보낸 후 나는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구체화하고 계획을 세우고, 또 그 계획에 따라 착실하게 실천에 옮긴다면 우리의 의지로 놀랍도록 큰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가치 있는 비전을 가져다주는 일인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고귀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훨씬 값진 보상이 따른다. 성공은 돈으로 측정되어서는 안 된다. 즉 성공을 이루기 위한 과정과 목적지에 도달해서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이다.
또한 비즈니스는 협동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면 그들은 함께 기적 같은 일들을 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비즈니스는 양쪽 모두 유익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결승선에 혼자만 도달하면 공허한 마음만이 남게 될 것이다. 반면 한 팀을 이루어서 달린다면 결승선에 함께 도달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진정한 승리자라면 열광하는 관중뿐만 아니라 한 팀을 이루었던 공동 승자들에게 둘러싸여야 한다. 승리는 한 사람의 노력보다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여 성취할 때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행복감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꼭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승리를 이룰 때 계속되는 것이다. 성공은 나누어 가질 때 가장 달콤한 것이다.
스타벅스의 ‘우리의 사명’ “우리는 스타벅스를 세계에서 최고 품질의 커피를 공급하는 우수한 회사로 만드는 한편 회사가 성장하더라도 우리의 원칙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다.” 다음의 6개 항목과 원칙은 우리의 결정이 적절한가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다. ·훌륭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고 서로서로 존경과 품위로 대한다. ·비즈니스를 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양성을 필수 요소로 포용한다. ·최고 수준의 기술로 신선한 커피를 배달하고, 매입하고, 배전한다. ·고객들이 항상 만족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우리의 사회와 환경에 적극적으로 공헌한다. ·수익성은 우리 미래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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