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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커트 코베인은 한 인터뷰에서 "고교 시절 내내 친구가 없어 술도 마약도 해본 적이 없었다"며 "2년 동안은 방에 틀어박혀 기타 연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몸도 물렀다. 위염이 너무 심해 바닥에 엎어져 헛구역질을 하다 간신히 무대에 올라갔다. 그는 "마침내 치료제를 찾았는데 그건 바로 헤로인이었다"고 했다. 제니스 조플린은 학창 시절 '돼지'라고 놀림받던 '왕따'였다. 한 친구는 "너절하게 옷을 입었던 데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뚱뚱했으며 어떤 타협도 거부하던 아이"라고 기억했다. 5세 때부터 연예인 생활을 시작해 유년 시절을 통째로 날려버린 데다 "아버지를 닮기 싫어 성형 수술에 매달렸다"고 할 정도로 학대의 기억에 시달렸던 마이클 잭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의 성취는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예민했던 그들은 대중의 거대한 환호, 혹은 비난 속에 되레 희미해져 가는 자신을 보며 방에 홀로 틀어박혀 통곡해왔을지도 모른다. 피카소는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체질적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부터 어려웠던 사람들이었다. 자연인으로서 이들의 인생은 가엾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마지막 신경 한 오라기까지 소모해가며 사람들 마음에 환희와 추억을 만들어 준 이들의 음악만은 영원히 기억될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커트 코베인이 유서에 썼듯 "서서히 사라지기보다 한순간에 불타 없어진" 이들의 충격적 종말은 그 음악에 광휘(光輝)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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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사망 직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심한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일간지 더 선은 잭슨 측근의 멘트를 인용해 `7월 컴백 공연을 앞둔 잭슨이 사고가 나기 며칠전부터 정신적으로 흔들렸다'고 보도했다.
잭슨의 그의 측근에게 "공연을 하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유의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앞세워 전세계를 사로잡았던 `팝의 황제' 잭슨. 그러나 약물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7월 13일 시작 예정이던 영국 런던 공연은 그를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공포로 몰아넣었다.
잭슨은 지인들에게 자신이 막다른 코너에 몰려있으며, 런던 무대에 서지 않으면 죽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했단다. 잭슨의 측근은 "막대한 빚은 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런던 공연을 해야한다고 말하고 했다"고 전했다.
런던 공연은 그에게 단순한 컴백 무대가 아닌, 반드시 성공해야하는 공연이었던 것이다.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잭슨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약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육체적으로도 피폐해졌다.
공연 리허설이 계속될수록 그의 몸은 약해졌고, 리허설을 마친 뒤에는 탈진 상태에 빠지곤 했단다. 열정적으로 연습을 한 후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기도 하고, 주변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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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화제]마이클 잭슨에 관한 몇가지 오해
아시아경제 | 고경석 | 입력 2009.06.27 16:34 | 수정 2009.06.27 22:11 | 누가 봤을까? 10대 여성, 제주
◆ 마이클 잭슨은 아동성추행자?
마이클 잭슨의 인기는 마지막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1991년작 '데인저러스(Dangerous)' 이후 급속도로 하락했다. 1980년대 최고의 스타가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 것은 음악이 아닌 추문 때문이었다.
마 이클 잭슨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아동성추행 혐의였다. 1992년 잭슨은 LA에서 한 자동차 정비소의 도움으로 도로주행 중 고장이 난 밴을 수리할 수 있었다. 정비소 주인의 아내는 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마이클 잭슨에게 소개시켰고 소년과 잭슨은 절친한 사이가 됐다.
잭슨과 소년, 소년의 어머니, 양아버지 그리고 친아버지인 에반 챈들러는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으나 그 과정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제적 문제로 허덕이던 소년의 친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잭슨을 아동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잭슨의 면전에서 "당신을 파멸시키고 말겠다"고 말했던 챈들러의 악의적인 계획은 2200만달러(약 200억원)에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끝났다.
마이클 잭슨이 무혐의 판결을 받고도 아동성추행자로 몰리게 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자는 것을 좋아하는 버릇 때문이었다. 아버지에 이끌려 음악활동을 하느라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만든 왕국 '네버랜드'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고, 잭슨의 이러한 취향을 아는 지인들은 그의 어린이 같은 버릇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으로서는 약점을 잡혔던 것이다.
◆ 마이클 잭슨은 성형중독자?
마 이클 잭슨을 '괴짜 재코'로 만든 오해 중 하나는 그가 성형중독에 빠졌다는 소문이었다. 1980년대부터 그의 피부는 점점 하얗게 변했고 턱은 점점 좁아졌으며 코의 모양 역시 몰라 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수술이 백인처럼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해진 것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해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1984년 마이클 잭슨은 펩시콜라 광고 촬영 중 특수효과용 폭탄의 오발로 인해 두피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큰 수술을 받았고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진통제 복용 역시 반복됐다.
잭 슨은 1986년 백반증과 루푸스(낭창) 진단을 받았다. 백반증은 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질병이다. 화상으로 인해 백반증이 발병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잭슨이 그런 예인이지는 확실하지 않다. 멜라닌 세포의 파괴로 그의 피부는 점점 하얗게 변해갔지만 소문은 다시 그를 괴짜로 만들었다. 그가 피부를 하얗게 만들기 위해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거나 피부를 탈색하는 치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져나간 것이다.
그가 진단받은 루푸스는 외부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면역계가 오히려 인체를 공격하는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발진, 관절염, 우울증 등을 포함한 신경 정신증상,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 다양한 증상이 수반되며 백반증처럼 정확한 발병 원인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
특히 루푸스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만성질환으로 진통제와 항우울제를 과다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마이클 잭슨이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이야기되고 있다. 또한 마이클 잭슨은 최근 슈퍼 박테리아 감염이나 피부암에 걸렸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 역시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코 나 턱 부분의 성형수술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마이클 잭슨이 처음 코 성형수술을 받은 것은 1979년이었다. 춤을 추다 코를 다쳐 수술을 받은 것. 그러나 호흡곤란 등의 문제로 인해 그는 재수술을 받았다. 1984년 화상 사건 이후 잭슨은 세 번째 코 수술을 받았으며 1986년 영화 '대부'로 유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단편 음악영화 '캡틴 EO'에 출연하기 전 코와 턱을 고치는 성형수술을 다시 받았다.
마 이클 잭슨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성형수술을 받았는지 부상으로 인한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성형수술을 받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를 성형중독자로 몰아붙이기엔 충분한 증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소문과 오해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있지만 마이클 잭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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