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학산(鶴山)
7. 강릉향교(江陵鄕校)
홍살문(紅箭門) / 보물지정(寶物指定) 안내 비석 / 명륜문화관(明倫文化館)
2021년, 모처럼 고향 강릉을 내려갈 일이 있어 큰맘 먹고 강릉향교를 방문하고자 하였는데 고맙게도 강릉향교 장의(掌儀)를 역임하였던 고교동기 최맹규(전 초등학교 교장) 친구의 안내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골고루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도회장(儒道會長)을 맡고 있던 어기식(魚奇植) 회장님께서 안내하며 자세한 설명까지 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강릉역 뒤편 화부산(花浮山) 자락을 들어서면 홍살문(紅箭門)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정문이 보이며, 왼쪽 기둥에는 강릉명륜(明倫)고등학교, 오른쪽에는 강릉향교(江陵鄕校) 명패가 있다.
홍살문(紅箭門)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곧바로 운동장과 잇닿아 명륜고등학교 건물이 마주 보이고 오른쪽 담장 앞에는 국가 보물(寶物)로 지정된 내력을 기록한 강릉향교의 비석들도 보인다. 오른쪽 뒤의 건물이 명륜문화관(明倫文化館)으로 향교 관리사무실이고 바로 옆에는 전통혼례를 치르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강릉향교 전경 / 대성전(大成殿) 건물
강릉시 교동(校洞) 화부산(花浮山) 자락에 있는 강릉향교(江陵鄕校)는 전남(全南)의 나주향교(羅州鄕校), 장수향교(長水鄕校)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향교(鄕校)로 꼽는데 그 중, 이곳 강릉향교가 제1로 꼽힌다고 한다.
강릉향교는 고려(高麗) 충선왕(忠宣王) 5년(1313년)에 최초로 설립되었고 이후 조선 태종(太宗) 11년(1411년)에 화재를 만나 전소(全燒)되지만 2년 후 재건되는데 성종(成宗) 17년(1486년)에 확장중건(擴張重建)되고 이후, 35회에 걸쳐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 유서(由緖) 깊은 향교이다.
건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맨 안쪽에 공자님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이 있고 좌우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그리고 바로 앞에는 내삼문(內三門)의 옛 모습인 전랑(殿廊)이 막아서 있다. 전랑(殿廊)의 아래에는 작은 뜰이 있는데 좌우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 앞에 기다란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서재(西齋) 뒤에 육고·주고(肉庫·酒庫)와 제방(齊房), 반대편의 동재(同齋) 뒤에는 향교를 관리하는 명륜문화관(明倫文化館)이 들어서 있는 구조이다.
동무(東廡-58位 봉안) / 서무(西廡-57位 봉안)
대성전(大成殿)의 현판을 보면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로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명시된 형식이라고 하며, 기둥도 배흘림형식의 금강송(金剛松)으로, 주춧돌 위는 흰색, 중간은 검은색, 상부는 붉은색으로 칠한 모습이 이채로운데 대성전 좌우의 동무(東廡), 서무(西廡), 뜰 앞의 전랑(殿廊)도 모두 같은 제향(祭享) 공간이라 하여 기둥의 형식이 모두 똑같다.
사롱창(斜籠窓) / 전랑(殿廊)<내삼문(內三門) 이전의 형식>
특이한 것 중의 하나가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의 창(窓)은 창살이 안으로 휘어진 사롱창(斜籠窓)으로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기법이라고 어기식(魚奇植) 유도회장(儒道會長)께서 직접 설명을 해 주셨다.
우리나라 향교들 중에서 이런 고려시대의 건축기법이 남아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한다.
내삼문(內三門) 형식의 예전 모습인 강릉향교의 전랑(殿廊)은 가운데 작은 문이 하나있고 기다란 복도(廊下)가 있는데 뒤편으로 나가 올려다보면 높다란 기둥을 세워 누각(樓閣)처럼 보인다.
명륜당(明倫堂) / 명륜당 회랑(回廊)과 서재(西齋)
명륜당은 유생들을 가르치던 교육공간으로, 전면 11칸인데 내부 면적이 60평이 넘어 우리나라 향교 중에서 가장 넓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남루(南樓)라고 하여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바깥에서 보면 이 또한 높다란 기둥이 받치고 있어 정말 누각(樓閣)처럼 보인다.
안쪽의 마당을 중심으로, 양반 자제들이 기거하던 동재(東齋)와 일반 서민 자제들이 기거하던 서재(西齋)가 마주 보고 있는데 이곳은 위의 제향(祭享) 공간과 구별되는 강학(講學) 공간이다.
8. 강릉향교(江陵鄕校) 봉안위패(奉安位牌)
일반적으로 향교에서 모시는 위패는 5성 18현(五聖 十八賢), 혹은 5성 10철 18현(五聖十哲十八賢) 정도를 모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강릉향교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조선조(朝鮮朝)에는 일반적으로 향교에 모시는 위패는 대성전(大成殿)에 5성(五聖) 공문 10철(孔門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의 21위(位)를 모시고, 동·서무(東西廡)에 공문(孔門) 69위(位), 한당송원(漢唐宋元) 25위(位) 한국 18현(韓國十八賢)으로 112위(位), 모두 합하여 133위(位)를 모셨다.
그러다가 1949년 한국유림회(韓國儒林會)에서 동·서무(東西廡)에 봉안하고 있던 112위(位) 중 한국 18현(韓國十八賢)을 제외한 중국 성현 94위(位)를 모두 매안(埋安-땅에 묻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대성전(大成殿)에 오성(五聖), 공문십철(孔門十哲), 한국 18현(韓國十八賢), 송조 6현(宋朝六賢)의 39위만 봉안하기로 하였다는데, 강릉향교는 이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133위(位)에 안자의 부(顔子父), 증자의 부(曾子父), 자사자의 부(子思子父)까지 더하여 모두 136위(位)를 봉안하고 있다니 놀랍다. 나는 예전 인천향교에서 한학을 공부했었는데 내가 공부하던 인천향교와 다른 향교들을 보면 동·서무(東西廡)에는 향교의 역사 기록물이나 필요한 물품을 넣어두는 방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강릉향교는 온통 위패(位牌)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참고로, 오성(五聖)은 중국의 공자(孔子),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자(子思子), 맹자(孟子)를 말하고,
공문십철(孔門十哲)은 민손자건(閔損子蹇:周), 염경백우(冉耕伯牛:魯), 염옹중궁(冉雍仲弓:魯), 재여자아(宰予子我:魯), 단목사자공(端木賜子貢:衛), 염구자유(冉求刺楡:魯), 중유자로(仲由子路:魯), 언언자유(言偃子游:魯), 복상자하(卜商子夏:衛), 전손사자장(顓孫師子張:晉)이며, 송조 6현(宋朝六賢)은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소옹(邵雍), 장재(張載), 주희(朱熹)이다.
그리고 한국 18현(韓國十八賢)도 유명한데 설총(薛聰), 안향(安珦),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최치원(崔致遠), 정몽주(鄭夢周), 정여창(鄭汝昌), 이언적(李彦迪), 김인후(金麟厚), 성혼(成渾), 조헌(趙憲),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