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동화
대통령과 물티슈
배 계 용
대통령과 물티슈는 친구입니다.
물티슈는 나이가 많이 어렸지만 둘은 사이가 좋고 오래된 친구입니다. 그들은 늘 같이 놀고 붙어 다닙니다.
잠시만 안보여도
“야, 물티슈 어디 있어?”
“어이, 대통령 나 좀 봐.”하며 찾았습니다.
열심히 놀다보면 대통령은 언제나 땀을 뻘뻘 흘립니다. 그럴 때마다 물티슈는 땀과 먼지로 더럽혀진 대통령의 얼굴을 보며
“얼굴이 왜 이래? 좀 깨끗하게 놀 수 없어?” 라고 걱정하며 정성을 다해 자기 얼굴보다도 훨씬 깨끗이 닦아줍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얼굴은 언제나 깨끗하고 환해 보입니다.
“대통령 좀 봐. 얼마나 잘생겼니?” 라고 하면서 깨끗한 얼굴을 한 그를 여자 친구들이 좋아합니다.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여자 친구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좋아합니다.
“대통령은 언제 보아도 깨끗하고 맵시가 단정하단 말이야. 정말 훌륭한 사람이지? 우러러 볼 수밖에 없단 말이야.” 하면서 온 나라 사람들이 깨끗하고 반듯한 대통령을 좋아합니다.
대통령은 나라 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국민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런 반듯한 사람이 나라 일을 맡아봐야 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온 나라에 이런 생각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서울로 올라가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아서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물티슈도 따라가서 대통령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도와주고 대통령에게 이득이 되는 바르고 떳떳한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 내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전혀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나라일을 맡고부터는 한결 살기가 나아졌어.” 하며 백성들은 더욱 대통령을 좋아합니다. 대통령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기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물티슈가 도와준 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물티슈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저렇게 열심히 대통령을 도와주기 때문이로군.” 물티슈가 대통령 곁에서 도와주는 걸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물티슈 같이 어리고 보잘 것 없는 친구의 도움 때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어느 해 이 나라에 무슨 물건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반드시 훔쳐 가고야마는 도둑이 나타났습니다. 갖가지 값이 나가는 보물은 물론 사람도 훔쳐갑니다. 사람은 대개 여자나 나이 어린 사람들을 훔쳐갔습니다.
도둑은 어쩐 셈인지 대통령의 친구 젊은 물티슈도 훔쳐갔습니다. 대통령은 물티슈를 도둑맞고 나자 처음에는 약간 섭섭하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자 그게 아니었습니다. 매일같이 붙어 다니던 물티슈를 도둑이 훔쳐간 뒤로는 대통령은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하루가 매우 지루하고 힘들었어.” 대통령은 이렇게 힘들어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물티슈의 도움이 없어지자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얼굴에 주름이 늘고 허리도 약간씩 구부러졌습니다. 모습이 점점 초라해졌습니다. 지치고 꾀죄죄한 대통령을 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를 따르고 좋아하던 사람들도 모두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도둑은 나라 안의 귀중한 물건들을 거침없이 훔쳐가고 국민들은 대통령이 도둑을 잡지 못한다고 그를 탓하고 손가락질하였습니다.
“대통령이란 사람 뭐하는 거야, 도둑 하나도 못 잡고.”라고 하며 나라 안 곳곳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대통령은 더는 나라 일을 맡을 엄두가 나지 않아 뒷전으로 물러났습니다.
나랏일을 그만두고 물러나자 물티슈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언제나 혼잣말로
“물티슈가 곁에 있었으면…, 물티슈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말이 입버릇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지금처럼 물티슈가 그립고 보고 싶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미 때가 늦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물티슈를 그리워하며 한없는 뉘우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치고 병들어 갔습니다.
2
저 멀리서 볼품없는 모습의 한 젊은이가 비틀거리며 걸어옵니다.
“아휴 힘들어. 여기 어디쯤인 것 같은데...” 하며 두리번거리다가 길 가 가로수 옆에 쓰러지듯 주저앉아버립니다. 젊은이의 모습은 오래 고생한 듯 몹시 쇠약해 보입니다. 나무에 기댄 채 괴로워하다가 정신을 놓아버립니다.
때마침 한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문 앞을 나오다 가로수에 기댄 듯 쓰러진 젊은이를 발견합니다. 곁으로 다가 갑니다.
“낯이 익은 듯한데...” 하고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이게 누구야, 물티슈 아냐? 정신 차려.”
“누구 없소?” 하고 외칩니다.
“ 좀 도와줘요.”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마침 한 젊은이가 거들어주어서 물티슈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자리 좀 깔아줘요” 하고 방에 들어와 요 위에 눕힙니다.
“일어나봐. 일어나봐.” 하고 소리쳐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전화를 걸어 의사를 부릅니다. 부엌에 나가 물수건을 만들어 와서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줍니다. 손발도 주물어 줍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의사가 붉은 가죽으로 된 왕진가방을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방안으로 들어와 가방을 열고 청진기를 꺼내어 꼼꼼히 진찰을 합니다. 그리고 조그만 손전등을 꺼내어 비추며 눈꺼풀도 열어보고 입안도 들여다본 후 가슴과 등도 두드려 보며 한참 청진기를 대어가며 환자를 살펴봅니다.
대통령은 곁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초조하게 지켜봅니다.
“어때요?” 대통령이 묻습니다.
“좀 지켜보아야겠습니다만 우선 보기에는 다른 이상은 없고 오랫동안 너무 지쳐서 기운을 잃은 것 같습니다.”
“어쩌시렵니까? 대통령님 혼자 힘드실 텐데 입원을 시키시죠?”
“아니, 건강이 위태롭지만 않다면 아주머니도 계시고,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싶지 않아요. 난 물티슈한테 너무 빚진 게 많아요. 내가 정성껏 간호하면서 빚갚음을 조금이나마 하고 싶어요. 약간이라도 이상하면 즉시 전화할 테니까 바쁘시더라도 빨리 와서 살펴 주세요.”
“많이 힘드실 텐데......
영양주사를 달아놓고 가겠습니다. 두 시간쯤이면 거의 다 들어갈 것입니다. 끝나면 여기 요 단추를 눌러 잠그시고 주사바늘을 빼고 간단하게 알콜 소독을 해 주십시오.
만약 연락을 주시면 즉시 달려오겠습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가보겠습니다.
고생이 되시겠습니다.” 라고 한 후 의사는 방문을 나섭니다.
“김박사,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하고 대통령이 인사를 합니다.
의사는 올 때처럼 붉은 왕진가방을 앞세우고 서둘러 가버렸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하는 아주머니가 왔습니다.
“아주머니 수고스럽지만 환자가 먹기 좋도록 죽을 아주 묽게 좀 쑤어 주세요.”
“예, 어제는 대통령님 잠도 못 주무시고 수고 많으셨지요?”
“아닙니다. 환자가 생겨서 아주머니가 수고 많으시겠어요. 앞으로도 더 힘써주셔야 겠어요.”
대통령은 잠시도 쉬지 않고 물티슈를 보살피며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갑자기 젊어진 듯 생기가 나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물티슈의 수발을 듭니다. 물티슈는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두 시간이 좀 못 되어 아주머니가 아주 묽게 끓인 미음을 식혀서 쟁반에 받쳐 가지고 들어옵니다. 대통령은 그것을 받아서 물티슈의 머리를 무릎에 들어 올리고 입을 조심스레 벌려 죽을 조금씩 입속에 흘려 넣어 봅니다.
“미음이야, 물티슈, 좀 먹어봐.”
눈도 뜨지 않고 의식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중에도 말소리는 들리는지 조금씩 억지로 미음을 삼킵니다. 그러나 전혀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 보입니다.
대통령은 얼굴을 잔뜩 찌뿌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립니다.
“빨리 일어나. 그리고 미안해.”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했으면서도 너의 고마움을 몰랐어. 아니 네가 나한테 그렇게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그 고마움을 모른 체했어. 생각하면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고, 그리고 고마운 게 그만큼 많아.”
“이제부터라도 내가 너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빨리 일어나. 제발 죽지만 말아줘.
어떤 못된 놈이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 그런 놈은 반드시 잡아서 벌을 주어야 해.”
대통령이 가슴을 치고 안타까워하며 물티슈의 곁을 지킨 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물티슈는 차츰 눈을 뜨고 대통령과 눈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대통령이 뛸 듯이 기뻐합니다.
“물티슈 정신이 돌아온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대답 좀 해봐.”
대통령은 쉴 사이 없이 물어댑니다.
“아, 그럼 알지. 대통령 아냐?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너무 흥분하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물어봐.”
물티슈는 일주일이 되어서야 완전히 정신이 돌아왔고 대통령의 정성어린 보살핌 속에서 건강을 매우 빨리 회복해 갑니다.
첫댓글 원장님 밤사이 편안하게 잘주무셨습니까 ^^
올려주신 내용의 뜻을 음미하면서 잘읽었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즐거운마음 으로 하루를 잘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재미있게 읽고 교훈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