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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문장(2015.10.05)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모든 뛰어남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타고나는 겁니다. 음악이나 수학은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수학이나 음악과는 다릅니다.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글이 나아집니다. 특히 산문가들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건 글쓰기가 재능에 달린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이 훈련에 달려 있다는 걸 뜻합니다. 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겁니다.
책 앞에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숭실대학교 진리관에서 한 글쓰기 강연을 활자로 풀어내놓는다. 글쓰기 강연이 내 시평집『자유의 무늬』(개마고원,2002)를 교재로 삼아 이루어진 터라, 그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은 한국어 글과 나쁜 한국어 글의 경계가 더 또렷이 보일 것이다.
2014년5월 고종석
1. 글을 왜 쓰는가?
그저 월급을 받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대가를 받지 않고, 돈 생각 하지 않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우리 주변엔 많이 있습니다.
○ 나는 왜 쓰는가?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남에게 읽히고 싶은 욕구에 의해서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글을 쓰는 이유(조지오웰)
1.순전한 이기심-돋보이고 싶은 욕망
2.미학적 열정-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에 홀릴 수도 있다. 김영랑은 한국어 소리의 아름다움에 홀려서 시를 쓴 시인이다. 고려속요 청산별곡(ㄹ 소리의 향연), 황현산 산문, 에밀 시오랑(프랑스)의 산문, 언어를 조탁하면서 미적 쾌감을 느낀다.
3.역사적 충동-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망을 뜻한다.
4.정치적 목적
○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과 관련돼 있다.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 목적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프란시스코 프랑코(스페인 식민지 모로코에 주둔했던 장군)-반란을 일으켜 6월부터 스페인 내전 시작, 이 내전은 당시 세계 양심의 시험장이라고까지 불렀다. 많은 지식인들이 스페인 내전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반란군을 돕기 위해 직접 군대를 보내고 무기도 지원한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가 정부 차원에서 스페인 정부를 돕지 않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에 관련된 그림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게르니카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독일 공군이 어느 날 그곳을 완전히 초토화 시킨다. 마을 하나를 완전히 없앤다. 결국 프랑코는 반란에 성공했다. 반란이 1939년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슬프게도, 프랑코는 1975년 죽을 때까지 독재정치를 한다.
○ 정치적인 글의 예술화
스페인 내전이 끝나는가 싶더니 1939년에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오웰이 살았던 시대는 진정으로 격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오웰에 따르면 『동물동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쓰인 소설중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앙드레 말로의 『희망』같은 작품이다.
오웰은『카탈로니아 찬가』를 통해 억울하게 모함당하며 학살당항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그 챕터에서 미학적 열정을 버린 것이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걸 감수하면서도 사실을 기록하려고 애쓴 것입니다. 조지 오웰 자신이 말한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라는 말을 스스로 실천했다.
오웰이 살았던 시대가 양심적인 예술가에게 정치적인 목적을 지닌 글을 쓰도록 강제했다.
○ 사물의 언어와 도구의 언어
1980년에 죽은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프랑스 철학자다. 언어는 사물의 언어와 도구의 언어 두 종류가 있다. 사물의 언어는 사물 그 자체인 언어다. 도구의 언어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언어다. 사르트르는 평생 도구의 언어는 썼지만 사물의 언어, 시는 쓰지 않았다.
○ 자동사적 글쓰기와 타동사적 글쓰기
롤랑 바르트는 문학비평과 이론, 기호학 분야에서 활동했다. 귀스타브 랑송『프랑스 문학사』는 불문학 전공하는 사람들의 필독서!
롤랑바르트는 텍스트는 텍스트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이미 텍스트가 던져진 순간, 그 텍스트의 주인은 저자가 아니다. 그 저자와 완전히 분리해서 해석해야 한다.
조지 오웰(1903년생), 장폴 사르트트(1905년생), 그다음에 롤랑 바르트(1915년생)인데, 이 세 사람은 20세기 문학사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이 세 사람 모두 박사학위가 없다. 바르트는 오직 학사학위 하나 가지고서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했다.
오웰이 말한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 사르트르가 말한 도구의 언어, 바르트가 말한 타동사적 글쓰기가 설핏 겹친다.
○ 재주는 타고 난 것인가?
수학은 천재들의 학문이다. 갈루아는 5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 방법으로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다!
김현『말들의 풍경』평론집
글쓰기 능력이라는 건 타고남의 부분이 굉장히 적은 것이다. 압도적으로 노력과 훈련의 결과다. 그런 뜻입니다.
○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을 계속 쓰는 게 중요하다. 잘 쓰기 위해서는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정말 잘 쓰인 글을 많이, 되풀이 읽는 게 중요하다.
○ 선전과 선동
선전이라는 건 독자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전후좌우의 사태가 이러이러하니 논리적으로 이건 아니냐, 하는 게 선전이다.
선동이라는 건 독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말을 잘 다룸으로써 하는 것이다.
선전은 설득하는 기술이고, 선동은 매혹하는 기술이다. 선전은 독자의 이성에 기대고 선동은 독자의 감성에 기댄다.
○ 뛰어난 선동문 세 권
선동문 세 권을 고른다면 토머스 페인의 『상식』,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이다.
○ 인상적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의 서문 첫 문장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은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작가고 여성이다. 소설은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s』『9월이여, 오라』-1973년9월11일은 미국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 군부가 구데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킨 날이다. 아옌데 정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1922년9월11일에는 영국 정부가 아랍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탁통치를 선포한다. 그것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수립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수난으로 이어진다.
아룬다티 로이는 이 세 개의 9월11일을 포개놓으면서 서방의 위선, 특히 미국의 위선을 지적한다.
○ 선동가 마르크스에 대해
마르크스가 쓴 역사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혁명사 3부작』(임지현 이종훈 옮김,소나무,1993)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1848년 2월혁명부터 1871년 파리코뮌까지를 다룬다.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내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리에 르 프로코프라는 카페가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프랑스대혁명 당시에 이 카페에 로베스피에르나 당통 간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모의도 하고 잡담도 했다.이 카페 화장실의 남자 문에는 citoyen, 여자 문에는 citoyenne라고 써 있다. 혁명의 주역들이 드나들던 곳이라는 걸 내세워 장사에 이용하는 것이다.
○『러브 스토리』와 『이방인』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의 첫문장스물다섯 살에 죽은 여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예뻤다고, 그리고 총명했다고. 그녀가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비틀즈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고.
카뮈가 쓴『이방인』의 첫 문장오늘 엄마가 죽었다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문장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프랑스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은 공쿠르상이다.
로맹가리는 러시아에서인지 리투아니아에서인지 무명 연극배우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어머니를 따라 유럽을 가로질러 프랑스 니스에 정책했다.
이 책에서 로맹가리는 썩어빠진 평론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글쓰기 이론
수사학과 논리학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사학: 비유
은유와 환유: 은유는 유사성에 기초한 비유다. 환유는 인접성에 기초한 비유다.(야콥슨)
논리학도 아름다움에 기여할 수 있다-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논리철학논고』: 치명적 아름다움의 예
수사학도 명확함에 기여할 수 있다.
자연언어와 인공언어: 에스페란토(인공언어)-명사는 무조건 오 로 끝나고 형용사는 무조건 아로 끝난다.
세계는 연속적이지만 언어는 불연속적이다.: 언어는 세계를 재현할 수 없다.
글쓰기 실전
실전 01
내가 컬럼니스트라면 다섯 번째 칼럼니스트, 곧 오열분자일 것이다.『자유의 무늬』,7쪽
칼럼이란 말은 원래 기둥이라는 뜻인데, 신문의 단을 말하기도 한다. 그 단에 쓴 글, 그것을 칼럼이라고 한다.
실전 02
청년의 정액처럼 힘차게 솟구쳐 나온 운동가요...『자유의 무늬』,60쪽
아무리 그 비유가 생생하더라도 독자들이 읽으면서 뭔가 혐오감을 느낄 만한 표현은 하지 않는게 좋다.
2. 한국어답다는 것의 의미 Ⅰ
○ 유럽의 3개 천재 가문
유럽에서 3대 천재 가문으로 소쉬르, 음악가 바흐, 자연과학자 베르누이 집안이다.
○ 언어학사의 두 거성, 소쉬르와 촘스키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개념을 시니피에, 청각영상을 시니피앙
소쉬르는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합쳐진 게 기호라고 한다. 소리는 물리적 현상이지만, 소리이미지는 사람 머릿속에 있는 심리적 실체다. 소쉬르는 기호학이라는 학문의 창시자.
○ 기호는 자의적이다
○ 감탄사,의성어·의태어는 반드시 자의적이지는 않다
인간의 언어가운데 가장 내기 쉬운 소리가 입술소리이다. 자음 중에서 그렇다. 모음은 입을 벌린 상태에서 목청만 울리면 되니까 자음보다 더 소리내기가 쉽다.
○ 자의적이 않은 음성상징
한국어는 음성상징이 무지무지하게 풍부한 언어다. ㄹ소리는 흐름을 상징한다. 한국어는 전반적으로 다른 자연언어에 비해 음성상징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큰 언어다.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굉장히 발달한 언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 단어를 많이 익혀야 한다.
○ 사피어-워프 가설
무지개 자체는 스펙트럼이어서 사실 띠가 몇 개인지 알 수 없다. 띠의 수가 무한대라고도 할 수 있다. 모국어가 가르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사피어-워프 가설의 핵심은 세계나 생각이나 인식에 앞서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나 인식, 감정이 언어보다 먼저 있는 것이다.
○ 언어결정론과 맨털리즈
이누이트의 일부 언어에선 내리는 눈과 땅에 쌓인 눈과,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눈과, 바람에 흩날려 한곳에 쌓인 눈을 구별한다. 생각의 언어란 영어나 중국어나 한국어 같은 자연언어의 기저에 있는 공통언어이다. 이 공통언어를 핑커는 메탈리즈라고 불렀다.
○ 한국어에 풍부한 색채어휘
붉은색-60개(빨갛다 뻘겋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빨그스레하다 뻘그스레하다 발갛다 벌겋다 발그레하다 벌그레하다 붉다 불그스레하다 발그스름하다 벌그스름하다 빨그스름하다 뻘그스름하다 불그무레하다 불그죽죽하다)
기본단에들에다가 접두사를 덧붙이거나 모음조화 또는 자음교체를 이용해서 무수한 말이 만들어진다. 색깔들이 섞여 있는 것도 표현할 수 있다.
음성상징과 색채어휘를 풍부하게 사용하는 것은 문장을 한국어답게 만든다.
○ 난학에서 온 한자어
난학에서 시작된 양학은 그뒤 일본의 탈아입구 노선을 뒷받침한다. 난학자들과 메이지유신 이후의 양학자들은 두 세기에 걸쳐서 서양문명 전체를 번역했다. 그런데 그 번역의 수단이 한자였다.
글쓰기 이론
○ 접속부사와 쉼표
접속부사 문제,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하지만 등과 같은 접속부사 다음에는 쉼표를 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힘이 생긴다. : 접속부사를 빼면 긴장감이 생기면서 문장에 생기가 돈다.
○ 일본식 접미사 적
-적은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적이란 말은 일본 사람들이 영어 접미사 -tic을 데키的라고 번역한 걸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다.
-부사가 -적인을 수식할 때 인을 빼면 안된다:
-적은 관형사로 분류된다
-부사는 관형사를 수식할 수 없다
○ 일본식 조사 의
-의는 되도록 빼는 것이 자연스럽다:
-구어와 문어는 명백히 다르다
-꼭 피해야 할 일본어투 표현
○ 한국어의 수
-한국어에서 수는 하찮은 문법적 범주다:
-복수표현 들을 남용하지 마라: 한국어에서는 문맥상 복수라는 게 드러나면 외려 들을 안 붙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복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들을 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주어가 복수일 때 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글쓰기 실전
실전 01붉은색이 제 상징의 정원에 공산주의를 처음 맞이들인 것이 언제인지 나는 모른다자유의 무늬,15쪽
제 상징의 방에, 또는 제 상징의 집에, 제 상징의 마당에
3.한국어답다는 것의 의미 Ⅱ
○ 한자어는 명백한 한국어
한국어 문장은 번역에서 시작됐다. 글에서 쓰는 말은 우리 고유어보다 한자어가 훨씬 많다.그 한자어의 80퍼센트는 19세기 말 이후에 생긴 것이다. 한자어 중에서 개화기 이래 일제강점기까지 일본어를 통해 들어온 것이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문화文化라는 말은 영어 culture를 일본 사람들이 文化라고 번역한 것이 우리말에 수입돼 우리식 발음으로 읽게 된 것이다. 文化를 문화 라고 읽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한국어 사용자들밖에 없다.
○ 한국어의 세 가지 고충: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고대 이래로 중국에서 한자어가 천천히 차용되면서, 그리고 19세기 말 이후 일본에서 한자어가 급속히 차용되면서 한국어 어휘에는 층이 생기게 되었다. 고유어와 한자어의 칭이 생긴 것이다. 그 위에 외래어가 있다. 고유어와 한자어와 외래어는 차례로 한국어 어휘부를 형성했다. 예컨대 소젖(쇠젖)과 우유와 밀크가 그렇다.
고유어와 한자어 두 층으로 이뤄지는 유의어쌍이 한국에는 많다. 예컨대 여름옷과 하복, 겨울잠과 동면, 가을밤과 추야, 봄바람과 춘풍, 가슴둘레와 흉위, 몸무게와 체중, 뺄셈과 감산, 곱셈과 승산, 덧셈과 가산, 나눗셈과 제산, 제곱과 자승, 세모꼴과 삼각형, 가로줄과 횡선, 세로줄과 종선, 아침밥과 조반, 배앓이와 복통, 살갗과 피부, 온몸과 전신, 엉덩이와 둔부, 누에치기와 양잠, 피와 혈액, 목숨과 생명, 사람과 인간, 날씨와 일기, 값과 가격, 곳과 장소, 새와 조류 따위가 그렇다.
○ 한자어와 고유어가 합쳐진 동의첩어
잉여적 표현: 외갓집, 처갓집, 산채나물, 돌비석, 손수건, 모래사장, 단발머리, 한옥집, 양옥집, 삼월달, 고조할아버지, 추풍령고개, 강촌마을, 고목나무, 계수나무, 함성소리, 해변가, 사기그릇, 매화꽃, 낙숫물, 새신랑
어린 소녀, 넓은 광장, 큰 대문, 유언을 남기다, 박수 치다. 피해를 입다, 미리 예습하다, 둘로 양분되다 세 나라가 정립하다, 그림으로 도해하다
사람들이 걸으면 길이 되듯, 사람들이 하면 말이 된다.
○ 한국어의 특징, 명사문: ‘모양’ ‘예정’ ‘것’
명사문은 보통 모양이나 예정 같은 말을 서술어로 갖는 문장이다. 이런 유형의 문장에 쓰이는 것에는 크게 세 가지 용법이 있다.
첫째, ‘ㄹ/을 것이다’의 형태로 쓰여서 추측이나 예상을 나타낸다. 이때의 것은 모양이나 예정으로 바꿀 수도 있다.
둘째, ‘ㄹ/을 것’의 형식으로 문장을 끝맺어 명령의 뜻을 나타낸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셋째, ‘-ㄴ/은/는/던 것이다’로 끝나는 명사문은 전에 일어났거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또는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하거나 확인하거나 부연하거나 근거를 대는 기능을 한다. 이 유형의 명사문은 보완의 역할을 할 뿐 최초의 정보를 담을 수 없다.
글쓰기 이론
○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말을 버리고 중립적 또는 긍정적 뉘앙스를 담은 말을 쓰는 것을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건 말이나 글에 기품을 부여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원칙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게 좋다.
○ 보조사 ‘는/은’ 과 주격조사 ‘이/가’
- ‘는/은’은 뜻을 섬세하게 만들어주는 보조사다.
-주어 뒤에 ‘는/은’을 붙일 것인가, ‘이/가’를 붙일 것인가?
‘는/은’은 보조사지만 격조사가 아니라 보조사지만, 뜻을 섬세하게 만드는 조사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격에 쓸 수 있지만 주로 주격에 많이 사용된다.
-한국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한테 조사의 용법은 악몽이다.
글쓰기의 실전
조사 중에서 보조사라는 것은 뉘앙스를 세밀하게 만들어준다.
보조사를 남용하지 맙시다. 물론 뜻을 섬세하기 하기 위해서 보조사가 꼭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뺍시다.
명사 뒤에 붙는 동안은 대개 어색하다. 그냥 상당기간 이라고 하면 된다.
원칙적으로 죽은 사람에게는 ‘씨’를 붙이지 않는다.
자기와 자신은 뜻이 거의 비슷한데 ‘자신’은 ‘의’없이 수식어가 될 수 없다.
한국어에서 타동사는 ‘을/를’이라는 조사를 지닌 목적어를 갖는다.
왕정복고 이후에 다시 공화정이 수립됐다거나 헌법이 근본적으로 바뀐다거나 해야 공화국 숫자가 바뀐다. 5공화국 헌법에서는 대통령을 직접선거가 아닌 간접선거를 통해 뽑았다. 국회의 권한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그 헌법 개정이 근본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공화국의 숫자도 바꿔서 제6공화국이라고 부른다.
4.JS느님, SNS를 부탁해!
○ 랑그와 파롤
소쉬르는 언어활동을 두 가지로 나눴는데, 한 측면이 랑그고 다른 측면이 파롤이다. 언어활동의 추상적 부분을 소쉬르는 랑그라고 불렀다. 그리고 실제로 실현된, 그렇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수많은 구체적 “너를 사랑해”를 파롤이라고 불렀다. 랑그와 파롤을 합쳐 소쉬르는 랑가주라고 불렀다.
○ 파롤의 실천성과 창조성
파롤은 실천적인 것이고, 그래서 창조성이 있는 것이다. 언어변화가 주로 파롤의 역할이다.
갈치는 원래 칼처럼 생겨서 이름 붙인 것인데, 아직 갈치는 칼치가 되지 않았다. 코를 중세 15세기 는 고라고 했는데 지금은 코라고 한다. 고뿔이라는 말에 고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방언과 언어의 경계
파롤은 언어학의 중요 연구대상은 아니지만 언어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SNS에서 쓰는 많은 용어들은 이 파롤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랑그에서 벗어나는 구체적 언어실천들을 통해 언어를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언어와 방언을 가르는 기준을 의사소통 가능성이라고 할 때 그 기준은 순전히 언어학적 기준이다. 언어와 방언을 가르는 언어학적 기준은 의사소통 가능성이지만, 정치가 개입하면 가끔 그 언어를 독립된 언어로 부르기도 한다.
○ 제주어는 언어인가, 방언인가?
제주 방언이라는 말은 사실 정치적으로 오염된 표현이다.
○ 지리적 방언과 사회적 방언
사회방언은 사회조건에 따라 분화한 방언들이다. 신분이나 계급도 방언을 만들어낸다. 은어도 넓은 의미에서 사회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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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는 한국어를 파괴하는가?
SNS언어가 한국을 파괴하기는커녕 외려 한국어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종의 파롤 역할을 하면서 한국어의 진화에 기여한다.
○ 세종은 왜 한글을 창제했는가?
용비어천가는 일종의 건국신화다. 조선왕조의 건국신화, 그런데 이걸 애민 운운하면 안된다. 그때까지의 한국어 한자발음을 되도록 중국어 원음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다.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하니까 소리글자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훈민정음에서 정음이라는 건 대체로 중국인들의 발음에 가까운 소리를 말한다.
○ SNS는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인가, 파시즘에 기여할 것인가?
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누구나 글을 쓰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대중의 힘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한다.
○ 글쓰기 이론
-로서 와 로써
-로서는 자격을 뜻하고 -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뜻한다.
-명백한 오문: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
때문과 이유는 서로 호응할 수 없다. 때문이다 와 호응할 수 있는 것은 왜냐하면 이라는 부사어다.
꼭 이유는 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으면 이유는 ~에 있다 거나 이유는 ~것이다거나 이유는~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써야 한다.
○ 글쓰기 실전
5.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그윽하다
어휘를 늘리는 방법 하나는 사전을 자주 들춰보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꼭 국어사전을 옆에 두어라.연관어 사전을 구비해놓은 것도 좋다.
○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꼽아보기
사랑 엄마 그리움 그립다 오롯하다 노을 담백하다 바다 시나브로 햇살 햇빛 품다 고즈넉하다 설레다
김수영이 뽑은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실돌
색주가(여자랑 술이 같이 나오는 집) 은근짜(색주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 총채(먼지떨이)
서산대(서당에서 훈장이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 쓰는 막대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무엇일까?
친구와 얘기할 때는 프랑스어로 하고, 애인과 얘기할 때는 이탈리어어로 하고, 말과 얘기할 때는 독일어로 하고, 하느님과 얘기할 때는 스페인어로 한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중: 한 민족이 노예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들이 자기의 언어를 보존하고만 있다면 감옥의 열쇠를 지닌 것과 똑같다.
○ 한국어와 한글은 다르다
한자를 빌려 표기하던 한국어 역시 지금은 한글로 표기된다. 한글과 한국어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 관계도 없다. 한국어는 어떤 문자로도 표기할 수 있다.
○ 한국어인가, 한국어 들인가?
언어와 방언을 가르는 차이는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한 언어의 방언이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다른 언어다.
○ 한국어를 ‘고아 언어’ 라고 하는 까닭
한국어는 사실상 고아 언어다. 한국어와 친척관계에 있는 언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 글쓰기 이론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 명사는 뒤로 빼라
두 개의 구슬이 아니라 구슬 두 개
-주요 문장 성분의 배치에 관하여:주어/목적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주어와 서술어의 사이, 또는 목적어와 서술어의 사이, 이게 가까운게 좋습니다.
한국어는 격조사가 있기 때문에 성분의 위치를 비교적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그러니까 그걸 이용해서 되도록 목적어와 서술어, 중요한 성분들을 가깝게 배치하는 게 뜻을 이해하기 좋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부사어가 너무 길게 끼면, 그 부사어를 앞으로 뺀다.
○ 글쓰기 실전
6.고종석과 함께하는 작문 수업
○ 표준어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박태원은 1930년대 〈천변풍경〉이라는 장편소설을 쓴 유명한 작가다. 여기서 천변이란 청계천변을 가리킨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중편소설로도 유명하다. 6.25전쟁 때 월북했다. 박태원은 영화〈설국열차〉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외조부
○ 정치적 올바름은 글쓰기의 미덕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명시하는 표현은 삼가는 게 좋겠다. 차별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 잘못된 표현, 어색한 표현, 불필요한 표현
문단을 나누는 버릇을 들여라. 문단은 생각이나 소주제의 뭉치다. 뭐에 대해 한참 얘기하다가 말머리를 바꿀 때는 행갈이를 해서 문단을 나눠라. 물론 생각의 덩어리가 한 문장으로 끝난다면, 한 문장짜리 문단도 있을 수 있다.
○ 글쓰기 이론
-글쓰기와 교양
에세이를 잘 쓰려면 교양과 지식이 필요하다.
독서, 교양과 지식의 원천: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힘은 어떻게 키울까요? 그것도 독서를 통해 키울 수밖에 없다.
-단문과 복문
간결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한국어의 경어법
복잡한 경어체계는 사회갈등의 요인이 된다.
○ 글쓰기 실전
○ 작문 실전
○ 어느 완벽한 교토의 하루, 임경선/고종석의 평
○ 행궁동의 가을, 한현/ 고종석의 평
고종석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와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법학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서른 해 가까이 신문기자로 일했다.지은 책으로는 한국어 크로키『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어루만지다』『언무세설』『국어의 풍경들』, 사회비평집 『서얼단상』『바리에떼』『자유의 무늬』『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경계 긋기의 어려움』,문화비평집『감염된 언어』『코드 훔치기』『말들의 풍경』,역사인물 크로키『여자들』『히스토리아』『발자국』, 영어 크로키『고종석의 영어 이야기』, 시 평론집 『모국어의 속살』,장편 소설 『기자들』『독고준』『해피 패밀리』,소설집『제망매』『유럽통신』,독서일기『책 읽기, 책 일기』,인터뷰『고종석의 낭만 미래』 등이 있다. 2012년 절필 선언 이후 고종석 선집9전5권:소설, 언어,시사,문학,에세이)이 기획되었으며, 현재 첫째 권인 소설집『플루트의 골짜기』가 발간되었다.
고종석의 문장 1
1판1쇄 펴냄 2014년6월2일
1판6쇄 펴냄 2014년8월4일
지은이 고종석
편낸이 정헤인
펴낸곳 알마 출판사
값17,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