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060]추사-重陽黃菊[중양황국]
重陽黃菊 ‘중양절에 꽃피우는 노란 국화'
金正喜 (1786~1856)
黃菊蓓蕾初地禪(황국배뢰초지선)
꽃망울 맺은 노란 국화, 禪의 첫 경지인 듯
風雨籬邊託靜緣(풍우리변탁정연)
바람과 빗속에도 울타리 곁에 고요한 인연을 의탁했네.
供養詩人須末後(공양시인수말후)
시인을 공양하려면 반드시 뒤늦게 피어야 하리니
襍花百億任渠先(잡화백억임거선)
수억 가지 잡꽃들이야 먼저 피게 내버려 두어라.
[단어]
蓓蕾(배뢰)= 막 피려고 하는 꽃봉오리. ‘蓓藿(배곽)’으로 쓴 자료도 있다.
初地(초지); <화엄경>에서 보살 수행의 첫 번째 단계로
대승불교에서 깨달음의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靜緣(정연); 고요한 인연, 즉 조용하고 평온한 관계나 인연.
襍(잡); 雜(잡)과 같은 의미.
渠(거); 고대 문어체에서 ‘저, 그것’으로 여기서는 잡꽃을 의미함.
완당전집 제10권 / 시(詩)
阮堂先生全集卷十 月城金正喜元春著 / 詩
重陽黃菊
黃菊蓓蕾初地禪。風雨籬邊託靜緣。
供養詩人須末後。襍花百億任渠先。
중양 황국(重陽黃菊)
망울 맺은 노란 국화 초지의 선인 듯이 / 黃菊蓓蕾初地禪
비 바람 울타리 가 정연을 의탁했네 / 風雨籬邊託靜緣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 供養詩人須末後
백억의 잡화 속에 널 먼저 꼽을밖에 / 襍花百億任渠先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86
[이해 및 감상]
김정희는 1840년부터 1848년까지 무려 9년간을
제주도 대정현(서귀포 인근) 유배지에서 보냈다.
위 칠언절구는 유배 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가 중양절(음력 9월 9일)을
맞아 지은 詩다. 중양절(重陽節)은 陽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날이다.
내겐 ‘중양절’ 하면 떠오르는 詩가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면 등고회(登高會)
또는 수유회(茱萸會)라고 불리는 행사를 가졌다.
이날은 온 가족이 함께 茱萸(수유)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고
높은 언덕에 올라 菊花酒(국화주)를 마시며 보냈다.
고향을 멀리 떠나 있던 왕유는 중양절 날 고향의 등고회에
자신만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시를 지어 달랬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중양절 풍습이 시작되었으며,
고려와 조선에서는 중양절을 설, 한식, 단오, 추석과 견주는 명절로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쳤다고 한다.
오늘날 민간에서 중양절은 사라진 명절이지만,
불교에서는 절마다 다양한 중양절 행사가 여전히 진행되는 것 같다.
예컨대 2024년 중양절에 조계사에서는 ‘중양절 국화 수륙대재’가 봉행되었다.
水陸齋(수륙재)는 불교에서 물과 육지를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례다. 어떤 절에서는 영가천도재란 의례가 진행되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의 시 <중양황국>으로 돌아가보자.
한 해 내내 비와 바람을 맞으며 추사가 머물던 초가를 지켰던 울타리는
바로 김정희의 처지를 나타내는 듯한데, 그 울타리 곁에
막 노란 국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있다.
추사의 눈에 울타리 곁 국화의 모습은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禪의 경지이고,
변치 않는 자연의 순회와 인연의 모습이다.
평생 해남 대흥사 초의선사와 인연을 맺었던 추사다운 불교적 표현이다.
국화는 음력 9월 9일이 되어서야 겨우 꽃이 피기 시작할 정도로
다른 꽃들이 다 피고 나서야 뒤늦게 핀다. 국화는 늦가을 서리와
추위도 두려워하지 않는 고결함과 절개를 가진 꽃이고,
조급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꽃이다.
국화는 봄과 여름, 그리고 초가을에 화려하게 피는
수많은 잡꽃들과 다투지 않는다. 먼저 꽃을 피우겠다는 그들이 먼저 피게 내버려둔다.
하지만 국화는 고요한 인연을 잊지 않고 절개를 지킨다.
찬 서리 내릴 즈음 피어 외롭고 쓸쓸한 시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당시로서는 궁벽하기 그지없는 제주도 촌가에서 힘든 유배 생활을
묵묵히 견디며 때를 기다리는 추사의 마음이 중양절 국화꽃을 통해 고스란히 묻어난다.
[출처] 김정희의 중양황국(重陽黃菊)|작성자 묵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