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여행] 눈물겨운 애양원 역사박물관(구애양병원)...........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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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행] 애양원 역사박물관(구애양병원)...........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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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10월 여수 두 번의 여행을 끝내고 다시 시간이 흐른뒤 5개월여 만에 3차로 상춘객이 되어 핸들을 잡
고 04시 서울을 출발 남쪽으로 향했던 목적지 여수!, 첫 번째 목적지는 애양원 역사박물관 이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감당이 안 되는 역사의 현실을 보게 되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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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가볼만한곳에서 소외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증이 유발되었던 곳, 불편한 인식이 만들었던
고립된 공간에 감추어졌던 소중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건축‘ 여수 애양병원은 우리나라의 어두웠던 한 면을 들
여다 볼 수 있는 한센기념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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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겹동백이 유랑자를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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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유랑자는 종교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배우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유랑자 이기 때문이다. 암튼 남도로 향한 길은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한 싱그
런움 그 차체였다. 유랑자가 남도로 향한지 근 5시간여에 걸쳐 도착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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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공항 활주로를 'ㄷ'자로 둘러 가면 나오는 감추어진 동네에 애양병원은 여수에 이런 곳이 있었어? 라고 궁
금증을 폭발 시킬 만큼 아늑하고, 풍경 또한 일품이었다.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의 답사로, 따스한 빛이
스며들어와 유랑자의 마음을 더욱 포근하게 만들었던 한센기념관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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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으로 사랑을 그리고...
매화꽃; 3월 초순인데도 불구하고 봄을 부르는 꽃은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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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병원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근대 문화유산이 꽤 많다. 그 중 하나인 애양원 예배당 혹은 여수 애양교회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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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병원을 뒤 돌아서 차를 세운 곳이 애양원 예배당(성산교회) 뒤였다. 예배당. 참 올 만에 접한 글이다,
예배당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교회의 뒷마당엔 채 가시지 않은 연분홍 겹 동백이 두 팔 벌려
유랑자를 반겨준다. 참으로 소박하고도 소담스러운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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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남쪽 여수는 3월 초순인데도 불구하고 봄이 한창 시작되고 있었다. 매화가 활짝 피었고 일부 벚꽃
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시절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두 계절을 넘나드는 시절이다, 남쪽은 꽃이 피고 북쪽
강원도는 하얀 눈이 1m가 쌓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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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애양원 애배당 앞에는 손양원목사 순교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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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예나 지금이나 예배당은 사람들에게 성경의 말을 잘 전하고 있는 곳이었다. 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
서만 읽었던 글자 예배당 건물에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애양원!. 지금은 여수 애양병원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
아야 할 근대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근대문화유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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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스로 지키고, 알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올라왔다. 요즘엔 없던 문화까지
만들어서 문화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곳들도 많은데 불구하고 역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곳을 너
무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반성하는 시간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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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부터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건물들이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품고 있는 건물들이다.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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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한 두 개의 짧은 글들로 애양원의 근대문화유산을 적을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리기로 했다. 여수 애양병
원에 있는 근대 조상들의 흔적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찾아보는 것이 답이 될 것 같았다. 지금 쓰는 글은 그
첫 번째 애양병원역사관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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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부터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건물들이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품고 있는 건물
들이다. 바로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먼저 유랑자는 인적하나 없는 역사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코로
나 19에 대한 절차를 스스로 셀프하고 이내 신발을 갈아신고 순서대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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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병원 속에는 근대문화유산의 가치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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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진들과 이야기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들이다. 눈으로 봤던 아픔의 역사를 글
로 쓴다는 것이 가능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글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근대역사의 한 부분이 또 다
른 한 사람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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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도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이고 잊지 않고 기억해 주어야 할것이다. 그렇다고 해
서 종교를 강요하는 역사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두고 싶다. 이유인즉 이 유랑
자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이다. 유랑자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게 예수이든. 마호메트이든. 부처이던. 또는 토종
신앙이든지 간에 말이다. 더불어서 요가사랑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도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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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은 애양병원 한센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또다른 교훈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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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랑자는 애양원 역사박물관 입구에 오기 전까지 애양원에서 나병환자를 치료했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예전에 유랑자는 나병환자의 전문 지료기관으로 나병환자를 치료했던 곳으로 궁금증을 풀기위해 소록도를 두
번 방문한 기억이 있다. 그 소록도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소록도보다 먼저 애양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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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병원의 역사를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이유는 선교사 포사이트 때문이었다. 동료 의
사 오웬의 병이 급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하게 말을 달려가던 중 길가에 쓰러져 있는 여자걸인을 목격하게 된다.
나병환자였다. 선한 사마리아인, 자비를 베푸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예수의 말을 기억한 포사이트는 나병환자
를 광주 벽돌가마로 데려와 치료를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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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초창기 한센인들을 주로 치료했으나 1960년대 들어 1980년까지는 소아마비 후유증 환우와 자체장애우들의 재활
수술을 전문적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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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네들 밥드릇 챙기이에 급급한 현대 대한 의사회의 처신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른바 "제네바 선언(히포크라테스 선서)"중1.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2.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3.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4.나의 지
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5.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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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본도 모르는 인간도 아닌 의새들이 꼴에 의사라고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농성을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서 울분을 참지 못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이러한 일면식도 없는 외국 의사들의 언행은 참으로 우리 대한민국
의새들이 기필코 적극적으로 본받아야 할 진정한 의사들의 의무와 책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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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야기가 본론을 벗어나긴 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동료의사 오웬의 죽음에도 목포에서의 의료선
교를 멈출 수 없었던 포사이트는 목포로 돌아가면서 의사 윌슨에게 나병환자를 부탁한다. 이때가 1909년 4월
5일의 일이었고 1909년 4월 7일은 의사 윌슨이 나병환자 임시치료소인 벽돌가마에서 첫 치료를 시작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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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광주에 최초로 나병원을 개설한 것이다. 이후 의사 로버트 윌슨(우월순)과 미국 남장로회의 도움으로 설립
된 광주나병원이 1927∼1928년 여수로 이전 했는데, ‘비더울프 나병원’으로 불리던 병원 이름이 1935년 ‘애양원
(愛養園)’으로 개칭됐다. 사회복지법인이 된 것은 198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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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사회로 부터 버림받았던 한센병 환자들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인간다운 존엄성을 회복해 간 흔적들과 함
께 근대 의료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곳으로 유랑자는 묵직하고도 숙연한 마음으로 한센 근대 역사관을 돌아 보
았다. 한때는 한센병원이었던 건물, 분명히 용도는 박물관으로 변했는데 예전의 기억처럼 병원을 온 느낌처럼
사진들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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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간은 기존의 흔적을 유추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모습
으로 너무나 많은 데이터를 소화하고 있었다. 이 또한 나에게는 안스러웠다. 암튼 애양병원 역사박물관에는 그
동안의 애양병원의 발자취과 더불어 한센인 환자들의 기록들이 엄청난 양으로 전시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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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1980년 이후에는 고관절(엉덩이)·무릎·어깨 등의 인공관절 치환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하는 병원으로 변신했다.
피부과도 연간 5만 명 이상을 진료할 만큼 명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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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비해 너무나 많아서 인지 사실 차분하게 순서를 따라가 흐름을 읽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방문
목적이 단순히 호기심과 관심정도 이었다면, 충분히 이해하는데 있어서 불편함은 없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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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 박물관에서 조금 읽고, 봤다고 해서 한센인 들의 삶을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한센인 들의 한과 생활상, 그리고 병마와 싸웠던 처절한 삶은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된 부분도 생길 것
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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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색상의 지붕아래 2층 규모의 석조병원 건축물은 1926년에 건립되었으며, 지금은 근대건축물로 지정된
예전 애양병원의 본관이다. 현재는 애양병원의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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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말끔한 콘크리트와 대조시키며 과거와 현재를 오버랩 시킨다. 2021년 3월초 새롭게 단장된 콘크리트
외벽은 캔버스처럼 바로 앞의 나무들의 그림자를 이제 막 한지에 새긴 수묵화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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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LKz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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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율촌면 산돌길 43
(지번)율촌면 신풍리 18
연락처 :061-682-9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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