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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고독한 길을 걷는가?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길 위에서
가진것 없지만 그럴수록 버리고 다시 채우고...
파마머리 황금 부처님을 찾아
매년 이맘때 나 자신을 돌아보며 뭐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는 길
길 위에서 보이지 않은 마음자리를 무치고 버무리며 찾아본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천500년이 되었음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천초목이 바뀌어도 단 한 번도 그 간절한 마음을 꺼트리지 않고, 중생 구제에 있어서 마음속에 불을 켜고 수행정진 중이다.
이번 걸음은 그동안 걸었던 삼보(佛, 法, 僧) 종찰 343km 길이나 팔만대장경 이운길 518km, 그리고 자장 율사의 진신사리 720km과
비슷하면서 다른 대한민국 불교를 대표하는 7대 총림길이다
불교에 있어 총림이란 강원(승가대학), 선원(참선), 율원(계율)을 모두 갖춘 곳을 말하는데
예산 덕숭산 아래 수덕사, 순천 조계산 송광사,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팔공산 동화사, 영축산 통도사, 금정산 범어사까지 수행자분들의 서슬 퍼런 수행은 물론이요 명산대찰(名山大刹)로써 뭇사람들에게는 기돗발 좋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며 여타의 사찰들과는 규모나 웅장한 모습에서 대적불가라 말하고 싶다
이들 7대 총림길은 산 넘고 물 건너 700km에 달하는데 출발할 날을 정해놓고 보니, 마음은 금방이라도 길 떠나자 하는데 몸은 가기 싫다고 온몸 구석구석에 신호를 보낸다.
몇 날 며칠 부지런히 걸으면 못 갈길도 아니건만 사람 사는 세상에 바쁜 일 하나 없다면 그것도 잘못산 삶이라... 살고 있는 대구 인근의 4대(해인사, 동화사. 통도사, 범어사) 사찰 230km 정도 걸으며 클럽분들의 25년도 안전산행을 기원드린다
날짜:2024년 12월 29일 새벽 4시무렵 25년 1월 2일까지
지나간 경로 :해인사, 가야산, 성주, 낙동강, 칠곡군 신동,동명, 송림사, 부인사, 동화사, 갓바위, 장군바위, 경산시 하양, 진량, 용암. 청도 운문댐. 운문사,아랫재, 배내봉, 신불산, 영축산, 통도사, 양산시청, 다방봉, 금정산, 범어사 230km
직선거리 개념으로 코스를 만들다 보니 산 넘고 물 건너 찾아 가는데 평지만 있다면 하루 60 km는 쉽게 가겠건만 산을 너머야
하기에 평균 52km씩 걸음해도 하루가 빠듯하게 느껴진다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는 의상대사께서 화엄종을 전파한 10개의 사찰 즉 화엄십찰(갑사, 부석사, 비마라사, 옥천사, 보원사, 청담사, 화엄사, 범어사)의 대찰(大刹)이며, 지심귀명례의(至心歸命禮)의 법(法)인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 사찰이기도 하다
이른 새벽 대구에서 택시로 해인사에 도착하니
새벽 예불시간이 끝나고 절 집은 그야말로 차가운 전등 불빛만 있을 뿐 적막강산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의 금강계단
해인사는 한국 불교의 성지이며 법보종찰로써 우리나라 삼보 종찰을 대표하는 곳이다.
해동 화엄종인 초조 의상대사와 법손인 순응화상과 그의 제자인 이정화상에 의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대적광전 자리에 창건되었다
연화세계의 대정적인이라는 뜻의 대적광전(大寂光殿) 화엄종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곳이며
대적광전에는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다
가지고 간 108 염주를 꺼내 들고 15분 정도 부처님께 108배로써 회원님들의 25년도 안전산행을 기원드리고 나와
고려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인 팔만대장경(81,352매)이 모셔진 장경판전
80년 동안 8차례나 몽고가 침입했으며 전체 인구 4분의 1이 죽었고 7년 뒤 몽골의 침략을 부추기던 최씨 무신정권의 암살로 전쟁은 끝이 난다
몽고의 침략을 불심(佛心)으로 맞서기 위해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불사의 힘으로 16년 동안 연인원 50만 명이 만들어 지금까지 760년을 보관 중이다.
1,398년까지 강화도의 선원사에 있던 것을 서울 시청 맞은편 용산 지천사로 운반하였고, 문경새재, 고령 개경포를 거쳐 그해 가을에 해인사로 이사했는데 두 개의 건물인 수다라장과(법보전), 사간 판전에 보관 중이다
대장경은 8만 1,352매로 길이로 따지면 3,200km, 전체 글자 5천2백만자 중 오타는 158 자라고 하니 대단한 것이며
직접 부처님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웅장한 장경 판전에는 8만 4천 가지 법문이 기록되어 있다.
책으로 만들면 6천8백2권이며 한문에 능통한 사람이 하루 한 권을 읽는다 해도 18년 정도 걸릴 만큼 방대한 법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제 발걸음을 어둠 속에 묻힌 가야산 정상으로 옮겨가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 교구 본사인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802년) 때 신림(神林)의 제자였던 순응(順應)이 중국으로 수도를 떠났다가 몇 년 뒤 귀국하여 절을 세우다 순응이 죽자 이정(利貞)이 그 뒤를 이어 창건한다
법보 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佛寶) 사찰인 통도사와 승보(僧寶) 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사찰로써 해인사는 화엄종(신라의 의상이 당나라에서 배워 전파함)의 근본 도량이며, 민족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그리고 해인사는 경남 인근으로 172개의 말사 절과 부속 암자 12개를 거느리는 큰 절집인데 멀리 지리산 대원사까지 해인사 말사의 절이다
국사당(산신을 모시는 곳)
가야산신(山神)인 정견모주께서는 하늘의 신(神) 이비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으니
큰 아들 이진아시왕은 고령군 일대의 대가야국을, 작은 아들은 수로왕은 경남 김해 인근의 금관가야국을 각각 건국하였다
다른 사찰에는 대웅전 뒤편에 산신각이 있지만 해인사에는 일주문을 지나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길인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에 국사당이 존재하니 지나는 길에 찾아보기 바라고
참고로 대가야는 진흥왕 때 신라장군 이사부에 의해 멸망했으니 마지막 태자인 월광태자는 정견모주의 10 세손쯤 되겠다
고려 대장경은 전체 81,352장에 무게만 해도 약 280톤
전체 글자수는 52,729,000자 오타 158자, 길게 놓으면 길이는 약 60km이다
이제 일출 보러 가야 정상으로 향한다
누군가 지나갔지만
최소한 오늘은 내가 처음이라...
조릿대 사이로 눈이 조금씩 내리더니 이내 그치고
계곡 따라 물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그마저도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가 대신한다.
어둠 속으로부터 해방이 되려나 붉은 기운이 올라올 무렵
나뭇가지마다 상고대가 올라 운치를 더하는데
상고대가 성가신듯한 나뭇가지의 울음소리만 요란하고
내게는 초강력 선풍기 10개 정도 얼굴앞에 틀어 놓은 것 같다.
이러다 일출 놓치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만 앞서고
우두봉을 배경으로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서서
버리고 비우고 가는 길
마음과 몸의 균형이 무너질 때 겉잡을 수없다
가고자 하는 마음음 큰데 작은 물집 하나로 몸의 균형이 무너질 때
집에서 계획을 세울 때만 하더라도 마음은 벌써 우주 끝까지 골백번도 더 다녀왔지만
현실은 몸도 마음도 따뜻한 집 생각뿐이다.
가야산신 정견모주께 이 길을 지나는 이들 모두에게 안전산행을 부탁드려 보고
불타오르는 산이 되고자 했던 석화성 가야산 우두와 칠불봉으로
산에도 표정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처럼 산이 추워서 찡그린 표정 아니겠나
정견모주의 전설처럼 여인의 향기가 가득할것 같은 가야산에 신록이 새로 나기전까지
죽은 듯 고요한 산정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운해가 이리저리 밀려갈 뿐 새로운 생명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삶과 죽음의 무한 반복이 있기에 지금은 죽은 듯 살아있는 모습이다
12월 말 한겨울의 정점이라 춥기는 어지간하게 춥고 주위가 서서히 밝아졌음에 깨달음에도 하나의 과정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니겠나
우두봉(牛頭峰) 정상의 웅덩이 속에는 천년을 살다가 용이 되어 등천(登天)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이무기가 꽁꽁 얼어 있고
멀리 1억 5천만 km거리에서 용의 해를 며칠 남겨놓지 않은 태양이 붉은 기운을 산과 하늘을 통해서 드러냈다
냉장고 속의 동태처럼 세상은 얼어있는데
빨래 방망이로 내려치면 모든 게 두 동강 날 것만 같은 겨울세상 속이다
누가 뭐라 하던 홀로 산정을 지키는 정상석
지리에서 덕유를 돌아 이곳 가야 우두봉에 서기까지
많은 분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셨는데...
안전한 산행 기원드린다
성주군 가천면 방향
차가운 냉기가 올라오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
고령군 덕곡방향
지나온 우두봉
춥다 추워
길을 나서며 모든 의욕을 배낭에 넣어왔지만 늘 부족함을 느끼는데
등이 휘고 어깨가 빠질 듯 많이 가지고 가도 늘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는 반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음에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기 마련이고
해인에서 올라올 때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일출 시간이 되니 세상에 한점 불 켜진 듯 환한 빛이 들어왔다
으!~~~ 차가운 바람은 시베리아산 동태가 될듯하여
일출은 포기하고 벗어놓은 배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산은 언제나 엄한 아버지를 닮았고
물은 인자하신 어머니를 닮아있다
일출이 올라올 것 같은데
앞에서 알짱거리는 구름이 야속하다
가야산의 튼튼한 싸리빗자루로 싹 쓸어버리고 싶다만 그건 무리일 것 같고
바람이 덜 불어오는 철계단에서 잠시 쪼그려 기다려본다
만물상 방향
가야에 서면 가장 멋진 풍경이 이곳에서 천년송들과 만물상 방향이라 말하고 싶다.
ㅎㅎㅎ
철계단에 쪼그려 앉아 개 떨듯하며 이렇게 일출을 보는데
그동안 길을 걸으며 어디서 일출을 본다거나 일몰을 본다거나 그러한 계획을 잡아 본 적이 없어
뜻하지 않게 만나는 일출 이런 게 행복 아니겠나
덜!~덜!~덜
마치 시골집 경운기가 검은 연기를 내며 덜덜 거리듯 떨린다.
개 떨듯 하면서 기다린 보람이 있는 건지
참으로 복된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
뻐근한 다리로 길을 나서니
몸은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나
마음은 티끌처럼 한없이 가볍고 편안하다
해인사에서 새벽부터 모진 바람 앞에 등불처럼 버티다가 태양이 오르니 좋고
걷고 또 걸으면
내일 저녁 무렵 때 해가 드는 방향인 팔공산 갓바위쯤 서있을 것 같다
가야산 아래 성주 법수사지
젊음도 잠깐이요 세월도 잠깐이라...
신라 애장왕 때 세워진 화엄 사찰의 하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되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텅 빈 들판에 삼층 석탑과 발굴 때 모아 쌓아둔 기와 파편들만 불심(佛心) 속의 옛 영화를 그리워하며 서있다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금당지와 주춧돌이 남아있고
보이지 않은 부처님께서 뒤로 돌아보시며 욕심을 버려라 말씀하시는듯하다.
법수사지 삼층 석탑
석탑주위를 돌며 소원을 빌면 금방이라도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나 역시 잠깐 살았을 뿐인데 이틀후면 60이다.
낙동강을 건너는 성주대교까지
가운데 까치산의 백고개과 추산 자락의 신반재를 넘으면 15km
좌측의 성주읍으로 돌아가면 25km
우측의 고령군 운수면으로 돌아가면 30km
길이야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니 시간 단축 겸 오늘 목적지인 칠곡군 지천면까지 가야 하니 무작정 앞에 보이는 까치산과 추산을 넘는다
뭐임! 동물의 세계
고라니가 조심스럽게 오더니
멀리 사라진다
지나온 가야산과 회천이 있고
회천은 낙동강 742개의 크고 작은 지류들 중 하나인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에서 발원하여 참외로 유명한 성주땅과 딸기로 유명한 고령땅을 지나며 우곡면 객기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85KM 길이의 하천이다
회천이 흐르는 길에 조선 중기 "한강 정구" 선생의 전설이 깃든 무흘계곡을 지나는데
한강 정구 선생은(1543-1620년) 조선중기 낙동강 중류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낙동강 상류의 퇴계 이황과 하류의 남명 조식의 두 분의 성리학과 사림정신을 계승하고
여러 지방의 목민관을 거치면서 각지방지를 편찬하는 등 다방면으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퇴계 이황의 실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퇴계 선생이 매화를 유난히 좋아하셨는데 이분의 무흘 구곡 중 제1곡인 봉비암이 자리하는 회연서원에도 (성주군 수륜면) 매화나무가 많이(백여 그루) 심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매화처럼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워 봄을 알려주는 선비정신을 보여 주어, 퇴계의 선비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며 그의 학식과 맥을 이어가게 된다.
수륜면 수륜마을의 고택들이 보이고
고택의 기본은 높은 담장과 붉은 백일홍이 아닐까?
예전에 동네와 동네를 이어주던 까치산 백고개로 오르는 길에 겨울철이 되어야 더욱 푸른빛이 감도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함께 서있다.
조선 세조 때 죽음을 앞에 두고 세조를 나으리라 불렀던 충신 성삼문의 시(詩)중에서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하리라"란 표현이 나오는데 소나무는 굳은 절개와 지조를 나타내었고
대나무는 종류가 몇 가지인지 잘 모르겠으나 키가 크고 굵은 왕대,
죽순을 먹을 수 있는 맹죽.
어릴 때 마디에 하얀 솜털이 붙어있는 솜대,
높은 고지대에 살지만 백성들의 지붕 위에 빗물을 막아주던 조릿대,
마디새가 길쭉한 이대, 그
리고 거북의 등껍질을 닮은 구갑죽이 있다
죽(竹)은 소나무와 함께 고귀한 선비를 지조나 절개를 상징하는데
부러질 지얼정 굽히지 않은 성격의 선비 정신이 숨겨져 있다
줄기의 마디는 선비의 절개이며 속이 텅 빈 것은 선비의 겸허한 마음이며 사철 푸름은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는데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두고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란 말이 있는데
1년간 성장하고 멈추는데 나무라면 나이테가 있어야 하지만 나이테가 없고 속은 텅 비었다
겨울에 더욱 푸른빛을 내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하늘아래 함께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다가
사과나무 가지 작업하시는 동네 어르신분께 이곳으로 곧장 올라가면 길은 어떤지 여쭈어 보니 길은 예전에 없어졌고
지금은 잡목만 무성하다고 말씀하신다.
"감사하다"며 말씀드리니 까치밥으로 남겨둔 조그만 사과 몇 알 따서 주시면서 "얼어서 맛은 없지만 목마를 때 물처럼 먹어보라"고 주신다
마지막 외딴 빈 집에서 잠시 잡목이 이어지다가 수륜마을과 작은마을을 이어주던 옛 백고개에 도착하니
움푹 파진 고갯길이 마르고 닳아 백고개임을 알린다.
옛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잠시 낙엽 위에 앉아 쉬며
예전에 다니던 길이건만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많아...
길이 맞겠지 하며 무작정 계곡 옆으로 내려선다
이제 추산을 넘어야 하는데
어디가 옛사람들께서 다니던 길인지...
지나온 백고개 방향
수륜면 작은리 마을 인근의 잔대미골로 무작정 기어오르면 만나는 경주이 씨(慶州李氏) 집안묘가 3기 나오는데
묏선생들께서 경주이 씨 문중(門衆)과 무슨 악연이 있으셨나
철천지 원수도 이런 원수는 없을 듯 아래, 위로 찾아가며 마치 포격한 것 같은 모습이다.
산소 규모로 볼 때 살아 계셨을 때는 큰소리 좀 치신 분들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작은 마을에서 잡목을 비집고 돌아오니 지맥길 신반재라고 쓰여있다.
10년 전에 지맥을 하면서 지날 때는 이런 게 없더니 그동안 많은 지맥꾼들이 다녀가신 듯
잠시 좋은 길 비슷하게 이어지다가 이내 없어지고
잡목이 반긴다.
잡목 속에서 만나는 돌담
예전에 성주군 용암면 상신리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곳이라 추측해 보는데
뜬금없이 평당 6만 원이라고 푯말이 붙어 있다
아무도 찾아 않는 곳에 박아둔 푯말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다
계곡 상류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이용하던 옛 샘터인데 샘터는 물이 나오지 않고 흔적만 있다
지나온 신반재
동네길을 걷는데
너구리란 녀석이 동네 건달인 똥개들 하고 한판 붙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다
절뚝절뚝 걸으며 듬성듬성한 털가죽에는 윤기가 전혀 없고 가슴팍에는 뭐에 물렸는지 피가 흥건하다
"아이고!~~ 야! 야 니 몰골이 그기 뭐고" 하니
"내가 이 정도면 동네 똥개들은 거의 죽었다 "이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산으로 기어오른다.
"그래!... 니 평균 수명이 10년은 되니 어떻게 던 잘 살아라"
용암면 "더 쉼 하우스" 앞을 지나다가
젊은 분들께서 마당에 앉아 뭔가를 굽고 계시는데
잠시 들어와 쉬었다 가시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까
염치불고하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보니 남해 바다에 사는 가리비 왕국의 전사들이 불판 위에서 입을 힘껏 벌리고 누웠다
이야기 나누다가 보니 안동, 성주. 대구분으로 모두가 친구들이란다
가리비 익은 거 몇 개 골라 먹고 일어서려니 좀 더 있다가 가라며 붙잡는다
갈 길은 멀고, 고맙게 잘 쉬었다며 일어선다.
길을 걸으며 이렇듯 좋은 분들과 연을 맺는다.
고마운 분들 감사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불판 위에 뭔가를 구워 볼 날이 올 거란 기대를 가지고 인사하고 낙동강으로 향한다
성주 ic인근의 신천 따라가며
멀리 정견모주의 가야산이 보이고
성주군 용암면의 참외 비닐하우스 단지가 끝없이 있고
그 뒤로 참꽃나라 비슬산이 보인다.
예전에 이 길을 지나며 본 백천은 쓰레기가 많고 지저분하고 더러웠는데
지금은 어떤지...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성주대교를 건너가며
대구광역시에 도착한다.
낙동강
백두대간 함백산 비단봉 동쪽계곡에서 발원해 태백, 봉화, 안동, 예천, 문경, 상주, 구미, 왜관, 대구, 밀양, 부산까지 흘러가는 동안 742개의 크고 작은 지류를 거느리고 남해 바다에 흘러들고
지금은 그저 고요하기만 한 낙동강이다.
베트남에서 오신 노동자분인데 대구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결혼할 여성분을 데리러 가는 중이라고
한국말을 곧잘 한다
잠자기 좋은 곳을 지나서
칠곡군 지천면으로 가기 전에
야간에 도로길을 다소 위험해 하빈천 따라 올라가는데
하빈천은 황학지맥길 장원봉에서 발원해 칠곡군 지천면과 대구 달성군 하빈면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19km 정도의 하천이다
저녁이 되니 날씨는 쌀쌀하고 한기(寒氣)가 온몸에 전해지는데, 동네 개들은 멀리서도 발소리를 듣고 짖는다
칠곡군 지천면 신동에서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니
오늘은 이곳 52km 지점에서 하루길을 정리한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뻐근한 무릎에 파스를 연신 뿌려 놓고 걸음을 걸으려니 무릎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 나사가 하나 빠진 건가?
오늘은 팔공산을 넘어 경산시 하양까지 가야 해서 무거운 배낭으로 어찌 팔공산을 넘을지 걱정도 되고
편의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신동역 앞을 지나 여부재를 올랐다가 동명면으로 향한다
여부재는 건령산과 명봉산 사이의 고갯마루인데
칠곡군 지천면 사람들이 동명장으로 가던 옛길로써
동명장에 갔던 남편을 기다리던 곳이다
귀신 나올 것 같은 여부재에서
여부재를 넘으면 칠곡군 동명면이며 그곳에서 아침을 해결할 듯
아래로 내려갈수록 날은 밝아오건만 날씨가 꾸무리하니 일출은 애초 글렀고
7시 무렵인데 바람이 무척 차갑게 느껴진다
어느 분식집에서 라면 하나 시키고 점잖게 기다렸다가 밥상을 받아 든다,
한 발이라도 더 멀리 가려면 무엇보다 시간이 생명이라 빨리 나오는 라면이나 국수가 제일이다
송림사
절은 언제나 고요하니 침묵할지언정 떠들면 안 되는 곳이다.
동화사 말사의 절이며 신라 진흥왕 때 진나라 사신이 불서(佛書) 2천700권과 불사리를 가져와 세운 절이다
마음씨 고운 부처님께 3배 하고 밖으로 나와
돌담옆 도로 따라 선덕여왕의 전설이 깃든 부인사로 걸음 하는데
도로길은 지루하고 또 지루하니 작은 소원이라도 꼭 들어주실 것만 같은 마음씨 고운 부처님만 생각하며
도로가에 굿당이 여럿 있는데
하천으로 오, 폐수가 흘러들어 바닥은 구정물 수준이며 시궁창 냄새까지 올라온다
이런 건 관할구청에서 단속을 해야 함에도 단속이 왜 이뤄지지 않는지,
한여름이면 계곡 아래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오는 곳이건만 누가 이런 걸 알까
아!~ 더럽다
팔공산 환종주길에 만나는 대왕재(大王峴)
오래전 고려 태조 왕건이 팔공산 자락 동화천 인근 싸움인 동수대전에서 견훤에 대패하자 이를 구원하고자 왕건의 기병이 이곳에서 숙영 했다는 곳이기도 하고, 조선 숙종 때 왕자가 없어 숙종께서 파계사 성전암에 계시는 농산 스님을 찾아가 기도를 올려
숙빈 최 씨가 현몽하여 태어난 아들(영인군)이 훗날 영조이다
이 길은 왕의 길이니 고려 때는 왕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고
조선시대 때는 왕자를 얻고자 왕께서 넘었던 길이고
지금은 그와는 상관없는 배고픈 길이 되었다
부처가 되고 싶었던 팔공산이 찾아왔고
국립공원 중 가장 많은 절터와 석불 그리고 석탑이 있는 경주 남산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겠지만 팔공산은 천년 고찰이 많다
송림사, 파계사, 부인사, 동화사, 북지정사, 갓바위, 은혜사, 백흥암, 중암암, 오도암 제2 석굴암...
그 외 주능선에 몇 기의 석불 (마애약사여래좌상, 석조여래입상. 관봉 약사여래불)이 숨어 있으니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선덕여왕의 전설을 간직한 부인사의 대웅전
오전 10시 30분 무렵 비구니 스님께서 홀로 사시 예불을 드리는데 그 곁에서 뻐근한 두 다리로 겨우 무릎을 꿇으며 3배만 하고...
부인사는 선덕여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인데 그녀의 명복을 100년간 기려온 절로서 부인이란(苻仁) 선덕여왕을 뜻한다고... 세월이 흘러 어떤 연유에서 그러했는지 모르겠으나 고려 때 부인사(夫人寺)로 개명되었다
고려 때는 무신정권에 항거하기 위한 승려들의 본거지였으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을 보관한 장소였으나 고려 고종 때인 1232년 몽골 침입 때 부인사와 함께 모두 불타버렸다.
7대 총림 중 하나이며 대한 불교 조계종 9 교구 본사인 동화사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동화사(桐華寺)의 대웅전
신라시대 극달화상에 의해 지어진 후 여러 차례 다시 지은 건물로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지은 건물이다
이곳 동화사에는 오래 전인 고려 제27대 충숙왕 때 현승스님께서 통도사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 5 과를 봉안하셨다는데 이후에 사리가 어디로 간 건지 자세하게 아시는 분이 없어 모르겠고
동화사 대불 아래 스리랑카에서 가지고 온 사리 5과 그리고 미얀마에서 가지고 온 사리 3 과가 모셔져 있다
대구, 경북을 대표하는 5대 본사임과 동시에 7대 총림이다 보니 이곳 인근의 청도, 고령, 성주, 칠곡군 사찰을 관리하고 있으며
멀리 청도의 비구니 도량인 운문사 역시 동화사의 말사의 절이다.
108배를 해야 하는데 무릎이 아파서 3배만 겨우 하고 일어선다
점잖게 앉아 계시는 부처님
108배 다 못해서 죄송합니다
동화사에서 나와 폭포골로 올라 바른재로 오른다
알탕 하고 가면 좋으려나
잠시 물가에 앉아 쉬었다 오른다
최근에 산객이 다니지 않았는지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고
먼지가 푸석 푸석하니 바지 아랫단이 먼지로 가득하다
팔공산 주능선에 서서
산이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바위를 넘어 물 흐르듯 흘러와 내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이 용트림하듯 달려와 물을 만남으로써 멈춰 서는데
강물도 바다도 없건만 이렇게 멈춰서는건... 뭘까
지나가는 산객께 부탁해서 한 장 담아두고
이제 이틀이 겨우 지나가건만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고통을 전하는데 그렇다고 걷기를 포기할수 없고
갓바위 부처님의 천년 미소
하나의 간절한 소망을 쌀 포대기에 담으셨나
푸짐한 제물(祭物)을 앞에 두고 흡족해하시는 부처님
아마도 이분들께 소원하나쯤 들어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맨바닥에 무릎 꿇으며 3배 하고 일어나...
절이라는 건 상대에 대한 존경심과
나 자신을 낮추어 겸손을 동시에 표하는 것이라...
3배 중 두 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나머지 한 번은 내가 진정 원하는 걸 간절하게 비는 것
오늘 일정이 경산시 와촌면까지 가야 하니 이제 갓바위 부처님과 이별하고 명마산 장군바위로 향한다
명마산 가는 길에 본 용주암 범종루
공사 중인지 스님과 몇몇 신도분들께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고
세상에는 실력으로 되는 일도 있고
죽어라 해도 안 되는 일도 있게 마련인데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은 마음처럼...
바위돌 위에 또 다른 바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작은 바람에도 넘어질까 누군가 작은 돌 몇 개로 넘어지지 않게 받쳐 고정시켜 놓았다
양파껍질 같은 팔공산 자락의 산들이 펼쳐지고
이제 하루해가 넘어갈 무렵이건만 오늘은 겨우 40km 정도 걸었을 뿐이다.
명마산 장군바위
김유신 장군이 어린 시절 불굴산 원효굴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석굴에서 나오자 맞은편 산에서 백마가 큰소리로 울며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해서 붙여진 명마산(鳴馬山)이라 하였다는데
그 외 알려진 게 없는 명마산 장군바위 전설이다.
다리는 뻐근하고 무릎에는 통증이 있고
배는 고프고 잠은 오고 온몸은 천근만근이다.
1부는 이것으로 끝내고...
첫댓글 할배~(ㅋㅋ)
춥고 먼길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노숙은 고마하실 연세도 되셨는데?
으시시한 가야산밑 만물상 보니 첫번째 국공때 날머
리 마중오셔 내배낭 받아지고 만물상으로 내빼시는데 아픈발로 따라가는라 두번죽는줄 알았다요~
(덕분에 추억소환~(만물상도 타봤다능)
시작되는 새해도 해피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벽두부터 엄청난 고행길을 걸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배내봉 일출이 궁금하네요.
얼릉 2부 올려주세요 ㅎㅎ
백고개는 나뭇잎이 돋아나면 상당히 이쁠듯하구요 여부재는 정말 귀신 나올듯 음산 하네요 새해에는 건강 잘 챙기시면서 조금 덜 걸으시고요 복많이 받으세요
가야산에서 해인사까지
그리고 팔공산에서 갓바위까지
추운 날씨에 먼길을 걸으셨네요.
클럽회원님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하여
걷는 길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방장님도 새해에는 무탈한 걸음 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벽두부터 25년 클 럽 분들의 무사안전 산행을 기원하며 200km급 종주를 하셨네요.
새해도 안전한 산행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잘봤습니다 ~~♡
퇴근 후 딸 아이는 수학 문제 풀고 전 옆에서 방장님 산행기 읽고...
깡깡 언 우두봉 정상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하시고 20년은 더 다니셔야지요^^
방장님,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파마머리 황금 부처님은 잘 만나뵙고 오셨는지요?
7대 총림길 중 경상도쪽 4대 총림
해인사, 동화사, 통도사, 범어사
대장경을 길게 놓으면 그 길이가 60km정도라니
앞으로 하루 60km 걸음할 때면
대장경이 생각날 듯 합니다.
이 추운 날 홀로 고독한 그 길에서의 걸음..
저 또한 방장님 이번 230km 걸음 글 함께하며
클럽분들 25년도 안전산행을 기원드려 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