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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
물질에 대한 주님의 교훈(눅12장13-14)
성경본문|누가복음12:13~14
13.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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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박조준목사
본문은 물질 생활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선생님,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원을 하였습니다.
팔레스틴 사람들은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물질 분배의 다툼에 개입하시지 않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한 마디로 거절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하시면서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물질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대하여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정말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귀하고 필요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탐심이 있습니다. 소유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물질을 초월해서, 물질을 떠나서 사신 분이십니까?
그러면 우리더러 돈도 벌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인간 자체가 물질과 영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엄격히 말해서, 물질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탐심을 물리치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지나친 욕심을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로마 사람들의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말라진다.’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닷물은 마시면 더 목이 탑니다.
돈이란 모으면 모을수록 더 모으고 싶어집니다.
우리 속담에 사람의 ‘욕심은 땅보다도 두텁다’고 한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황금은 흑사심(黃金點士心)’이라고, ‘누런 돈이 깨끗한 선비의 마음을 검게 한다’고 합니다.
매우 뜻이 깊은 말들입니다.
왜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까?
탐심은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본문에 보아도 형제 간에 부모가 남길 유산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이렇게 예수님에게까지 와서 물은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형제가 물질 때문에 돈으로 살 수 없는 형제의 의리를 깨뜨리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탐심에 매여 있는 사람을 가리켜 ‘돈에 눈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돈만을 생각하고 탐하게 되면 다른 것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시는데 간호할 생각은 하지 않고 유산 분배를 둘러싸고 싸움이 생기고 소송하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눈이 어두워져 그렇습니다.
부모도 모릅니다.
형제도 모릅니다.
나라도, 민족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전에 이완용 같은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었습니다.
전에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돈 받고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까?
돈 얼마에 지조를 팔고, 의리를 팔고, 민족을 파는 사람, 탐심으로 눈이 어두워진 사람은 없습니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그리고 탐심을 물리쳐야 할 까닭은 탐심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
어떤 사람이 가난해서 매달 얼마씩 내면서 남의 집 살이를 합니다.
매달 월세로 돈을 지출하는 것이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월세집을 면하고 전셋집으로 가서 살아볼까 생각합니다.
떻게 잘해서 전셋집을 얻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젠 만족합니까?
기한만 지나면 전세 값을 올린다, 이사해라 해서 얼마나 어려움이 많습니까?
그러니까 ‘아, 우리는 언제나 이런 고생을 안할까? 남의 집 신세를 면하고 자기 집, 오막살이라도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 조그만 집을 하나 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만족할까요?
자기 집은 물론 자기 집이 지만 부엌 하나, 방 하나이고 보니 여간 불편함이 많지 않거든요.
손님이 오시면 응접실, 식사 때면 식당, 아이들 오면 공부방, 잘 때는 침실이 됩니다.
그러니 ‘아,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그래도 집이라면 방이 몇개 있어서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어야지. 우리는 언제나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나?’하고 불평합니다.
이 집에서 돈을 벌어서 방이 몇개 되는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만족할까요?
다른 집에 가보면 피아노, 텔레비전, 전축 모든 문화시설이 다 되어 있는데 집만 있으면 사람이 사는 건가? 하며 만족하지 못해 합니다.
돈을 모아서 모든 것 다 구비해 놓았습니다.
이제는 만족할 까요?
‘아,요새는 마이카 시대인데 자가용도 없는 게 사람 사는 건가?’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만족할까요?
미국에 가 보신 분이 많으시니까 잘 아실 줄 믿습니다.
미국은 물질적으로 부한 나라입니다.
미국은 의식주 문제는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 만족하고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지난 날에 문제가 되었던 히피 청년들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가난한 가정에서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대개가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 나왔습니다.
미국에 가보면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디모데전서 6장 17절이하에 “네가 이 세대의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사업에 부해야 행복하지 탐심에 의해 살면 결코 만족이 없을 뿐더러 행복하지 못합니다.
전에 요한 웨슬레의 생활 법칙은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저축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 옥스포드에서 일할 때 수입이 30파운드였는데, 28 파운드로 겨우 생활하고 2파운드로 다른 사람을 돕는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그 수입 이 점점 늘어 60파운드, 90파운드, 1백 20파운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요한 웨슬레는 그의 생활을 30파운드 받을 때처럼 28파운드로 하고, 나머지는 선한 사업을 위해서 나눠 주는 일에 썼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합니다.
어떤 이는 돈을 좀 많이 벌면 이것을 어떻게 쓸지를 몰라서 고생합니다.
그래서 필요없는 일에 낭비합니다.
예수님의 유명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보세요.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밭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한 해는 곡식이 대풍년이 들었습니다.
전에 가지고 있던 창고를 가지고는 도저히 그 많은 곡식을 다 저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마침 좋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옳지,이렇게 하자! 전에 있던 창고를 다 헐어 버리고 새로 더 크게 짓자. 그리고 모든 곡식과 내 소유 전부를 거기에 쌓아 두리라’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다 뉘 것이 되겠느냐?”
예비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 즉 땅 위의 창고에만 물건을 쌓아 두고, 땅 위의 금고에만 돈을 넣어두고 하나님의 창고에, 하나님의 금고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을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여러 해 동안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영혼을 오늘 밤에 다시 부르면 네가 예비한 그 많은 재물이 뉘 것이 되겠느냐? ”
이 부자가 왜 어리석었습니까?
첫째, 곡식과 재물을 자기 것으로 알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쓰는 물질뿐만 아닙니다.
지식, 재간,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사용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 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 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것으로 아는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둘째,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을 위해 저장해 두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창고에 쌓아 두는 것이 잘 보관하는 것인 줄 생각하였습니다.
18절에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위해 쓰겠다고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셋째,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이 하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여기 비유 가운데 보면 몇 절 되지는 아니하지만 ‘내가’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 이르되“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5∼16절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시편 127편 1∼2절에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하였습니다.
넷째, 인간의 유한성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19절에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였습니다.
오래 오래 사는 것만 생각했지 죽는 날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 가운데도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 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했습니다.
야망에 넘치는 청년과 인생을 아는 노인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청년이 야망이 가득 차서 말했습니다.
‘나는 무역을 배우겠습니다.’
‘그리고는?’
‘사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그리고는?’
‘아마 나도 늙게 될 것이고 돈을 많이 저축한 후에 은퇴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 아마 저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사람이 이 세상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먹고 마시자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저 세상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대하지 않던 밤이 옵니다.
그리고 22절 이하에 물질 생활에 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요점은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에 대하여 교훈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은 ‘ 대로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를 먹이시고 들에 피는 백합화를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먹이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합니다.
11장 6절 이하에서는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데도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실 정도로 세밀하시게 우리를 보살피시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이 왜 염려하고 근심합니까?
오늘은 괜찮은데 다음 달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으로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통계에 보면 이와 같은 염려와 근심 때문에 생긴 환자의 수가 병원 입원 환자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왜 우리가 염려합니까?
염려함으로 이루어진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근심 걱정에 싸여 있습니까?
결국 믿음이 부족한 탓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선용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어야 합니다.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고, 녹슬지 아니하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네 돈주머니까지 회개하라’ 하였습니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보물은 이 땅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까?
우리는 언젠가는 불가피하게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을 하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에 올 때 알몸으로 온 것처럼 갈 때도 알몸으로 갑니다.
서반아 속담에 이런 말 이 있습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그렇습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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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