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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의 논리- 소위 삼위일체 교리 옹호자들과
유일신 신앙인들의 인식 차이는?
[남상호 영동] [오후 9:51] 요한서신을 해석할 때 그리스도에 관한 여러 혼잡한 논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양으로, 인자 예수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신이 사람이 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며 신과 인간의 연합을 부정했습니다.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의 짐을 벗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대속물이 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속제사를 통하여 모든 사람의 범죄와 죄악을 대속물에게 전가하시고,
그 대속물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야 한다는 사실과 피를 흘릴 수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속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면 가라지이며, 여전히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자들입니다.
인자 예수께서는 자신의 한 몸을 대속물로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그 대속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됨으로써 대속제사는 단번에 영원히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어야만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이 그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로 오셨던 그분이 이제는 모든 하나님의 신이 떠난 육체들에게
살려 주는 영으로 다시 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단번에 이루신 대속제사가 믿는 이들에게 실제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임하신 것은 인자 예수로서 대속물이 되어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표상이며, 그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그분이 살려 주는
영이 되셔서 교회와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 임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재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혼잡한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성경의 모든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혼잡한 교리를 가르칩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가라지들이며,
진리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러한 내용을 요한일서를 나누면서 명확하게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는 스스로 죄의 짐을 벗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고 죄와 상관없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대속물이 되어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구약성경에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사람 예수를 통하여,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인자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피가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율법 아래 있는 모든 제사를 단번에 완성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속물로 자신을 드리신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대속물로 모든 제사법을 단번에 완성하신 목적은 오늘날 믿는 사람들,
곧 참 제자들 속에 그분의 신을 다시 부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신이 떠나면 사람은 죽고, 신이 다시 돌아오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시려는 것입니다.
육체로 오시는 단계에서는 인자 예수를 통하여 표상으로 오셨고, 대속물로 단번에 드려지신
이후에는 모든 예언된 대속제사를 완성하신 그분이 살려 주는 영, 곧 생명의 영이 되셔서
모든 제자들에게 다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며,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교회에 재림하신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것 또한 믿어야 합니다.
초림하신 예수만 믿는 것은 절반만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재림하신 주님을 믿지 않고, 어느 날 인자 예수께서 육체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속제사를 단번에 영원히 완성하셨는데 독생자가 다시 육체로 와야 한다고 말한다면,
주님께서 단번에 대속물로 영원한 제사를 완성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곧 가라지이며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믿는 사람들을 대적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이므로 안티그리스도, 곧 적그리스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만유이시며 만유의 주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대화하신 때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과정을 거쳐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모든 날에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들 예수를 통하여 “내가 바로 그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이시며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만유라는 것은 만물과 만상과 만사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의 근원이시라는 뜻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근원은 ‘말씀’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와 현상 세계에 나타난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천지와 만물과 만상과 만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경영되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로고스는 모든 존재와 만유의 주인이며,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그 근원이 곧 말씀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금 기름 붓는 집의 증거를 남상호 형제가 반박을 위해 인용한 내용입니다....
아래 챞터 1~7의 긴 글은 지방교회의 말쟁인들이 금 기름 붓는 집의 진리 증거를 반박하기 위해
내놓은 장황한 말장난으로서 성경 인용보다는 로마교 교부들의 교리들을 옹호하는 글입니다.
[남상호 영동] [오후 9:59] Chapter 1. 용어의 기원
신약성경이 완성되고 나서, 2세기 초 교부중에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오스Ignatius of Antioch,
A.D. 110이라는 분이 계셨으며, 이분은 서머나에 보내는 편지Letter to the Smyrnaeans를
썼습니다. 해당 서신의 8장 2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보편적 교회καθολικὴ ἐκκλησία가 있느니라.
이 서신에서 말하는 보편적 교회는, 현재 우리가 보는 카톨릭 교회, 즉 천주교가 아니라,
"이단이나 파벌에 치우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따르는 전세계의 보편적
공동체"라는 형용사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보편적 교회는 대한민국에서 많이 암송되는 사도신경에서, "공회"公會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를 "공교회"公教會라고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보편교회는 신약성경 본문에 나오는 표현은 아니지만, 교부시대 이후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한편 보편적이라는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καθολικός이며, 이는 "~에 따라"를 뜻하는 κατά와
"전체"를 뜻하는 ὅλος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결합어의 전치사+부사 형태인 καθόλου가 사도행전에 한 번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4장 18절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καθόλου)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Chapter 2. 보편교리는 경계선
보편교회는 개념상 참된 그리스도안의 믿는이 모두를 포함시켜야 합니다.
보편적이라는 말 자체가 "~에 따라"를 뜻하는 κατά와 "전체"를 뜻하는 ὅλος가 결합한 형태이니,
단어의 정의상 당연한 귀결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층위를 가지고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는지의 여부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생명으로 거듭난, 영원한 죄사함의 구속을 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보편교회의 성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이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책인 성경의 가르침의
수용여부입니다.
성경 자체는 소위 조직신학이 아니므로, 현대적 관점에서 하나님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성경론 등등의 항목에 있어, 과연 성경이 계시하는 내용을 수용하여, 끊임없이
생명안의 성장과 인격의 성숙함의 노정을 걷고,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가는 생활을 하느냐의
척도입니다.
세째, 마지막으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데 있어, 포용성 여부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으로 거듭나고, 성경의 계시를 믿는다 하더라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인성적 결함으로 하나되어 단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이 땅에서의 움직임에 실제적인 방해가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보통 포용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 본인의 취한 특별한 성경의 항목등을 이유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영안에서의 자유로운 생활을 방해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나, 개인의 약함으로 인한 도덕적
문제로 다른 성도들에게 참기 힘든 피해를 주는 경우등일 것입니다.
만일 첫째 항목에서 부터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둘째 항목에서 보편적인 성경의 계시에서 이탈한 특별한 해석을 기준으로 한 해석을 고집한다면,
소위 이단적인 사상이 될 것이며, 세째 항목의 문제라면, 개인의 성향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일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보편교회로서 함께 생활하는데 자격이 미달되거나 방해가 되는 경우입니다.
Chapter 3. 집회참석의 기준
보편교회 집회는 떡떼는 집회, 즉 주의 만찬이 있고,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이 말씀을 말해내고
듣는 집회가 있고, 특별히 부담을 받은 형제 자매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사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떡떼는 집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성도가 비록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받은 형제가 맞고
본인이 이를 증거하고, 떡 떼는 집회에 오겠다고 할 때 누가 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도들간에 성경의 말씀을 공급하고 듣는 가운데, 보편적이지 않은 가르침을 붙잡아
이야기하려 한다면, 인도하는 분들은 이를 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역의 일을 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은 자이어야하고,
더불어 보편적인 성경진리를 믿고 있어야 하며, 성품으로는 수용성이 있어, 팀활동을 소화할
역량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Section 2. 보편교리란?
Chapter 4. 본질에 대한 질문
초대 교회에 교리에 대한 기준은 본질적인 것이냐의 여부에 따라 나뉘었다고 합니다.
이단 (Heresy / 異端):
*'끝이 다르다'*는 뜻으로, 구원과 직결된 핵심 교리(예: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는 진짜 인간이 아니었다")를 부정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보편교회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아디아포라 (Adiaphora / 본질이 아닌 것):
성경 해석의 세부적인 차이, 예배 형식, 절기 준수, 교회 정치 형태, 특정 생활 양식 등입니다.
이에 대한 이견은 보편교회의 '다양성(Diversity)'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보편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그나티우스의 기준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① 성육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 (도케티즘/가현설 배격)
이그나티오스가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이단은 가현설(Docetism)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영적인 존재일 뿐, 육체를 입은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파벌이었죠.
필수 교리: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자, 실제로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고,
실제로 고난받고 죽으셨으며, 실제로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부정하면 그리스도교의 구원론 자체가 무너지므로 절대적 배격 대상이었습니다.
② 삼위일체 하나님과 구원론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이어지는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입니다.
한 분 하나님,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보혜사 성령에 대한 고백.
십자가의 피 흘림을 통한 죄 사함과 몸의 부활, 영원한 삶.
③ 교회의 통일성과 성찬(Eucharist)
이그나티오스는 보편교회의 외적 표지로 "사도적 승계에 있는 감독(Bishop)을 중심으로
한 성찬의 통일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를 나누는 성찬을 거부하거나, 사도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비밀 모임을 만드는 행위는 보편교회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오늘날의 **'사도신경(Apostles' Creed)'**이나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에 담긴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 그리고 이에 따른 구원론이 보편교회의 마지노선(핵심 교리)입니다.
흔히 세계 공의회 6차까지를 일반적으로 포함시킵니다.
반면, 비본질적인 것으로 약간의 이견이 있는 경우는 보편교회 여부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유월절 날짜계산, 유아침례, 배교자 복권문제, 기타 신학적 차이들
Chapter 5. 현실적 문제
현실적으로 제6차 세계 공의회까지 정립된 교리라고 하더라도, 이를 표현하는데 있어 개신교는
많은 신앙고백서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모임의 성격에 따라 선택하지 않더라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그냥 선언적으로 제6차 공의회까지 인정한다고 다소 추상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오히려 포용성
측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칫 보편교리를 결정하자는 토론이 사변적 논쟁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소 추상적으로 보편교리를 정의하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강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성도수가 적은 단계일 때, 굳이 정형화된 교리집을 만들고 선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Section 3. 지방입장
Chapter 6. 본질적인가?
워치만 니가 제안한 지방입장은 보편교리의 한 항목을 구성할 만큼의 본질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이미 다양한 반박문건들을 통하여, 지방입장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한 패턴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정치적 행정적 경계선이 신약성경이 기록될 때와는 다르게
자치권에 있어서 혼합적인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어, 워치만 니의 도시경계이론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소위 교회의 경계는 가정교회부터 국가교회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국가교회는 결국 정치와 종교의 일치문제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수
많은 선례들을 남겼으므로 현실적으로는 도시교회 이상의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Chapter 7. 실제적 조언
첫째, 보편교회를 실행하는 형제님들이 많은 수가 그 배경이 소위 지방교회이고, 향후 인수증가도
지방교회에서의 수평이동이 기대되는 만큼, 지방입장에 대해서는 새로 가입하는 성도들에게 충분히
설명이 필요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 미국 서베이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보편교리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정교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삼신론적이나 양태론적인 사상을 은연중에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무지와 무학의 결과이지, 원래의미의 이단적 사상을 가진 것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개인적으로 이단적 사상을 갖고 있더라도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이를 추종하는 발언을
하거나, 다른 성도를 설득하려는 명시적인 행동이 없다면 이 또한 문제 삼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한 그리스도인이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소위 횡설수설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째, 둘째와 다르게 사고능력에 문제가 없음에도, 보편교리가 아닌 이단적인 사상을 확고히 믿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명시적으로 전파하고 회유하려는 행동은 비로소 문제가 됩니다.
이 경우, 만찬집회에는 참석을 허용할지 몰라도 그 범위를 벗어난 경우는 철저히 단절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자신이 하나님이 생명으로 구원받은 형제임을 천명하는 한, 보편교회는
이 형제를 받게 되므로, 공식적으로 파문이나 배역으로 인한 단절을 포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만찬집회 이외의 경우는 접근이 제한됩니다.
이는 보편교회의 기본속성인 포용성에 부합합니다.
[남상호 영동] [오후 10:00] 파일: LSM과 타이터스 추 형제와 불화가 준 교훈.pdf
[남상호 영동] [오후 10:00] 파일: 보편교회와 수용성.html
[남상호 영동] [오후 10:01] 삼위일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핵심 구절
마태복음 28:19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마태복음 3:16-17 – 예수님의 세례 장면.
고린도후서 13:13(14절) – 사도 바울의 축도.
요한복음 1:1, 14 – 예수님의 신성.
사도행전 5:3-4 – 성령은 하나님.
이 구절들을 종합하면 성경은 한 분 하나님(신명기 6:4)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하나님이시며
서로 구별되는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진리를 보여 줍니다. 이것을 교회는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남상호 영동] [오후 10:02] 요한복음 16장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보았다고 예수님이 빌립에게
말씀 하셨고
또한 고전 15장 45절 하반절에 마지막아담은 생명주는영이 되었다고 하는 말은 예수가 성령이
되심으로 연합체 즉 일체성을 말합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받아서는 안되며 저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남상호 영동] [오후 10:03] 요한서신과 그리스도에 관한 동영상 내용의 성경적 검토
이 동영상의 내용은 요한서신을 해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 대속제사, 살려 주는 영,
재림, 적그리스도, 삼위일체, 그리고 로고스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동영상에는 성경 말씀과 연결하여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말씀들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본문이 직접 말하지 않는 결론을 내리거나,
자신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라지와 짐승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부분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동영상의 주장을 하나씩 나누어, 성경이 직접 말하는 부분과 해석을 통하여 확장한 부분,
그리고 성경 말씀과 맞지 않는 부분을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
동영상에서는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양으로 인자 예수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부인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신이 어떻게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생각하며 신과 사람의 연합을 부인하였다는 것이다.
요한서신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경계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 요한일서 4장 2–3절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요한이서 7절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에 관한 동영상의 지적은
요한서신의 말씀과 연결된다.
그러나 동영상에서 이를 “하나님이 육신의 모양으로 인자 예수로 오셨다”고 표현한 부분은 성경의
표현을 따라 좀 더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요한복음 1장 14절
요한일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 요한일서 4장 14절
성경이 직접 말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아버지가 곧 아들이 되어
오셨다는 뜻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요한서신은 아버지와 아들을 분명히 구별하면서도 아버지가 보내신 아들이 육체로 오셨다고
증언한다.
2.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물로 자신을 드리심
동영상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죄의 짐을 벗고 구원받을 수 없으므로,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대속물이 되어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셨고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내용은 성경이 분명히
증언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베드로전서 2장 24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 고린도후서 5장 21절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 이사야 53장 12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가복음 10장 45절
또한 예수께서 죽음을 당하실 수 있는 혈과 육을 함께 지니고 오셨다는 것도 히브리서가 증언한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 히브리서 2장 14절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히브리서 10장 5절
따라서 다음 내용은 성경에서 확인된다.
사람은 스스로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분의 피로 새 언약이 세워졌다.
그 제사는 단번에 이루어졌다.
다만 동영상에서 “하나님 자신이 대속죄물이 되었다”고 말한 부분은 성경의 표현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성경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이 자신을 드리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 히브리서 9장 28절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 없이 모두를 “하나님 자신”이라는 한 표현으로 합치면, 요한서신이 반복하여
밝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흐려질 수 있다.
3. 예수님의 육체로 오심과 십자가를 ‘표상’이라고 한 주장
동영상에서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셔서 대속물로 죽으신 것은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표상이며,
그 실제 적용은 그분이 살려 주는 영으로 교회와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 임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십자가를 ‘표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히브리서가 말하는 순서와 맞지
않는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율법과 제사와 성막을 그림자와 비유라고 말한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 히브리서 10장 1절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 히브리서 9장 9절
구약의 제사와 성막이 그림자와 표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그 그림자가 가리키던 실체이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히브리서 10장 10절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량을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 히브리서 9장 12절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흐름은 다음과 같다.
구약의 제사와 성막은 그림자와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그 그림자가 가리키던 실제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증언하시며 믿는 자 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로 오심과 십자가가 표상이고, 성령의 내주가 그것의 실제라고 구분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그림자와 실체의 관계를 뒤바꿀 위험이 있다.
4. 살려 주는 영으로 교회에 오신 것을 재림이라고 한 주장
동영상에서는 독생자 예수로 오셨던 분이 대속제사를 완성하신 후 살려 주는 영으로 믿는 자들에게
다시 임하셨으며, 이것을 재림이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에는 다음 말씀이 있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 고린도전서 15장 45절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들에게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요한복음 14장 18절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 요한복음 14장 23절
이 말씀들을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믿는 자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오심과 그리스도의 내주를 신약에서 말하는 장래의 재림과 완전히 동일한 사건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 사도행전 1장 11절
바울도 주께서 장차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말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빌립보서에는 구원하는 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기다리며, 그가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과 같은 형체로 변화시키실 것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 빌립보서 3장 20–21절
성경에는 현재 이루어진 사실과 장차 이루어질 사실이 함께 나타난다.
현재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마음에 거하신다.
아버지와 아들이 믿는 자와 함께 거처하신다.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다.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살아 있는 자들이 변화된다.
낮은 몸이 영광의 몸과 같은 형체로 변화된다.
믿는 자들이 그분을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보게 된다.
현재의 내주와 장래의 나타나심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신약은 둘 중 하나를 없애지 않고 두 사실을 함께 말한다.
5. 장래의 재림을 믿는 것은 단번의 속죄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주장
동영상에서는 예수께서 단번에 영원한 대속제사를 완성하셨는데도 어느 날 인자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고 믿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진 대속제사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히브리서 9장 28절은 단번의 속죄와 두 번째 나타나심을 한 구절 안에서 함께 말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히브리서 9장 28절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려지셨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다.
두 번째 나타나심은 다시 죄를 담당하거나 또 다른 대속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분은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것을 믿는 것이 단번의 속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단번의 속죄와 두 번째 나타나심을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말하지 않고 함께 증언한다.
첫 번째 오심은 죄를 담당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두 번째 나타나심은 다시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시는 것이다.
6.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을 가라지라고 한 주장
동영상에서는 혼잡한 교리의 열매가 삼위일체 교리이며, 결과적으로 삼위일체를 믿는 자들은 가라지이고
진리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일서가 적그리스도에 관하여 직접 말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 요한일서 2장 22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요한일서 2장 23절
요한서신에서 적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이며,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이다.
‘삼위일체’라는 후대의 신학 용어는 성경에 직접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 교리가 성경 말씀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는지 살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받아들인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을 가라지, 이성 없는 짐승,
진리의 영이 없는 자 또는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는 말씀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교리를 말씀에 비추어 검토하는 것과 그 교리를 믿는 모든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가라지로 판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 고린도전서 4장 5절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 로마서 14장 4절
7. 자신의 재림 해석을 반대하는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한 주장
동영상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으로 교회에 이미 재림하셨다는 가르침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 곧 안티그리스도 또는 적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특정한 재림 해석에 반대하는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요한서신이 제시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하는가.
아버지와 아들을 시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
처음부터 들은 사도들의 말씀 안에 거하는가.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 요한일서 2장 24절
어떤 사람이 장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다.
요한 자신도 그리스도께서 장차 나타나실 것을 기록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요한일서 3장 2절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현재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장차 그분이 나타나실
것을 말한다.
8. “신이 떠나면 인간은 죽고 신이 돌아오면 살아난다”는 주장
동영상에서는 신이 떠나면 인간은 죽고 신이 다시 돌아오면 살아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을 살펴보며 창세기 2장 7절과 야고보서 2장 26절을 인용할 때에는 원문에 따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창세기 2장 7절의 히브리어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호흡을 그의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혼이 되니라.”
— 창세기 2장 7절
여기서 ‘생혼’은 히브리어 נֶפֶשׁ חַיָּה(네페쉬 하야)이다. נֶפֶשׁ(네페쉬)는 ‘혼’, חַיָּה(하야)는 ‘살아 있는’을 뜻한다.
그러므로 ‘생령’이라고 번역하기보다 ‘생혼’ 또는 ‘살아 있는 혼’이라고 하는 것이 원문을 더 정확하게 나타낸다.
야고보서 2장 26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영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야고보서 2장 26절
여기서 ‘영’은 헬라어 πνεῦμα(프뉴마)이다.
ψυχή(프쉬케), 곧 혼이 아니다.
따라서 “영혼 없는 몸”이라고 번역하면 영과 혼을 하나의 낱말처럼 합치게 된다.
원문을 따라 “영 없는 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이 말씀들이 모든 사람에게 원래 하나님의 영이 거하다가 떠났고, 구원받을 때 그 하나님의
영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자를 구별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로마서 8장 9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생명이니라.”
— 로마서 8장 10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로마서 8장 11절
바울은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에게도 몸이 아직 ‘죽을 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죽을 몸이 장차 살리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신다는 이유만으로 재림과 몸의 구원이 이미 모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로마서 8장 11절은 성령의 현재적 내주와 죽을 몸이 장차 살리심을 받는 일을 함께 말한다.
9.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이시며 만유의 주재라는 주장
동영상에서는 예수께서 만유이시며 만유의 주재이시고, 만물과 만상과 만사의 주인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시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성경이
분명히 증언한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 골로새서 1장 16–17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요한복음 1장 3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로마서 11장 36절
또한 골로새서에는 다음 말씀이 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 골로새서 3장 11절
그러나 이 말씀은 새사람 안에서 헬라인과 유대인, 할례파와 무할례파, 야만인과 스구디아인,
종과 자유인의 구분이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만유시고 만유 안에 계신다는
문맥에 있다.
따라서 이를 모든 세상의 존재와 현상과 사건 자체가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 안에 함께 서 있으며 그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과,
만물 자체를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10. 로고스를 ‘모든 존재와 현상 세계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설명한 부분
동영상에서는 로고스가 모든 존재와 만유의 주인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λόγος(로고스)는 문맥에 따라 말, 말씀, 진술, 소식, 설명, 이유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요한복음 1장에서 로고스는 단순한 소리나 기록된 문장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장 1절
요한복음은 그 말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 말씀은 태초에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만물이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어졌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러므로 “만유의 주인”이라는 것은 λόγος(로고스)라는 단어 자체의 사전적인 뜻이라기보다,
요한복음이 그 말씀에 관하여 증언하는 내용이다.
로고스라는 낱말의 뜻과 그 로고스이신 분에 관하여 요한이 증언한 내용을 구분해야 한다.
전체적인 정리
이 동영상의 내용에는 성경 말씀과 직접 연결되는 중요한 내용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다.
그분이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사는 단번에 이루어졌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신다.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그러나 동영상 속에는 성경이 직접 말하지 않거나 성경 말씀과 충돌하는 주장도 나타난다.
예수님의 육체로 오심과 십자가를 구원의 표상이라고 한 부분은, 구약의 제사와 성막을 그림자로 말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실제로 말하는 히브리서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사실만을 재림이라고 규정한 부분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며, 죽을 몸이 변화될 것을 말하는 신약의 말씀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장래의 재림을 믿는 것이 단번의 속죄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단번에 드려지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을 함께 말하는 히브리서 9장 28절과 맞지 않는다.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모든 사람을 가라지와 짐승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것은 요한서신이 직접 제시한
적그리스도의 기준을 넘어선 판단이다.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으로 이미 재림하셨다는 자신의 해석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그리스도라고
한 것도 요한서신의 말씀을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적용한 것이다.
“신이 떠나면 인간은 죽고 신이 돌아오면 살아난다”는 표현도 성경 전체의 말씀을 통하여 더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창세기 2장 7절은 사람이 ‘생혼’이 되었다고 말하고, 야고보서 2장 26절은 ‘영 없는 몸’이 죽었다고
말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원래 거하다가 떠났으며 구원받을 때 다시 돌아온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가장 분명하게 동영상의 중심적인 재림 주장을 살펴볼 수 있는 말씀은 히브리서 9장 28절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려지셨다.
그리고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단번의 속죄와 장래의 나타나심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성경은 이 두 사실을 함께 증언한다.
요한일서의 흐름도 이와 같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요한일서 2장 28절
요한은 현재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분이 나타나실 것과 그분의 임재 가운데 서게
될 것을 말한다.
또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요한일서 3장 2절
따라서 요한서신은 현재 그분이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사실과 장차 그분이 나타나실 사실을 어느 하나로
없애지 않고 함께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현재의 거하심을 장래의 나타나심으로 대신해서도 안 되고, 장래의 나타나심을 현재의
거하심으로 대신해서도 안 된다. 두 사실을 각각 본문이 말하는 그대로 두고 함께 살펴보는 것이 말씀에
가장 충실한 태도이다.
[남상호 영동] [오후 10:05] 길형제와 단체방 에서 대림하는 것들입니다.
===========여기까지는 지방 교회의 교리를 남상호 형제가 옹호하며 인용한 내용입니다====
[라도관] [오후 10:16]
육신/육체의 모양- 사람 즉 인자 예수로 오셔서 대속물로 단번에 드려서 받으심이 되었음.
지금 주는 그 영이 되어 참 제자들 속에 오셨고 제자들과 함께 계심.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내 신을 부어주리라는 예언이 실제로 나와 내가 속한 교회 중에 성취되었는가?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성경 용어인가?
사람이 지어낸 다른 교훈인가?
사람이 함부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빼거나 더할 수 있는가?
신앙의 절대 기준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인가? 사람의 신학 교리인가?
[남상호 영동] [오후 10:17] 삼위일체와 성만찬은 나장노님과 이영화장노닌에 만남이 약속되있으니
이주제는 그때까지보류하자고 했읍니다
[라도관] [오후 10:18] [바이블 애플]
개역개정 디모데전서 2장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라도관] [오후 10:20] [고후 3:17] 더구나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라도관] [오후 10:22] [바이블 애플]
개역개정 요한복음 1장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도관] [오후 10:23] [바이블 애플]
개역개정 고린도전서 15장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도관] [오후 10:30]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실 수 없어 떠나셨던 나의 영과 마음에 구속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 되어 재림하셨고, 내 속에 임재하시며 나를 다스리시며 신의 영광으로
인도하시므로 동행하는 중인가?
[남상호 영동] [오후 10:30] 나장노님
삼위라는 개념이 제 개인으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부정하는거 아닌가 싶읍니다.
삼위에 위가 각 각이라는개념아닌가요?
[라도관] [오후 10:33] 그 의미가 무언지는 주장하는 저들도 설명하지 못하며 장황한 말장난만 합니다.
성경 용어가 아니니 애써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라도관] [오후 10:59] [바이블 애플]
개역개정 사도행전 2장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내 육체 속에 그 영이 되신 하나님의
성신을 부어주시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는 육체입니다.
[남상호 영동] [오후 11:39] 어떻하든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 니케아회의에서의
삼위일체론입니다
나장노님이라면 그당시 그상황 이라면 어떤 반론를 펼쳐을까요?
2026년 8월 2일 일요일
[라도관] [오전 8:36] 니케아 종교회의?
유대교의 공회-대제사장 무리가 모여서 예수를 이단자라고 정죄한 유대인의 율법이라는 자신들이
숭배하는 교리를 들이대며 신성 모독 죄로 몰아서 사형수로 결정한 악마들의 칼춤 잔치에 동조하면
악마 집단이 되지요.
대제사장 무리의 사주를 받아서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외치며 소동을 일으킨
유대교인 무리와 주님의 제자들이 구별되지 않나요?
그렇다면 현대판 자칭 유대인 무리-사탄 무리 중의 하나겠지요?
신앙의 기준이 기록된 말씀인지 로마교의 교부들이 유포한 조직신학인지?
나라면 주님의 영을 받은 참 제자인지?
악마의 다른 영을 받은 사탄 무리인지 스스로 성경으로 검증할 겁니다.
[라도관] [오전 8:48] 에덴동산의 첫 아담처럼 진리를 옳게 분별하지 못하면 뱀의 미혹을 받은 여자가
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 함께 먹고 마귀의 것으로 팔려가지요.
계시록에 여자로 말미암아 더럽히지 않고 정절을 지키는 자가 누구일까요?
왜 창세기 3장 말씀이 계시록 14장에 연결될까요?
[라도관] [오전 8:49] [바이블 애플]
개역개정 요한계시록 14장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라도관] [오전 8:51] 로마교 교부들은 혼인 하지 않으니 여자로 말미암아 더럽히지 않은 순결한
자들일까요?
첫댓글 신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스라엘이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소위 쉐마/샤마(이스라엘아 들으라)
율법입니다.
샤마 율법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그분의
말씀을 듣고 사랑하고 대대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고 사랑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소위 지방교회 지도자들인 말쟁이들의 장황한 논리를 이스라엘의 샤마/쉐마 율법으로
답변합니다.
지방 교회를 포함한 세상 교계는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애써
부인하며 인자로 오셨던 주님은 지금 그 영이 되어 제자들의 영과 마음에 재림하셨으며
이방인의 때 끝에
영광 중에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와 함께 나타내시는 재림 완성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나라에 임하시는 주님과 오는 세상에 나타내실 주님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소위 삼위일체 교리를
신봉하므로 세분의 신들이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 성령만 보내셨고 예수님은 그들이 고대하는
재림 때 물질계의 구름을 타고 아기 천사들의 나팔소리로 오실 것을 고대하는 것이며 그 때 자신들을
이 육신의 몸이 죽지 않고 홀연히 변화되어 창공 하늘로 올리워 갈 것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사37: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요5:44-
요17:3
딤전6:15-
세속교계가 고대하는 재림은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던 그 인자 예수가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허망한 신념이다.
그러나 인자 예수가 창공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허망한 재림은 악마가 진리를 믿지 못하게 하여 망하게 하려고 유포한 거짓의 아비에게 속은 결과이다.
그 영이 되신 주님은 데려가신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치천사들인 성도)와 함께 나타내시어 세상과 세상 교계를 심판하고 새 세상인 주와 그 그리스도의 왕국을 펼치시려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과 함께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셔서 예언된 메시아의 왕국을 세워 그 천년이 차도록 경영하신다.
그 때는 인맞은 12지파가 지상에서 제사장 나라를 회복하여 흰옷을 입은 큰 무리를 얻을 것이며 그 천년이 차면 곡과 마곡의 전쟁을 통해서 지상의 인간 나라를 최후로 심판하고 아들은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심으로 영세로 이어진다.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고전 15:22-24-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