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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시환혼(借尸還魂)-2
아군과 궁아라는 서안으로 이동할 때는 노숙이 아닌 객점을 이용했다.
서안까지 가는 길이 멀기 때문에 피로가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숙보다는 객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군과 궁아라는 밤이 깊어지자 마을에 있는 객점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고
따로 방을 잡아 방으로 들어갔다.
궁아라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열어두고 목욕을 했다. 오늘쯤이면 답신이 올 것이다.
그녀가 목용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붉은 매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매의 다리에 매달린 죽통에서 서찰을 꺼냈다.
서찰에는 아군이 익힌 칠성둔형에 대한 정보와
아군이 수라기와 수라마령신공이란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먼저 칠성둔형은 200년 전 무영천군(無影天君)이라 불리던 전설적인 기인의 독문보법으로
무영천군은 칠성둔형과 천면역용술이란 두 가지 절기로 천하를 주유했던 고수라고 했으며
무영천군은 후예를 남기지 않아 칠성둔형과 천명역용술은 그 맥이 끊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궁아라는 아군이 잠마동에서 복면인에게 칠성둔형을 익혔다고 들었다.
맥이 끊어졌다는 칠성둔형을 익히고 있다가 아군에게 전한 사람은 누굴까?
그는 무영신군의 후예일까? 그가 무영신군의 후예라면 무영신군의 천면역용술도 익히고 있었을 것이고
아군에게 칠성둔형을 전했다면 천면역용술도 전했을 것이다.
궁아라는 천명역용술에 주목했다.
천면역용술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얼굴뿐만 아니라
뼈와 피부색까지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기공(奇功)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가 칠성둔형을 익히고 있다면 천면역용술도 익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만일 천면역용술을 익히고 있다면 지금의 모습이 본 모습이 아닐 가망성도 있다.
물론 잠마동에서 보았던 아군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눈빛이 달라진 정도다.
잠마동에서 아군을 처음 보았던 아군은 약간은 멍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아군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궁아라는 잠깐 고민에 잠겼다.
이제 아군이 익히고 있는 무공은 대충 알아냈다.
아군은 극마관에서 수라기와 수라마령신공을 익혔고, 연무관에서 칠성둔형을 익히고
천면역용술을 익혔을 가망성이 많다.
아직 수라기와 수라마령신공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진 무공인지 파악하진 못했지만
소림의 반각대사나 무당의 단목신검을 처리한 실력으로 보아
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고수임이 분명했다.
아군은 상부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사람이다.
그가 십이사 중에서 일사이며 극마관을 출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부에서 파악하기로 잠마동을 만든 배화교조차도 극마관이 열린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극마관에 이르는 길에 설치된 죽음의 함정들과 극마관에 안배된 것은
인간이 극복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군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극마관에 도달했고
극마관의 안배인 수라기와 수라마령신공을 오성이상 익히고 출관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파악하기로 그는 십이사 중에서 유일하게 마령단에 중독 되지 않은 사람이다.
궁아라는 서찰을 써서 매의 다리에 매달린 죽통에 집어넣고 매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궁아라는 아군을 설득해 보겠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아군의 정체와 그가 가진 실력이 어느 정도 파악된 지금
아군은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군과 궁아라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났다
. 궁아라는 이동 중에 아군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죠.”
아군은 궁아라를 보며 얼굴을 붉힌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뚫려지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 혹시 천면역용술을 익히고 있지 않나요.”
“예? 무슨 말이죠.”
“제가 알기로 칠성둔형은 무형천군의 독문보법으로 알고 있어요.
무형천군은 칠성둔형과 천면역용술로 유명했던 분이죠.”
“저에게 무공을 알려주신 분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당신말대로 내가 익힌 칠성둔형과 천면역용술이 무형천군의 절기라고 하더군요.”
“천면역용술도 익히고 있군요. 그럼 혹시 지금 모습이 역용한 모습인가요.”
“예? 그걸 왜 물어보죠.”
“역용한 모습이라면 기분이 나빠요.
당신과 내가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생사를 같이하는 동료인데
상대방의 얼굴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봐요. 당신이라도 기본 좋겠어요.”
“잠마동에서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신체적으로 작은 변화가 있었어요.
나도 잠마관을 나와서야 변한 내 모습을 보았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더군요.
너무 많이 변해서 아가씨도 날 못 알아볼 것 같았어요.
아가씨가 날 못 알아보면 큰일이다 싶었죠.
그래서 본래 가지고 있던 모습으로 역용을 한 거데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미안해요. 당신 생각을 못했군요.”
“잠마동에서 많이 변했어요? 저..본 모습을 보여주세요. 어려운 부탁인가요?”
“꼭 보고 싶어요.”
“혹시 나중에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가 공격할 수도 있잖아요.
제가 알기로 천면역용술은 내공으로 역용을 한다고 알고 있어요.
당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다른 일로 내공이 흩어지면 역용술이 풀리지 않나요.
그때 제가 못 알아보면 어떡해요.”
“좋아요.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보여드리죠.”
아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궁아라는 아군이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자 입이 벌어진다.
아군의 얼굴이 너무나 멋지게 변했기 때문이다.
밑으로 쳐진 눈 꼬리가 위로 올라오며 제자리를 잡고 뭉뚝하던 코가 오뚝하게 변했다.
그것뿐만 아니다. 약간 사각형으로 보이던 얼굴이 타원형으로 변하고 눈썹이나 입술도 변했다.
한 마디로 까마귀가 봉황으로 변한 것이다.
궁아라는 아군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은 웃기지만 아군이 지금 얼굴로 여장을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이상하죠. 너도 한번 봤는데 무척 어색하더군요. 꼭 내 가면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저..정말 멋있어요. 지금 여장을 하면 저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아요.”
“참~ 못하는 말이 없네...보셨으니 됐죠.”
아군은 다시 고개를 돌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궁아라는 아군의 얼굴이 다시 변하자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친 아끼던 물건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
“그냥 본 얼굴로 다니세요. 왜~ 역용을 하고 다니는 거죠.”
“저도 제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입니다. 당연히 아가씨도 몰 알아보겠죠. 그래서 역용을 하고 다닙니다.”
“그..그럼. 아가씨가 당신을 못 알아 볼 것 같아서 역용을 한단 말이에요.
지금 당신 옆에 아가씨도 없는데 말이에요”
“우연히 아가씨가 절 발견할 수도 있잖아요. 아가씨가 절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치면 어떡해요
. 전 단 하나의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휴~ 정말 당신이란 사람은..수혜라는 여자...정말 행복한 여자네요.”
“자~ 이제 서둘러요. 서안까지는 아직 길이 멀어요.”
아군은 말을 몰아 먼저 달려갔다.
궁아라가 다시 수혜이야기를 꺼낸 이상 말이 많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궁아라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가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군은 궁아라가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궁아라는 아군을 따라간다. 궁아라는 아군의 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군이 역용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본 모습이
그렇게 잘생긴 미남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군은 모든 여자들이 갈망하는 절대미남자였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한 여자를 목숨같이 사랑하는 순정파다.
그는 수혜이야기만 나와도 얼굴에 활기가 넘친다.
궁아라는 수혜가 미웠다.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그는 수혜만 생각한다.
같은 여자로써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수혜를 생각하는 것만 보아도 그의 인간됨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번 마음을 정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심지를 가진 사람이다.
남의 말이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궁아라는 아군의 본 모습을 보고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반신반의하며 아군을 지켜보기만 했지만
이제 아군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서안에 도착한 아군은 두루마기를 다시 꺼내보았다.
두루마기에 아미파의 목정신니를 처리할 장소와 날짜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궁아라와 아군은 자은사(慈恩寺)로 바로 출발하려 했다.
목정신니를 처리할 장소가 서안에 있는 자은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서안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눈이죠.”
“조금 있으면 원단(우리나라의 설)이에요. 지금이 겨울이니 눈이 오는 것이 정상이죠.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해가 지나겠군요.”
“그래요. 벌써 원단인가? 잠마동에 들어가고부터 시간개념이 없어져서 모르고 있었어요.”
“우리가 잠마동에 들어갈 때가 성조 6년이었죠. 그리고 원단이 지나면 성조 8년이 되요.
우리가 잠마동에 있었던 기간이 이년이 조금 안돼는 기간이었다는 거죠.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성조 8년?...그럼 내가 18살이 되는 건가?”
“18살?...뭐야.당신 그럼 지금 17살이에요. 야~ 이거 속았다. 내가 내년이면 20살인데..
.이제 보니까 동생이었네.”
“그럼 당신이 19살이에요. 음~ 그렇구나. 난 동갑인줄 알았어요.”
“치~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요.”
“예? 누...누나요?”
“모르고 있을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 내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았으니
당연히 누나라고 불려야하는 거 아닌가?”
“쩝~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알았어요. 앞으로 누나라고 불려드리죠.”
“호호호~ 졸지에 동생하나 생겼네...앞으로 잘 부탁해 아군 동생.”
“눈발이 거칠군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오늘은 가까운 객점에서 쉬고 내일 자은사로 출발하죠.”
“그래요. 먼 길을 달려왔더니 피곤하네요. 오늘은 쉬고 내일 출발해요.”
아군과 궁아라는 서안에 있는 객점으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아군은 숙소에 들어와 창문을 열었다. 창밖은 오통 하얀색이었다.
함박눈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얀색으로 색칠한 것이다
. 아군은 창밖을 보다가 수혜가 생각났다.
수혜와 눈싸움하던 기억이 난 것이다. 아가씨는 눈을 좋아했다.
그녀는 눈이 오면 벽궁세가를 벗어나 들판으로 나와 눈사람을 만들거나 자신과 눈싸움을 하며 놀았다.
그때 대부분 자신이 아가씨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은 아가씨가 아플까봐 눈을 피하기만 할뿐 눈덩이를 아가씨에게 던지지 못했다.
아군이 한참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궁아라가 들어왔다.
궁아라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기 전에 점소이를 불러 죽엽청과 안주를 주문했다.
점소이가 술과 안주를 가져오자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엷은 속옷을 걸쳤다.
그녀가 입은 속옷은 너무 얇아서 속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궁아라는 평소하지도 않던 화장을 했다.
입술을 붉은 색으로 칠하고 눈썹도 검게 칠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한참 화장을 하더니 방긋 웃어본다.
거울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궁아라는 자신의 화장에 만족한 모양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숨을 쉬어본다. 그녀는 오늘 아군을 유혹해볼 생각이다.
아군은 이상한 놈이다. 자신이 익힌 소녀미혼신공이나 소녀접안신공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은 흡정마녀의 미혼공을 십성이상 익힌 상태다.
저번에 반각대사를 처리할 때는 일부러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자신이 전력을 다했다면 반각대사 쯤은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다.
사실 소녀미혼신공 으로 유혹하지 못할 남자가 없다.
당시 흡정마녀는 소녀미혼공으로 수많은 남성들을 현옥시켰다.
그녀에게 희생된 사람 중에는 이름난 고승들이나 도사들도 많았다.
그런데 아군에게 흡정마녀의 마혼공이 통하지 않는다.
잠마동에 있을 때도 넘어오던 놈이 지금은 유지부동이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녀는 오늘 다시 한번 전력을 다해 아군을 유혹해볼 생각이다.
아니...필요하다면 그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줄 생각이다
.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인 것이다.
그녀는 쟁반을 들고 아군의 방으로 갔다.
“동생 뭐해.”
궁아라는 아군의 나이를 알고부터 이제는 아군을 동생이라 부른다. 아군은 뒤를 돌아보았다
. 궁아라가 얇은 속옷만 입고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데 쟁반에 술과 약간이 안주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뭡니까?”
“술이야. 조금 있으면 원단이잖아. 내일 다시 출발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 시간 있을 때 축하하자.”
“술이요?..누님은 술 좋아하세요.”
궁아라는 아군이 앉아있는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고 자신은 아군의 반대편에 앉았다.
아군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고개를 숙인다.
궁아라는 얼굴이 붉어진 아군을 보면 얇은 미소를 지었다.
아군이란 사내가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술잔을 아군에게 내밀고 술을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즐겨 마시진 않아. 다만 가끔 마시고 싶을 때가 있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동생은 술 싫어해.”
“글쎄요. 마셔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아니 지금까지 한번도 마신 적이 없단 말이야. 남자가 술도 안마시고 뭐했어.”
“술 마실 기회가 없었죠. 또 굳이 마시려 하지도 않았고..”
“그럼 오늘 기회가 왔으니 마셔봐. 난 고민 있을 때 마셔. 자~ 우리 건배해.”
아군은 술잔을 들어서 단숨에 마셔버리니 술이 목구멍을 지나며 짜릿한 느낌이 들었고,
식도를 타고 내려간 술이 위장으로 들어가자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궁아라가 가져온 술은 지독히도 독한 죽엽청이었기 때문이다.
궁아라는 술을 마신 아군이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자 ‘깔깔’대고 웃는다.
“이런 걸 무슨 맛으로 마시죠. 속이 타는 것 같네요.”
“그건 단숨에 마셔버리는 사람이 바보지.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셔야지.”
“그...그래요. 미리 말씀하시죠.”
“자~ 아 해. 안주 먹으면 괜찮아져.”
“제가 먹을게요.”
아군의 말에 궁아라가 눈을 흘긴다.
아군은 궁아라의 표정을 보고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입을 벌렸다.
그녀가 젓가락을 계속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아먹지 않으며 계속 들고 있을 기세다.
“자~ 한잔 더해.”
“그만 마실게요. 속이 안 좋아요.”
“무슨 남자가 한잔 먹고 빌빌거려. 남자라면 몇 항아리 술을 마셔도 끄떡없어야지.”
“그...그래요. 아닌 거 같은데...하여튼 주세요.”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지 말고 무조건 마시는 가야. 나도 취하고 싶단 말이야.”
“눈이 오니까 누님도 기분이 쳐지는 모양이죠.
좋아요. 한번 마셔보죠. 취하면 기분 좋아진다고 했죠. 자~ 주세요.”
아군은 술잔을 내밀었고 궁아라는 아군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아군은 이번에는 단숨에 마셔버린다.
홀짝거리며 마시기는 술잔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궁아라는 빙긋 웃더니 자신도 술을 마셨다. 얼
마 지나지 않아 궁아라가 가져온 술이 바닥이 났다.
술이 떨어지자 아군은 밖으로 나가 죽엽청을 두 항아리를 가지고 왔다.
“아니 얼마나 마시려고 항아리로 가져왔어.”
“취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주전자로 먹어서 취하겠어요. 잔으로 마시니까 간에 기별도 안가요.”
“호호호~ 술이 받는 모양이네. 좋아. 우리 한번 죽어보자.”
“죽어요. 술 많이 먹으면 죽어요.”
“호호호~ 정말 순진한거야. 순진한척 하는 거야. 술 먹고 죽었다는 사람 봤어.”
“난 또...자 드세요.”
아군과 궁아라는 이제는 술잔도 필요 없이 항아리 체 술을 마신다.
“저기..누님은 어쩌다가 잠마동에 들어왔어.”
“뭐~ 나 말이야.”
두 사람 모두 혀가 꼬였다.
궁아라는 일부러 내공을 거두고 술을 마셨고,
아군도 굳이 수라기를 일으켜 술기운을 몰라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들이 가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내가 지원해서 들어갔어.”
“지~~지원하다니...무슨 말이야. 그럼 잡혀온 것이 아니고 스스로 들어왔단 말이야.”
아군도 술이 취하자 자연스럽게 경어를 쓰지 않는다.
술로 인해서 서로를 막고 있던 담이 하나 무너진 것이다.
궁아라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손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먹었다.
“쩝~ 동생은 잘 모르겠지만 잠마동에 들어간 사람은 그게 세 부류가 있었어.
동생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잡혀온 경우가 있었고, 나처럼 일부러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어
.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마동을 만든 사람들이 들어 보낸 사람들이 있었어.”
“그래...누나는 잠마동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 지금까지 나에게 숨기고 있었어.”
“숨기려고 한건 아니야. 지금 이야기하잖아. 하지만 모두 알지는 못해. 대충 알지.”
“잠마동을 만든 놈들이 누구지. 또 잠마동주는 누구야?”
“내가 말해주기 전에...동생한테 먼저 물어보게 싶은 게 있어.
동생은 내가 잠마동주와 한편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설마...아니지. 잠마동주와 한편이라면 마령단에 중독되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잠마동을 출관한 12명 중에 잠마동주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 두 명 있어.
물론 그들도 마령단에 중독된 상태야. 잠마동주는 같은 편이라고 특별히 대하지 않아.”
“그래...하긴 잠마동에서 죽어간 사람이 얼만데..죽은 사람들 중에는 잠마동주와 연관있는 사람들도 많았겠지.”
“동생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 내가 잠마동주와 같은 편이면 어떻게 할 거지.”
“휴~~ 내가 미워하는 놈은 잠마동주야. 하지만 무조건 미워하지는 않아.
아가씨만 무사하다면 잠마동주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고생은 했지만 잠마동에서 얻은 것도 많잖아.
단지 아가씨가 죽었다면 말이 틀려져. 아가씨가 죽었다면...”
“수혜는 살아있어. 그녀는 검마동을 출관해서 삼사라고 불리고 있고
빙마관을 출관한 팔사인 기라는 놈과 함께 있어.”
“저...정말이야. 누나는 아가씨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구나.”
“아군..이제 말해봐. 수혜는 죽지 않았어.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상관없어. 나는 아가씨만 찾으면 돼. 아가씨는 어디 있는 거야. 빨리 대답해.”
“상관없어?...아군은 아가씨만 무사하다면 잠마동주를 용서하겠다는 말이야.
그가 무슨 생각으로 잠마동을 만들었고 십이사를 키워 무림인들을 암살하게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단 말이야.”
아군은 궁아라이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궁아라를 얼굴을 주시했다.
궁아라는 술기운 때문에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군은 항아리를 들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속이 타기 때문이다.
궁아라는 아가씨의 행방을 알고 있는 눈치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궁아라의 손목을 비틀어서라도 당장 아가씨의 행방을 알아내고 싶지만
그동안의 궁아라와 든 정도 있고, 자신의 협박에 굴복할 궁아라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뜸이지 말고 속 시원하게 해봐~”
궁아라는 입술을 깨물고 아군을 주시했다. 아군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아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더니 입을 열었다.
“옛날에 꿈 많던 소녀가 있었어. 소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지.
소녀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거든.
그런데 소녀의 꿈은 펼치기에 소녀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어.
소녀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아였고 거지들 소굴에서 동냥질이나 하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야.
소녀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고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했어.
그런데 어느 날 거지소굴에 예쁜 언니들이 찾아와서 소녀 어디론가 데려갔어.
왕초가 은자 한 냥에 소녀 넘겨버린 거지.
소녀는 이제 노예로 팔려가는 자신의 처지를 낙담했지만
자신이 언니들에게 선택된 것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게 되었어.
소녀는 언니들에게 글도 배우고 무공도 배우게 됐어.
소녀는 나중에 언니들이 천상루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낙담했어.
천상루는 유명한 기루였기 때문이지.
소녀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녀밖에 될 수 없다는 것에 낙담한 한 거야.
아군...아군이 소녀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궁아라의 말을 듣고 있던 아군은 궁아라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지금 궁아라가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군은 다시 술을 마셨다. 궁아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니 정신이 몽롱해 진다.
“나도 고아야. 부모가 누군지 몰라. 나는 꿈도 없는 놈이야..
그냥 주어진 삶에 충실히 살아가려해. 하지만 뭐가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거야..
.내가 소녀라면 어떻게 했을 거냐고...기녀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라면 도망쳤겠지.”
“소녀도 도망치고 싶었어.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어 웃음이나 파는 기녀가 되는 것은 죽어도 싫었거든..
.하지만 거지소굴에서 자신을 구해주고 글과 무공을 가르쳐준 언니들을 배신할 수 없었어.
그래서 언니들에게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했지..
.언니들은 소녀의 말을 듣고 소녀를 데리고 북해로 갔어
. 소녀는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무공을 익혔지. 그리고 소녀는 그곳의 4군자중 하나가 되었어..
.동생은 북해빙궁이라고 들어봤어.”
“북해빙궁?..그 북해 어딘가에 있는 여인들만으로 이루어진 신비한 문파라고 알고 있어.”
“대충 아는 구나...소녀는 바로 북해빙궁주을 수호하는 사군자중 죽(竹)이 된 거야..
그리고 사군자가 되어 처음 맡은 임무가 잠마동에 잠입하여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사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거였어.”
아군은 술을 마신다. 이제 취기가 올라와 정신이 몽롱하다. 궁아라도 마찬가지다
. 그녀도 이야기하는 중간 중간에 술을 마셨기 때문에 아군처럼 취해 있었다.
아군은 몽롱한 시선으로 궁아라를 본다.
궁아라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더욱이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라고 해야 속이 환하게 비추는 얇은 속옷이 전부였다
. 얇은 속옷사이로 봉긋한 젖가슴과 분홍색 젖꼭지가 보인다.
아군은 머리를 흔들었다. 자꾸만 이상한 상상이 머리 속에 스치기 때문이다.
궁아라는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신은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군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궁아라는 지금 흡정마녀의 미혼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과 미소 그리고 작은 행동에도 흡정마녀의 미혼공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궁아라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아군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본 모습을 보기 전부터 이다.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수혜를 대신하고 싶다.
그녀는 자신이 수혜가 되고 싶었다.
한 남자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이다.
아군은 다시 술을 마시려고 했다. 그런데 술이 떨어졌다.
한 항아리나 되는 술을 모두 마신 것이다.
“그러니까..뭐시냐...소녀가 누나라는 말이야.”
“그래..내가 바로 그 소녀야..동생..우리 빙궁를 도와죠. 우리 빙궁에 힘이 실어죠.”
“나보고 빙궁에 들어가란 말이야?”
“동생보고 빙궁에 입궁하라는 말은 아니야. 우리 빙궁을 도와달라는 거야.”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나보고 도와 달라는 거지.”
“동생은 모르겠지만 동생이 가진 능력은 무한해..거기에 내가 동생을 돕는다면
동생은 빙궁에 커다란 힘이 될 거야.”
“우리 탁 터놓고 이야기 합시다. 대중 누나 이야기는 들었어. 잠마동주는 누구야.”
“배화교의 삼공자 혁린영이야. 하지만 삼공자의 뒤에 배화교주가 있어.
실질적인 잠마동주는 배화교주라고 해야겠지.”
“배화교?...그들은 누구야.”
“마교라고 설명하면 알겠어. 하지만 중원에 있는 마교와는 틀려
그들은 중원 마교의 뿌리라고 보면 돼. 그들의 본거지는 신강에 있어.”
“배화교주가 잠마동주야..누나는 아가씨가 어디있는지 알아?”
“요동에 있다고 알고 있어. 하지만 정확한 나도 위치는 몰라. 그건 잠마동주만 알고 있어.”
“아가씨를 찾을 수 방법은 없어.”
“지금은 없어...하지만 천상루의 나선다면 수혜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정말이야. 정말 아가씨를 찾을 수 있어.”
“거짓말 아니야. 중원에는 다섯 개의 눈이 있어
. 천상루도 그중 하나야. 천상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아.”
“천상루?...천상루는 북해빙궁이 만든 단체야.”
“맞아. 천상루는 북해빙궁이 만든 거야.”
“좋아. 천상루에서 나선다면 아가씨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런데 북해빙궁과 배화교는 어떤 사이야.
들어보니 북해빙궁과 배화교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한 마디로 오월동주(吳越同舟) 같은 사이야.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거지.”
“배화교와 북해빙궁이 최종목적은 중원 무림의 정복이야? 대충 들어보니 그거 최종목적 같은데..”
“사실대로 말하면 배화교는 북해빙궁, 흑독애, 포달랍궁과 연합하여
중원 무림의 정복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어.
다만 우리 북해빙궁은 배화교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세력들처럼 배화교의 똘마니로 만족하기 보다는 우리가 전국을 주도하려 해.”
“누나 말을 들어보면 배화교나 북해빙궁이나 둘 다 나쁜 놈들이네..
.난 이런 싸움에 끼어들기 싫어. 난 아가씨만 찾으면 돼.”
“싫어...내가 이렇게 부탁해도 안돼는 거야.”
궁아라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아군은 몽롱한 눈빛으로 궁아라로 보면서도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배화교도 싫고 북해빙궁도 싫었다.
그들이 중원 무림을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다.
아군이 원하는 것은 아가씨다. 그는 아가씨만 찾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해. 북해빙궁에서 아가씨를 찾아주고 마령단의 해약을 구해준다면 빙궁을 도와줄게.
물론 계속 도와준다는 건 아니야. 아가씨를 찾고 마령단의 해약을 구할 때까지 도와주겠다는 거야.”
“내가 부탁해도 안 되는 거지..넌 수혜라는 아가씨만 찾는구나.”
“내가 원하는 건 아가씨를 찾는 거야..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 아가씨를 찾아서..
.아가씨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해줄 거야.”
궁아라는 눈물을 훔치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까지 버리고 매달려 보았지만 아군은 일인지하에 거절했다.
궁아라는 미혼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궁아라의 눈빛에 얇은 막이 생기며 몽롱한 눈빛이 된다.
소녀접안신공이 극성으로 올라가며 나타나는 증상이다. 아군의 눈이 궁아라의 눈과 마주쳤다.
아군은 몸이 뜨거워지며 숨이 막힌다.
당장이라도 궁아라를 안고 싶다. 그녀가 한없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궁아라의 손이 천천히 올라온다. 그녀의 손에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소녀접안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결과다. 궁아라의 손이 아군의 뺨을 만진다
. 아군은 얼굴이 불이 대인 듯이 뜨거웠다.
감성은 궁아라를 안아주라면 소리친다. 아군이 잡고 있던 항아리가 박살이 났다.
아군이 손에 힘을 준 결과다. 아군은 항아리 깨지는 소리에 펴듯 정신이 들었다.
그는 뺨을 만지고 있던 궁아라의 손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난 말이야. 꿈이 없는 사람이야. 돈에도 관심 없고, 명예를 싶은 마음도 않아.
더구나 권력에는 더더욱 관심 없어. 내가 바라는 것은 아가씨가 내 겉에 있는 거야.
그거면 만족해....배화교가 무림을 집어삼키던, 북해빙궁이 삼키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아가씨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죠. 그럼 나도 북해빙궁을 도와줄게.”
궁아라는 극성으로 펼친 미혼공이 깨져버리자 허탈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아군에게는 미혼공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면서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 궁아라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상부에 보고해서 알아볼게...대신 동생도 약속 지켜.”
“고마워 누나.”
아군은 궁아라가 아가씨를 찾아보겠다고 하자 궁아라의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궁아라는 쓰게 웃으며 손을 빼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군은 아침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술도 처음 마시는 놈이 너무 과하게 마셨기 때문이다. 아군은 어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궁아라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궁아라가 수혜를 찾아주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배화교가 무림을 노리고 잠마동을 만들었다는 정도다.
아군은 식사를 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오니 궁아라가 먼저 내려와 있었다.
궁아라는 아군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싸늘한 표정이다.
평소에도 다정다감한 사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찬바람이 불 정도는 아니었다.
아군은 그녀의 앞에 앉았다.
“누님 잘 잤어요.”
“잘 잤어요. 동생은 괜찮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어제 우리가 무슨 이야기 했어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네요.”
“동생은 술이 약한 모양이지...아무것도 기억 못해.”
“기억해요. 다만 아직 머리가 아파서 기억 못하는 것도 있죠. 정신이 맑아지면 기억날 겁니다.”
“그냥 잊어버려...식사나 하자.”
궁아라는 간단한 소면과 만두만 시켜서 식사를 했고, 아군도 간단한 소면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자은사로 향했다.
자은사는 서안에서 반나절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간만에 눈이 많이 온 모양이다.
자은사로 향하는 길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 아군은 차가운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맑아지며 어제일이 모두 기억났다.
궁아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그리고 배화교의 음모에 대해서도 기억난다.
그리고 자신이 수혜만 찾아주면 북해빙궁에 협력하겠다고 했던 것도 생각났다.
아군은 어제일이 모두 기억나면서 자신에 대해서 한번쯤 돌아보았다.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목표가 무언인가?
어제 궁아라에게 했던 말처럼 아가씨를 찾아 그녀 겉에 있는 것이 삶의 목적인가?
아군은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단 한번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누나..누나 꿈은 뭐죠.”
“뭐~ 갑자기 무슨 말이야.”
“어제 했던 말들이 생각나서..누나는 꿈이 많았다고 했잖아.”
“어제 일 모두 기억하는 거니.”
“모두 기억났어. 어제는 내가 많이 취했지...미안해...”
“뭐가 미안해.”
“내가 취해서 실수한 거 같아서...”“실수한거 없어. 방금 내 꿈이 뭐나고 물어봤어.
내 꿈은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거야.
옛날에는 다른 꿈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게 다야.”
“정말 그게 다야.”
“옛날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었고,
나중에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지고 남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어.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날 거지라고 놀리던 아이들..날 무시하던 어른들에게 모두 복수하고 싶었지.
그런데..아군을 보면서 그 꿈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걸 알았어.”
“예~ 저요. 왜요.”
“아군은 오직 한 여자만 생각하잖아. 그 수혜라는 여자만 있으면 행복하잖아.
아군을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수혜라는 여자 정말 행복한 여자라고..
.그래서 나도 수혜라는 여자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
“그거야. 제가 멍청해서 그래요. 전 꿈이 없는 놈이거든요.
.삶의 목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그냥 어릴 적부터 수혜아가씨 겉에 있으면 행복했어요.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아가씨 겉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고, 다른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꿈, 희망...야망...목표..아군은 이런 단어들하고 친하지 않는 모양이지.”
“하하하~ 지금까지 친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젠 좀 친해보려 해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아군은 뭐가되고 싶어.”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일단 아가씨를 찾아야죠.”
“또 아가씨~.알았어. 수혜의 행방은 내가 알아볼게.”
“참~ 그런데 왜 누나는 잠마동주의 명령을 받는 거죠. 마령단에 중독되었기 때문인가요?”
“내가 잠마동에 왜 잠입했다고 했지.
난 궁주님의 명령을 받고 잠마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려고 잠마동에 잠입했어.
그리고 지금은 배화교가 십이사를 이용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알아내려 해. 그게 내 임무야.”
“음~ 북해빙궁은 배화교와 같은 편이잖아요. 그런데 말 안 해요.”
“북해빙궁이나 배화교나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친 집단이야.
지금이라도 이해가 상충되면 서로 배신하고 갈려서겠지.
세상사가 다 그래..달면 삼키고 쓰면 뺏는 거야.
배화교도 우릴 이용하려고하는 거지 우리 무조건 신뢰하진 않아.
물론 북해빙궁도 마찬가지지.”
“참~ 복잡하네요. 뭐가 그리 복잡해요. 다 부질없는 욕심 때문이에요.
욕심을 버리며 다들 행복하잖아요.”
“영감탱이 같은 말만 하네.세상 사람들이 모두 동생처럼 생각하면 되겠지
하지만 세상에 동생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니.”
“하긴...저도 세상을 돌아봤지만 세상 참 더럽데요.
가진 자는 베풀 줄은 모르고 힘없는 자를 비틀어 더욱 가지려하고..
권력을 가진 자는 거들먹거리며 위세나 부릴 줄 알죠.”
“내가 왜 빙궁에 충성하는지 알아...빙궁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은 여자들.
그러니까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남편에게 버림받고 상처받은 여인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여인들.
.힘없고 나약한 여인들이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든 게 빙궁이야.
난 그래서 빙궁에 충성해.”
“저도 이놈의 세상은 한번쯤 뒤집어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왕실은 백성들을 돌보기보다는 권력 다툼으로 백성들만 고달푸게 하더니
이제 새로운 황제는 오랑캐를 정벌한다는 구실아래 민생을 돌보지 않고
백성들을 쥐여 짜면서까지 전쟁준비에 혈안이 되었어요.
무림도 마찬가지죠. 강호를 통일한 구파일방과 칠대문파는 돈과 권력을 탐하면서
악취가 진동할 정도로 섞었어요. 왕실이나 무림이나 모두 백성들이 등을 돌린 거죠.”
“아군이 오늘 따라 말이 많네...그래서 아군은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
“그냥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냥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려고 해요.”
“그게 과연 될까? 너무 늦은 거 같지 않아. 이미 아군의 손에 두 명이 죽었어.”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잠마동주가 시킨 일이잖아요.”
“남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아무리 잠마동주가 시켰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에 옮은 행동이 아니라면
목이 칼이 들어와도 하지 말았어야지.”
“그..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저번에 꼬마 기억나..단목신검의 어린 딸 말이야. 동생이 걱정된다면 나무에 올려놓고 왔지.
그 꼬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군이 꼬마의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그 꼬마의 인생은 엉망이 되겠지..
그리고 말이야..정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겠다면 잠마동주의 음모를 막아야해.
그들은 중원 무림을 집어 삼키려 하고 있어.”
“그건 북해빙궁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부인하지 않겠어. 맞아. 북해빙궁도 마찬가지야..
.그만하자 더 이야기해야 답이 없다. 아군은 아군의 인생을 사는 거야.”
“북해 빙궁이 바라는 건 뭐죠.”
“왜 물어보지.”
“그냥 궁금해서...”
“빙궁이 바라는 거라..글쎄..나도 모르겠어. 무림 정복을 원하는 걸까?”
“누나도 빙궁의 목적이 뭔지 몰라요. 그냥 뜬구름 잡듯이 여자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그게 빙궁의 목적인가요.”
“그렇게 물어보니 할말이 없네..하지만 이건 확실해..난 빙궁의 은혜를 입었고 빙궁을 배신할 수 없어.”
“쩝~ 누나도 대답하지 못하는군요..봐요..빙궁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의 최종목표도 어차피 무림정복입니다. 호랑이를 몰아내고 여우를 받아들인들 세상이 달라질까요.”
“말이 지나치군. 빙궁이 여우란 말이야.”
“됐어요. 그냥 해본 말입니다. 역시 꿈이란 것도 허망한 겁니다.
전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단순하게 살랍니다.”
“동생하고 말하다보면 짜증이 나..맘대로 해. 이제 빙궁을 도와달라는 말도 안 해.
그냥 있는 그대로 상부에 보고 할 거야.”
“그래요...제가 짜증나는 놈이에요.”
“답답해서 그래...뭘 그렇게 따지는 게 많아. 휴~ 가서 목정신니나 처리하자.”
궁아라는 정말 삐진 건지 말을 몰아 먼저 달라가 버린다.
아군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자신의 머리를 쳤다. 자신이 이상한 놈인가 싶은 모양이다.
“어제 했던 말은 지켜야죠.”
“무슨 말.”
“아가씨 찾아주겠다는 말.”
“그건 내가 결정한 사항이 아니야. 동생도 빙궁을 도와주겠다고 확답하지 않았잖아.”
“아가씨를 찾고...마령단의 해약을 찾을 때까지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
“그게 대답이야....그게 조건이냐고...됐어. 나도 있는 그대로 보고 할 거야.”
궁아라는 말이 거품을 물도록 힘차게 달려가 버린다. 아군은 쓰게 웃더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자은사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자은사의 명물이 대안탑(大雁塔)이다.
그들은 대안탑을 살펴보다가 자은사 경내를 수색했다. 목정신니를 찾기 위해서다.
그들이 한참 경내를 살펴보고 있으니 동자승이 아군에게 합장을 한다.
“시주님들은 누구 찾고 계십니까?”
“아~ 우리들은 목정신니님을 찾아왔어요.”
“아~ 아미의 목정신니님을 찾으세요...그분이라면 장차암에서 수도하고 계세요.”
“장자암이요..혹시 그곳이 어딘지 아세요.”
“저기 길을 따라 올라가시다 보면 곰바위가 나오는데
곰바위에서 오른 쪽으로 따라 올라가시면 장차암이 나와요.”
“감사합니다.”
아군과 궁아라는 동자승에게 합장을 하고 그가 알려준 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한참 산길을 올라가니 곰처럼 생긴 바위가 나타났다.
아마 이 바위를 보고 곰 바위라 한 모양이다.
아군과 궁아라는 위로 오른 쪽 길을 따라가니 올라가니 조그만 암자가 보였다.
그들이 암자에 도착해 보니 30대 초반의 여승이 밤사이 내린 눈을 치우고 있는데
파르라니 깍은 머리와 아담한 얼굴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승이었다.
그녀는 궁아라와 아군을 보며 합장을 했다.
“이곳은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인데...시주들은 무슨 일로 이곳까지 찾아왔죠.”
“예~ 이곳에 목정신니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제가 목정신니입니다. 절 찾아오신 겁니까?”
“아! 당신이 목정신니...동생 어떻게 할 거야.”
“예~ 뭐요.”
“이번에도 동생이 처리해.”
“저....저기...이번에는 누님이 손을 쓰시죠.”
“왜 나보고 하라는 거지.”
“저기.... 여자에게 손을 쓴다는 것이 좀..”
“참~ 그래....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이요.”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마.”
“알았어요.”
목정신니는 갑자기 찾아온 젊은 남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궁아라는 아군에게 떨어져 목정신니에게 합장을 하니 목정신니도 궁아라에게 합장을 했다.
그때 갑자기 궁아라의 손가락이 펴지며
날카로운 강기가 고개를 숙인 목정신니의 신봉혈(젖꼭지 사이)을 향해 날아갔다.
목정신니는 깜짝 놀라 철판교 수법으로 상체를 뒤로 젖혔고,
궁아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열개의 손가락을 튕기니
날카로운 빙한지기가 목정신니의 상체를 행해 날아갔다.
목정신니는 다급한 김에 땅바닥에 몸을 굴려 궁아라의 공격을 피하지만
옆구리에 빙한지를 맞아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가 몸속에 들어오며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한번 승기를 잡은 궁아라는 쉬지 않고 빙한지를 날리며
막 일어나려는 목정신니의 가슴을 행해 빙백장을 날린다.
목정신니는 빙한지의 공격을 피하다가 갑자기 날아온 빙백장을 피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뒤로 넘어갔고,
궁아라는 쓰려진 목정신니의 혈도를 점해 버린다.
설명은 무척 길었다. 하지만 궁아라의 공격이 시작되고 목정신니를 제압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지 않았다.
목정신니는 불시에 기습을 당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궁아라에게 당한 것이다.
“쿨럭...쿨럭..당신들은 누군데 날 공격하는 거죠.”
목정신니를 피를 토하며 궁아라에게 말했고, 궁아라는 귀찮다는 듯이 그녀의 아혈을 점해 버렸다.
“곧 죽을 년이 궁금한 것도 많다. 죽기 전에 적선이나 하고 죽어.”
궁아라는 바닥에 쓰려진 목정신니의 상의를 찍어버리니, 백설 같은 목정신니의 상체가 드려났다.
궁아라는 목정신니를 반듯하게 눕히니..신니의 아름다운 젖가슴이 세상 밖으로 드려났다.
아군은 한쪽에서 궁아를 지켜보고 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싸움은 끝났다. 그런데 궁아라는 깨끗하게 죽이면 끝날 것인데 상대에게 모욕을 주고 있다.
“뭐하는 겁니까? 그냥 죽이세요.”
“내가 처음부터 말했지...상관하지 말라고.”
아군은 할말이 없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궁아라는 목정신의 젖가슴을 살펴보다가 그녀의 날씬한 아랫배를 만져보더니
손가락을 세워 몇 개의 혈도를 누르니...
적개심에 불타던 목정신니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하더니 숨을 몰아쉰다
. 궁아라는 목정신니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하이....하이...이년..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별거 아냐. 너에게 소녀미혼공을 펼쳐 봤어.
요즘에 이해가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당신에게 시험해 봤지. 어디 보자.”
궁아라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목정신니의 젖가슴을 애무하니 목정신니의 신음소리가 높아진다.
목정신니는 태어나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몸의 피가 뜨겁게 솟구치고 몸에서 알 수 없는 흥분 몰아친다.
아군은 한쪽에서 들리는 여인의 신음소리를 듣다가 자리를 피하려 했다.
“됐어. 다 끝났으니까 같이 가.”
궁아라의 차가운 음성이 들리더니 갑자기 목정신니가 부들부들 떨었다.
궁아라가 목정신의 사혈을 찍어 죽어버린 것이다.
“이상해하단 말이야. 같은 여자에게도 통하는데...정말 이상해.”
“무슨 말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전에 떠나자.”
“걱정되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어요.”
“내가 쓸데없이 언니 동생 하자고 했나봐..무슨 남자가 그렇게 말이 많아.
그냥 옛날 과묵한 아군으로 돌아가라.”
“하~ 참~..가요.”
아군과 궁아라는 차갑게 식어버린 목정신니의 시체를 뒤로하고 장자암을 떠났다.
계 속
--작가 주
**借尸還魂 (차시환혼) : 죽은 영혼이 다른 시체를 빌려 부활한다는 뜻으로
군사상에서는 이용 할만한 모든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군사적인 의도를 실현함을 말합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 서로 미워하면서도 공통의 어려움이나 이해에 대해서는
협력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
역상감기법 : 문양의 바깥쪽을 파내 문양을 튀어나오게 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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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 ~~~~.
감사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잼납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감사히읽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
재미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