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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연방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영면하시다.♤
세기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께서 2022년 9월 8일 70년에 달하는 재위 끝에 향년 96세의 연세로 밸모럴 성(Balmoral Castle)에서 영면하셨다. 영 영반에서는 10일간의 추모 후에 9월 28일 장례를 모시었다. 1952년 2월 6일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며, 세계적으로도 여왕으로서는 재위 기간이 가장 오래 재위 이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는 왕위에 즉위할 위치는 아니었다.
1936년 조지 5세가 사망하여 에드워드 왕세자가 즉위하였으나 그해 말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남동생 앨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넘겨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의 장녀 엘리자베스가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어 즉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위식에서 “내 삶이 길든 짧든 평생토록 국민을 섬기는데 헌신할 것임을 여러분 앞에 선언 합니다”라고 선서한 후 재임 기간 중 그 약속은 지켜졌다.
이미 현대적 입 현군 주제가 자리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실권은 없지만 여왕은 매사에 신중했고,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성격이므로 스스로 이점을 잘 인식하고 정치에 관해서는 한 마디 발언을 하지 않아 현대 왕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래서 영국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변함없이 받으므로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영면하실 때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으신 분이었다.
여왕이 어느 편에 치우쳐 정치에 개입을 하였다면 나라 발전에 저해 되고 분열로 영국의 국가 여건상 발전도 없고, 세계에서 영국이 오늘날의 위치에 훨씬 못 미치는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영 여왕은 정치적으로 실권은 없어도 영국의 어느 실권자들보다 국격을 한층 높인 분이시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우리국민은 부럽고 존경하고, 마음이 들어 욕심나는 분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 등의 민감한 부분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해왔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한 사람의 서거에 세계 각국 애도 물결이 이어짐은 동서고금 역사 앞에서도 처음이지만, 누구나 개인도 본인의 처세에 따라 모두가 정해지는 것이라 느껴진다.
여왕께서는 18세이던 1945년, 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시기에 영국군 여군 부대에 중위로 보급 차량 운행으로 대위 진급하였다. 비록 군에서 활동한 기간은 약 3주 정도였지만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경력도 있었다.
항상 절제된 언어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남을 무시하지 않으며
잘난 체하지 않고
남의 앞을 가로지르지 않으셨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께서는 25세에 필립공과 결혼을 하였는데 필립공은 그리스 왕국과 덴마크의 왕자 직위와 계승권을 포기하고 이름도 영어식인 필립으로 바꾸고, 외가의 성인 '마운트배튼'을 사용하여 '필립 마운트배튼'으로 개명하면서 상기된 논란거리를 정리했다. 2021년 4월 9일 남편 필립 공이 9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74년간의 결혼 생활이 끝났는데 매우 부부 금실이 좋아 여왕께서는 마음속에 많은 외로움을 느끼셨을 것 같다.
영국 왕실가계도는 복잡하여 좀 더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정도만 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한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내외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1883년 한·영 우호 통상항해조약을 맺고 수교한 이후 영국 국가원수로서 첫 방한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방한 시 안동 하회마을, 풍산 류 씨 문중의 고택인 충효 당을 방문한 자리에선 여왕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등 한국의 전통 예법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할 당시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일흔세 번째 생신상을 받으시고 일에 대해 언급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닿았던 점이 화제다.
이후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방한 당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장 제정을 위해 버킹엄 궁에 온 신임 주영 한국대사들에게 하회마을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순방 중 만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을 국빈 초대하여 6명 대통령과 14명의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다.
합죽선을 선물로 받은 뒤, 내당을 나와 뜰 장독대에서 종부 최 씨가 만드는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습니다.
경북도지사. 안동시장,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며 내당을 나와 뜰 장독대에서 종부 최 씨가 만드는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습니다.
여왕이 본채 앞마당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면서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회원 21명이 별신굿 탈놀이 열두 마당 중 여섯 번째 인 양반 선비 마당을 중심으로 10여 분간 춤사위를 펼쳤습니다. 춤사위가 진행되는 동안 여왕과 수행원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마련한 국빈만찬 답사를 통해 "오늘 보는 한국은 제가 왕위에 오른 1952년 당시 영국민이 알고 있던 한국과 많이 다르다"며 "한국 국민들이 산산조각이 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세계 주요 산업국가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방한 일정 동안 서울 인사동 거리와 이화여대를 찾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새천년 시대를 바로 앞둔 이 시점에 이뤄진 저의 방한은 양국 관계의 힘을 상징하는 그런 방문"이라고 강조하시는 등 다방면으로 우리나라에 친근감을 나타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취타대의 복장에 관심을 보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통 의상을 설명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이었다고 한다.
봉정사 주지스님과 총무 성묵 스님의 안내로 대웅전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둘러보고 극락전 앞 3층 석탑 앞에 있는 높이 1m 남짓한 돌탑에 대한 유래를 설명 듣고 자그마한 돌 하나를 올렸다
여기에서도 여왕께서는 남의 나라 풍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왕은 안동 만세루 극락전 절 아래로 펼쳐진 봉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아름답고 인상적인 경치라고 감탄을 하시는 서정적인 여성다움도 보이셨다.
이러한 여왕께도 여성으로서의 피할 수 없는 아픔은 있으셨다.
아들 찰스 황태자와 며느리 다이나 왕비의 이혼과 사망이다.
국민들은 이때 다이나 왕비를 동정하고 황실에 대하여 좋지 않은 국민감정이 형성되었다. 자연스레 그 비난은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향했다. 당시 왕실에 대한 비판 여론은 상당해 왕실 폐지론 이 가장 높게 고개를 들었으나 자식 앞에 여왕도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며느리고 맞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안동에서 추모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안동에서는 이때 심은 나무와 당시 여왕이 걸었던 길을 ‘로열 웨이(Royal Way)’로 지정되어 지금도 볼 수 있다.
안동시와 하회마을보존회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생전에 방문했던 하회마을에 추모 공간을 마련 한다"라고 밝혔다. 추모공간은 여왕이 하회마을에 들러 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 인근에 마련될 예정이다. 당시 여왕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영국은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윈저 왕조 제4대 국왕. 선왕은 제3대 국왕이자 아버지인 조지 6세이며, 4대 엘리자베스 여왕 2세, 다음 왕 자리는 제5대 국왕이자 장남인 찰스 3세에게 계승된다.
영국은 전 세계 역사상 통치 전략이 가장 교묘하게 뛰어난 국가다.
국민 한 사람이 국가를 선양하고 국격을 낮출 수 있는지 얼리 베스 여왕 2세가 다 말씀해주셨다. 일반 서민이라고 나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 스스로 반듯하게 살아도 국가에 보탬이 되는 국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 연방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이제 편히 잠드소서.
스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 김대중 대통령과 퍼레이드 안동에서 일흔세 번째 생신모습
세기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께서 2022년 9월 8일 70년에 달하는 재위 끝에 향년 96세의 연세로 밸모럴 성(Balmoral Castle)에서 영면하셨다. 영 영반에서는 10일간의 추모 후에 9월 28일 장례를 모시었다. 1952년 2월 6일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며, 세계적으로도 여왕으로서는 재위 기간이 가장 오래 재위 이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는 왕위에 즉위할 위치는 아니었다.
1936년 조지 5세가 사망하여 에드워드 왕세자가 즉위하였으나 그해 말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남동생 앨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넘겨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의 장녀 엘리자베스가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어 즉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위식에서 “내 삶이 길든 짧든 평생토록 국민을 섬기는데 헌신할 것임을 여러분 앞에 선언 합니다”라고 선서한 후 재임 기간 중 그 약속은 지켜졌다.
이미 현대적 입 현군 주제가 자리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실권은 없지만 여왕은 매사에 신중했고,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성격이므로 스스로 이점을 잘 인식하고 정치에 관해서는 한 마디 발언을 하지 않아 현대 왕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래서 영국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변함없이 받으므로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영면하실 때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으신 분이었다.
여왕이 어느 편에 치우쳐 정치에 개입을 하였다면 나라 발전에 저해 되고 분열로 영국의 국가 여건상 발전도 없고, 세계에서 영국이 오늘날의 위치에 훨씬 못 미치는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영 여왕은 정치적으로 실권은 없어도 영국의 어느 실권자들보다 국격을 한층 높인 분이시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우리국민은 부럽고 존경하고, 마음이 들어 욕심나는 분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 등의 민감한 부분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해왔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한 사람의 서거에 세계 각국 애도 물결이 이어짐은 동서고금 역사 앞에서도 처음이지만, 누구나 개인도 본인의 처세에 따라 모두가 정해지는 것이라 느껴진다.
여왕께서는 18세이던 1945년, 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시기에 영국군 여군 부대에 중위로 보급 차량 운행으로 대위 진급하였다. 비록 군에서 활동한 기간은 약 3주 정도였지만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경력도 있었다.
항상 절제된 언어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남을 무시하지 않으며
잘난 체하지 않고
남의 앞을 가로지르지 않으셨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께서는 25세에 필립공과 결혼을 하였는데 필립공은 그리스 왕국과 덴마크의 왕자 직위와 계승권을 포기하고 이름도 영어식인 필립으로 바꾸고, 외가의 성인 '마운트배튼'을 사용하여 '필립 마운트배튼'으로 개명하면서 상기된 논란거리를 정리했다. 2021년 4월 9일 남편 필립 공이 9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74년간의 결혼 생활이 끝났는데 매우 부부 금실이 좋아 여왕께서는 마음속에 많은 외로움을 느끼셨을 것 같다.
영국 왕실가계도는 복잡하여 좀 더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정도만 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한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내외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1883년 한·영 우호 통상항해조약을 맺고 수교한 이후 영국 국가원수로서 첫 방한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방한 시 안동 하회마을, 풍산 류 씨 문중의 고택인 충효 당을 방문한 자리에선 여왕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등 한국의 전통 예법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할 당시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일흔세 번째 생신상을 받으시고 일에 대해 언급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닿았던 점이 화제다.
이후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방한 당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장 제정을 위해 버킹엄 궁에 온 신임 주영 한국대사들에게 하회마을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순방 중 만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을 국빈 초대하여 6명 대통령과 14명의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다.
합죽선을 선물로 받은 뒤, 내당을 나와 뜰 장독대에서 종부 최 씨가 만드는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습니다.
경북도지사. 안동시장,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며 내당을 나와 뜰 장독대에서 종부 최 씨가 만드는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습니다.
여왕이 본채 앞마당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면서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회원 21명이 별신굿 탈놀이 열두 마당 중 여섯 번째 인 양반 선비 마당을 중심으로 10여 분간 춤사위를 펼쳤습니다. 춤사위가 진행되는 동안 여왕과 수행원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마련한 국빈만찬 답사를 통해 "오늘 보는 한국은 제가 왕위에 오른 1952년 당시 영국민이 알고 있던 한국과 많이 다르다"며 "한국 국민들이 산산조각이 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세계 주요 산업국가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방한 일정 동안 서울 인사동 거리와 이화여대를 찾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새천년 시대를 바로 앞둔 이 시점에 이뤄진 저의 방한은 양국 관계의 힘을 상징하는 그런 방문"이라고 강조하시는 등 다방면으로 우리나라에 친근감을 나타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취타대의 복장에 관심을 보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통 의상을 설명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이었다고 한다.
봉정사 주지스님과 총무 성묵 스님의 안내로 대웅전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둘러보고 극락전 앞 3층 석탑 앞에 있는 높이 1m 남짓한 돌탑에 대한 유래를 설명 듣고 자그마한 돌 하나를 올렸다
여기에서도 여왕께서는 남의 나라 풍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왕은 안동 만세루 극락전 절 아래로 펼쳐진 봉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아름답고 인상적인 경치라고 감탄을 하시는 서정적인 여성다움도 보이셨다.
이러한 여왕께도 여성으로서의 피할 수 없는 아픔은 있으셨다.
아들 찰스 황태자와 며느리 다이나 왕비의 이혼과 사망이다.
국민들은 이때 다이나 왕비를 동정하고 황실에 대하여 좋지 않은 국민감정이 형성되었다. 자연스레 그 비난은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향했다. 당시 왕실에 대한 비판 여론은 상당해 왕실 폐지론 이 가장 높게 고개를 들었으나 자식 앞에 여왕도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며느리고 맞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안동에서 추모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안동에서는 이때 심은 나무와 당시 여왕이 걸었던 길을 ‘로열 웨이(Royal Way)’로 지정되어 지금도 볼 수 있다.
안동시와 하회마을보존회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생전에 방문했던 하회마을에 추모 공간을 마련 한다"라고 밝혔다. 추모공간은 여왕이 하회마을에 들러 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 인근에 마련될 예정이다. 당시 여왕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영국은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윈저 왕조 제4대 국왕. 선왕은 제3대 국왕이자 아버지인 조지 6세이며, 4대 엘리자베스 여왕 2세, 다음 왕 자리는 제5대 국왕이자 장남인 찰스 3세에게 계승된다.
영국은 전 세계 역사상 통치 전략이 가장 교묘하게 뛰어난 국가다.
국민 한 사람이 국가를 선양하고 국격을 낮출 수 있는지 얼리 베스 여왕 2세가 다 말씀해주셨다. 일반 서민이라고 나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 스스로 반듯하게 살아도 국가에 보탬이 되는 국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 연방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이제 편히 잠드소서.
스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 김대중 대통령과 퍼레이드 안동에서 일흔세 번째 생신모습
세기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께서 2022년 9월 8일 70년에 달하는 재위 끝에 향년 96세의 연세로 밸모럴 성(Balmoral Castle)에서 영면하셨다. 영 영반에서는 10일간의 추모 후에 9월 28일 장례를 모시었다. 1952년 2월 6일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며, 세계적으로도 여왕으로서는 재위 기간이 가장 오래 재위 이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는 왕위에 즉위할 위치는 아니었다.
1936년 조지 5세가 사망하여 에드워드 왕세자가 즉위하였으나 그해 말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남동생 앨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넘겨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의 장녀 엘리자베스가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어 즉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위식에서 “내 삶이 길든 짧든 평생토록 국민을 섬기는데 헌신할 것임을 여러분 앞에 선언 합니다”라고 선서한 후 재임 기간 중 그 약속은 지켜졌다.
이미 현대적 입 현군 주제가 자리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실권은 없지만 여왕은 매사에 신중했고,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성격이므로 스스로 이점을 잘 인식하고 정치에 관해서는 한 마디 발언을 하지 않아 현대 왕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래서 영국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변함없이 받으므로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영면하실 때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으신 분이었다.
여왕이 어느 편에 치우쳐 정치에 개입을 하였다면 나라 발전에 저해 되고 분열로 영국의 국가 여건상 발전도 없고, 세계에서 영국이 오늘날의 위치에 훨씬 못 미치는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영 여왕은 정치적으로 실권은 없어도 영국의 어느 실권자들보다 국격을 한층 높인 분이시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우리국민은 부럽고 존경하고, 마음이 들어 욕심나는 분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 등의 민감한 부분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해왔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한 사람의 서거에 세계 각국 애도 물결이 이어짐은 동서고금 역사 앞에서도 처음이지만, 누구나 개인도 본인의 처세에 따라 모두가 정해지는 것이라 느껴진다.
여왕께서는 18세이던 1945년, 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시기에 영국군 여군 부대에 중위로 보급 차량 운행으로 대위 진급하였다. 비록 군에서 활동한 기간은 약 3주 정도였지만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경력도 있었다.
항상 절제된 언어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남을 무시하지 않으며
잘난 체하지 않고
남의 앞을 가로지르지 않으셨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께서는 25세에 필립공과 결혼을 하였는데 필립공은 그리스 왕국과 덴마크의 왕자 직위와 계승권을 포기하고 이름도 영어식인 필립으로 바꾸고, 외가의 성인 '마운트배튼'을 사용하여 '필립 마운트배튼'으로 개명하면서 상기된 논란거리를 정리했다. 2021년 4월 9일 남편 필립 공이 9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74년간의 결혼 생활이 끝났는데 매우 부부 금실이 좋아 여왕께서는 마음속에 많은 외로움을 느끼셨을 것 같다.
영국 왕실가계도는 복잡하여 좀 더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정도만 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한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내외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1883년 한·영 우호 통상항해조약을 맺고 수교한 이후 영국 국가원수로서 첫 방한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방한 시 안동 하회마을, 풍산 류 씨 문중의 고택인 충효 당을 방문한 자리에선 여왕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등 한국의 전통 예법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할 당시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일흔세 번째 생신상을 받으시고 일에 대해 언급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닿았던 점이 화제다.
이후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방한 당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장 제정을 위해 버킹엄 궁에 온 신임 주영 한국대사들에게 하회마을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순방 중 만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을 국빈 초대하여 6명 대통령과 14명의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다.
합죽선을 선물로 받은 뒤, 내당을 나와 뜰 장독대에서 종부 최 씨가 만드는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습니다.
경북도지사. 안동시장,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며 내당을 나와 뜰 장독대에서 종부 최 씨가 만드는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습니다.
여왕이 본채 앞마당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면서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회원 21명이 별신굿 탈놀이 열두 마당 중 여섯 번째 인 양반 선비 마당을 중심으로 10여 분간 춤사위를 펼쳤습니다. 춤사위가 진행되는 동안 여왕과 수행원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마련한 국빈만찬 답사를 통해 "오늘 보는 한국은 제가 왕위에 오른 1952년 당시 영국민이 알고 있던 한국과 많이 다르다"며 "한국 국민들이 산산조각이 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세계 주요 산업국가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방한 일정 동안 서울 인사동 거리와 이화여대를 찾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새천년 시대를 바로 앞둔 이 시점에 이뤄진 저의 방한은 양국 관계의 힘을 상징하는 그런 방문"이라고 강조하시는 등 다방면으로 우리나라에 친근감을 나타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취타대의 복장에 관심을 보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통 의상을 설명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이었다고 한다.
봉정사 주지스님과 총무 성묵 스님의 안내로 대웅전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둘러보고 극락전 앞 3층 석탑 앞에 있는 높이 1m 남짓한 돌탑에 대한 유래를 설명 듣고 자그마한 돌 하나를 올렸다
여기에서도 여왕께서는 남의 나라 풍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왕은 안동 만세루 극락전 절 아래로 펼쳐진 봉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아름답고 인상적인 경치라고 감탄을 하시는 서정적인 여성다움도 보이셨다.
이러한 여왕께도 여성으로서의 피할 수 없는 아픔은 있으셨다.
아들 찰스 황태자와 며느리 다이나 왕비의 이혼과 사망이다.
국민들은 이때 다이나 왕비를 동정하고 황실에 대하여 좋지 않은 국민감정이 형성되었다. 자연스레 그 비난은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향했다. 당시 왕실에 대한 비판 여론은 상당해 왕실 폐지론 이 가장 높게 고개를 들었으나 자식 앞에 여왕도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며느리고 맞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안동에서 추모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안동에서는 이때 심은 나무와 당시 여왕이 걸었던 길을 ‘로열 웨이(Royal Way)’로 지정되어 지금도 볼 수 있다.
안동시와 하회마을보존회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생전에 방문했던 하회마을에 추모 공간을 마련 한다"라고 밝혔다. 추모공간은 여왕이 하회마을에 들러 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 인근에 마련될 예정이다. 당시 여왕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영국은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윈저 왕조 제4대 국왕. 선왕은 제3대 국왕이자 아버지인 조지 6세이며, 4대 엘리자베스 여왕 2세, 다음 왕 자리는 제5대 국왕이자 장남인 찰스 3세에게 계승된다.
영국은 전 세계 역사상 통치 전략이 가장 교묘하게 뛰어난 국가다.
국민 한 사람이 국가를 선양하고 국격을 낮출 수 있는지 얼리 베스 여왕 2세가 다 말씀해주셨다. 일반 서민이라고 나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 스스로 반듯하게 살아도 국가에 보탬이 되는 국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 연방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이제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