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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7일 금요일
[(녹) 연중 제8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베드로 사도는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어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가 되십시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4,7-13 사랑하는 여러분, 7 만물의 종말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 9 불평하지 말고 서로 잘 대접하십시오. 10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11 말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영광과 권능을 누리십니다. 아멘. 12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3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25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16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베타니아에서 예수님께서는 배가 고프셔서 무엇인가를 드시고 싶었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고 싶으셨으나 열매가 달리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나무는 메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의 탐욕 속에 빠져 멸망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상인들과 환전상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여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성전이 돈벌이 장소로 변질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외면적으로 상인들과 대사제들의 죄악을 드러내는 행위였지만, 메시아의 도래를 알려 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 행위로 예수님께서는 죽어야 할 표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방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지 않는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크고 화려한 교회, 세상의 부와 명예를 지닌 교회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먼저 어둡고 그늘진 사람들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미움과 증오가 있는 곳에 용서와 사랑이 있게’ 하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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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8주 금 마르 11,11-25(16.5.27)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마르 11,17)
Cleansing of the Temple
♣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배고픔 ♣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동은 예언적인 것으로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기대에 응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기대했던 열매를 맺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고, 형제들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자기 죄의 용서를 비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배고픔’(11,12)은 육체적인 굶주림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정의의 열매를 애타게 찾으신 것이지요. 그런데 ‘무화과철이 아니었습니다.’(11,13) 곧 이스라엘은 이미 회개의 시기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등지고 신앙을 거부한 탓에 ‘뿌리째 말라버렸습니다.’(11,12)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악행을 감추려고 성전을 강도의 소굴(11,17)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하십니다. 한마디로 성전의 제사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만 하고 회개시키지 않음으로써 결국 성전을 세속적인 장터로 바꿔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품고 실천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곧 기도할 때 내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그 뜻을 행동으로 담아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갈망하고 실천하는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미움이 아닌 하느님의 용서에 의지해야 하고, 그 용서를 받기 위하여 먼저 이웃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정화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때문에’란 언어습관 하나를 바꿔보면 어떨까 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때문에 화났다, ~때문에 기분 나쁘다, ~때문에 상처받았다, ~때문에 실수했다, ~때문에 미치겠다, ~때문에 잘되는 일이 없다, ~때문에 신앙생활도 못하겠다, ~때문에 살고 싶지 않다 등등의 말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말일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지입니다.
반대로 ‘때문에’란 표현을 긍정적으로 잘 사용한다면 정화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하느님 때문에 생명을 받았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영신의 형제자매들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며, 고통과 시련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한국사회를 성전으로 바꿔나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숨쉬도록 우리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며, 갈등과 불의가 만연해 있는가를 직시하며 모두의 공동선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5월27일(금) 음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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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르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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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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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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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05.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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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르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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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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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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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05.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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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님은 13세경 서울로 올라와
교우 황 마리아의 집에서 식모로 생활하며 교리를 배워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살고자 결심하였으나 혼기가 차자
부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여 남매를 두었다.
혼인한 지 15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자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3월 김 바르바라는 몸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고
3개월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 기갈, 염병 등으로 35세에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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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사별한 후
딸 하나를 데리고 황미라아 댁에서 식모 살이 중에 교리를 배워,
과부가 된 후에 딸 하나를 데리고 신앙을 지키다가
주인 댁과 함께 체포되어
옥중에서 굶주림, 기갈, 염병으로 삶을 마감하였으니.
35세의 순교자 성녀 김 바르바라 님이시여
타들어가는 입술로 숨져간 님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는 한 잔의 커피라도 줄이겠사오니
천상의 기도로 이 죄인을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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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르바라님은 독실한 구교우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서울 청파동에서 이영희, 이정희 두 이모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4월, 15세의 어린 나이로 체포되어 포청에서 신문을 받은 뒤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 어린 것이 요물이라 하여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하였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자 다시 포청으로 송환되었다. 포청에서 이 바르바라는 전보다 훨씬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꿋꿋이 참으며 함께 갇혀 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5월 27일 기갈과 염병 그리고 고문의 여독으로 15세의 어린 나이로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
외할머니인 순교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와
역시 순교자이신 두 이모의 보살핌 가운데 자라나
모진 고문으로 옥중에서 병사하신
15세의 성녀 이 바르바라 님이시여
모든 청소년들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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