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참여하는 대회지만 걱정이 많다. 대상포진이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중도에 악화하면 방법이 없다. 그런저런 이유로 전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강화도 창후리를 향했다.
나의 환갑미션이자 평촌마라톤클럽에서 갑장 4명을 포함하여 7명이나 참여했다. 민폐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아직 환자나 마찬가지인 나로선 부담이 크다. 오래전부터 이름이 익숙한 황헌 대학 선배님도 만났다. 그리스에서 30년이상을 사시다 강화도로 영구 귀국하셨다. 그리스 스파르타 슬론 대회 때가 되면 한국선수들을 먹이고 재워주고 했었다.
출발은 좋았다. 워낙 땀이 많은지라 물소비가 많았지만 CP나 AP에 이르지 않더라도 편의점에서 얼마든지 필요한 것을 보급할 수 있었다. 2005~2006년 참가했을 때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때보다 주자들에겐 훨씬 편해졌다.
42km 1CP에서 식사를 하고 한강변을 따라갔다. 길이 편해서 그런지 잠이 쏟아진다. 첫날부터 잠과의 전쟁으로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잠을 못 잔게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그 덕에 여의도에서 샛강으로 빠지며 2km 대방역까지 갔다오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반포대교(76km)에 헝가리 대사관 Annett 영사가 응원 나온다는 것을 말렸다. 새벽 2시쯤 도착하여 너무 늦어서 안 된다고 했지만, 실제 도착은 그보다도 1시간 30분이나 늦은 새벽 3시 30분이었다. 응원나왔으면 난감할 뻔했다.
100km CP에는 14시간 40분에 도착했다. 고재훈씨가 앉아있었다. 식사를 거의 하지도 못한채 잠시 수면을 취한다고 했지만, 함께 진행하다가 자기로 설득했다. 팔당대교 근처까지는 걸었다. 해가 뜨면서 무척 더워지고 있어 다리를 건너자마자 아이스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드러누웠지만 도저히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느낌으로는 1km 이상 진행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500m밖에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갈수록 진행속도는 확연하게 떨어졌다.
118km 지점에서 국수를 한그릇하고 가기로 했다. 역시 재훈씨는 국물만 들이킬 뿐 전혀 먹지를 못했다. 재훈씨가 그 식당에서 자고 가기로 하고, 나는 김길원씨(75시간 시간외로 완주한 의지의 사나이다)랑 함께 움직였다. 사타구니가 쓸려 따가운 통증때문에 점점 신경이 거슬렸다. 그런데 이 분이 아주 놀라운 비법을 알려줬다. 후시딘을 바르면 된다는 것이었다. 인근 약국에 들러 그 분이 구입한 후시딘을 바르고 시간이 흐르자 신통하게도 따가운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다.
125km AP에 이르기 전 주자 두분이 나무데크에 자는 것을 보고 드러누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때쯤부터 등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피로가 누적되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대상포진이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나타났다. 125km에서 과일을 먹고 혼자 가다가 파트너가 바뀌며 지해운씨와 동행하게 되었다. 16~17년 전에도 함께 뛰었던 분이다. 그 분은 입맛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길가 편의점 의자에 걸터앉아 함께 맥주한잔을 했다. 그나마 맥주가 갈증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약간의 허기도 지울수 있었다.
용문 시내를 관통하며 140km를 넘어서자 등판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통증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때 평마의 양승환 형님과 김희정씨가 오셔서 내 위치를 물었다. 포기할 생각이면 여기서 포기하는 것이 내겐 돌아가는 교통편이 훨씬 수월하다. 강행하다가 완주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후유증마저 동반하는 만신창이가 될 수 있고 귀가편마저 고약하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두분이 준비한 죽과 맥주 한병을 비운 후 몇번의 망설임끝에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포기한다고 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내뱉어야 하는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뒤따라오던 홍재문 형님은 걸어서라도 가보자고 설득했지만, 한번 완주했으니 괜찮다며 스스로 소심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주최측은 그렇더라도 200km CP에 둔 가방은 알아서 갖고 가라고 했다. 한번 더 승환형님께 부탁을 하여 가방을 가지러 200km 지점까지 다녀와야 했다.
평촌으로 돌아가는 길, 언제 감았는지 눈을 뜨니 23시 20분이다. 부리나케 택시를 갈아타고 광명역에 이르자 다행히 막차는 잡을 수 있었다. 오송역에서도 BRT 막차를 탈 수 있었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중도포기를 하면 기분이 깔끔하지 않다. 어떤 이유든 준비가 덜 되었다는 방증이다. 앞으로 한반도 횡단을 한두번 더 할 명분이나 이유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한다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철저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 아니면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끝까지 완주를 해야 우울한 기분을 털어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