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뒤꿈치
影園 / 김인희
부엉이가 우는 겨울밤
아버지는 가마솥에 쇠죽을 쑤고
물을 담은 찌그러진 노란 양동이를
쇠죽을 끓인 솥에 넣어 물을 데운다
세숫대야에 쇠죽 냄새가 나는 뜨거운 물을 붓고
뒤꿈치가 자작나무 피부처럼 쩍쩍 갈라진
아버지의 발을 담그고 불린다
윗목에 지난 달력을 찢어 펼치고 앉아
뒤꿈치 불어난 굳은살을 창칼로 도려내는 아버지
수렁배미 논을 휘젓고 다닐 때 한 겹
산비탈 밭을 오르내릴 때 두 겹
집채만 한 짐 지겟작대기 지탱할 때 몇 겹
훈장처럼 차곡차곡 붙은 아버지의 선홍빛 살점
누더기 옷이 된 허울을 하나씩 벗겨 낸다
유년의 추억이 쇠죽처럼 퍼지던 고향 집
웅장한 산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사라지고
아버지 무릎을 베고 노래 부르던 철없는 계집아이
귀밑머리 흰 중년이 되어
동짓달 한밤중 부엉이 소리를 내며
뒤꿈치 튼살에 바셀린을 바른다
※ 낱 말 풀 이
쇠죽 : 짚과 콩, 풀 따위를 섞어 끓인 소의 먹이
창칼 : 여러 가지 작은 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윗목 : 온돌방에서의 위쪽 방바닥
수렁배미 : 수렁처럼 몹시 질어 질퍽질퍽한 개흙으로 된 논배미
지겟작대기 : 지게를 받쳐서 세우는 긴 막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