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이 세운 기독교국가인 미국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란 연말인사가 사라져 갑니다. 그들은, 성탄 인사 대신, “즐거운 휴일”이라고 인사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그것은, 특정 종교의 색채를 줄인다는 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이는, 미국이 기독교국가임을 포기하는 것이며, 그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의 신앙에서 벗어난 행위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신본주의를 부인하고, 인본주의를 앞세우는 것으로, 사람의 근본이 죄성임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롬 3: 10을 보시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의지한다는 것이, 우리의 의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그들이 뛰어나거나 위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결정과 순종이, 그들을 위대한 인물을 만든 것입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아직 그와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한 여인에게서 난 자로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과, 동시에 아담의 원죄로부터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되셨음을 의미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구약의 예언들과 밀접하게 연관시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베들레헴 탄생, 애굽 피신, 나사렛 귀환과 정착 등을 모두 이사야, 미가, 호세아 등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의 측면에서 다룬 것입니다. 특히, 마태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는 그만의 독특한 표현을 반복함으로, 자신의 신앙적 의도를 거듭 강조합니다. 어느 한 사건이 있기 수백 년 전에 거기에 대한 예언이 있었고, 그것이 훗날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이는 먼저 그 예언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것이며, 다음으로 그 사건에 신적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그 분의 초기 생애가 일관되게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진정 예수님이야말로 인류의 구속자요 메시아시라는 것을 우리의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있는 12월이 되면 한 해가 정말 빠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언제나, 한 해 동안 바쁘게, 열심히 살았지만 만족한 마음이 드는 것보다 아쉬움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성탄절을 하루 앞둔 오늘, 예수님을 맞이하고자 기다리는 소망의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영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8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약혼”이란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함으로, 대외적으로 혼인 관계를 선포하는 관습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겁니다. 이는, 본문에 기록된 대로 마리아의 부정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혼 기간 중에 있는 마리아로 하여금 성령으로 잉태케 하신 것은,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리라는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태의 이러한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가치를 신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되거나, 부풀려지거나, 과장 되거나, 억지스럽거나, 강제 교육용 시나리오로 작성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목격 되었던 실제적인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직접 목격한 다수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된 절대적인 진리이며, 이 증언된 사실을 믿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시작이 됩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단독으로 일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어거스틴이 저술한 “고백록”을 보면, 그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에 대해, 자기는 솔직히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 나는 하나님께로 가기만을 소원합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옵소서. 내가 기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을 알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마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 곳에서 모은 것들과 내가 기억하는 것들로 인해, 내가 그저 믿게 된 것들을 말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고백하오니, 아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후, 어거스틴은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 보다 믿음을 앞세우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이 동정녀 탄생의 출생 이야기를 확고부동하게 믿게 만드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마태는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성령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동정녀 탄생이 이루어지게 하신 주체가 되신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화나 전설이라고 할 것이기에, 믿음만이 이 사실을 진짜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을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이 어려운 성경 난제를 이해하고 믿게 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우리는, 믿어지지 않는 동정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간절히 구하고 바라는 자에게 응답과 반드시 찾아오심의 은혜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며 순종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2절을 보시면,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의 성취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선지자란, 주님이 나시기 약 700여 년 전의 이사야 선지자를 말하는 것으로, 사 7: 14을 보시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이 기이한 일은 사실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이제 현실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은 무슨 일을 행하심에 있어서 즉흥적으로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 46: 10을 보시면,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고 합니다. 또, 암 3: 7을 보시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먼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후에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에게 임한 성령의 은혜는, 율법으로 바르게 살아가려는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에서 시작합니다. 이러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분이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의 탄생은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은 그 가슴과 입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흐르는 강물처럼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그 말씀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기에,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세상에 개입하시는 방식이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요셉과 마리아의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영광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4 - 25절을 보시면,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참된 구세주는,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뿐 입니다.
본문은, 요셉이 주의 사자의 명령을 들은 후에 어떻게 순종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24절을 보면, 요셉은 잠에서 깬 후에 그 아내를 데려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식 결혼을 하여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는 겁니다. 이 순종으로 인하여, 마리아와 요셉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하나님에 의해 메시야의 부모가 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영광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사명받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영광에 대한 욕심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따를 때,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자신들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욕심에서 따른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뒤,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때가 얼마나 됩니까? 우리에게 근심 걱정은 산 넘어 산이고, 물 건너 물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 사 41: 10을 보시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합니다. 또, 요 16: 33을 보시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약속하셨고,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올 2023년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한 해였습니다. 이 한 해를 무사히 지내온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많이 힘들지? 내가 함께 해줄게! 앞으로도 힘들 거야 하지만, 내가 있잖아? 힘을 내!”라며, 삶 속에서 지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부족한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이에, 우리는 마리아와 요셉처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리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복음을 방해하는 세상의 어떠한 소리에도 결코 흔들리지 말고, 반석같은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